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50화
“레디, 액션!”
삐--
하고 경보음이 울렸다.
곧이어 퍼스트 본부 모니터에 나타나는 맨해튼의 지도.
“여덟 군데입니다!”
웜홀 생성 에너지가 여덟 곳에서 감지되었다.
네 곳에서 곧바로 여덟 곳으로 늘어난 웜홀에 테일러 국장이 잠깐 침음성을 흘리고는 얼른 입을 열었다.
“적합 장소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여덟 군데 중에서 웜홀을 고정시킬 장소를 골라야 했다.
어딘가의 골목이나 도로 한가운데는 안 된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매드해터와 퍼스트 연구원들이 연구할 수 있을 만한 넓은 장소. 그리고 비젯(퍼스트의 제트기)이 빠르게 도착해 착륙할 수 있는 장소.
그렇게 한 곳.
센트럴 파크 옆, 한 빌딩 옥상이 선택되었다.
언제든 비젯에 오를 수 있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매드해터와 연구원들이 조사 장비 등을 가지고 빠르게 해당 빌딩 옥상으로 이동했다. 테일러 국장도 있었다.
“저거구나.”
넓은 빌딩 옥상의 허공.
매드해터는 비젯의 모니터를 통해, 웜홀 생성 에너지가 마치 소용돌이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물론 에너지일 뿐이라서 진짜 소용돌이처럼 바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비젯이 착륙했다.
연구원들이 빠르게 내려 웜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매드해터 또한 그 옆에 섰다. 퍼스트에서 지내면서 만든 ‘해트8’에 탑승한 상태로.
-가장 성능이 좋은 건 해트니까!
체셔 캣의 말대로, 퍼스트 본부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는 매드해터가 온 신경을 기울여 만든 ‘해트’였다.
매드해터는 해터에 오른 채로 현장에 있는 연구원들 함께 생성되고 있는 웜홀에 대해 조사했다. 물론 퍼스트 본부에 있는 연구원들 또한 여기서 측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연구하고 있었다.
그사이, 허공에 작고 검은 점이 하나 생겨났다.
그리고 천천히 크기를 키워나갔다.
“체셔.”
-알았어!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매드해터가 그걸 보고 체셔 캣을 불렀다. 퍼스트 비젯에서 여섯 대의 공격형 드론이 체셔 캣의 조종 아래 나타났다.
이제 곧 빌런들이 만들어낸 실험체가 나타날 터였다.
‘하나? 아니면 둘?’
해트8의 두 손을 쥐었다 펴며 매드해터는 생각했다.
“떼거지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 하면 꼭 그렇게 되더라.
그건 그래.
매드해터가 작게 웃고는 성장이 멈춘 웜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웜홀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웜홀은 이제 곧 작동할 터였다.
연구원들과 테일러 국장 쪽으로 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싸워야 했다.
-버티기만 해도 돼, 매드해터.
-금방 가겠습니다.
-훈련받은 대로만 하면 된다.
-힘들면 도망치든가.
“뭐래.”
마지막으로 들려온 팬텀의 말에 매드해터가 코웃음을 쳤다.
크르르-
새까만 웜홀에서 사자 크기만 한 네발 달린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정확히 자신의 앞에 있는 매드해터에게 이를 드러냈다.
“나도 이레귤러스거든!”
쾅!
달려드는 실험체를 피하고 그대로 가격한 해트8의 주먹에서 철판은 그냥 뚫어버릴 듯한 빔이 번쩍였다.
* * *
-뭐래. 나도 이레귤러스거든!
그리고 들려오는 쾅! 소리에, 학교 강의 중 나와 가장 가까운 현장으로 출동한 윌리엄이 웃고 말았다.
휙- 휙-
그에 그림자 제이가 눈앞에서 움직였다.
“알았어, 제이. 집중하라는 거지?”
바닥에서부터 그림자가 올라와, 평상복을 입고 있던 윌리엄을 감쌌다. 운동화부터 바지, 상의, 재킷까지. 새까맣게 물들어 기사의 정복 같은, 나이트 진의 복장이 되었다.
곧이어.
매드해터가 있는 곳보다 한 박자 늦게 이곳의 웜홀에서도 괴생물체들이 튀어나왔다.
촤아악-!
