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60화
읏차!
트렁크 가득 짐을 실은 강태영과 출연자들이 차에 올랐다.
잠깐 분량을 뽑고 모두 흐물흐물 풀어졌다. 누구는 크게 하품을 하고 누구는 음음, 허밍을 하며 제주도 풍경을 구경했다.
물론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어, 다들 주의하고 있었다.
강태영은 여느 현대인이 그렇듯 휴대폰을 꺼냈다. [새싹부터]에 새로운 글들도 많이 올라와 있었고, 이런저런 연락도 와 있었다.
>이서준: 태영이 형.
>이서준: 맛남 촬영 말이에요. 언제쯤 해요?
그중에는 서준이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도 한 시간 전에.
‘앗!’
촬영할 때나 일이 있을 때는 답장을 할 때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고 강태영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서준의 연락에 한해서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걸 왜 이제 봤지!?’
서준은 늦게 답장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지인이자 팬인 강태영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강태영이 얼른 휴대폰을 두드렸다.
턱이 있는 도로에 차가 들썩거려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의 휴대폰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집중력으로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지금 촬영 중이야.
<왜, 서준아?
>이서준: 형이 제주도에서 촬영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요.
>이서준: 저 지금 제주도에 있거든요!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한 강태영과 달리 서준의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강태영은 미안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배우를 기다리게 하다니…….
‘아니, 그것보다.’
<제주도라고?
>이서준: 네. 저번에 친구들이랑 여행 간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서준이 친구들과 제주도에 놀러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친구 중에 박지오 선수가 있다는 것도.
하지만 서준이 그랬듯, 날짜까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게 이번 주였구나.
>이서준: 네. 오늘 도착했어요.
<나도 오늘 제주도 도착했어!
같은 비행기에 탔던 것도 모르고 강태영과 서준이 히히 웃으며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서준: 나중에 형 보러 가도 돼요?
<여기에?
>이서준: 네.
강태영이 데굴 눈을 굴렸다. 차량 내 카메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냐. 괜찮아. 친구들이랑 놀러 왔다며.
<카메라도 있으니까 불편할 거야.
서준을 보게 되는 건 좋았지만, 친구들과 놀러 온 서준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서준: 음. 알았어요.
>이서준: 형이 이번에 만든 음식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서준: 그럼 서울에서 만들어주세요ㅎㅎ
서준이가 내 요리 먹고 싶대!
물론, [맛남 식당] 시즌 1, 2에서 강태영이 맡았던 요리를 만들어주긴 했었지만.
또 먹고 싶대!
<알았어!
<시즌3 레시피 전부 배워서 만들어줄게!
“형!”
“어, 어?”
반쯤 졸고 있던 출연자가 강태영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나 형 요리 레시피 좀 가르쳐 줘. 제일 맛있는 걸로!”
“……뭐?”
졸았던 건 자신이 아니라 강태영이었던 걸까.
아니면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출연자들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강태영을 보고 눈을 끔벅였다. 강태영의 눈은 의욕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누나 레시피도!”
“……내 거도?”
그래서 미처,
>이서준: 하나면 돼요ㅋㅋㅋ
하고 남긴 서준의 메시지는 보지 못했다.
물론 봤어도 다른 레시피들을 배웠겠지만 말이다.
* * *
“뭐라셔?”
제주도 어느 해수욕장.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텐트 중 하나에 앉아 있던 서준에게 박지후가 다가왔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물론 서준도 그랬다.
>강태영: 괜찮아!
>강태영: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걸!
>강태영: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린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카메라 있다고 불편할 테니까 안 와도 된대.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래.”
“그건 그렇긴 하지.”
뭐, 부탁하면 모자이크를 하거나 편집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해준 소꿉친구들에게 고마운 서준이었다.
“잡았다!”
이건 하나도 안 고마웠다.
박지후가 말을 거는 사이, 텐트 뒤쪽으로 살금살금 걸어온 박지오가 서준을 붙잡았다. 박지후도 타이밍에 맞춰 서준의 다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서준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잘 놓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케이!”
쌍둥이라서 그런지 합이 잘 맞았다. 게다가 힘도 셌고.
