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58화
비행기 안은 어수선했다.
응급환자에게 붙은 스튜어디스 두 명을 빼고 다른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다들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박지후의 뒤를 따라가던 서준은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발동됩니다.]
언제든 사람들이 몰릴 수 있어 처음 새기고 난 후로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능력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좁은 기내.
달콤한 사과꽃 향기가 희미하게 풍겼다.
으아아앙 울던 아이도, 당황한 얼굴로 아이를 달래던 부모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불안함을 느끼던 사람들도 그 사과꽃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중하급 능력이라 전부 맡을 수는 없었지만, 몇몇이 진정하자 다른 사람들도 그 분위기에 물들어 점점 차분해졌다.
“승객 여러분, 자리에 앉아주세요!”
그제서야 스튜어디스들의 목소리도 사람들의 귀에 들어왔다.
승객들이 진정한 듯하자 스튜어디스들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하지만 긴장까지 풀지는 않았다. 응급환자는 여전했고 의료인은 없었다.
응급상황에 대비해 이것저것 배우는 스튜어디스고, 위성전화로 제주의 대학병원 의사와 연락을 취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지만 역시 부족했다.
“선배님!”
그때 의료인을 찾아 꼬리 쪽으로 갔었던 스튜어디스가 두 남자와 함께 오는 것이 보였다.
“의사이신가요?”
“의사는 아니신데, 의대생이시래요.”
“이제 곧 졸업할 예정이라서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박지후의 말에 스튜어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응급환자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화장실에 가시려던 찰나에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환자분이 앉았던 자리는 저쪽이셨고 이쪽으로 옮긴 상태입니다.”
응급환자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로 좁은 좌석에서 조금 넓은 비상구 앞으로 옮겨져 눕혀진 상태였는데,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걸 보니 의식은 남아 있었지만, 흐리멍덩한 눈빛이 현재 상황에서 제대로 대답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호흡도 거칠었다.
“쓰러지면서 부딪힌 곳은 없으신가요?”
“네. 없습니다. 승객분들이 잡아주셔서요.”
박지후의 눈은 빠르게 환자를 살폈고, 손은 기도 확보를 위해 환자의 자세를 고치고, 넥타이나 겉옷처럼 숨 쉬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은 것들을 풀어헤치며 한결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준은 옆에서 그걸 거들며 능력을 발동했다.
[(선)마을 의원의 백사의 눈이 발동됩니다.]
서준의 눈이 새하얗게 빛났다. 이것 또한 응급상황에 대비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능력이었다.
환자의 뇌가 새하얗게 보였다. 정확히는 뇌와 이어진 혈관들이.
아마 뇌 쪽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힌트는 줄 수 있겠지.’
그사이, 박지후가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했다.
“드시는 약 같은 게 있는지 짐을 살펴봐 주실 수 있을까요? 또 환자분 상태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잠시만요.”
스튜어디스가 얼른 응급환자의 자리로 향했다.
“기내에 산소공급기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가지고 오겠습니다.”
“AED(자동심장충격기)나 다른 비상용품들도 가지고 와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힌트도 필요 없으려나?’
뇌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고, 박지후가 너무 잘하고 있기도 했다.
서준은 속으로 웃으며 환자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다른 스튜어디스가 비상용품을 가지고 오기 위해 자리를 떴다.
환자의 가방을 가지러 갔던 스튜어디스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과 함께 왔다. 승객도 정말 놀란 얼굴이었다.
“환자분이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나십니까?”
박지후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지만 부담이 되지 않게 부드럽게 물었다.
옆자리 승객이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엔 술에 취한 분이신 줄 알았어요. 말투가 좀 어눌하셨거든요. 그리고 식은땀도 계속 흘리셨고. 두통도 있으신지 머리도 계속 이렇게 누르시더라고요.”
승객은 도움이 될까 싶어, 직접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가방 안에 두통약이 있어. 비행기 타기 전부터 두통이 있으셨나 봐.”
