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51화 (95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51화

“음.”

빠르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따라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고스란히 마크 웨버 감독의 앞에 있는 모니터로 전해졌다.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레귤러스]를 준비하면서 마크 웨버 감독은 [쉐도우앤나이트]의 조나단 윌 감독이나 다른 시리즈의 감독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또 해당 영화를 작업했던 사람들을 이번에도 고용하기도 했다.

CG 같은 건 기존의 시리즈와 비슷한 게 좋으니까.

특히 나이트 진(진 나트라)의 그림자를 표현하는 CG 기술은 [쉐앤나]팀([쉐도우맨]도 작업했었다.)이 가장 좋았다.

정말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그림자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만들어진 장면들.

마린사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화려한 CG로 극찬을 받긴 하지만,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하게 만드는 건 가장 단순한 그 그림자 CG였다.

그저 새까만 그림자 CG인데도 불구하고, 빌런, ‘진 나트라의 그림자’와 히어로, ‘나이트 진’의 그림자는 완벽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신기한 일이었다.

‘역시 리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그런 겁니까?’

마크 웨버 감독의 질문에 CG 담당자가 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준이 정말 연기를 잘하긴 하죠. 준이 나오는 영상은 CG 작업을 하기 쉬우니까요.’

마치 정말로 CG로 뒤덮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서준 리는 완벽한 시선 처리와 움직임을 보여주고는 했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네.’

CG 담당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보이거든요. 그림자가.’

그건 마치 9개짜리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았다. 견본 그림을 따라 보이는 그대로 빈칸에 넣기만 하면 된다.

‘그 정도는 우리집 꼬맹이도 하죠.’

농담인 줄 알았는데, 라이언 윌 감독이나 조나단 윌 감독까지 ‘그림자’를 봤다는 이야기에 아주 약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아주 약간.

그러다 서준과 함께 촬영을 하면서, 서준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고 있으려니 아무것도 없는 곳에 그림자 ‘제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팬터마임처럼.

그래서 이걸 말하는 건가 싶었는데,

“진짜 보이네.”

헛것이 아닌가 싶지만.

‘아니, 헛것이겠지.’

하여튼, 보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 세트장 위에, 나이트 진과 팬텀, 매드해터가 싸우고 있는 저 위에 그들과 합을 맞추는 새까만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에 맞고 빌런의 부하 역을 맡은 스턴트맨들이 날아갔다.

물론 진짜 그림자에 맞고 날아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였다.

‘이대로 옮기기만 해도…….’

소리 없이 웃은 마크 웨버 감독의 눈이 반짝였다.

[이레귤러스]를 촬영하는 내내 생각했지만, 역시 이번 촬영은 더할 나위 없는 촬영이었다.

* * *

“레디, 액션!”

버서커와 화이트 블러드는 통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또 다른 웜홀 생성 장치가 있는 곳이었다.

“이상하군.”

탕!

빌런의 부하에게서 탈취한 총으로 괴생물체를 쏴버린 버서커가 입을 열었다.

“뭐가 말이죠?”

“괴물들이 전혀 통제가 되고 있지 않아.”

버서커가 통로를 보았다.

자신과 화이트 블러드가 발을 내딛지도 않은 통로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빌런의 부하들이 있었다.

방금 전 쓰러뜨린 괴생물체가 한 짓 같았다.

“보통이라면 따로 어디 가둬놨을 텐데,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이상하고.”

확실히.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괴생물체들을 이렇게 자유롭게 놓아두지는 않을 터였다.

“체셔 캣이 문을 연 거 아닐까요?”

괴생물체들이 갇혀 있던 공간의 문을 열어 날뛰게 한 게 아닐까.

-아냐. 난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

체셔 캣이 부정했다.

-원래부터 열려 있었던 것 같아. 여기서 왼쪽!

수상함을 느꼈지만 발을 멈출 수는 없었다.

버서커와 화이트 블러드는 체셔 캣의 지시대로 달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이레귤러스와 처음 도착했던 곳과 비슷한 동굴이었다. 맨 안쪽에 5m 정도 되는 웜홀 생성 장치가 있고. 위쪽에는 안쪽을 관찰할 장소가 있었다.

다른 점은,

크르르르-

독액을 뚝뚝 떨어뜨리는 괴생물체들이 가득했다는 거였다.