제이가 그림자로 방패를 만들고, 나이트 진은 손에 든 그림자 검으로 괴생물체를 베어냈다.
총알도 제대로 뚫릴 것 같지 않은 가죽인데 그림자 검은 잘도 베어냈다.
그러는 동안 나이트 진은 생각했다.
괴생물체를 뱉어내고 사라진 웜홀.
분명 웜홀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까만 게 꼭…….
“나이트 진.”
퍼스트 요원의 목소리에 나이트 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괴생물체들은 모두 쓰러뜨린 상태였다.
“뒷처리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다음은 이곳으로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이레귤러스가 가지 못한 현장은 퍼스트 요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이트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림자 이동을 사용하기 위해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새까만 그림자.
“아, 이건가?”
아하.
하고 나이트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그림자도 웜홀처럼 검은색이라서 비슷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어쩐지 속이 시원해졌다.
“가자. 제이.”
그림자가 마치 꽃봉오리처럼 나이트 진을 감쌌고, 이내 바닥의 그림자 안으로 녹아내렸다.
* * *
나타난 괴생물체들을 모두 처리한 이레귤러스는 매드해터가 있는 빌딩 옥상으로 모였다.
매드해터와 두 마리의 괴생물체들이 날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옥상에는 다른 곳에서는 전부 사라진 검은색 웜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웜홀 반대편 위치 확인했어요. 지구 내에요.”
심증이야 확실했지만, 직접 이동하는 것이니만큼 확실히 해야 했다.
“이게 웜홀이라고?”
사진으로 봤지만 신기했다.
팬텀은 흥미로운 얼굴로 납작한 평면인 웜홀의 앞과 뒤를 살펴보았다. 뒤도 앞과 다를 것 없이 검은색 소용돌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거 뒤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냐?”
“해볼래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해트8의 헬멧을 해제한 상태로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매드해터가 씩 웃으며 물었다. 팬텀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해도 될 것 같아.”
“죽진 않을 거예요.”
“안 한다니까!”
펄쩍 뛰는 팬텀에 모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연구원이 말했다.
“웜홀 안정화 끝났습니다.”
“반대편, 생명 반응 없습니다.”
살짝 풀어졌던 분위기가 다시금 굳어졌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었다.
이레귤러스가 웜홀 앞에 섰다.
“무사 귀환을 빕니다, 이레귤러스.”
염려와 진심이 담긴 테일러 국장의 말에 이레귤러스는 각자 웃어 보이며, 새까만 웜홀 안으로 발을 디뎠다.
* * *
웜홀을 통과하는 느낌은 차가운 물을 통과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분명 신발을 신고 있는데도, 상의에 재킷까지 걸치고 있는데도 발끝부터 심장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나이트 진은, 이런 느낌을 언젠가 느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이렇게 너무나도 차갑고 춥고…… 외로웠는데.
‘……외로웠다고?’
생각을 더 이어나가기도 전에 나이트 진은 차가운 웜홀을 통과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주 짧게 든 생각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잊혀져 버렸다. 아니, 생각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새로운 공간에 발을 디딘 이레귤러스는 곧바로 경계태세를 갖췄다.
생명 반응이 없었다고는 해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드넓은 공간에, 새까만 웜홀과 이레귤러스만이 있었다.
-매드해터. 들립니까?
“네. 잘 들려요.”
테일러 국장과의 통신도 잘 되었다.
매드해터와 테일러 국장이 이곳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나누는 동안, 이레귤러스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공간은 마치 기존에 있던 동굴을 이용해서 만든 장소 같았다. 돌과 흙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질퍽질퍽한 액체가 바닥 여기저기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돌을 휘갈긴 발톱 자국도 가득했다.
“무슨 액체가 있는데?”
“괴생물체들의 피인 것 같네요. 아마 저기서 살펴봤겠죠.”
동굴같은 이곳의 위쪽에는 투명한 유리창이 있었는데, 아마도 적들이 이곳을 살펴보기 위한 장소인 것 같았다.
“아마 이곳에 괴생물체들을 몰아넣은 다음, 웜홀을 발생시켜 웜홀 안으로 밀어 넣은 것 같군.”
처음엔 네 마리, 두 번째엔 스물 일곱 마리.
