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59화
아까 강태영 배우가 도와주려고 했던 장면은 방송에 넣어도 될 것 같았다. 의대생의 등장에 뭔가 해보지는 못했지만, 도우려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의대생이라는 사람들은 어땠어?”
의대생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방송보다 뉴스가 먼저 나올 테니, 따로 조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완전 의사 같았습니다. 막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렇게 저렇게 하니까 환자 상태도 확 나아지더라고요.”
“한 사람은 뒤돌아 있고 한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잘 못 봤지만 잘생겼다는 건 알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 다 합도 되게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의대에서 같이 수업 듣나 봐요.”
잘생기기까지 했다고?
물론 제대로 봐야 하겠지만 연예인들을 보는 일이 잦은 제작진이 잘생겼다고 한다면 꽤 믿을 만했다.
그사이 이코노미석 승객들도 일행들끼리 비행기를 빠져나오면서 통로가 시끌벅적해졌다. 승객들도 비행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평생 겪어보기 힘든, 영화 같은 일이었으니까.
문득, 유상백 피디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 식당에 초대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좋은 일을 했으니 식사나 한 끼 대접하는 의미로 [맛남 식당3]에 초대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의대생들이 출연하길 꺼린다면 그냥 정말 식사만 대접하고 자막만 내보내도 괜찮고.’
방송 욕심 없이 영웅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물론 방송 분량은 비행기 내에서의 영상으로 채우면 된다. 응급환자의 감사 인터뷰도 따고.
‘그럼 화제성도 잡을 수 있겠지.’
유상백 피디가 번뜩 고개를 들더니,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수하물 찾는 곳으로 이동하는 승객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 피디님, 어디 가세요?”
“그 의대생들 방송에 나오면 좋을 것 같지 않아?”
그에 오! 하고 눈을 반짝인 제작진들 중 몇 명도 유상백 피디의 뒤를 따라갔다.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 같았다.
[맛남 식당3] 제작진은 내렸던 탑승교 게이트에 도착했다. 어느새 제작진 중 하나가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찍고 있었다.
탑승교 안으로 들어가려던 유상백 피디를 안내하던 직원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기내에 놓고 온 물건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직원의 물음에 유상백 피디가 말했다.
“아, 저. 방송국 피디입니다만, 의대생분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스튜어디스분들에게 물어봐 주실 수 있나요?”
응급환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직원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송국 피디라니, 무슨 이유로 찾는지 알 것 같았다.
“잠시만요.”
직원이 무전기를 통해 안쪽과 대화를 나누었다.
유상백 피디는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이코노미석에 앉았던 제작진들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리는 승객들 중 의대생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직원이 무전기를 내렸다.
“의대생분들은 조금 전에 내리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듯했다.
“아, 그런가요…….”
직원의 말에 유상백 피디와 제작진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네요.”
“그러게. 왜 빨리 생각을 못 했을까.”
딱 봐도 방송 각이었는데 말이다.
의대생들이 나왔다면 시청률이 0.5% 정도는 더 나오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쉰 유상백 피디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미 지나간 일. 스케줄대로 촬영을 해야 했다.
* * *
0.5%가 뭐냐.
그보다 열 배도 넘게 올렸을 의대생들, 서준과 소꿉친구들은 승객들과 스튜어디스들의 배려로 일찍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스튜어디스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간식거리도 꽤 받았다.
“지후랑 서준이가 큰일 했네.”
수하물 찾는 곳에서 자신의 캐리어가 나오길 기다리며 미나 오웬이 말했다.
그사이 모자를 바꿔 쓴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난 한 거 없어. 지후가 다했지.”
“아니, 나 혼자였으면 당황해서 잘 못 했을 거야.”
박지후가 고개를 저었다.