“아마 다음엔 이것들을 보낼 생각이었던 모양이네요.”

“그렇군.”

버서커는 짧은 대답만 뱉은 채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상체를 살짝 숙였는데도, 어쩐지 몸이 더 커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적들을 쓰러뜨리며 복도를 달려왔을 때부터 버서커의 눈깔이 살짝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화이트 블러드가 쓰게 웃으며 허공으로 몸을 피했다.

몇 번 겪어보진 않았지만 지금 버서커의 옆에 있으면 본인까지 휩씁릴 게 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 블러드는 버서커가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목적이었던 웜홀 생성 장치를 파괴하고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들을 수집하기로 했다. 간간이 버서커를 서포터하면서.

휙-!

화이트 블러드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시뻘건 불꽃들이 웜홀 생성 장치를 파괴하고, 버서커를 공격하려던 괴생물체를 맞추었다.

-여긴 독립된 구역이네. 건질 만한 게 많겠어.

“저쪽은 어때요, 체셔 캣?”

-이쪽이랑 비슷해.

빌런의 기지 내부 CCTV의 렌즈가 반짝였다. 체셔 캣이 보고 있는 것이었다.

-통로에 빌런 부하들이랑 괴물들이 쫙 깔렸었어. 그리고 지금 막 중앙실에 도착했고.

쿵!

하는 소리가 들려 화이트 블러드가 고개를 돌렸다.

들고 있던 총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맨손으로 괴물들을 던지고 후려치는 버서커가 보였다.

-뭐, 하던 일이나 계속할까?

화이트 블러드가 작게 웃으며 체셔 캣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이곳에서 웜홀 생성 장치를 컨트롤하는 컴퓨터가 있었다. 체셔 캣의 말대로라면 독립된 장소였다.

-이건 좀 빡센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식간에 열리는 파일들을 보니 보안을 뚫은 것 같았다.

모니터에 낄낄 웃는 체셔 캣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엔 뭐가 들어 있을까.

하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파일을 열던 체셔 캣이 앞발을 멈칫했다.

* * *

“쉬운데?”

괴생물체가 많았던 버서커 쪽과는 달리, 이쪽은 빌런의 부하들이 더 많았다. 게다가 셋이나 있어, 날아오는 총알만 잘 피하면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빌런 기지의 중앙실.

매드해터는 이미 컴퓨터에 달라붙어 보안을 뚫고 자료를 빼내고 분석하고 있었고, 나이트 진과 팬텀은 습격해 오는 적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거의 없었지만.

“뭐 도와줄 건 없어?”

굉장히 바빠 보이는 매드해터에게 나이트 진이 물었다.

뭐, 이런 건 잘 몰라서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혹시 이 글자 알아요, 나이트 진?”

그런 생각과 달리, 매드해터는 기다렸다는 듯 화면 하나를 띄웠다.

나이트 진은 대부분의 글자가 지워진, 고문서의 스캔본처럼 보이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팬텀도 옆으로 다가왔다.

“음. 난 처음 보는데.”

“나도. 이게 뭔데 그래?”

매드해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괴생물체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 자료인 것 같아요. 과학적 실험으로만 만든 실험체인 줄 알았는데, 마법이나 이능 같은 능력을 사용한 흔적이 있어요. 또 이걸로 뭔가를 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건 해석본이 없어요.”

“그게 아마도 빌런의 목적이겠지?”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법이라면 화이트 블러드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

팬텀의 말에 매드해터와 나이트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싹 다 가져가야겠어요.”

아는 거든 모르는 거든.

매드해터가 눈을 빛내며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런데…….”

나이트 진이 조금 꺼림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중요한 자료들을 이대로 놓아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

아니라고 하기엔.

팬텀 또한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도 너무 쉽게 들어왔고요.”

물론 괴생물체들이 강하긴 했지만, 각오했던 것보다는 쉬웠다.

“……보스로 보이는 놈도 없고.”

극적인 의견 일치였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것보다 놀라운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탄이 있어!!

체셔 캣의 외침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 * *

-자폭장치야. 살펴보니까 아마 우리가 침입했다는 걸 알자마자 작동시킨 것 같아.

“그렇게 빨리?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야?”

