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63화
“다음에 또 오……! 시면 안 되는구나. 조심해서 가세요!”
마지막 손님들을 배웅하는 최하연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 나간 손님을 끝으로 손님들로 가득하던 홀에는 이제 [맛남 식당3] 출연자들(+제작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무사히 끝났네.”
정혜윤의 말에 모두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가 바닥을 보이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무사히 점심 타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으하…….”
“드디어 쉰다!”
이제부터 1시간 동안은 브레이크 타임.
출연자들은 각자 스트레칭을 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연장자 권사형은 의자 몇 개를 붙여 드러누우며 으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등허리가 쫙 펴지는 느낌이었다. 바닥에 드러눕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 일이라 다들 흐흐 웃고 말았다.
강태영은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손에 휴대폰과 차가 들어올 길 쪽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아…… 설거지해야 하는데.”
“재료 준비도요.”
모두 몸은 편하게 앉아 있었지만, 머릿속은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었다.
“막내 오면 시키죠!”
“우리 막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겠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윤효원에 정혜윤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공식 막내가 되어버린 강태영의 지인이었다.
“근데 막내 이름이 뭐예요, 태영이 형?”
이름도 모르는데 말이다.
같이 고생하면서 선배님에서 형으로 호칭이 편해진 조영하의 물음에 출연자들과 제작진들의 시선이 강태영에게 쏠렸다.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편이 좋긴 하지. 만났을 때 본 작품이 있으면 이야기하기도 편하고.”
“모르는 작품이라도 지금 찾아보면 되고 말이야.”
권사형과 정혜윤도 동의했다.
‘……누구?’ 하고 묻는 것보다는 ‘그 작품 나오셨죠! 재미있게 봤어요!’ 하는 게 출연자들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았다. 시청자들도 잘 알 만한 영화나 드라마라면 더더욱 좋고 말이다.
그에 문밖을 바라보며 언제 오지?, 하고 기다리고 있던 강태영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유명한 작품에 나온 배우라서 보면 다들 알 거야.”
“오. 그래?”
우리 막내가 누군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가만히 앉아 입만 움직이고 있으니 에너지가 조금씩 충전된 출연자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유명한 배우일까요?”
“글쎄. 유명한 작품에 나왔더라도 단역일 수도 있지.”
“그래도 꽤 인상 깊었던 캐릭터였을 것 같죠, 누나?”
“맞아. 보면 알 거라고 했으니까.”
어느새 우리 막내 맞히기 퀴즈가 되어버렸다.
26살인 윤효원보다 어리면서, 지금 휴가인 것 같은, 유명한 작품에 나온 적이 있는 배우.
여러 배우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강태영은 그냥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제작진도 궁금해했다.
그러면서도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라서 일반인 손님도 없으니 시청자들에게도 끝까지 숨기고 있다가 밝히는 편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고 드러누워 있던 권사형이 몸을 일으키며 말할 때, 강태영이 진동하는 휴대폰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활짝 웃으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다 왔대요!”
억!
반사적으로 강태영 담당 카메라맨도 함께 뛰어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눈을 끔벅이며, 주인 발견한 개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 형! 같이 가요!”
우리 막내! 내 동생!
어느새 동생이 되어버린 배우를 만나러 윤효원이 강태영의 뒤를 쫓아갔다. 그에 나머지 출연자들도 웃으며 가게를 나와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어어, 주차장 보여?”
강태영이 신난 얼굴로 휴대폰 건너 지인에게 말했다.
“안 보일 거 같은데요. 형.”
아직 막내가 탄 차가 주차장에도 오지 않았다는 걸 안 윤효원의 눈이 짜게 식었다. 뒤따라온 출연자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다행히도 정말 가까이에 있었는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길 끝에서 차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태영아, 저 차야?”
“어, 형. 저 차야.”
권사형의 말에 강태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열심히 휘저었다.
“되게 친한 사이인가 보다.”
“그러게요.”
조영하와 최하연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강태영을 바라보았다.
[맛남 식당3]를 같이 하면서 강태영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표정과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아, 아닌가.
이서준 배우의 이야기를 할 때도 이런 표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정도로 좋아하는 지인인가 봐요.”
최하연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 누구도 새로 들어올(?) 막내가 이서준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두 팔을 휘젓고 있는 강태영을 발견했는지, 7인승 차가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여기!”
강태영은 직접 달려가 차가 설 장소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런 강태영의 모습에 사람들은 더더욱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차가 멈추고 카메라들이 조수석과 뒷좌석 문 쪽을 비추었다. 어디서 내릴지 모르니 둘 다 찍는 것이었다.
‘배우가 먼저 내리겠지.’
이렇게 카메라가 많은 곳에 일반인 친구를 먼저 내보내지는 않을 테니까.
누가 나타나도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이십 대 배우들을 되새기며 차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뭔가 예능에 자주 나오는 인물퀴즈(실사판)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몰라보면 안 돼!’
서로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또 우리 막내에게 좋은 첫인상을 보여줘야 했다.
