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57화
“다녀오겠습니다!”
“재미있게 놀다 와, 아들.”
“맛있는 거 사와!”
이른 아침.
엄마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서준은 캐리어를 끌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낯익은 차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태우 형!”
서준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온 최태우가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면서 빙그레 웃었다.
“연락하자마자 내려왔네?”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들뜬 서준의 모습만 봐도,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거실에서 최태우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필요한 건 다 챙겼어?”
하하 웃은 최태우가 캐리어를 뒷좌석에 놔두고 조수석에 탄 서준에게 물었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몇 번 체크했어요. 그리고 뭐, 없으면 애들 거 빌리면 되고요.”
유럽 여행 때도 그랬듯, 네 건 내 거고 내 건 네 거다.
“아니면 가서 사도 되고요. 외국도 아니고 한국이잖아요.”
“그래도 되지.”
서준이 안전벨트를 맨 것을 확인한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움직였다. 다음 목적지는 서준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쌍둥이의 집이었다.
“올 때는 오후 9시에 오는 거지?”
“네. 9시 도착 비행기예요. 늦은 시간이긴 한데, 그때 공항에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요.”
서준이야 대중들도 팬들도 그 원리를 궁금해하는 기적적인 일코가 가능해서 언제 도착해도 상관없었지만, 유명 축구선수 박지오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서준과 아이들은 최대한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하긴. 박지오 선수 정도면 축구에 관심 없어도 알아볼 테니까. 최대한 사람들을 피하는 게 좋긴 하지.”
최태우의 말에 서준도 동의했다.
“근데 애들은 태평하더라고요.”
아이들의 태평함에는 서준의 탓도 있었다.
자신, 박지오보다 훨씬 유명한 배우 이서준도 잘 돌아다니니까 자신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아이들도 서준의 일코는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서준과 제법 평범하게 놀러 다녔으니, 유명세에 대한 감각이 미묘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저랑 있으면 괜찮을 것 같대요.”
‘뭐, 물론 능력을 쓰긴 하겠지만.’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과 함께 지낸 지 몇 년 되지 않은 최태우가 생각해도 묘하게 그럴 것 같았다.
“예능은 어떻게 됐어요, 형?”
서준의 물음에 최태우가 매니저 모드로 바뀌었다.
“계약서 검토하는 중이야. 네가 제주도에서 돌아오면, 제작진하고 한번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결정해야지. 아마 그전에 함께 출연할 출연자들이나 촬영 장소도 결정될 거야.”
“피디님은 어떤 분이신 것 같아요?”
여러 통로를 통해 주예진 피디에 대해서 알아본 코코아엔터였지만, 직접 만났을 때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었기에 주의하고 있었다.
“부팀장님이랑 만나보고 왔는데 괜찮은 분인 것 같더라. 이게 첫 프로인데, 조연출로 ‘맛남 식당’을 했었대. 맛남 식당 피디는 옛날에 워킹맨 조연출이었고.”
오.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저랑도 만났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몇 번 출연 안 했지만.
그에 최태우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 스키장 때랑 휴게소 편에서 만났었대.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가 잘 통하더라. 아마 그 피디가 조언을 해준 거겠지.”
이렇게 인연이 닿다니, 확실히 좁은 동네였다.
[맛남 식당]이라.
‘그러고 보니 거기에…….’
하고 서준이 생각을 이어나갈 때, 멀리서 기다란 두 팔을 신나게 펄럭거리는 남자1과 그런 남자1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2가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쌍둥이, 박지오와 박지후였다.
서준이 탄 차가 쌍둥이 앞에 섰다.
“안녕! 서준아! 안녕하세요, 태우 형!”
박지오가 신나게 인사하며 익숙하게 차 뒷문을 열었다. 안다호가 매니저일 때 가끔 이렇게 탔던 적이 있어서 익숙했다.
“안녕하세요.”
“하하. 둘 다 잘 지냈어?”
몇 번 만나면서 알게 된 최태우와 인사한 쌍둥이는 캐리어를 들고 뒤에 탔다.
“근데 이 차인지는 어떻게 알았어?”
오늘은 서준의 차가 아니라 평범한 9인승 차량을 타고 왔다.
코코아엔터 주차장에 몇 대 있는 예비용 차량으로, 쓰고 있던 차가 고장 났을 때나 오늘같이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 쓰는 차량이었다.
최태우의 물음에 박지오가 웃으며 대답했다.
“서준이가 차 번호를 알려줬어요!”
“덕분에 멀리서 올 때부터 난리도 아니었죠.”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차량을 발견했을 때부터 열심히 두 팔을 흔들던 박지오를 떠올리며, 박지후가 조금 지친 얼굴로 말했다. 서준과 최태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안녕, 서준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음으로는 한 카페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지윤과 미나 오웬이 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의 집은 김포공항 가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서 이곳에서 합류했었다.
“집까지 가도 되는데…….”
“괜찮아요. 이렇게 가는 것도 여행의 재미잖아요.”
최태우의 말에 김지윤이 웃으며 말했다. 미나 오웬이 덧붙였다.
“저 이 카페 한번 와보고 싶었거든요.”
미나 오웬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하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나 오웬도 웃으며 봉투에서 베이글을 꺼내 최태우와 소꿉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래도 집에 갈 땐 데려다 줄게.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넵! 감사합니다.”
그건 사양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서준과 소꿉친구들이 탄 차가 신나게 도로를 달렸다. 들뜬 아이들의 이야기소리에 운전하고 있던 최태우까지 신나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차는 김포공항 국내선에 도착했다.
유명인 두 명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일반인 세 명은 평범하게 차에서 내렸다. 물론 슬쩍 주변을 살피는 건 잊지 않았다.
