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62화
[맛남 식당3]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홀의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들이 방금 막 다 나간 상태라서 디저트를 주문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물론 추가 주문이 있을 때는 바로 달려가야 했다.
“재료가 다 떨어지다니?”
“정확히는 아슬아슬해요.”
언니라고 불린, 가수 겸 배우 정혜윤에게, 역주행으로 인기를 얻어 [맛남 식당3]에 합류하게 된 여자 아이돌 최하연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넉넉하게 사지 않았어?”
“음. 그만큼 주문이 많이 들어왔네.”
“어쩐지 바쁘더라…….”
뭐 잘못 나갔나? 하고 주문서를 다시금 살펴보는 강태영의 대답에 [맛남 식당3]의 맏형, 배우 권사형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시즌 1과 2를 잘 마무리한 데다가 시즌 3의 요리도 익숙해져서 재료를 낭비하지 않게 적당히 산 게 문제였던 것 같았다.
“그냥 많이 사서 남는 건 우리끼리 먹을 걸 그랬네요. 이제 어떻게 하죠?”
[맛남 식당]에 처음 출연해 모든 사건 사고가 처음인 배우, 조영하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맛남 식당]의 영원한 막내, 남자 아이돌 윤효원이 진지한 얼굴로 남은 재료들을 파악했다. 그래도 몇 개 만들 재료는 남아 있었다.
“일단 손님들이 추가 주문을 하시면 재료가 남아 있는 요리로 유도해야 할 것 같아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타임만 넘기는 브레이크 타임이니까.”
권사형이 반쯤 안도한 표정으로 말하며 어깨를 몇 번 돌렸다. 재료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어쩐지 몸이 뻐근해지고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브레이크 타임 동안 장 보고 올까?”
정혜윤의 말에 다들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가고 싶은…… 아니, 갈 수 있는 사람?”
모두 선생님의 눈을 피하는 학생들처럼 정혜윤의 눈을 피했다.
브레이크 타임은 유일한 쉬는 시간.
오전과 점심 내내 지친 몸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물론 설거지 같은 뒷정리도 해야 했고, 이번에는 새로 사 올 재료의 손질까지 해야 했지만.
차를 타고 나가서 장을 보고 돌아오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가야겠죠?”
최하연의 말에 모두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서도, 방송을 위해서도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제작진 찬스 쓸까요?”
윤효원이 조용히 촬영하고 있는 제작진들을 바라보았다. 출연자들도 눈을 번뜩였지만 흐뭇하게 웃는 유상백 피디의 얼굴을 보고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걸 깨달았다. 모두 시무룩해졌다.
정말 큰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제작진은 간섭하지 않았다.
한참 장사가 진행 중일 때 재료가 떨어졌다면 스태프들이 바로 마트로 달려갔겠지만, 이제 브레이크 타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대처방법이 있다면 온전히 출연자들이 해결해야 했다.
“가위바위보 할까요?”
조영하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다른 출연자들도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끼지 않은 출연자가 있었다.
강태영이었다.
두 팔을 꼬아 점치는 민간요법까지 동원하여 뭘 낼까, 고민하는 출연자들을 바라보던 권사형이 고개를 돌려 강태영을 바라보았다.
강태영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뭘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화악-하고 밝아진 얼굴로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
물음표를 띄운 권사형이 물어보려던 찰나, 강태영의 옆에 있는 냉장고가 보였다.
그리고 떠올렸다.
“아!”
집 냉장고에 붙어 있는 전단지들과 쿠폰들을.
“배달!”
그 목소리에 신중하게 가위바위보를 준비하던 출연자들도 눈을 빛냈다.
“맞아요! 배달이 있었죠!”
“근데 마트도 배달해 줄까?”
“네. 저번에 물어보니까 많이 사면 해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안 가도 된다!
출연자들이 기쁜 얼굴로 재잘댔,
“저기…….”
“넵! 갑니다!”
귀는 언제나 손님에게로 열려 있는, 서빙부 조영하가 얼른 홀로 달려갔다.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뭐 필요하지?”
“일단 빵이랑 베이컨이랑…… 계란도 더 사야 하고…….”
