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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56화 (95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56화

“이, 이서준 배우?”

그 소란의 원인을 듣고 순식간에 예능국 국장이 달려왔다.

TVM은 종합편성채널이 아니라서 뉴스를 방송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송국에서 오스카 시상식이니 칸 영화제니 WTV영화제니 할 때 함께 폭죽을 터뜨리지 못했다.

이서준 배우가 등장할 만한 거라고는 공익광고 [한 걸음]이나 자료 화면뿐.

이서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런 이서준 배우의 소식이 방금 예능국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그것도 한 번만 나오는 게스트가 아니라 2달 동안 매주 얼굴을 비출 정식 출연자로!

순식간에 예능국장의 머릿속으로 방송이 이어지는 2달 동안, 아니, 홍보하는 순간부터 기사란을 도배해 버릴 미래가 떠올랐다.

광고가 쏟아져 들어와서 오히려 고르고 골라야 하겠지. 다른 타임의 광고를 끼워팔 수도 있을 거고. PPL도 엄청 들어올 거다. OTT 사이트에서 계약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TVM은 자체 OTT가 있어서 당연히 그쪽과 계약하겠지만.

건너건너 들었던 ‘이서준 효과’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계약서는?”

가장 중요한 건 그거였다.

나온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아직 다른 출연자들과 장소가 섭외되지 않은 [섬섬생활]이기 때문에 그럴 확률이 더 높았다.

“아직입니다. 하지만 약속은 잡아놨어요.”

“잘했다!”

주예진 피디의 말에 국장이 활짝 웃었다.

“필요한 건 뭐든 말해, 주 피디. 뭐가 필요해? 스태프? 제작비? 아차, 편성부터 확정해야겠네!”

“그럼…….”

국장과 주예진 피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쪽에 앉아있던 유상백 피디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난 왜 여기 있지?’

[섬섬생활]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이 얼떨결에 여기에 끼게 되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잠깐만요, 선배님!”

아까처럼 주예진 피디가 유상백 피디를 붙잡았다.

국장도 유상백 피디가 여기 있는 것이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이어지는 주예진 피디의 말에 ‘아이고! 그랬지!’ 하면서 회의실을 나가려는 유상백 피디를 붙잡았다.

“선배님, SBC에 다니셨잖아요. 워킹맨에서도 일하시고!”

S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워킹맨!]

이서준 레이더가 달렸다는 소리가 있는 예능으로, 횟수로 따지자면 이서준 배우가 가장 많이 나왔던 방송이었다.

유상백 피디는 피디로 입봉하기 전 [워킹맨!]의 조연출로 일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국장도 눈을 반짝였다.

TVM에 들어온 직원들 중에 슈퍼스타와 인연이 있는 직원들은 특별히 기억해 두고 있었다. 당연히 인맥으로 슈퍼스타가 출연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서준은 인맥으로도 힘든 것 같아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인맥이 통했다면 다른 예능부터 나갔겠지.

“그, 그랬지.”

유상백 피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 배우도 보셨다고 하셨죠?”

“나도 들었던 것 같은데.”

엉거주춤 서 있던 유상백 피디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맛남 식당1, 2]를 할 때 가끔 이서준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긴 했다.

“네. 그, 스키장이랑 고속도로 휴게소 때, 봤었죠. 휴게소 편은 그냥 스쳐 지나간 거나 다름없긴 했지만요.”

유상백 피디의 말에도 주예진 피디와 국장의 눈은 반짝이기만 했다. 몇 년 전이긴 하지만 이서준 배우의 예능 출연 빈도로 따지자면 가장 최근이었다.

“스키장에서는 좀 오래 같이 있었죠?”

“그랬지. 촬영 시간이 좀 있었으니까.”

이서준 배우와는 짧게 이야기도 나눴었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날씨가 춥다는 이야기나 필요한 건 없냐는 이야기 정도.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워킹맨 피디님이 이서준 배우를 어떻게 대했는지, 이서준 배우 매니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서준 배우가 어떤 걸 마음에 들어 했는지, 불편하게 생각한 건 없었는지.”

주예진 피디가 유상백 피디를 보고 달려왔던 것도 그냥 친한 사람이라서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이서준 배우와 무사히 계약하고 촬영하기 위해 조언을 구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여긴 TVM.

이서준 불모지.

SBC에서 [워킹맨!]의 조연출로 일했던 유상백 피디만이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그래. 이서준 배우에 대한 건 뭐든 이야기해 봐, 유 피디!”

