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54화 (95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54화

♬-.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의 시작을 알리는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선율은 한 박자도 채 이어지지 못했다. 이사실에서 서류를 살펴보고 있던 안다호 이사가 반사적으로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 서준아.”

이 벨소리가 들려오는 연락은 오직 서준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으로 설정해 뒀는데, 매번 빨리 받아버리고 마니 다른 사람들은 무슨 곡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안다호 본인도 벨소리를 길게 들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긴 했다.

-뭐 하고 있어요, 다호 형?

“나야 일하고 있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서준의 목소리에 안다호 이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서류를 놓아두고 서준과의 통화에 집중했다.

목소리로 느껴지는 서준의 분위기는 괜찮았다. 오늘 잭 스미스 선수와 친구들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서준이야 워낙 어렸을 때부터 유명인이었던 터라 주변 사람들도 변함없이 익숙하게 대하고 있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모르는 일이었다.

근래 배우팀의 배우 중 하나가 제법 유명해지자 지인에게서 상처받을 일이 있었다는 보고도 들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주의해야 하는 일임은 분명했다. 연예인과 가장 가까운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태우 씨는 괜찮지.’

서준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었다.

마침 보고 있던 서류도 안다호 이사에게 이렇게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나 싶은 최태우가 보낸 것이었다.

서준에 대한 것과 [이레귤러스]에 대한 것, 그리고 킹즈에이전시로 전해진 작품 캐스팅에 대한 것들이었다. 안다호에게 배웠던 대로 자세하고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1팀에서도 보긴 하지만, 안다호 또한 이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서준에 대한 것이라면 빠짐없이 살펴보고 있었다.

-그럼 한국에서 봐요, 다호 형.

“그래.”

내일은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감독과 만날 거라며 신나게 이야기하던 서준과의 통화가 끝나고, 안다호 이사는 다시 보고서에 집중했다.

잠시 후.

보고서에서 눈을 뗀 안다호 이사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다행히 특이사항은 없었다.

제안이 온 작품들에 대한 것은 1팀과 회의를 해야겠지만.

“차기작은 한국 작품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독립영화 [화] 이후.

군대에 다녀온 서준은 [오버 더 레인보우2], [쉐도우앤나이트], [뉴 이클립스], 그리고 올해 촬영했고 개봉할 [이레귤러스]까지.

미국 작품들만 찍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중간에 한예대 축제도 있었고 한국 예능에 출연하긴 했지만, 그리고 충분히 그럴 만한 영화들이긴 했지만, 슬슬 한국 작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뭐, 선택하는 건 서준이지만.”

후보를 올리는 건 1팀과 안다호의 일.

아무래도 좋은 한국 작품을 찾기 위해서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았다.

“서준이가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니면 또 직접 대본을 쓸 수도 있었다.

작게 웃은 안다호 이사가 다음 서류를 들어 올렸다.

팔랑.

다음으로 볼 서류는 서준이 출연할 예능 프로의 후보에 관한 것이었다.

1팀에서 모아온 정보들이 종이에 가득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과 함께, 제작진에 대한 것들과 방송 내용,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거나 출연할지도 모르는 연예인들에 대해 제법 자세히 적혀 있었다.

거기엔 당연하게도 천만 관객을 달성한 [운명]의 출연자인 이지석과 박시영의 이름도 있었다.

“서준이랑 같이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서준이 예능 프로에서 어색해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는 게 편하고 좋을 테니까 말이다.

“음.”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제작진.

프로그램을 만들고 편집할 제작진은 아주 중요했다.

서준이 출연한다고 하면 분명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내용을 담고 싶어 할 텐데, 어쩌면 시청률만 노리고 과한 연출이나 행동을 요구할지도 몰랐다.

‘분명 욕을 먹겠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그렇다.

탑스타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두고두고 함께하자는 마인드의 PD도 있겠지만, 한 방만 노리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런 PD라면 어떤 무모한 수를 쓸지 몰랐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코코아엔터의 일이었다.

