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47화 (94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47화

“오늘 올까요?”

퍼스트 본부 내 훈련장.

기초훈련을 하러 나온 앨리스 잭슨이 입구를 보며 말했다. 훈련장에는 버서커와 루크 메이너드, 팬텀도 있었다.

학교에 간 윌리엄 리만 없었다.

“말이 너무 심했어요, 팬텀.”

매드해터의 말에 팬텀은 코웃음만 치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루크는 왜 안 말리셨어요?”

원망이 살짝 스며든 목소리에 화이트 블러드, 루크 메이너드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팬텀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거든요.”

그에 매드해터와 버서커는 물론이고, 자기 의견에 동의할 줄 몰랐던 팬텀이 루크 메이너드를 바라보았다.

“물론 방법은 굉장히 잘못됐지만, 저희처럼 퍼스트와 함께할 이유가 없다면 윌리엄은 평범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럼 윌리엄과 같은 팀이 되는 걸 반대하는 건가?”

버서커의 말에 루크 메이너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윌리엄이 계속하겠다고 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겁니다.”

수백 년을 살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뱀파이어라서 평범한 삶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니까요.”

강제적으로 뱀파이어가 되어서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 루크 메이너드였다.

“중립이라는 거네요.”

“앨리스는요?”

앨리스 잭슨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전 계속 같은 팀이었으면 좋겠어요. 팬텀이 리더인 것도 아니잖아요.”

‘이레귤러스엔 네가 필요 없다는 거다.’라고 말했던 팬텀의 말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전 윌리엄 완전 필요하거든요! 제이도 귀엽고요!”

그리고 ‘그 존재’를 생각해서라도 퍼스트에 딱 붙어 있는 게 윌리엄에게도 지구인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응응,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앨리스 잭슨을 버서커가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앨리스 잭슨이 ‘오, 오늘 할 훈련이……!’ 하고 쪼르르 도망갔다.

‘봤군.’

하지만 버서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버서커는요?”

“난 지시대로 따를 뿐이다.”

“하긴. 이레귤러스는 퍼스트가 만든 팀이죠.”

그렇게 말한 루크 메이너드는 물을 마시고 있는 팬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더 나쁘게 굴었을 거다. 퍼스트에서 만든 팀이니 어지간한 이유로는 해체되지 않을 테니까.

‘등을 맡기며 함께 싸워야 하는 팀원끼리의 불화가 아마도 적당했겠지.’

그래서 윌리엄이 자신을 원망하고 싫어해도 괜찮았을 터였다.

팬텀은 무조건 윌리엄을 내보낼 생각이니까 말이다.

“근데…… 그것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오랫동안 성당의 신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루크 메이너드가 팬텀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팬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앨리스 잭슨의 밝은 목소리도 들렸다.

“윌리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윌리엄이 온 것이었다.

“어서 와요!”

앨리스 잭슨이 열렬히 윌리엄을 반겼다. 그에 윌리엄이 빙그레 웃었다.

“잘 왔어요. 윌리엄.”

루크 메이너드도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기쁘게 윌리엄을 맞이했다. 버서커도 말없이 고개를 까딱할 뿐이었지만 반기는 기색이었다.

“안 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팬텀만이 삐딱하게 말했다.

그에 앨리스 잭슨이 사납게 팬텀을 노려보았다.

“훈련하는데 와야죠.”

하고 빙그레 웃는 윌리엄이 너무 착해서 자신이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은 왜 그렇게 착해요?”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윌리엄에게 앨리스 잭슨이 투덜댔다.

“응?”

“저 같으면 화냈을 텐데! 그리고 휴대폰이랑 컴퓨터를 싹 다 털어서, 피의 복수를!”

하고 눈을 빛내며 주먹을 꽉 쥐는 앨리스 잭슨을 보며 윌리엄이 쓰게 웃었다.

“그럼 안 돼, 앨리스.”

“그럼요. 저도 진짜로 할 생각은 없어요.”

