0살부터 슈퍼스타 965화
[다음 소식입니다. 이틀 전, 오전 제주행 비행기 안. 사십 대 남성이 균형을 잃고 쓰러져 있습니다. 남성은 두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면서 일어서질 못하는데요.]
응급환자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흔들리는 휴대폰 영상이 TV 화면으로 나타났다.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자 승무원들은 빠르게 남성을 비상구 쪽으로 옮기고 기내에 타고 있는 의료인을 찾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로 의사와 간호사를 찾는 닥터콜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타난 두 명의 의대생. 곧바로 승무원에게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고 응급처치를 시작합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응급처치를 하는 의대생으로 보이는 남자들에게도 모자이크가 칠해져 있었다. 물론 없었어도 뒤쪽에서 찍은 영상인 데다가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까딱했다가는 하늘 위에서 큰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다행히도 두 의대생 덕분에 남성은 무사히 제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의대생들은 감사를 표하는 승무원들에게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전하고 떠났습니다.]
각박한 세상에 들려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에 일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와. 다들 엄청 놀랐겠다.
=22 웅성거리는 거랑 닥터콜. 분위기 진짜 무섭네;;;
-원래 이런 영상에는 의대생 인터뷰도 넣지 않아?
=그렇긴 한데, 정체 밝히지 않는 사람들도 가끔 있으니까.
-근데 친한 사람들은 영상보고 다 알던데. 여기 댓글에도 있음ㅋㅋ
=22 한국의대 학생이라고 하더라.
=와! 한국의대!
=이름은 못 밝히지만 엄청 좋은 선배님이심. 진짜 똑똑하고 못 하는 게 없음. 교수님들도 다 저 선배님 좋아함.
=아, 누군지 알겠다ㅋㅋㅋ
-근데 같이 나온 B씨는 누구야? 이 사람 이야기는 없던데?
=다른 의대 친구 아니야? 제주도행 비행기면 놀러 가는 중이었던 것 같음.
많은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는 하루하루.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번 일에 감동하면서도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물론 하나도 모르는 상태라면 의대생들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했겠지만, 한국의대 학생이라는 게 밝혀진 정도로 만족했다.
한국의대생들이 남긴 댓글이나 SNS를 조금만 살펴봐도 누군지 알 수 있기도 했고.
방송국들도 그렇게 열심히 취재하진 않았다.
단독 소식이면 또 모르겠지만 영상은 몇 개 더 있었고, 의대생들을 아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딱히 열심히 취재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더 화제가 될 다른 소식들도 많았다.
그렇게 조금 화제가 되었지만, 곧 잠잠해졌던 일이었다.
서준은 당연하고, 박지후의 정체도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근데 어떻게 알았지?’
제주도 여행을 하는 중에도 간간이 뉴스를 살펴보았던 서준과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맛남 식당] 출연자들과 제작진을 바라보았다.
“어! 맞아! 맞는 것 같아요!”
당시 이코노미석에 타고 있던 제작진들이 그제서야 박지후를 알아보았다.
“그때 본 옆 얼굴이랑 비슷해요!”
“그렇지?!”
그 이야기를 듣고서도 뭔가 멍한 느낌이었다.
의대생. 박지오의 쌍둥이 형. 제주행 비행기. 응급환자. 의인들. 이서준
단어들이 비눗방울처럼 둥실둥실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는데, 도저히 하나로 연결되지가 않았다.
눈을 끔벅이고 있던 강태영이 무언가를 깨닫고는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너 비행기 말이야. 오전 8시 30분 거 타고 왔어?”
서준이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강태영도 서로가 같은 날 제주도에 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공항에서 스친 거 아니야? 하고 웃기도 했다.
“맞아요. 그 비행기 타고 왔는데…….”
말을 하던 서준도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태영이 형도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어요?”
“……나뿐만이 아니라 출연자 다 타고 있었어, 비즈니스석에. 유 피디님이랑 제작진도 있었고.”
!!
강태영의 말에 모두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우리 같은 비행기를 탔던 거야?”
권사형이 진짜 놀란 표정으로 물어보듯 말했지만, 그건 진짜 묻는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답을 알고 있었다.
“와…… 미친……!”
윤효원이 저도 모르게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다른 사람들도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마음이었다.
“진짜 우연도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정혜윤도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비행기에서 대단하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던 의대생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게다가 이서준 배우의 친구들이라니!
“이 정도면 운명 아닐까요.”
조영하가 놀란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인 조영하를 놀리지 않았다. 출연자들부터 제작진까지 다들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그나마 가장 침착한 강태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는데, 응급처치를 한 의대생들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었던 서준이 너랑 친구들이라는 거지?”
정리를 해도 영 믿기지가 않는 이야기였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서준과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맛남 식당] 사람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근데 어떻게 전 줄 아셨어요?”
박지후의 물음에, 박지후를 보며 알아본 제작진이 답했다.
“저랑 몇 명은 이코노미석에 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다 진짜 의사 같으시더라고요. 아, 촬영도 했는데…….”
하고 말을 잇는데,
“……어?”
하고 최하연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의 시선이 최하연에게로 향했다.
“뭐야, 또 뭐 있어?”
이젠 놀라기도 무섭다.
“아니, 그게. 의대생은 둘이었잖아요. 그런데…….”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시선이 서준과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한 명, 쉐프(지망생)가 한 명, 작가(님)가 한 명,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가 한 명.