“어쩌면 다음 차례에는 여기가 괴생물체들로 가득 찼을지도 모르겠네요.”
나이트 진의 말대로였다.
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괴생물체들이 맨해튼에 쏟아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어서 출발하자고.”
팬텀이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금속으로 된 출입구를 열려고 할 때,
“……어?”
하는 매드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트 진은 문득 과제를 할 때 저런 소리를 내면 반사적으로 저장 버튼을 누르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큰일이 생겼다는 거였다.
“왜 그래?”
“……통신이 끊겼어요.”
퍼스트와의 통신이 끊겼다.
“웜홀은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새까만 웜홀은 사라져있었다.
-괜찮아! 끊기긴 했지만, 좌표도 알고 있고 어떻게 쓰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화이트 블러드의 물음에 체셔 캣이 통신기로 답했다.
또 지구 안이니 기지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퍼스트가 찾아내는 건 쉬울 터였다.
“퍼스트랑 통신을 못 해도 괜찮은 거야, 매드해터?”
연구원들과의 협력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고 나이트 진이 물었다.
“괜찮아요.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제가 왔는걸요.”
그게 아니었다면, 두뇌파인 매드해터는 퍼스트에서 연락만 해도 충분했다.
“체셔 캣도 있으니까,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빌런이 무슨 계획인지 탈탈 털 수 있을 거예요.”
믿음직한 매드해터의 말에 나이트 진과 화이트 블러드, 버서커가 작게 웃고 말았다.
그때, 지이잉- 하고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경계태세를 취하는 이레귤러스.
“뭐해? 안 가?”
언제 반대편으로 넘어가 문을 열었는지 모를 팬텀이 거기에 서 있었다.
“어떻게 연 거예요, 팬텀?”
“보통 이런 기지는 보안장치가 되어 있을 텐데.”
매드해터와 버서커의 의문에 팬텀이 제 발 쪽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마침 문을 열려고 하더라고.”
거기엔 아마도 빌런의 부하일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 * *
“여긴 아마도 지하에 만들어진 곳인 것 같아요.”
빌런이 가지고 있던 통신 장치를 통해 체셔 캣이 이곳의 내부에 잠입했다. 보안이 꽤 철저하긴 했지만, 체셔 캣 앞에서는 잘 구워진 생선이나 다름없었다.
“크기는 생각보다 크고…….”
매드해터는 체셔 캣이 찾아내 정리한 자료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며 브리핑했다.
“으음. 웜홀 생성 장치는 다른 곳에 또 있네요.”
이레귤러스의 제1 목적은 빌런 처치와 웜홀 생성 장치 및 웜홀에 대한 정보 수거. 만약 수거할 수 없다면 모조리 파괴해야 했다.
“그럼 둘로 나눠서 움직이지.”
나이트 진과 팬텀, 매드해터가 중앙컴퓨터 쪽으로, 버서커와 화이트 블러드가 웜홀 생성 장치 쪽으로 가기로 했다. 체셔 캣이 둘을 서포트할 예정이었다.
“저렇게 둘이 붙여놔도 될까요?”
“여기서까지 싸우진 않겠…….”
삐이이---
하고 경고음이 기지 내부를 울렸다.
“……아니겠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점검하는 버서커에, 하하 웃은 화이트 블러드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부하들과 괴생물체들을 향해 불꽃을 날렸다.
다행히도 나이트 진과 팬텀 탓은 아니었다.
아까 팬텀의 공격으로 쓰러졌던 두 명의 행방에 의문을 가진 이들이 침입자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여기서 오른쪽!”
매드해터의 외침에 나이트 진과 팬텀이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앙으로 갈수록 경계가 삼엄해졌다. 또 보안 장치로 통과해야 하는 문도 많았지만, 체셔 캣이 타이밍 좋게 열어주고 있었다.
“매드해터 얼마나 남았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오. 생각보다 쉬운데?”
팬텀이 그 말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나이트 진이 재빠르게 그림자로 방패를 만들어 막아냈고, 그 그림자방패 뒤쪽에서 투명화한 팬텀이 튀어 나가 부하들을 후려쳤다. 매드해터 또한 해트8의 열 감지 센서를 이용해 그림자방패 너머에 있는 적들에게로 빔을 쏘아댔다.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