출연자들이 얼른 냉장고와 주방을 돌아보며 필요한 재료들을 적기 시작했다. 저녁 장사까지 생각하면 지금 조금 남아 있는 재료들도 사야 했다.
그때까지도 강태영은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굉장히 아쉬운 얼굴이었다.
“뭐 해, 태영아?”
정혜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얘가 이렇게 딴짓하는 애가 아닌데?
출연자들도 제작진도 그런 강태영을 눈을 끔벅이며 바라보았다.
“아.”
하고 강태영이 휴대폰에서 눈을 뗐다.
“그게 아는 사람이 제주도에 있어서 말이야. 시간 괜찮으면 재료 좀 사 와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는데…… 배달 시킨다고 하니까, 해결했다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그래?”
“그러네요.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해도 되는 거였네요.”
최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권사형이 말했다.
“아는 사람이 없지만.”
모두 작게 웃었다.
“아는 사람이라면 연예인이에요, 형?”
음료수 서빙을 끝내고 온 조영하가 물었다. 강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배우야.”
“오, 배우. 제주도에 사는 배우가 누가 있지, 오빠?”
“어디 사는지까지는 모르는데.”
“잘 생각 좀 해봐.”
배우 인맥이 넓은 권사형과 정혜윤이 제주도에 사는 배우들을 떠올려보았다.
뜻밖의 이야기에 제작진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출연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괜찮으면 그분을 부르는 건 어때요, 태영이 형?”
“응? 배달은 어쩌고?”
윤효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방송이니까 배달보다야 연예인이 등장하는 게 더 재밌잖아요. 또 그분이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저희 일도 좀 도와주실 수도 있고요.”
“뒤가 목적인 것 같은데…… 전 찬성이에요!”
최하연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조영하도, 정혜윤도, 권사형도 마찬가지였다.
“꼭 도와주실 필요까진 없지만 그게 더 재미있긴 하죠.”
“맞아. 너도 아쉬워 보이던데.”
“겸사겸사 도와주면 더 좋고.”
강태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도와준다면 좋다는 이야기죠! 그분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제발 연하! 제발 막내! 제발 나보다 막내!
윤효원이 간절한 눈빛으로 강태영을 바라보았다. 강태영이 웃으며 말했다.
“효원이 너보다 어려.”
“아싸! 막내 온다!”
앗.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하지만 예능인(?) 윤효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막내 언제 온대요?”
“언제 우리 막내가 된 거야?”
정혜윤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강태영도 웃으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근데 와도 오래 있지는 못할 거야. 자기 친구들이랑 놀러 온 거거든.”
“아, 그래? 괜히 우리 막내 재미있게 노는 거 방해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막내한테 친구들이랑 오면 맛있는 거 만들어준다고 해요, 오빠!”
어느새 얼굴도 못 본 강태영의 배우 지인은 [맛남 식당]의 막내가 되어 있었다.
강태영이 유상백 피디를 바라보았다.
“친구들도 같이 올 것 같은데 편집 가능할까요, 유 피디님? 친구들은 일반인이어서요.”
“가능하죠. 마음 편하게 오라고 하세요.”
우리 막내(?) 배우가 누군진 몰라도 오면 아주 잘해줄 생각이었다.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맛남 식당] 다음 시즌이나 언젠가 제작할 예능에 섭외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작은 인연도, 스쳐 가는 인연도 소중히 해야했다.
연예계는 누가 언제 스타가 될지 모르는 곳이었으니까.
‘태영 씨랑 친한 배우라면 연기도 잘할 테고.’
그럼 스타가 될 확률도 더 높았다.
“그럼 와달라고 할게요. 사야 할 재료 목록 좀 보여줘, 하연아.”
“여기요!”
최하연이 내민 메모지를 찍어 바나나톡으로 보내는 강태영을 보며 윤효원이 기쁘게 웃었다.
“으흐흐흐.”
“와. 악당 같아.”
정혜윤이 웃으며 말했다.
“크흠. 악당이라뇨, 누나. 전 그냥 저 대신, 아니, 저랑 같이 열심히 일할 막내가 온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그렇죠. 같이 양파도 까고, 같이 설거지도 하고, 같이 파도 썰고…….”