환자가 무사히 이동하던 모습을 봤을 때, 온몸의 힘이 쭉 빠졌던 걸 생각해 보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 지시를 믿고 따라주었던 서준이 없었다면, 자신의 대처 방법을 조금 의심하면서 머뭇거리지 않았을까. 그 잠깐의 머뭇거림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몰랐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고. 근데 진짜 한 게 없어서.”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았다면 능력을 쓸 생각이었는데, 환자의 상태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박지후의 대처도 정말 좋아서 능력을 쓰지 않아도 됐었다. 그것 때문에 돕겠다고 따라간 거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서 다행인 거지.”
“그건 그래.”
웃으며 말하는 김지윤에, 서준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할 일이 적어서 다행인 일이긴 했다.
“아까 사람들이 카메라도 찍던데 괜찮음?”
“괜찮아. 방송국 카메라로 찍어도 잘 못 알아보는데,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면 더 알아보기 힘들걸. 아, 내 거다.”
웃으며 말한 서준이 얼른 자신의 캐리어를 잡아챘다.
“그건 그러네.”
“그래도 태우 형한테는 말해둬야 하긴 해.”
서준의 말에 미나 오웬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엄청 당황하겠다. 놀러 간 배우가 뉴스에 나오면.”
“아냐. 의외로 익숙할지도 몰라. 서준이는 몇 번 나왔잖아. 운전면허 시험 치다가 뉴스에 나오고.”
“미국에서는 고래 구하면서 뉴스에 나왔지.”
박지후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후 너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연락하려고.”
서준과 달리, 쌍둥이 부모님은 갑자기 아들이 뉴스에 나오면 당황하실 거다.
아니, 지오 때문에 익숙하시려나?
“지후를 알아보는 사람은 꽤 나올 것 같지 않아?”
의대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모습도 잠깐 본다면 박지후의 친구들은 알아볼지도 몰랐다. 제주도에 놀러 간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그럼 서준이도 알아보는 거 아니야?”
“아닐걸. 아까 들어보니까 나도 의대생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
“오.”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절대 못 알아보겠네.”
“일단 전공이 다름.”
의대와 예술대.
확연하게 다른 전공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자신의 캐리어를 찾은 서준과 아이들은 렌터카 공항지점에서 예약한 7인승 차량을 픽업했다.
“운전은 내가 할게.”
운전은 박지오가 맡았다.
박지오는 스페인에서 운전면허증을 따고 한국에서는 국제면허증을 사용하고 있었다. 스페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운전석이 왼쪽에 있어서 운전하기 한결 편했다.
캐리어들을 차 안에 차곡차곡 넣고 서준과 아이들도 차에 올랐다.
좀 좁긴 한데, 캐리어는 숙소에 놔둘 거니 돌아다닐 때는 불편하지 않을 터였다.
“그럼 출발!”
제주도와 바다와 여행과 어울리는 청량하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서준과 아이들의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갈 곳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식당.
갈치 한 마리가 통으로 나오는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 최근 새로운 건물로 이전했다는 식당은 넓었다.
“딱 시간에 맞춰서 왔네!”
미리 예약한 상태라 이름을 말하자 곧바로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은 서준과 아이들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부모님께 도착했다고 연락했다. 서준과 박지후가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도 함께 이야기했다.
서준도 부모님께 연락한 후, 최태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태우 형.
<저 뉴스에 나올지도 몰라요.
읽음 표시가 사라지고, 잠깐의 정적 후 답장이 왔다.
그 답장에 서준이 빵 터졌다.
“뭐야, 무슨 일인데?”
옆에 앉은 박지오가 얼굴을 들이댔다. 모자를 쓴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박지오도 으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궁금해하던 아이들도 서준이 휴대폰을 보여주자 웃고 말았다.
>최태우: 혹시
>최태우: 또 고래 구했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주도 하면 바다.
바다 하면 고래.
전적이 있는 서준이니 그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래는 아니지만 구하긴 했지.”
박지오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아뇨.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생겨서요.
<지후가 응급처치하는 걸 좀 도와줬어요.