팬텀의 말대로라면,

-퍼스트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건가요?

“솔직히 한둘쯤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화이트 블러드의 말에 매드해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퍼스트라는 단체가 공개적으로 알려졌고 유명하기까지 한데, 적대하는 단체에서 스파이 한둘쯤 보내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퍼스트의 개입은 예상했을 거예요.”

퍼스트 요원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나이트 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괴생물체가 등장했을 때 전혀 피해가 없었잖아요. 뉴스에도 안 떴고요.”

-오히려 뉴스에 뜨지 않아서 퍼스트가 개입했다고 생각했겠구나!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체셔 캣과 화이트 블러드가 동의했다.

“하여튼 지금 여긴, 빈껍데기나 다름없다는 거네.”

쉬운 이유가 있었다.

아마 벌써 쓸모 있는 건 다 들고 튀었겠지.

“자료들은 남아 있지만요.”

-그것도 아마 자폭으로 다 없앨 생각이었겠지.

체셔 캣의 말대로일 터였다.

이레귤러스가 그들의 계획처럼 괴생물체들과 컴퓨터 보안을 뚫지 못했다면 자폭장치가 가동됐는지도 모르고 죽었겠지.

“폭탄이 터지는 걸 막을 순 없어, 체셔 캣?”

-마법이나 주술 같은 걸로 연결되어 있어서 난 못 막아.

“그럼 저도 불가능해요.”

“폭탄이 터져도 살 수 있냐?”

팬텀의 물음에 매드해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기 완전 지하라서 그대로 묻힐 거예요.”

“그럼 웜홀밖에 없겠네요.”

나이트 진의 말에 화이트 블러드가 침음성을 흘렸다.

-이쪽 건…… 이미 파괴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도착했던 장소로 돌아가야 했다.

-남,은, 시간은?

괴생물체들과의 전투 후, 지금까지 정신줄을 다시 붙잡기 위해 말없이 노력하고 있던 버서커가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8분 51초야, 아니, 50초.

-지금, 당장, 움직여.

-49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팬텀이 대답했고, 나이트 진이 매드해터를 바라보았다.

“매드해터, 자료는?”

매드해터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으로 외쳤다.

“통째로 다운로드하고 있어요! 가면서 하면 돼요!”

-웜홀 장치 작동은 어떻게 하면 되죠?

“그건 체셔 캣이 할 거예요!”

-맡겨둬!

나이트 진과 매드해터, 팬텀이 중앙실을 나왔다.

그리고 괴생물체들과 마주쳤다.

콰앙!

능숙하게 매드해터가 빔을 쏘고, 팬텀이 후려쳤다.

촤아악!

괴생물체를 베어낸 나이트 진이 생각했다.

그냥 달려가기만 한다면 금세 도착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계속 덤벼든다면 시간이 촉박할 터였다.

“난 버서커 쪽에 가 볼게.”

“뭐?”

“네?”

팬텀과 매드해터가 나이트 진을 돌아보았다.

나이트 진은 반듯한 얼굴로 설명했다.

“두 사람은 더 먼 곳에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거야. 또 괴생물체를 만났을 때 버서커가 이성을 잃어버리면 화이트 블러드 혼자 케어하긴 쉽지 않을 거고.”

“그건 그렇지만…….”

매드해터도 팬텀도 그 말에 동의하긴 했다.

“어떻게 가려고요?”

“그림자 이동을 쓰면 싸우지 않고 이동할 수 있어. 길은 체셔 캣한테 물어보면 돼.”

-나 바쁜데!

“부탁할게.”

-어쩔 수 없지.

확실히 나이트 진이 버서커 쪽에 합류한다면 시간 안에 도착할 확률이 높았다.

대신 혼자 이동해야 하는 나이트 진의 부담이 컸다.

-8분!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그럼 가 볼게. 매드해터를 부탁할게요, 팬텀.”

그렇게 말한 나이트 진을 검은 그림자가 뒤덮었다. 그리고 바닥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납작해진 그림자가 통로를 검은 번개처럼 가로질렀다.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린 팬텀이 매드해터를 바라보며 고갯짓을 했다.

“가자.”

“네!”

팬텀과 매드해터가 통로를 내달렸다.

이레귤러스 멤버들이 도착하자마자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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