환자의 가방을 살핀 서준의 말에 박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스튜어디스가 산소공급기를 가지고 와 박지후에게 건넸다. 박지후는 그걸 작동시켜 서준에게 환자의 코와 입에 대게 했다. 그에 서준의 선기 덕에 점점 안정되던 환자의 숨소리가 더욱 편안해졌다.
“어디가 안 좋으신 것 같아?”
서준의 물음에 스튜어디스들도 근처 승객들도 귀를 기울였다.
“아마도 뇌졸중이 아닌가 싶어.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두통이랑 호흡곤란도 뇌졸중 증상 중 하나거든. 아마 화장실에 가시려다 쓰러진 것도 다리에 마비가 오신 것 같고.”
환자의 호흡이 차분해졌음에도 박지후는 진지한 표정으로 환자만 바라보며 설명해 주었다.
“그럼 큰일인 건가요?”
옆자리 승객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여기저기서 동요가 느껴졌다.
뇌졸중이라니. 마비라니.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의식이 있던 환자도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두통이 있었던 그때 병원에 갈걸, 하고 후회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의사선생님, 아니, 의대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습니다. 뇌졸중의 골든타임은 2, 3시간 정도거든요. 이제 곧 공항에 도착하죠?”
“네, 네. 7분이면 도착합니다.”
그 물음에 스튜어디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항에 구급차가 있을 테니까 바로 병원으로 가셔서 치료받으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의식도 있으시니 그렇게 나쁜 상태도 아닙니다.”
그말에 불안으로 바짝 긴장했던 환자의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주변도 안심한 듯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박지후는 여전히 팽팽하게 잡아당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상태였다.
‘/지후. 최악의 경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단다./’
알베르 모흐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알베르 교수는 때때로 자신의 이야기를 박지후에게 해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인 알베르 교수에게도 떠나보낸 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알베르 교수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앞으로 박지후가 겪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환자나 보호자들까지 심각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너무 낙관적인 것도 좋지는 않지만, 나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치료에 큰 힘이 되니까 말이야./’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안심하고 있는 응급환자처럼.
물론 안심해도 괜찮은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의사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한단다./’
다시 한번 그 말을 되새긴 박지후가 누워 있는 환자를 살폈다.
심장마비가 올 확률은 낮았지만, 심장마비가 온다면 곧바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심장마비의 골든타임은 4분.’
AED(자동심장충격기)도 있고, 심폐소생술을 하더라도 자신과 서준이 있어 충분히 공항에 도착해 구급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버틸 터였다.
살짝 떨리는 손을 쥐었다 편 박지후는 저도 모르게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참으며, 부디 그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랐다.
물론.
자신의 바로 옆에, 굉장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그 순간이 오기도 전에 막아줄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음. 괜찮네.’
새하얗게 빛나던 눈동자로 환자를 살펴보던 서준이 검게 변한 눈으로 작게 웃었다.
* * *
“무슨 일이지?”
조금 전.
비즈니스석.
이코노미 구역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소란스러움은 비즈니스석에도 전해졌다. 여기 있던 스튜어디스들도 하나를 빼고는 뒤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비즈니스석에 탄 연예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맛남 식당3]의 유상백 피디가 스튜어디스에게 물었다. 개인 카메라를 들고 비행기 내에서 각자 촬영을 하고 있던 연예인들도 고개를 돌렸다.
“아, 지금 응급환자가 발생해서요.”
응급환자.
그 말에 유상백 피디는 물론이고 연예인들과 매니저들의 눈이 커졌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혹시 승객분들 중에 의사나 간호사분 계신가요?]
마침 의사를 찾는 안내방송도 나오고 있었다.
“우리 의료팀은 없어요?”
“네. 제주에서 합류하기로 해서요.”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건 출연자들과 매니저들, 그리고 제작진뿐이었다.