그리고 의대생이 한 명.
“왜…… 의대생이 한 명이죠?”
……그러게?
왜 한 명이지?
갑자기 분위기가 오싹해졌다.
그럼 내가 본 건? 내가 촬영한 건?
제작진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촬영한 영상을 살펴보려고 했다.
“아, 그건 저예요.”
서준이 웃으며 손을 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지후 도우려고 간 건데, 다들 의대생이라고 착각하시더라고요. 아니라고 할 틈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아하.
여기저기서 작게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착각이었구나.”
“잠깐 진짜 오싹했어.”
하긴. 생각해 보면 뉴스에 나온 영상도 두 명이었는데 잘못 찍혔을 리가 없긴 했다. ……물론 그랬으면 더 무서운 일이었겠지만.
“근데 왜 그때 못 알아봤어요? 이서준 배우잖아요. 이서준 배우!”
윤효원이 의아한 듯 말하자, 강태영이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 일코가 대단하거든. 평상시에도 못 알아보는데, 그렇게 다급한 순간에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서준 씨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고 상상이나 했겠어?”
“난 지금도 안 믿겨.”
그에 서준과 친구들도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그래요.”
서준과 친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정혜윤이 짐짓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심부름도 해주고 재료 손질까지 도와줬는데, 의인들이었다니. 이거 진짜 열심히 요리해야겠는걸.”
그말에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아, 그렇죠!”
“브레이크 타임 얼마나 남았어?”
“35분이요!”
손님들이 오기 전에 서준과 친구들에게 요리를 대접해야 했다.
“자자, 여기 앉으세요.”
서빙부, 조영하와 윤효원이 서준과 친구들을 테이블로 안내했고, 요리부 네 명은 주방으로 들어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사이, 홀에서는 유상백 피디와 서준과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후 씨도 방송에 출연하는 건 어떨까요?”
의대생들을 정체가 밝혀졌을 때부터, 유상백 피디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며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세상에!’
그 단어만 폭죽처럼 머릿속에서 터지고 있었다.
강태영의 지인으로 이서준 배우가 오고, 이서준의 친구로 박지오 선수가 온 것도 굉장한 일이었다. 그런데 박지오의 쌍둥이 형과 이서준이 의인이었다니!
이런 소재를 놓칠 수는 없었다.
전부 다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물론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내보냈다가는 이서준 배우에게도, 박지오 선수에게도 찍힌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TVM에 두 사람이 나오는 모습은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짤리면 또 모르지만.’
그전에 [섬섬생활] 주예진 피디가 먼저 멱살을 잡을 수도 있었다.
짤리고 싶지 않은 직장인, 살고 싶은 유상백 피디가 간절한 눈빛으로 서준과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눠봐도 될까요, 피디님?”
“네,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서준의 말에 유상백 피디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만 해준다면 7월 말, 첫 방송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결정해도 괜찮았다. 아니, 이번 편은 8월 중순쯤에 방송될 것 같으니 그 직전까지도 괜찮았다.
승낙만 해준다면 말이다.
‘제발!’
아련한 눈빛으로 서준과 아이들을 바라보던 유상백 피디가 떠나고, 서빙부 두 사람이 요리를 도우러,
“더 빨리 만들어요, 오빠!”
“더 맛있게!”
아니, 재촉하러 들어간 사이.
서준과 아이들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후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서준과 아이들 모두 서준의 친구라고 밝혀질 때의 소란을 예상하고 있었다.
‘유학 중인 미나나 졸업하고 집에서 작업하는 지윤이는 그럭저럭 괜찮겠지만.’
아직 학교에 다니고, 졸업한 이후에도 병원에서 의료진들과 환자들과 만나야 하는 박지후에게는 곤란한 일일 터였다.
“괜찮아. 방송 나가도.”
그런 서준과 아이들의 걱정과 달리, 박지후는 생각이나 제대로 했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가볍게 대답했다.
미나 오웬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지오야? 생각 좀 하고 말해.”
‘나? 나는 왜?’ 하고 말하는 박지오를 뒤로하고.
서준과 김지윤도 진지한 얼굴로 미나 오웬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볍고 빠른 대답과 달리, 박지후는 이미 충분히 고민한 상태였다.
십수 년 동안.
박지후의 친구, 이서준은 어렸을 때부터 스타였다.
서준과 관련된 일이면 언제나 떠들썩해지는 걸, 박지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을 만나는 의사가 스타와 친한 사이라는 걸 알면 시끄러워진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게 신경 쓰였으면 옛날에 진로를 바꿨지.’
아니면 서준과 친구를 그만두거나.
한때 나름의 사춘기를 겪으며 깊게 고민했던 박지후는 의사도 친구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 같았어. 박지오도 있고.”
축구선수 박지오의 쌍둥이인 것도 언젠가 밝혀질 터였다.
“알려지지 않는 게 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를 쓰고 숨길 생각까지는 없어.”
그런 박지후의 말에 김지윤과 미나 오웬도 동의했다.
두 사람도 ‘언젠가……’ 하고 가끔 생각하기는 했다.
“네가 그렇다면야. 난 아직 밝힐 생각 없지만.”
“나도.”
타의로 알려지는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스스로 밝힐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유명한 쉐프가 된다면,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그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배우 이서준의 친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