안다호 이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후보 방송들을 살펴보았다.

책상 위.

서준이 선물해 준 겹작약꽃 무늬의 나침반이 빙그르르 돌았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방향을 가리킵니다.]

* * *

[배우 이서준 귀국!]

[이레귤러스 크랭크업! 개봉은 언제?]

[배우 이서준 촬영 끝! 한국으로!]

-드디어 크랭크업! 편집 하루 만에 끝나진 않겠지?

=22 돈 모아뒀으니까 개봉하라고요.

=33 시리즈 전부 정주행했으니까 이레귤러스만 개봉하면 됨!

-이제 또 개봉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작년처럼 개봉 전까지 이것저것 해줬으면 좋겠음.

=작년 여름에 재밌었지. 산과 늑대에 팬미팅에 패션위크까지.

=하나 끝나면 하나 나와서 좋았음ㅠㅠ

=예능 자주 나와줬으면.

=22서준아. 많이 일하고 많이 벌어ㅠㅠㅠ

=ㅋㅋㅋㅋ

-패션위크 박민형 옷은 언제 나올까?

=22 나도 그것만 기다리고 있음.

=아레시스 인턴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좀 걸릴 듯.

=빨리 만들어야 사람들이 사지 않음? 다 잊어버리겠다.

=안 그래도 박민형 옷은 잘 팔릴 듯.

=뭐 옷 잘 만드니까. 가격이 문제지.

=그것도 그런데 이서준 지인이잖아. 이서준이 사든 선물 받든 이서준도 하나쯤은 입고 다닐 테니까 잘 팔릴걸.

=그럼 안 팔리는 게 이상하겠다ㅋㅋㅋ

=22 남자 옷이라도 새싹들은 살듯.

=33 남자 옷이라서 더 사는 거 아니야?ㅋㅋ

-……일단 내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 걱정해야 했구나.

=ㄹㅇ가격이 문제가 아니었음.

* * *

서준이 예능에 출연하기로 한 건 특별히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작년 이맘때 [산과 늑대], [LA팬미팅], [패션위크]에 출연했었으니, 올해도 하나쯤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팬미팅도 괜찮았는데 말이죠.”

“그건 내년에 하는 게 더 좋으니까.”

이사실.

폭신한 소파에 앉은 서준에게 오렌지주스를 건네주고 맞은 편에 앉은 안다호가 말했다.

“마침 데뷔 20주년이기도 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면 다른 나라에서도 할 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죠.”

지금까지는 한국과 미국에서만 했었는데, 내년부터는 많은 나라에서 팬미팅을 진행할 수 있을 터였다.

입맛에 딱 맞는, 상큼한 오렌지주스를 맛있게 마시던 서준이 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내년 제 생일에 팬미팅하는 건 어때요, 다호 형?”

“글쎄.”

안다호가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그러면 팬미팅에 오지 못한 분들이 아쉬워하실 것 같은데.”

그냥 팬미팅도 가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새싹들인데, 데뷔 20주년 생일 팬미팅이라니.

가지 못하면 두고두고 생각날 게 분명했다.

“라이브 방송을 하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시간을 잘 맞추면 시차가 있는 나라에서도 무리 없이 볼 수 있을 거고. 2번 하는 것도 좋겠지. 한국어로 한 번, 영어로 한 번.”

음.

안다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고 없이 서프라이즈로 해도 좋을 것 같죠?”

“그것도 괜찮지. 뭐, 서프라이즈라고 해도 새싹분들이라면 3분도 안 돼서 다 모일 것 같지만.”

그건 그렇다.

자고 있었어도 알림이 울리면 번쩍 눈을 뜨지 않을까.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보자, 서준아.”

“네. 다른 건 어때요? 사진 더 필요하지 않아요?”

새싹들이 20주년을 기다리는 만큼 서준과 코코아엔터에서도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계획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은혜 이민준 부부가 가지고 있는 서준의 미공개 사진이나 영상들도 탈탈 털고, [새싹부터]를 돌아다니며 좋은 아이디어도 살펴보고 있었다.

