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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49화 (94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49화

“나이트 진이 간 곳뿐만 아니라, 다른 세 분이 간 곳에서도 웜홀이 발견되었죠.”

테일러 국장의 말에 이레귤러스와 함께 움직인 드론들이 카메라로 찍은 현장의 사진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벽과 허공에 보이는 새까만 그것은, 나이트 진이 봤던 웜홀과 완벽하게 같았다.

“웜홀이 사라지고 난 후의 잔류 에너지도 조사해 봤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에너지와 완전히 같았어요.”

매드해터가 말에 모니터로 에너지 파장을 비교하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네 개의 파동이 중앙의 파동과 합쳐져 완전한 하나의 파동이 되었다. 단 하나도 벗어나는 곳이 없었다.

“그러니까 새롭게 알게 된 에너지는 웜홀이 나타나기 전 웜홀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였고,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에너지는 웜홀이 사라질 때 나타나는 에너지였다는 거죠.”

이레귤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너지의 정체까지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이제 에너지 감지에 대한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웜홀이라면 퍼스트 내부에도 정보가 많지 않습니까?”

버서커의 물음에 테일러 국장이 입을 열었다.

“많죠. 그동안 퍼스트와 협력했거나, 대적했던 외계인들이 사용한 것들에 대한 모든 정보들이 저희의 데이터베이스에 있습니다.”

거기엔 나트라의 이상 웜홀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들이 새롭게 만든 웜홀일 확률이 크다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외계 종족이 적일 확률은 없나요?”

화이트 블러드가 물었다.

“웜홀이 우주에서 만들어서 사용하는 통로라면, 누군가 새롭게 만들었다는 것보다는 퍼스트도 모르던 외계 종족이 침략했다는 게 더 가능성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것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테일러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는 모두 퍼스트가 감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감지한 화재사건부터 지금까지 그런 에너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아주 약한 에너지라면 모르겠지만 말이죠.”

매드해터가 덧붙였다.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면 감지 장치도 더 빨리 만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겠군요.”

화이트 블러드가 수긍하자 테일러 국장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저희는 이 웜홀들이 지구 내에서 새롭게 만든 웜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들이 직접 연구해 만든 웜홀이라면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테니, 화재사건을 일으켜 아예 처음부터 좌표에 대한 자료를 모아나갔던 거죠.”

추측이지만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현장에 아무런 흔적이 없었던 것도 웜홀이라면 이해가 돼요. 다른 쪽 웜홀에서 화재를 일으키는 불씨만 웜홀 반대편으로 던져 넣으면 되니까요.”

“CCTV에 웜홀이 안 보였던 이유는?”

버서커의 물음에 매드해터가 답했다.

“웜홀의 크기가 CCTV에 찍혀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허공에 나타난 조그마한 웜홀에서 불씨만 툭- 튀어나온다면, 그 누구도 없었던 곳에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었다. 완벽범죄였다.

“좌표가 꼭 필요한가? 없으면 어떻게 돼?”

팬텀의 물음에,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나이트 진에게로 향할 뻔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계속 의식하고 있었던 만큼 진짜 고개를 돌려 나이트 진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음. 좌표는 지도나 목적지라고 할 수 있어요.”

낄낄거리는 체셔 캣을 잠시 노려본 매드해터가 말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라에서 지도도 없고 목적지도 알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겠네.”

“네. 어쩌면 지구를 벗어날지도 모르죠.”

팬텀이 턱을 긁적였다.

지구 밖이라. 외계인들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나이트 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것도 위험한 거 아닌가요?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잖아요. 누군가 휩쓸리기라도 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나이트 진, 윌리엄 리라서 더욱 무겁게 들려왔다.

테일러 국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에너지 감지 프로그램을 만든 후로 계속 감시하고 있으니까요. 웜홀이 생겨나도 퍼스트가 가장 먼저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웜홀의 반대편은 지구일 확률이 높아요. 실험을 위해서는 가장 가까이서 관찰해야 하니까요. 분명 빌런의 기지겠죠.”

매드해터의 말에 팬텀은 독액을 뚝뚝 떨어뜨리던 괴생물체를 떠올렸다. 지구에 그런 생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그럼 아까 그것들도 전부 빌런들이 만들어냈다는 거야?”

“퍼스트의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생물들이라 지금 조사 중이지만, 아마도 그럴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테일러 국장의 말에 매드해터가 말했다.

“저번에 에너지가 감지됐는데도 아무것도 없었던 적이 있었죠?”

“아, 버디를 발견했을 때?”

나이트 진이 길을 잃고 헤매던 골든 리트리버, 버디를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맞아요. 그때 다시 살펴보니까 아무것도 없었던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지?”

버서커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뭔가 놓쳤다는 건가? 하지만 그들은 당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당시 현장 근처에서 생명 반응이 보였어요. 쥐나 새, 벌레, 개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화이트 블러드가 날아가던 새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원이라서 미처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버서커나 팬텀, 나이트 진도 그랬다.

“나이트 진의 말대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던 거죠.”

“그럼 버디가…… 아까 그 괴생물체처럼 변한다는 거야?”

나이트 진의 표정이 굳었다.