그 사실을 아는 국장도 눈을 번뜩이며 재촉했다.

“그게 옛날 일이라 기억이 잘…….”

하지만 유상백 피디는 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몇 년 전 일이기도 했고.

당시 조연출이었던 유상백 피디 또한 다른 스태프들처럼 진 나트라 OST와 함께 등장한 이서준을 보며 ‘와! 미친! 진짜 이서준이다!’ 하면서 거의 넋 놓고 촬영에 임했었기 때문이었다. 반쯤 꿈 같았었달까.

“이서준 배우는…… 성격이 참 좋았죠.”

“그건 우리도 알아…….”

겉과 속이 다른 연예인들이 많지만, 이서준은 그렇지 않다는 건 다들 잘 아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체크해 둬야지.’

주예진 피디는 마음속 메모지에 적어두었다.

이서준 배우가 성격이 좋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런 이서준 배우가 방송에서 화를 낸다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난리가 날 터였다.

힐링이 목표인 [섬섬생활]을 촬영하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더더욱 없게 해야 할 터였다.

“뭐 다른 건 없어, 유 피디?”

“그게…….”

국장의 재촉에도 유상백 피디는 영 떠올리지 못했다.

둥-둥 - 하고 심장을 울리는 진 나트라 OST와 함께 등장한 이서준의 모습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주예진 피디는 의사는 아니지만 유상백 피디를 치료해 주기로 했다.

“저희 쪽에 오는 제작비 좀 나눠 드릴게요.”

금융치료였다.

제작비!

있어도 있어도 모자라는 제작비를 나눠주겠다는 소리에 유상백 피디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래. 이번 계약만 잘 되면 나도 두 팔 걷고 도울 테니까, 생각나는 건 다 말해봐, 유 피디.”

거기에 국장의 말까지 더해지자, 정수리에 번개가 내리꽂힌 것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매니저는 없었어. 그때 피디님이랑 통화로 이야기했었거든.”

유상백 피디의 말에 주예진 피디가 얼른 물었다.

“방임주의 같았어요?”

“아니야. 이서준 배우가 친구들이랑 놀러 온 거라서 안 온 것 같았어. 계약할 때는 굉장히 철저했거든. 전화도 신호음 한 번에 바로 받았었고.”

유상백 피디가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또 촬영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스키장에 도착했었지. 서울이랑 거리도 꽤 있었던 데다가 저녁이었는데 일찍 도착했다고 다들 놀랐었던 게 기억나. 아마 이서준 배우의 연락을 받자마자 출발한 게 아니었나 싶어.”

주예진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임은커녕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상백 피디는 SBC 드라마 [바벨탑]에 이서준이 카메오로 출연했던 때 들었던 이야기들도 떠올렸다.

“또 이서준 배우 의견을 제일 중요시하는 것 같더라고. 바벨탑 출연도 이서준 배우가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결정된 거라고 들었어.”

이서준 배우의 의견이 제일 중요함.

주예진 피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했다.

여기저기서 들은 게 많은 국장도 거들었다.

“코코아엔터의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이서준 배우에 대한 일은 아주 철저하다고 하더라. 할리우드 계약도 그 사람이 다 맡아서 한다니까, 계약할 때 주의해야 할 거야.”

할리우드.

그 단어에 새삼스럽게 이서준의 출연이 피부로 와 닿은 주예진 피디가 침을 꼴깍 삼켰다.

“네. 알겠어요. 또 다른 건요?”

“또…… 새로운 걸 좋아하는 것 같았어. 예능 촬영 때는 특이한 물건들을 많이 쓰잖아. 그런 것도 물어봤고. 재미있어하더라고.”

“새로운 거…… 특이한 거…….”

그저 사람이 거의 없는 섬에서 생활하는 것뿐인데, 새롭고 특이한 게 있을까.

주예진 피디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생각하면서 유상백 피디와 국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 *

[바르셀로나FC 박지오, 휴가 한국에서 보낸다!]

[프로축구선수 박지오, 2주간 휴가!]

[올해 라리가 우승컵의 주인공, 박지오 선수 귀국!]

-사인회 안 하나? 사인회?

=제발 해라. 나 바르샤 2군 때 유니폼도 있다고.

-2군 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1군에 이제 우승까지ㅋㅋ

=박지오 망한다고 했던 놈들 다 어디갔냐ㅋㅋㅋ

-박지오 어디 예능 같은데 안 나옴?

