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55화
“너흰 독립 안 해?”
양주희의 물음에 친구들이 하나둘 대답했다.
“하고 싶긴 하지.”
“혼자 사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긴 함.”
“난 독립해도 집에 매주 갈 것 같은데.”
서준도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촬영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사니, 자신의 방 정도만(그것도 미국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청소해 주시고는 하지만.) 관리하면 되지만 독립하면 집 전체를 관리해야 했다.
물론 코코아엔터가 어떻게 해주겠지만.
“하긴 그것도 그렇지.”
“서준이는 미국에서 촬영할 때가 많기도 하고.”
“그럼 거의 서너 달은 비워야 하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방 촬영 며칠만 다녀와도 그런데, 서너 달이면 먼지가 꽤 쌓일 게 분명했다.
“그래도 독립하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해. 주희처럼 친한 사람들 모아서 식사도 하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도 하고.”
“재밌지.”
양주희의 말에 웃던 서준은 루카스 터너와의 합숙을 떠올렸다.
“아예 며칠 같이 지내면서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네.”
“오. 그거 재밌겠다. 합숙 같고.”
친구들도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배우들만이 아니라, 작가님들이랑 감독님들도 모아서 같이 작품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그것도 괜찮겠다.”
“글이 막힐 때나 시간이 있을 때마다 배우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대본 리딩도 하고.”
“……오?”
“또 음식도 각자의 입맛과 몸 상태에 맞춰서 준비하고, 몸이 건강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 규칙적인 운동과 산책은 필수지. 편하게 대본만 쓰실 수 있게 필요한 건 내가 다 준비하는 거야.”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것과 달리, 친구들은 눈을 끔벅이며 입을 다물었다.
“……얼마나?”
서준이 데굴 눈을 굴렸다.
얼마나 합숙하는 게 좋을까.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좋은 작품이 나올 때까지.”
생각만 해도 만족스럽다는 듯 서준이 활짝 웃었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오. 그렇군.”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감독님한테 도망치라고 이야기 드려야겠다.”
“나도. 서준이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하면 바로 도망치라고 해야겠어.”
“작가님 전화번호가…….”
친구들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전화번호를 찾는 척하며 휴대폰을 두드릴 때, 전성민이 문득 든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니야? 배우들도 저 지옥 합숙 목록에 있었잖아.”
그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강재한이 웃으며 말했다.
“안녕, 서준아. 그동안 고마웠어. 너랑 친구라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 작별의 인사에 서준과 친구들이 빵 터지고 말았다. 배우라서 그런지 표정이 진실돼 보여서 더 웃겼다.
“지옥 합숙까지는 아니지 않아?”
웃으며 묻는 서준에 김주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은 작품이 언제 나올 줄 알고.”
“맞아. 그렇게 마음대로 나올 수 있으면 창작의 고통은 왜 있겠어?”
“하물며 심사위원이 이서준인데.”
박시영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연기과 수업에 ‘작가의 마음을 느껴보자!’ 하는 의도의 강의와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그때 알게 됐는데.”
양주희가 웃으며 말했다.
“출판사에서 소설가를 가둬놓고 글만 쓰게 하는 거를 통조림이라고 하더라.”
“통조림……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근데 서준이가 가둬놓으면 그래도 시설은 좋을 테니까, 수능시험 출제위원들 감금 정도가 아닐까.”
“그러게. 출제위원들은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지낸다고 했지?”
“응. 외부랑 소통할 수 없게 가둬둔대. 인터넷이랑 전화도 안 된다고 하더라.”
“나도 막 축구공이 담장 밖으로 나가면 잘라서 안에 쪽지 같은 거 없는지 살펴본다는 이야기 들어봤음.”
오…….
감탄과 탄식이 섞여 들려왔다.
무시무시하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는데.”
서준이 투덜거리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원한다면 한다는 거지?!”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인 서준의 말에 친구들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따라 웃었다.
“근데 서준이랑 하면 결과는 좋을 것 같아.”
강재한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야 두말할 것도 없지.”
“그냥 숨쉬기만 해도 배울 게 많을 듯.”
연기력 상승을 원하는 배우들에게는 꿈 같은 곳이 아닐까.
“작품도 서준이가 연기하는 거 보면 그냥 영감이 샘솟을 것 같지 않아?”
“아, 맞아. 작가님이 그러시더라. 서준이 연기 보면 좋은 생각이 팍팍 떠오른다고.”
“서준이라면 피드백도 잘해주겠지.”
“건강도 잘 관리해 줄 거고.”
잠시 생각하던 김주경이 입을 열었다.
“……나 방금, 조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신은 좀 힘들더라도 몸은 건강히, 그리고 좋은 결과를 들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들은 연기를 더 잘하게 될 거고, 작가와 감독은 좋은 작품을 손에 쥐게 될 터였다. 어쩌면 서준이 출연해 줄지도 몰랐다.
“나도.”
“이러면 안 되는데……!”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던가.
분명 힘들 거라는 걸 아는데 결과를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아니,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전성민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합숙소, 일주일 체험도 가능해?”
서준과 친구들이 빵 터졌다.
* * *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축하 파티인지 그냥 노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게.”
“뭐, 재밌기만 하면 됐지.”
파티의 주인공인 박시영이 그렇다고 하니, 서준과 친구들은 계속 그렇게 놀았다.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메시지였다.
>박지오: 나 휴가아아!!
>박지오: 한국 간다아아!!
“오.”
“뭔데 그래?”
박지오와 이름이 비슷한 한지호의 물음에 서준이 답장을 보내며 이야기했다.
“친구가 휴가로 한국에 온대.”
“그래? 배우야?”