“제주도 가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부팀장님이 사진도 많이 찍어오라고 하시더라. 나중에 이벤트나 팬미팅에 쓸 수도 있다고.”
“그건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찍어올게요!”
믿음직하다.
아이들의 말에 최태우가 하하 웃었다.
“다들 재미있게 놀다 와. 몸조심하고.”
“네!”
씩씩하게 대답한 서준과 아이들이 최태우가 떠나는 것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
공항 한쪽이 시끌벅적했지만, 자기들끼리 신나게 이야기하느라 알아채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 * *
[……제주행 비행기가 곧 출발…….]
바이오등록으로 쉽고 빠르게 게이트를 통과한 서준과 아이들은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가 아니라 비지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이 함께 있는 비행기였는데, 아이들의 자리는 이코노미석이었다.
처음에는 비지니스석에 앉을까 했는데 비싸기도 했고 눈에 띌 것 같아서 이코노미석으로 결정했다.
‘뭐, 이미 매진이라서 살 수도 없었지만.’
꼬리쪽 맨 끝자리의 두 자리. 그리고 그 앞의 세 자리.
이 다섯 자리가 서준과 아이들의 자리였다.
“자, 유명인들은 안쪽에.”
미나 오웬이 조용히 웃으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박지오를 제일 안쪽 창가에 앉혔고,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미나 오웬의 옆자리는 김지윤이 앉았다.
또 다른 유명인 서준도 박지오의 뒷자리 창가 쪽에 앉았고, 박지후는 서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제주…….]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곧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창 밖으로 통로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고, 달달달- 하고 비행기가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매라는 방송과 함께 스튜어디스들이 구명조끼나 산소마스크 등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곧 비행기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창밖의 풍경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후웅- 하고 기체가 뜨는 것이 느껴졌다.
[……비행기가 갑자기 흔들리는 경우에 대비해 안전띠는 항상…….]
적당한 높이까지 사선으로 기울어져 빠르게 날아간 비행기가 수평을 이루었다. 띵동- 소리와 함께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졌다.
승객들은 그제서야 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후야, 얼마나 걸린다고 했지?”
“55분 정도.”
서준의 물음에 박지후가 비행기 표를 확인하고 말했다.
55분.
미국에 갈 때보다 훨씬 짧은 시간.
눈 깜빡하면 도착할 것 같았다.
“금방 도착하겠네.”
“그러게.”
평화롭고 즐거운 제주도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서준과 박지후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럽 여행에서 만났던 신경외과 교수, 알베르 모흐에 대한 이야기였다.
삼일 전에도 연락했다는 박지후의 이야기에 서준이 웃으며 물었다.
“교수님이 안 귀찮으시대?”
“재미있으시다던데. 나 같은 학생을 만난 건 처음이라시면서.”
“그건 그래.”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리 여행을 온 거면서 대학교수에게 연락하는 외국인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 동안이나 연락과 배움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학생도 처음일 터였다.
“전공을 그쪽으로 할까 고민 중이야. 나중에 파리에 오면 가르쳐 준다고도 하셨고. 내년에 한국에 잠깐 오신대. 그때 보자고 하셨어.”
오!
알베르 모흐 교수가 얼마나 박지후를 아끼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친구가 잘나긴 했지.
자신의 어깨가 다 으쓱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비행기는 제주도와 점점 가까워졌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고 평화로웠던 비행에 이변이 생긴 것은 그때였다.
---!
비행기 앞쪽이 시끄러워졌다.
뒤쪽에 있던 스튜어디스들이 급히 그쪽으로 향하고, 승객들도 몇 명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살펴보았다.
서준과 아이들도 눈을 끔벅이며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뭐지?”
“무슨 일 있나?”
분위기에 놀란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영문을 모르는 승객들이 동요했다.
“뭔가 큰일이 난 것 같은데.”
“어디 고장 난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니, 어제 비상착륙 영화를 봐서…….”
“그런 걸 왜 하필 어제 보냐고.”
기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린 게 아니었음에도 웅성거리는 소리에 섞인 걱정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혹시 승객분들 중에 의사나 간호사분 계신가요?]
의료인을 찾는 닥터콜이었다.
기체의 고장이나 사고가 아니라는 것에 사람들은 안도하는 한편, 다른 종류의 걱정이 비행기 안을 가득 채웠다.
“의사 있으려나?”
“한 명은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의 걱정을 들으며 서준은 옆자리에 앉은 박지후를 바라보았다.
박지후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우뚝 서 있었다.
아마도 응급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일어나 있었던 것 같았다.
“안 가 봐도 돼?”
서준의 말에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도 뒤에 서 있는 박지후를 바라보았다.
“난 아직 학생이잖아. 의사나 간호사가 가시는 편이 더 확실해.”
하지만 이 비행기 안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걸 알기에, 대답한 박지후도 서준과 아이들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었던 모양인지 스튜어디스 한 명이 꼬리 쪽까지 와 목소리를 높였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혹시 승객분들 중에 의사나 간호사분 계신가요?”
다급한 목소리에도 승객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의사나 간호사가 없다는 걸 알자마자, 박지후가 통로 쪽으로 나왔다.
“의사는 아니지만, 의대생입니다.”
“!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의료지식이 있다면 누구든 감사한 상황이었다.
의대생이라면 더욱 그랬다.
“도와줄까?”
서준이 막 걸음을 옮기려던 박지후에게 물었다.
그에 박지후가 괜찮다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고쳐 쓰고 있는 서준의 모습에서 NO라는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믿음직한 친구의 모습에 박지후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부탁할게.”
그에 서준은 씩 웃으며, 박지후와 함께 응급환자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