앨리스 잭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요. 내비게이션의 설정을 살짝 바꿔놓는다거나 휴대폰 전화가 다른 곳으로 연결되게 한다든가 팬텀이 주문한 음식을 싫어하는 맛으로 바꾼다거나…… 그만큼 짜증 나는 건 없을걸요.”

키득키득 웃는 앨리스 잭슨에 윌리엄도 웃음을 터뜨렸다.

* * *

오늘 훈련 일정에는 2 대 1 대련이 있었다. 당연히 팬텀&나이트 진 VS 버서커였다.

잠시 생각하던 버서커가 윌리엄에게 물었다.

“괜찮겠나, 윌리엄?”

“괜찮아요. 일정대로 해주세요.”

웃으며 말하는 윌리엄에 버서커는 고개를 끄덕였고, 팬텀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안 올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말이 심했나, 하고 잠시 생각하긴 했는데.

이 정도로 개같이 굴었는데 온 걸 보면 아무래도 더 개같이 굴어야 할 것 같았다.

버서커를 마주 보며 팬텀이 왼쪽에, 윌리엄이 오른쪽에 섰다.

잠시 긴장감이 흐르고.

따로 신호도 없이 대련이 시작되었다.

대련은 평소와 같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윌리엄은 버서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옆에서 공격해 오는 팬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옆으로 살짝 피해, 공격 궤도에서 벗어나는 윌리엄을 보며 팬텀이 눈썹을 까딱였다.

그동안의 훈련 때문에 이것도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앨리스 잭슨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또 팬텀이 윌리엄에게 뭔가를 하면 정말 피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일반인 눈에는 뭐가 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어?!”

그래서 팬텀이 윌리엄의 오른쪽 볼을 향해 주먹을 뻗는 건 미처 보지 못했지만.

윌리엄이 그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그림자로 막아내지도 않고, 온전히 손으로 붙잡는 건 볼 수 있었다.

윌리엄이…… 잡아?

그에 버서커와 루크 메이너드는 물론이고, 손목이 잡힌 팬텀까지도 놀랐다.

‘항상 막거나 피해버리는 게 다였던 녀석이었는데.’

그런데 생각을 더 이어나가기도 전에, 팬텀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악!”

팔과 어깨가 아파왔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크윽-”

배와 가슴에서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팬텀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 이거 많이 봤는데.”

앨리스 잭슨이 중얼거렸다.

경찰관이 범인을 잡을 때처럼, 윌리엄이 잡고 있던 팬텀의 오른팔을 등 뒤로 꺾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뜨린 것이었다.

보통 때라면 투명화를 사용해서 바닥을 통과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팬텀이었지만, 생물과 접촉하고 있을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윌리엄은 팬텀의 오른팔을 단단하게 잡아당긴 채, 팬텀의 등을 체중으로 꾸욱- 누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안 쓰니까,”

환하게 웃는 윌리엄의 얼굴은 시원하다 못해 청량해 보였다.

“허튼수작 작작 부려, 팬텀.”

그 모습을 본 앨리스 잭슨이 감탄하며 소리 없이 짝짝짝! 박수를 쳤고 루크 메이너드는 작게 웃었다. 버서커도 크흠하고 웃음을 삼켰다.

윌리엄의 표정은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감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팬텀은,

“……하!”

하고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어내고는 눈알을 번뜩였다.

* * *

“전쟁의 시작인가.”

말릭 스펜서의 말에, 바닥에 쓰러진 루카스 터너를 일으켜준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웃고 말았다.

“다친 덴 없죠, 루카스?”

“네. 괜찮습니다, 준.”

루카스 터너가 빙그레 웃었다. 서준이 영화 속처럼 인정사정없이 쓰러뜨린 건 아닌 데다가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어 다치지 않았다.

“그럼 점심 식사 후에 오후 촬영 진행하겠습니다.”

조감독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촬영장을 정리하고 배우들도 분장을 지우러 이동했다.

“퇴근이다. 집에 가야지.”

랜스 레먼이 기쁜 얼굴로 말하자, 테사 해리슨이 슬픈 얼굴로 말했다.

“나도 퇴근하고 싶다.”

오후 촬영까지 할 예정인 테사 해리슨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후 촬영 있잖아요?”