윤효원의 눈이 아주 반짝거렸다.
“촬영 끝날 때까지 같이 일하면 정말 좋을 텐데……!”
“나만 저 ‘같이’가 ‘막내 혼자’로 들리는 거야?”
권사형의 말에 모두 빵 터졌다.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강태영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서준: 그럼 이따 봐요, 태영이 형!
과연 막내의 얼굴을 보고 나서도 그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 * *
서준과 소꿉친구들의 제주도 여행은 화살보다도 빠르게 지나가, 벌써 서울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인 오늘은 올레길을 걷고 한라산 백록담 대신 언덕 높이의 오름에 다녀왔다. 오름 중에 일부가 기생화산(큰 화산 옆에 붙은 작은 화산들)이라고 해서 그곳에 가 봤다.
그 작은 화산에서 마그마가 나왔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원래 돌고래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둘째 날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보고 만지고 같이 놀기까지 해서 따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뭐 하지?”
숙소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음식점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서준과 아이들은 찰싹-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았다.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박지후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도 동의했다.
그렇게 덥지 않은 6월의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푸른 바닷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졌다.
떠들썩하게 신나게 노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여유를 즐기며 힐링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으하하핳!
애들 노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고.
“오.”
마침 꼬마들이 찬 축구공이 서준과 친구들 앞으로 날아왔다.
“형! 공 좀 차 주세요!”
그에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박지오를 바라보았다.
안그래도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던 박지오가 벌떡 일어났다.
“가자. 서준아.”
“나도?”
하고 말하면서도 서준도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박지후와 미나 오웬, 김지윤이 작게 웃었다.
“응?”
꼬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들고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무서운 형들인가?
“우리도 같이해도 돼?”
“형들도요?”
“우리 축구 좀 하거든.”
“얘도 엄청 잘해요! 축구선수거든요!”
“오. 그래?”
모자를 눌러쓴 서준과 박지오가 의기양양해 보이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웃었다.
“우리가 지면 아이스크림 사줄게.”
“와아아!”
그러고는 한바탕 축구시합이 벌어졌다.
서준과 박지오가 많이 봐주면서 했지만 차이가 너무 나는 바람에, 중간부터는 서준의 팀, 박지오의 팀으로 나눠 경기를 했다.
물론 공만 보면 와아아아! 하고 몰려가는 바람에 동네축구가 되어버렸지만. 서준도 박지오도 그냥 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녀, 구경하던 셋은 웃느라 바빴다.
“잘 가요! 형! 누나!”
“재미있었어요!”
근처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들이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서준과 친구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 배고프다.”
박지오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간식 먹으러 가자. 근처에 목장에서 바로 받아온 우유로 아이스크림이랑 음료를 만드는 카페가 있대. 우유식빵도 팔고.”
미나 오웬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으며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바톡- 하고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서준이 휴대폰 화면을 살펴보았다.
태영이 형의 메시지였다.
“누구야?”
“태영이 형이야.”
오.
아이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저번에 맛남 식당 촬영 중이라고 했잖아. 재료가 떨어져서 그런데 사 와 줄 수 있냐고 하네.”
“괜찮지 않아?”
박지오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만 안 나가면 되지 않을까.
“아, 아니다.”
답장을 보내던 중 도착한 강태영의 메시지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안 와도 괜찮대. 배달시키기로 했다고 하네.”
“그래?”
“아쉽네. 어떤 음식인지 궁금했는데.”
“나도.”
[맛남 식당]을 재미있게 봤던 미나 오웬과 김지윤이 살짝 아쉬워했다.
“그 카페는 어느 정도 걸려?”
“한 15분쯤?”
주차장에 다다랗을 때쯤, 또 한 번 바톡- 하고 알림이 울렸다.
휴대폰을 본 서준이 웃고 말았다.
“태영이 형이 말 바꿔서 미안한데, 재료 사 와 달래. 맛있는 거 해준대.”
순식간에 바뀐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예능 촬영 보는 거 처음이야!”
이내 들뜬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