따라온 김지윤과 미나 오웬이 쌍둥이에게 달랑 들어 올려진 서준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리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너희, 후회할 거야.”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있던 서준이 마지 조무래기 악당처럼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슈퍼스타의 재능 낭비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내 몫은 박지오가 해줄 거야.”
“야!”
그러면서도 쌍둥이는 착실하게 바다 쪽으로 서준을 옮겼다.
그리고 낄낄 웃으며 적당히 깊은 바다에 서준을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새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적당히 차가운 바닷물이 서준의 몸과 부딪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에 씩- 웃은 서준은 곧바로 땅에 발을 디뎌 균형을 잡았다. 서준의 운동신경을 알고 있던 쌍둥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다.
반격도 그랬다.
“후회한다고 했지!”
서준은 균형을 잡자마자 자신을 던진 쌍둥이에게로 달려들었다. 피할 틈도 없었다.
“으아악!!”
“……!”
첨벙!
놀란 표정 그대로 쌍둥이도 물속에 빠졌다. 물론 몸을 내던진 서준도 또 한 번 물에 빠져야 했다.
커다란 물보라가 김지윤과 미나 오웬에게까지 전해졌다.
푸하!
곧 수면 아래에서도 서로 장난을 치던 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흠뻑 젖어 비 맞은 생쥐 꼴을 한 서로의 모습에 으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 * *
4박 5일의 두 번째 날.
오늘은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제주도 말을 타러 가기로 했다.
“와! 말이다!”
차를 타고 있을 때부터 초원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보였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은 색도 크기도 다양했다. 작은 망아지들도 어미인 듯한 말과 붙어 다그닥다그닥- 뛰어다니고 있었다.
“귀엽다……!”
서준과 아이들도, 관광객들도 연신 사진을 찍었다.
승마체험은 코스별로 진행되었다.
말을 처음 타보는 사람들을 위해 실내와 목장만 천천히 산책하는 코스부터 조금 멀리까지 가는 코스, 그리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선수급 코스까지.
물론 마지막 코스는 신청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
서준과 아이들은 숲길을 도는 코스로 결정했다.
“그럼 먼저 말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준과 아이들을 맡게 된 강사가 웃으며 말했다.
먹이를 주는 체험은 코스의 공통된 체험이었다. 여기서 말과 친해져야 말을 타고 나서도 침착할 수 있었다.
“울타리 가까이에 있는 애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순한 애들이니까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사의 말대로 서준과 아이들이 당근을 들고 울타리 가까이 다가가자 순한 눈망울의 말들이 다가왔다.
특히, 모자를 쓰고 있는 서준에게로.
어미 옆에만 붙어 있던 작은 망아지가 서준을 보자 다그닥다그닥- 신나게 걸어와 먹이를 받아먹었고, 다 자란 말들도 그랬다.
“역시 백설공주.”
박지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 별명에 아이들이 작게 웃었다.
“이렇게 인기 많은 분은 처음이네요.”
“얘가 원래 동물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서준의 앞만 말들로 복작복작해지자 놀란 강사의 말에 아이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먹이 체험이 끝나고 서준과 아이들은 안전장비를 걸치고 말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여기 조끼 입으시고, 장갑하고, 신발도 있습니다. 발 크기가 어떻게 되시죠?”
강사는 친절하게 몸에 딱 맞은 안전장비들을 건네주었다.
“안전모도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거죠.”
적당한 크기의 검은색 안전모들을 가져온 강사에, 야구모자를 쓰고 있던 서준과 박지오가 눈을 마주치더니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안전이 제일 중요했다.
“……?”
강사가 눈을 끔벅였다.
‘어디서 본 얼굴들인데?’
그것도 얼마 전에도 봤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저희 어디서……?!”
하고 말을 잇던 강사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입을 벙긋거렸다. 말이 되지 못한 목소리가 으아아- 하고 흘러나왔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서준 배우? 박지오 선수……?”
선수↗ 하고 삑사리가 났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체험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말 타는 건 진짜 오랜만이라서요.”
서준과 박지오가 웃으며 말하자 강사가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 진짜 정말로 팬입니다. 박지오 선수. 바르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꼭 보고, 유니폼도 샀습니다. 스페인에서 경기도 보려고 돈도 모으고 있었는데……!”
“오, 정말요?”
박지오가 서준을 보며 씩 웃었다.