“괜찮아. 필요하면 말할게. 이번에 다 쓰면 30주년이나 40주년에 쓸 게 없을 것 같으니까. 아껴둬야지.”

“그건 너무 먼 거 아니에요?”

그 배우에 그 매니저라고.

안다호의 먼 미래계획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따라 웃은 안다호가 서준에게 1팀과 자신이 고른 예능 프로 후보 목록을 건넸다.

“일단 이렇게 골라봤어. 지상파도 있고 케이블도 있고 OTT도 있어. OTT에서 먼저 공개하는 방송도 있고.”

서준이 출연한다면야 어디서 방송하든 괜찮을 터였다.

팔랑.

서준이 종이를 넘겼다.

“이쪽은 워킹맨처럼 게스트로서 한두 편 정도로 출연하는 방송이고. 아마 촬영도 하루나 이틀로 끝날 거야. 이쪽은 숲 속의 병아리반처럼 새롭게 런칭하는 프로그램. 4화에서 8화쯤 방송하는데 메인 출연자로 나가는 거야. 촬영 시간도 더 길고.”

그래도 9월 개강 전에는 끝날 터였다.

“전부 저한테 들어온 거예요?”

촬영 기간이나 제작진의 성향, 출연진, 방송 내용 등을 고려해서 1팀과 안다호가 한 번 걸러냈을 후보 예능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한 서너 개 정도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계속 들어오는 게 많았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언젠가 한 번은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보내는 경우가 많을 터였다. 그냥 보낸 섭외제안서에 나온다는 이서준이 출연하겠다는 답장이 온다면 대박이니까.

“그것 말고도 아직 기획만 하고 있는 것도 있고, 제작 준비 중인 프로도 찾아놨어.”

기획만 했을 뿐인 만큼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것들이었지만, 여긴 코코아엔터였다. 인맥과 영향력으로 들을 수 있는 소문과 소식이 많았다.

뭐, 코코아엔터 연예인들이 출연하기를 바라며 일부러 흘리는 정보도 많겠지만 말이다.

그 모든 정보를 컨트롤하는 안다호 이사가 빙그레 웃었다.

“꽤 괜찮아 보이더라고.”

기획서만 나오고 제작이 엎어지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서준이 출연한다면 순식간에 없던 투자자가 생기고 황금 시간대로 편성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일단 가볍게 읽어본 서준이 말했다.

“그러게요. 다 재미있어 보여요.”

그게 문제였다.

다 재밌어 보여서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대본이라면 보자마자 결정했을 텐데 말이에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고 말았다.

“그럴 것 같았어.”

이게 만약 대본이었다면, 서준은 보자마자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에 꽂혀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을 거다. 이거 꼭 하고 싶어요! 하고.

“천천히 읽어보고 결정해도 돼, 서준아.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이거 해보고 싶다, 하고 생각하는 걸로 골라봐. 여기 있는 거 말고 다른 게 하고 싶으면 말해도 되고.”

예능과 작품은 다르지만 선택하는 기준은 똑같았다.

서준이 하고 싶은 것.

“예능에서는 평소에 못해본 것들을 해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네. 그럴게요.”

서준이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안다호의 진심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 * *

“박시영 배우의 천만관객 달성 축하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지만!”

음료수와 술이든 잔들이 쨍! 하고 부딪혔다.

서준과 친구들이 모인 곳은 서준이 미국에 있는 동안 독립한 양주희의 집이었다.

“여기 좋네.”

“그치?”

서준의 말에 양주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짜 독립하고 싶었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친구들 초대하기 힘들잖아!”

“이제는 너무 초대해서 힘들 것 같은데.”

전성민의 말에 김주경과 박시영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제는 다른 과 애들이랑 놀았다며?”

“일주일 전에는 같이 출연한 작품 배우들이랑 모이고.”

“그게 좋은 거지!”

정말 행복해 보이는 양주희에 서준과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