전부 비즈니스석에 탈 수는 없어서 제작진 중 일부는 이코노미석에 있었다.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막내 출연자의 말에 연예인들의 얼굴에 걱정이 쌓여갔다.
“태영이 너 응급처치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배우긴 했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면서도 배우 강태영(A.K.A 새싹)은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다.
“태영 오빠가 가면 더 소란스러워지는 거 아니에요?”
맨 마지막에 비행기에 올라, 승객들은 연예인들이 탄 걸 모르고 있었다.
응급환자에, 갑자기 튀어나온 연예인에.
난리가 날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고 스튜어디스에게 도와줄 게 없나 물어보려던 찰나, 뒤쪽에 점점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마침 스튜어디스 한 명이 제법 안도한 얼굴로 비즈니스석으로 돌아왔다.
“어디 불편하신가요?”
일어서 있는 강태영을 발견한 스튜어디스가 물었다.
“아, 아뇨. 제가 응급처치를 좀 할 줄 알아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감사합니다.”
그에 스튜어디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의대생분들이 도와주시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위성전화로 지상의 병원과 연락 중이기도 하고요.”
“다행이네요.”
그에 강태영이 안심한 얼굴로 웃었다.
다른 연예인들도, 제작진도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심하고 나니, 이 상황이 굉장히 신기했다.
“나 닥터콜 처음 들어봐.”
“이런 걸 닥터콜이라고 해요?”
“마침 딱 의대생이 있다니까, 꼭 영화 같네.”
“……영화라니까 생각난 게 있는데 말은 안 할게.”
말이 씨가 될 수도 있었다.
막 착륙할 때도 됐고.
“그거?”
“그거.”
비행기 내에서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영화 [비상착륙]을 떠올린 연예인들과 제작진이 말없이 웃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착륙 장면에서 공항과 비행기 날개가 부딪치는 장면이 굉장하다는 평이 많은 영화이기도 했다.
잠시 후.
곧 착륙하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말과 함께, 구급대원들이 먼저 비행기에 올라 응급환자를 이송시킨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착륙할 때 반동 괜찮을까요?”
“의대생분들이 잘 대처하고 있지 않을까?”
강태영의 말대로 서준과 박지후가 응급환자에게 크게 영향이 가지 않게 대비하고 있었다.
쿠웅!
비행기의 바퀴가 지면과 맞닿았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다 천천히 멈춰 섰다.
창밖으로 새하얀 구급차와 그 앞에 들것을 들고 서 있는 구급대원들이 보였다.
공항과 비행기를 곧바로 잇는 탑승교가 연결되고, 탑승교와 지상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구급대원들이 올라왔다.
“이쪽입니다.”
연예인들을 보고 잠시 놀라던 구급대원들이 스튜어디스를 따라 이코노미석 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응급환자로 보이는 남자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환자를 도와줬다는 의대생들도 함께 나올까 싶었는데, 보이진 않았다.
‘뭐, 우리랑은 상관없나.’
유상백 피디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차례대로 내리겠습니다.”
비즈니스석 승객들부터 안내에 따라 비행기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탑승교를 건너 제주공항 건물로 이동했다.
일이 좀 있긴 했지만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유 피디님!”
이코노미석에 타고 있던 제작진들이 유상백 피디에게로 달려왔다. 손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찍었어?”
“네. 직업병이라…….”
다들 하하 웃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예능 제작진이라서 그런가 일만 생기면 휴대폰 카메라부터 켜는 직업병이 있었다.
“SBC였다면 단독보도 같은 걸로 낼 수 있었겠지만, 우린 어디 낼 곳도 없지 않아?”
“그건 그렇죠.”
뉴스가 없는 TVM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어디 쓸 곳 없을까요?”
“없을걸. 다른 승객들도 촬영했을 테니까…….”
하고 말하던 유상백 피디가 이내 말을 고쳤다.
“아니다. 가지고 있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