“내 팬이시래. 내가 이김.”
“!”
아차!
강사가 끄아아악! 당황하며 얼른 입을 열었다.
“이서준 배우님 영화도 나올 때마다 보고 있습니다! 진짜로요! 쿠키! 쿠키도 사 먹었는데! 사무실에도 있습니다!”
그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봐주세요.”
“제 경기도요.”
“네! 꼭 챙겨보겠습니다!”
작은 소란이 지나가고, 서준과 아이들이 말 위에 올랐다.
강사는 긴장한 얼굴로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안내했다. 여기서 실수하면 세계적인 배우와 선수가 다칠 수도 있었다.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와!”
“좋다!”
다행히도 말들은 순했고 뜻밖의 사고도 없었다.
말을 탄 서준과 아이들은 목장에서 다져놓은 오솔길을 따라 이동했다. 날씨도 좋았고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도 시원했다. 흔들흔들 움직이는 말을 타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럼 좀 더 속도를 내보겠습니다.”
강사의 속도를 따라 훈련이 잘된 말들이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재밌네.’
오랜만에 말을 탄 서준도 즐거웠다.
사극 촬영을 위해 배웠고 그 뒤로도 가끔 근처에 있는 승마 아카데미에서 타고는 했었는데, [쉐앤나]를 촬영한 이후로는 영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다. 2년쯤 된 것 같았다.
“이제 천천히 내려오시면 됩니다.”
30분의 승마체험이 끝났다.
“진짜 재미있었지?”
“근데 진짜 높게 느껴지긴 하더라.”
바닥에서 말 등까지가 거의 150㎝ 정도 되니 높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재잘거리며 안전모를 벗는 친구들에게 서준이 물었다.
“나 조금만 더 타도 돼?”
“그래.”
박지후가 시원스럽게 대답했고 미나 오웬도 자신이 탔던 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한 번 더 탈까?”
“숲 한 번 더 가려고?”
김지윤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잠깐 장애물 코스 좀 돌아보려고. 괜찮을까요, 강사님?”
“괜찮긴 한데, 그쪽은 고급 코스라서요. 예전에 해보신 적이 있나요?”
“네. 사극 촬영 때 필요할까 싶어서 배웠어요.”
오.
강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도 처음부터 높은 장애물은 안 됩니다.”
“네. 낮은 걸로도 충분해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강사가 장애물 코스를 준비하러 신나게 뛰어갔다.
승마를 하는 이서준 배우라니. 그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다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것도 촬영할까?”
“찍어놓으면 알아서 쓰시지 않을까?”
김지윤과 어느새 모자를 쓴 박지오가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고, 한 번 더 타려던 미나 오웬도 서준을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조심해.”
“걱정 마.”
박지후의 말에 서준이 들뜬 얼굴로 웃었다.
잠시 후.
장애물 코스가 준비되었다.
야외여서 승마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들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뭐 한대요?”
“장애물 코스 신청한 사람이 있대요.”
흔치 않은 구경에 사람들이 울타리 근처로 다가왔다. 여행 일정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애물 코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달리던 말이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울타리는 좀 떨어져 있었지만 구경하기엔 충분했다.
“오. 나온다.”
문이 열리고 검은색 말을 탄 남자가 나타났다.
승마복이 아니라 평범한 옷인데도, 긴 부츠를 신고 검은색 조끼를 입고 안전모까지 쓰니, 승마선수처럼 보였다. 고삐를 잡고 장갑을 고쳐 끼는 손도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선수인가?”
체격도 든든해 보였다.
그리고 어쩐지 시선을 끄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남자는 강사로 보이는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천천히 코스를 돌기 시작했다. 워밍업으로, 장애물은 넘지 않고 천천히 속도를 붙였다.
와!
승마체험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그 속도감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휙- 지나가는 말에, 관심 없던 아이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와 말을 바라보았다. 말과 함께 움직이는 남자의 모습에 아이들의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남자가 고삐를 잡고 말머리를 살짝 돌렸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낮은 장애물.
목표를 향해 남자와 말이 달려가자 관광객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런 걸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지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와 말은 전혀 긴장하지도 않는지 이 정도 높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타닥! 탁-!
생각보다도 더 가뿐히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와아아!
한 번 더 탄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