“그러니까 촬영은 좋지만 퇴근은 하고 싶다는…….”

촬영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난 퇴근보다 촬영 더 하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있는 서준을 보며 테사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준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네.”

그에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서준도 웃고 말았다.

* * *

“레디, 액션!”

“드디어……!”

막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매드해터의 표정이 밝았다. 함께 일하고 있던 퍼스트의 연구원들도, 뒤쪽에서 살펴보고 있던 테일러 국장의 표정도 비슷했다. 체셔 캣은 모니터 구석에 드러누워 있었다.

“다들 들려요? 저희 완성했어요!”

목적어도 없는 말이었지만, 이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레귤러스는 금방 알아들었다.

-에너지 감지 프로그램을 완성했다고?

굵고 낮은 목소리와 함께 맨해튼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버서커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버서커 말고도 현장에서 드론들이 촬영하고 있는 이레귤러스 멤버들의 모습도 4분할된 모니터에 나타났다.

“네! 지금 막 끝났어요!”

매드해터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히어로들의 통신기로도 그 대화가 전해졌다.

-정말 잘됐네요.

안심한 화이트 블러드의 목소리 뒤로 얄미운 팬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늦은 거 아니야?

“이 정도도 빠른 거거든요!”

그날 폭발 사고 이후 다른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아서, 폭풍 전야의 불안함을 가득 안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매드해터가 외쳤다. 퍼스트 연구원들도 사납게 눈꼬리를 올렸다.

언젠가 그 주둥이로 망할 날이 있을 겁니다. 팬텀!

-고생했어, 매드해터. 연구원 분들도 고생하셨어요.

“정말 저희 힘들었어요.”

나이트 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드해터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열심히 매드해터를 도왔던 채셔 캣은 이미 쉬러 갔다. 인공지능이 피곤을 알까 싶지만 말이다.

‘하긴 지금까지 도와준 게 더 신기하긴 하지.’

중간에 튈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 궁금했나 보다.

-그럼 다 끝난 건가?

딴 생각을 하고 있던 매드해터가 버서커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그건 아니에요. 에너지 감지 프로그램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이걸로 적들의 본거지를 추적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하거든요.”

-할 일이 많네요.

“네. 많죠.”

화이트 블러드의 말에 매드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금만 힌트가 있으면 금방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알 수 있으니까요.”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레귤러스가 사건 장소에 도착해서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다면 빌런에 대한 조그마한 힌트라도 나올 터였고, 그 힌트를 이용한다면 빌런을 추적하기 제법 쉬울 터였다.

-어떤 힌트를 찾아야 하는 건데?

“그건 저도 모르죠. 그냥 이상한 건 다 들고 와야죠.”

매드해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조사는 지금까지처럼 퍼스트 요원들이 할 예정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뒤를 이어 테일러 국장이 말했다.

그때, 경고음과 함께 이레귤러스 네 히어로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맨해튼의 지도가 나타났다.

“어……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을래요?”

-음. 좋은 소식?

나이트 진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고음이 통신기로 들리는 걸 보니, 나쁜 소식이 어떤 건지 대충 알아챈 모양이었다.

“좋은 소식은…… 에너지 감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거예요.”

-나쁜 소식은요?

화이트 블러드의 말에 매드해터가 하하, 즐겁지 않은 웃음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테일러 국장은 벌써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에너지 반응이 네 군데에서 나타났어요.”

맨해튼 지도에 동시에 나타난 4개의 붉은 점에 매드해터가 해탈한 듯 웃었다.

-……그거 고장 난 거 아니야?

잠시 침묵 후, 팬텀이 말했다.

이번에는 비꼬는 게 아니었다. 그저 프로그램이 고장 나서 잘못 감지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빌런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거나 시작할 예정이라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 두 군데 동시에서 잔류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던 걸 보면 고장일 가능성은 낮았다.

두 곳에서 동시에 일이 일어났다면, 네 곳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일단 가서 살펴보죠.

-그래야겠군.

나이트 진과 버서커의 대답과 동시에 모니터에는 다시 이레귤러스의 모습이 4분할 되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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