=축구 예능 해줬으면.

=22 진짜 잠깐 게스트로 나와줘도 됨.

=10분만. 아니 5분만.

-그냥 토크쇼 나와서 바르샤 썰만 풀어도 재미있을 듯.

=222 겸사겸사 이서준 썰도 풀면 시청률 보장.

=이서준은 왜 나옴?

=뭐야. 아직도 박지오가 이서준 친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었음?

=그냥 친구도 아니고 소꿉친구임.

=아기 때 같이 찍은 사진도 있음. (서준과 소꿉친구들 사진) 8개월 때임.

=8개월ㅋㅋㅋㅋ

-이서준은 한눈에 알아보겠고. 둘은 여자애고. 박지오는…… 둘인데?

=박지오 쌍둥이야ㅋㅋ

=헐. 쌍둥이?

=쌍둥이도 축구함?

=박지오 형제면 축구 잘할 것 같은데!

=일란성 쌍둥이면 덩치가 비슷하지 않나?

=운동량이 달라서 좀 다르지 않음?

-쌍둥이가 둘 다 축구선수에 둘 다 잘하면 ㅈㄴ 재미있었을 것 같다ㅋㅋ

=22 가끔 유니폼 바꿔 입고 경기하면 웃기겠다ㅋㅋㅋ

=33 내가 지오 박으로 보이냐?ㅋㅋ

=그러면 안되잖아ㅋㅋㅋㅋ

-기사 없는 거 보면 축구선수는 아닌 듯.

=아쉽네.

* * *

박지오가 한국에 왔다.

그에 [이레귤러스] 촬영을 끝낸 서준과, 본과 4학년으로 올해 의사 국가시험을 볼 의대생 박지후, 학교를 졸업하고 단편 소설로 등단한 후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인 김지윤, 현재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는 미나 오웬까지 모두 모였다.

“미나 넌 언제 한국에 왔어?”

쌍둥이의 집.

소파와 거의 한 몸이 되어 있던 박지오가 미나 오웬에게 물었다.

“며칠 안 됐어. 마침 방학이라 왔지.”

미나가 웃으며 집에서 만들어온 간식을 테이블 위에 펼치려고 하자, 서준과 김지윤이 테이블 위에 있던 책들과 종이들을 치웠다.

[제주도로 배낭여행 가자!]

[트립! 제주도!]

[제주도로 혼저옵서예]

제주도 여행책들과 맛집에 대해 적힌 종이들이었다.

“여기 돈가스 진짜 맛있다고 하더라.”

“대기줄도 엄청 길다던데.”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과일타르트와 박지후가 부엌에서 가져온 음료수를 먹으며 서준과 아이들은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요즘은 좀 줄지 않았을까?”

“일단 가 보긴 하자.”

미나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체크했다.

소파에서 뒹굴던 박지오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나 돌고래 보고 싶어!”

“돌고래 보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대.”

김지윤이 조금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박지후가 서준을 보았다.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서준이랑 같이 있으면 왠지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박지후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고래나 늑대 같은 보기 드문 동물들과도 인연이 있는 서준이라 진짜 그럴 것 같았다.

“그럼 돌고래 스팟도 가 보자.”

“말도 타고.”

“한라산도 갈까? 백록담까지.”

“백록담까지 편도로 4시간 30분 걸린대, 지오야.”

“취소.”

미나의 말에 박지오가 얼른 취소를 외쳤다.

편도로 4시간이 넘는다니. 왕복이면 하루가 훌쩍 간다.

“겨우 4박 5일인데 하루를 날릴 수는 없지!”

박지오가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에, 서준은 아이들에게 제주로도 여행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미나 오웬은 방학이 끝나면 다시 프랑스에 갈 거고, 김지윤은 소설을 쓰는 데 집중할 터였다. 또 박지오는 스페인으로 돌아갈 테고, 박지후는 국시를 치고 인턴이 되어 밤낮없이 생활할 테니까.

어쩌면 지금이 가장 여행 가기 좋을 때일지도 몰랐다.

서준의 제안에 아이들은 모두 단번에 찬성했다.

아무도 박지후의 시험은 걱정하지 않았다. 지후라면 잘할 거다.

“우리 스노클링도 하자.”

“진짜 재밌겠다!”

즐거운 표정으로 제주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던 서준과 소꿉친구들은 그때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승객분들 중에 의사나 간호사분 계신가요?

닥터콜을 들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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