그에 답장이 도착했다.
>최태우: ???
전혀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최태우에게서 온 전화에 서준이 웃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이들도 작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서준이 천천히 설명을 해주자, 최태우가 이해했다.
“다호 형한테는 제가 메시지 보낼게요.”
-그래, 알았어. 1팀엔 내가 말해둘게. 재미있게 놀다 와. 무슨 일 생기면…… 음. 이런 일이 생길지는 몰랐는데……. 하여튼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최태우와의 통화를 끝낸 서준은 안다호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안다호: 그래?
>안다호: 잘했어. 다친 곳은 없지?
<네. 없어요.
>안다호: 그럼 재미있게 놀다 와.
>안다호: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재밌게 놀다 오라는 말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은 같았지만, 당황하던 최태우와 달리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은 답장이었다.
“하긴, 서준이 매니저로 일하시면서 많이 겪어보셨겠지.”
“서준이가 또 고래 구해도 ‘그래, 알았어.’ 하실 것 같아.”
미나 오웬과 김지윤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음식 나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푹 조린 갈치조림과 노릇노릇하게 구운 갈치구이였다.
둘 다 한 마리가 통째로 나와서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사진 찍으시겠어요?”
“넵!”
미나 오웬이 눈을 반짝이며 휴대폰을 꺼내자 직원이 능숙하게 수저를 사용해 갈치의 살과 뼈를 분리했다.
오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제 드시면 됩니다.”
그에 서준과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 * *
“갈치 진짜 맛있더라.”
“응! 구이도 맛있고, 조림도 맛있었어.”
서준의 말에 김지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맛있어서 진짜 싹싹 긁어먹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숙소 체크인 시간이 되어 서준과 아이들은 숙소에 왔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펜션으로, 마당에서 작지만 수영장(온수도 나온다.)도 있고 바비큐도 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다들 짐을 풀고 잠깐 쉬고 있는 중이었다.
“아, 밥 한 공기 더 먹을 걸 그랬나?”
“너 두 공기나 먹었잖아. 간식도 먹을 거니까 적당히 먹어.”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박지오에게 박지후가 말했다. 휴가이긴 하지만 너무 먹어서 체중이 불어도 안 될 터였다.
미나 오웬은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뭐가 더 들어간 것 같은데…….”
중얼거리는 걸 들어보면 갈치조림의 레시피를 알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걸 맛만 보고 알 수 있나, 싶지만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 미나라면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시계를 본 서준이 말하자, 아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손에 물안경과 튜브, 물놀이용 공 등을 들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가자!”
모두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즐길 마음이 가득했다.
* * *
[맛남 식당3]의 출연자 중 한 명인 배우 강태영.
서준이 아역으로 참여했던 드라마 [봄이 돌아왔다]의 서브 남주역을 맡았던 배우로, 새싹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이번에 합류한 배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선배님. 이서준 선배님이랑 많이 친하세요?”
배우가 서준보다 연상이었지만, 경력으로 따지자면 서준이 대선배였다.
“엄청 친하지. 서준이가 이레귤러스 촬영하러 미국 가기 전에도 만났고, 맛남 촬영 때문에 제주도에 간다는 이야기도 했는걸.”
“와! 서준이래요!”
놀라는 배우에 성덕 강태영은 활짝 웃었지만, 다른 출연자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맛남 식당1]부터 강태영의 이서준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다만.
“나 귀에서 피 날 것 같아.”
“자, 태영이 형은 이거나 들어요.”
막내 출연자가 강태영에게 짐 한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그에 강태영이 웃으며 짐을 되돌려주고 거기에 자신의 짐까지 얹어주었다.
“이런 건 막내가 들어야지.”
“……유 피디님! 저 3년째 막내예요! 제발 제 밑으로 한 명만 보내주세요! 진짜 잘해줄게요!”
두 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든 막내의 한이 서린 외침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