‘다음 시즌에는 꼭 막내 탈출……!’
윤효원이 이히히 웃으며 달칵- 하고 열리는 조수석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배우의 얼굴을 보고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
윤효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출연자들과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얼굴이 보이는데 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
카메라 몇 대가 그 상태를 반영한 듯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하니 차에서 내린 배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도 작은 소리 하나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환상인가 진짜인가 싶었다.
그때 정적을 깨는 강태영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느라 고생했어, 서준아.”
확인사살이었다.
!!!
슈퍼스타의 깜짝 등장에 모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 *
“아니에요. 마침 가까운 곳에 있었거든요.”
제주 반대편에 있었으면 못 왔을 거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강태영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보며 웃으며 인사한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응?’
강태영이 말했을 줄 알고 모자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태영이 형, 저 온다고 말 안 했어요?”
“응. 이게 더 재미있잖아.”
강태영이 하하 웃으며 말하자, 서준도 웃고 말았다. 그건 그렇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서준이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맛남 식당 재미있게 봤어요.”
“……아!”
서준의 깜짝 등장에 그나마 익숙한 전前 [워킹맨!] 조연출, 유상백 피디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어서 오세요, 이서준 배우. 오신다는 분이 이서준 배우일 줄은 몰라서……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 보였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마침 제주도 여행 중이었거든요.”
“네. 그건 태영 씨에게 들었습니다만…….”
그 여행 중인 배우가 이서준이라는 건 못 들었다.
유상백 피디와 출연자들, 제작진의 눈이 일제히 으하하 웃고 있는 강태영에게로 향했다. 이서준을 만나게 해줘서 정말 고마운데, 조금 열 받는 기분이었다.
“진작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그러게. 왜 몰랐지?”
이십 대 배우 중 현재 쉬고 있으며 유명한 작품에 나온, 그리고 강태영이 저렇게 좋아하는 배우.
딱 한 명밖에 없지 않나.
“아까 잠시 생각은 했는데, 제주도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요.”
유상백 피디가 서준과 인사를 나누자, 놀랐던 마음이 제법 진정됐는지 출연자들도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최하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조영하입니다!”
다들 들뜬 얼굴로 여기서 이렇게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슈퍼스타와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윤효원입니다.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묘하게 기쁘면서도 슬퍼 보이는 윤효원과도 악수했다.
“우리 막내가…… 이서준 배우였어…… 내 동생…… 사라졌어…….”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에 서준이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강태영과 출연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쟤가 서준이 너 오면 막내니까 일 잔뜩 시킨다고 했거든.”
“악! 형! 제가 언제 그랬어요!”
강태영의 말에 윤효원이 비명을 질렀다.
가수와 배우의 세계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1, 2년 선배도 아니고 한 15년은 차이가 나는 대선배님이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슈퍼스타!
그런 선배님을 부려 먹으려고 했다니.
윤효원은 지금 당장 기절하고만 싶었다.
“막내한테 일 시킨다고 했잖아.”
“저도 들었어요!”
“나도.”
정혜원과 최하연, 조영하가 웃으며 부채질을 했다.
“우리 식당의 막내는 영원히 저죠! 제가 더 열심히 한다고 한 거예요!”
“뭐, 그건 방송 보면 알겠지.”
권사형의 말에 윤효원이 유상백 피디에게 달라붙었다. 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기세였다.
“유 피디님. 편집해 주세요, 제발!”
“하하하하.”
“웃지만 마시고요!”
이런 대박을 놓치면 예능 피디가 아니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카메라가 신나게 그런 서준을 담았다. 대부분의 카메라들이 이쪽만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는데, 어쩐지 ‘설마…… 우리를 잊은 거야?’하고 말하는 듯했다.
“아, 잠깐만요. 친구들이 있어서요.”
서준의 말에 떠들썩하던 출연자들과 제작진도 아차, 했다.
카메라가 조금 뒤로 물러났다. 일반인이 내릴 거니 찍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풀샷을 찍는 카메라와 출연자들을 찍는 카메라에 나오겠지만, 그건 나중에 편집하면 된다.
“태영이 형, 그건 말했어요?”
“안 했지!”
서준의 물음에 강태영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긴. 자신이 온다는 것도 이야기 안 했는데, 그걸 이야기했을 리가.
서준이 키득키득 웃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무슨 말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드르륵- 하고 뒷문을 여는 서준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까먹은 줄 알았잖아.”
차 뒷문에서 누군가가 내리며 말했다.
남자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컸는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TV에서 본 것 같은데…….’
하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생각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와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클로즈업되는 화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골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도.
!?
남자의 정체를 깨달은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쩌억 벌려야 했다. 어느새 남자를 찍고 있던 카메라들도 또 한 번 크게 요동쳤다.
“미안. 소개할 타이밍을 놓쳐서.”
서준이 웃으며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저랑 같이 여행 온 친구, 축구선수 박지오예요.”
“안녕하세요. 박지오입니다.”
?!?!
세계적인 축구선수의 깜짝 등장에 소리 없는 비명이 또 한 번 주차장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