이레귤러스의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웜홀에서 빠져나간 생물들이 지금 맨해튼에 있고,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뇨. 그건 아니고요.”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매드해터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빌런들이 생명체가 웜홀을 통과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야지 지금처럼 괴생물체를 살아 있는 상태로 이동시킬 수 있으니까요.”

아.

그에 이레귤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군. 좌표도 확인했으니 공격할 생각이었겠지.”

“본인들이 만든 웜홀이라 안전성을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겠군요.”

“까딱했다간 시체만 이동할 수도 있었겠네.”

팬텀의 말에 나이트 진의 안색이 조금 흐려졌다.

그 말대로, 까딱했다간 실험에 이용돼버린 버디가 죽은 채 발견됐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디는 괜찮은 거야, 매드해터?”

“네. 완전, 진짜, 멀쩡한 강아지에요.”

밝은 얼굴로 말하는 매드해터에, 나이트 진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를 살피던 테일러 국장이 입을 열었다.

“웜홀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는 통로입니다.”

그에 이레귤러스의 다섯 멤버가 모두 테일러 국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맨해튼의 하늘에서, 맨해튼의 지하에서 생겨날 수 있죠.”

테일러 국장은 말하면서도 정말 이게 맞는 방법인지 몇 번이고 고민했다.

나이트 진을 영입한 건 자신이지만, 첫 임무부터 이런 식의, 기억이 되살아날 만한 일과 관련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웜홀의 숫자도 지금은 네 개지만,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신중한 얼굴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이트 진을, 그리고 나이트 진을 옳은 길로 인도할 쉐도우맨을, 나이트 진과 함께해 나갈 이레귤러스 동료들을 믿어보자.

‘……문제도 있긴 하지만.’

팬텀을 짧게 쳐다본 테일러 국장이 말을 이었다.

“버디 덕분에 웜홀을 통과해도 멀쩡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적들도…… 우리도 말이죠.”

그렇단 말은…….

이레귤러스는 테일러 국장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

“저들이 맨해튼을 공격하기 전에, 웜홀을 통과해 빌런의 기지를 공격할 계획입니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도 하지 않나.

언제 어디서 나타나 일반인들을 공격할지 모르는데, 가만히 웜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웜홀’을 통과할 사람 중에, 경험자인 나이트 진이 있다는 게, 웜홀을 통과하는 느낌이나 충격으로 잊혀진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게, 굉장히 마음에 걸렸지만 말이다.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갈 방법은 있는 거야? 그냥 웜홀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건가?”

팬텀의 말에 매드해터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일단 다음에 웜홀이 나타나면 그걸 고정시킬 거예요.”

“고정이요?”

화이트 블러드가 되물었다.

“네. 다른 에너지를 가진 웜홀이지만, 웜홀은 웜홀이니까요. 아까 잠깐 퍼스트의 자료들을 살펴봤는데, 외계의 웜홀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그걸로 연구할 생각이구나.”

나이트 진의 말에 매드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존에 연구하던 퍼스트 연구원분들도 계시니까, 생각보다 빨리 적들의 웜홀도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웜홀을 고정시켜 놓고 문처럼 사용하겠다는 거로군.”

“맞아요. 좌표를 옮기거나 웜홀의 생성을 막는 건 힘들겠지만, 웜홀 반대편과 연결된 상태로 고정하는 건 금방 될 거예요.”

시간이 중요했다.

지금은 겨우 네 마리의 괴생물체가 나타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많은 괴생물체가, 빌런들이 맨해튼에 나타날지 몰랐다.

“하루라도 빨리 막아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레귤러스.”

테일러 국장의 말에 이레귤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제부터 액션 씬 찍겠네.”

촬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뉴욕에서도 짧게 찍긴 했지만요.”

대부분의 촬영이 야외촬영이었고 크로마키를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많이 찍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레귤러스]에서 보고 싶어 하는, 히어로들이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함께 싸우는 장면들은 모두 LA의 스튜디오에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촬영할 예정이었다.

“그런 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게 편하긴 하지.”

CG작업을 하기 쉽게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까지 크로마키가 쫙- 깔려 있는 곳에서.

“물론 배우들은 연기하기엔 힘들겠지만.”

서준의 매니저로서 영화 촬영을 보고 있다 보면 다른 것도 다 대단하고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특히 크로마키 촬영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다들 잘하실 거예요.”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첫 영화 촬영 때부터 크로마키(이상 웜홀)와 함께 연기했던 서준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배우들도 히어로 영화를 찍으면서 크로마키 연기에 익숙할 터였다.

다른 영화에도 크로마키를 많이 쓰고 있기도 하고.

서준 대신 위험한 장면을 맡아줄 필립 윤이나 루카스 터너 대신 격한 액션 장면들을 소화할 스턴트맨도 잘할 터였다.

‘……그래도 조금 준비해 갈까?’

메소드 부작용 사건 때문에 연습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루카스 터너 대신, 갑작스럽게 촬영 분량이 늘어난 스턴트맨에게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필립이야 잘할 테고.’

서준이 대부분의 액션을 직접하는 바람에, 촬영하는 날이 적으면서도 열심히 준비하던 필립 윤을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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