휴가로 한국으로 온다는 소리는 외국에 있다는 소리겠고, 그럼 할리우드 배우인가?
“아니, 축구선수.”
축구를 즐겨보는 한지호와 전성민이 눈을 빛냈다.
“박지오 선수?!”
“한국에 온대?”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서준의 소꿉친구이기도 해서 시간이 되면 박지오 선수가 나오는 경기를 찾아보고는 했다. 뭐, TV에서 동네방네 홍보해서 찾아볼 필요도 없었지만.
“결승전 대단했지.”
“박지오 선수가 결승골 넣어서 기사도 엄청 났고.”
서준이 한창 [이레귤러스]를 촬영하던 5월의 어느 날.
스페인리그, 라리가의 결승전이 열렸다.
비등비등했던 승점 탓에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던 라리가 우승컵의 주인은, 길고 긴 접전을 이어나가다 후반 31분에 나온 박지오의 결승골로 바르셀로나FC가 되었다.
그에 한국이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6월이 된 지금도 기사가 종종 올라오고 있었다.
“우승컵 들고 찍은 사진 진짜 멋있었는데.”
그 사진은 서준이 봐도 멋있긴 했다.
서준과 소꿉친구들이 보낸 답장에 ‘더 반가워해 줘!(뒹구는 호랑이 이모티콘)’ 하고 메시지를 보낸 박지오는 하나도 안 멋있었지만.
<ㅇㅋ
>미나: ㅇㅋ
>지윤: ㅇㅋ
‘그럴 만한 답장이긴 하지만.’
쌍둥이 형, 박지후는 아예 답장도 없었다.
서준이 키득키득 웃었다.
“박지오 선수가 한국에 오면 시끌벅적하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 * *
케이블 방송국, TVM.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와 예능으로 케이블 방송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채널.
시즌제 예능이 가장 잘 정착된 곳이기도 하며, 새로운 예능이 자주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회의 시작하자고.”
유상백 피디는 지상파에서 TVM으로 이적한 예능 피디로, 재작년 연예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맛남 식당]으로 성공적으로 TVM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작년에도 [맛남 식당2]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올해는 [맛남 식당] 시즌3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식당 공사는 끝났대?”
유상백 피디의 물음에 조연출이 대답했다.
“네. 바로 장사 시작해도 된대요!”
“그래도 다시 확인하라고 해. 장사하는 곳이니까 문제 생기면 큰일 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받으며 음식을 파니, 진짜 영업허가증도 발급받아야 했고 위생과 안전도 철저히 지켜야 했다. 음식의 맛은 당연했다.
“넵. 알겠습니다!”
시원한 조연출의 대답에 유 피디와 작가들이 웃었다.
그래도 다들 몇 번 해봤다고 시즌1 때처럼 우왕좌왕하지는 않았다.
“출발하는 날 날씨도 다시 확인해 보고. 비행기 못 뜨면 일정 다 밀리니까.”
[맛남 식당3]의 촬영지는 제주도.
출연자들과 함께 서울에서 만나는 장면부터 촬영하여 제주도로 함께 이동해 장사를 할 식당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출연자들 컨디션 확인하고…….”
그때.
어디선가 끄아아아악!! 하는, 굉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맛남 식당3] 회의실에 있던 유상백 피디와 제작진들이 반사적으로 벌컥 문을 열었다. 다른 회의실과 사무실에서도 그 굉음을 들었는지 다들 문을 열고 나오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서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뭐야?”
“무슨 일인데?”
“불이라도 났어?”
그러면서 저장 버튼을 눌러 하고 있던 작업들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가슴팍에 소중히 감싸 안는 직원들이었다. 내 아이디어, 기획서는 소중하다.
그사이, 소리의 진원지가 밝혀졌다.
저쪽 구석에서 계속 ‘미쳤다! 미쳤어!’, ‘신이시여……!’, ‘으아아악!’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새하얀 종이들이 허공으로 퍼지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저기 섬섬생활 아니야?”
[섬섬생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사람이 거의 없는 섬에서 연예인들끼리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예능프로였다.
기획만 보면 좀 아리송하지만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평이 좀 있어서 준비 중이긴 했는데, 아직 섬도 집도 출연자도 못 구한 상태라서 언제 엎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피디도 이번 프로그램으로 데뷔하는 입봉 피디기도 했고.
“……엎어졌대?”
그럼 저렇게 난리인 것도 이해가 간다.
그때, [섬섬생활]의 피디, 주예진의 모습이 보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번쩍이는 눈동자가 묘하게 광기가 보였다. 실실 웃고 있기까지 했다. 뒤따라 보이는 [섬섬생활] 제작진의 표정도 비슷했다.
“……그건 아닌 것 같지 않아?”
“그러게.”
확실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유 피디. 네가 물어봐.”
“내가?”
“주 피디, 네 밑에 있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맛남 식당] 시즌 1, 2를 함께 해서 친하긴 했다.
‘근데 지금 이야기하긴 상태가 좀…….’
하고 말하려고 할 때, 유상백 피디와 주예진 피디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어쩐지 주예진 피디의 눈이 번쩍 빛난 것 같았다.
“선배님!”
“어…… 어어…….”
순식간에 유상백 피디 앞으로 달려온 주예진 피디가 외쳤다.
“이서준 배우가 저희 프로에 출연하고 싶대요!”
……뭐?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모두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서준? 그 이서준 배우?”
“네! 그 이서준 배우요! 코코아엔터 소속! 할리우드 배우! 진 나트라! 나이트 진! 그레이 바이니! 성녕대군! 이현우!”
경악으로 조용한 가운데, TVM 사무실에는 확인 사살하듯 이서준 배우가 맡았던 배역들을 줄줄이 말하는 주예진 피디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