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46화 (94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46화

오늘은 촬영이 없는 날.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출근하지 않았다.

마크 웨버 감독도 쉬는 날이었지만, 딱히 쉬어야 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아 뉴욕에서의 촬영분을 살펴보기로 했다.

편집을 한 건 아니었고, OK 컷만 스토리 순으로 모아서 이어붙인 거였다.

촬영이 모두 끝나면 풀샷과 클로즈업샷 등을 섞어서 배치하고 CG를 넣고 보정을 하고 음악을 넣고, 그렇게 편집할 터였다.

“바쁘겠지…….”

지금의 여유는 꿈만 같을 미래를 생각하며 탄식한 마크 웨버 감독은 커다란 TV에서 재생되고 있는 촬영분을 바라보았다.

* * *

이레귤러스와 퍼스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말없이 밤 순찰을 하던 나이트 진과 팬텀과 더불어, 버서커와 화이트 블러드도 순찰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었다. 매드해터와 체셔 캣은 열심히 감지 장치를 만드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레귤러스의 대처와 달리,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스트 21번가 에너지 감지.

오늘 또 에너지가 감지됐다.

통신기로 전해지는 그 목소리에, 이스트 21번가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버서커가 에너지가 감지된 곳으로 이동했다.

어느 뒷골목.

화재는커녕 빛 한 점 없이 아주 조용했다.

-이번에도 아니에요?

“그래.”

매드해터의 물음에 버서커가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뒷골목을 둘러보았다.

“쥐새끼 한 마리도 없,”

찍-

회색 쥐가 빠르게 지나갔다.

버서커가 한숨처럼 말했다.

“쥐는 있군.”

-하아.

매드해터는 물론이고, 다른 구역에 있던 히어로들도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다섯 번째죠?

화이트 블러드가 말했다.

-감지 장치 고장 난 거 아니야?

팬텀의 말에 매드해터가 팔짝 뛰었다.

-고장 안 났거든요! 완벽하거든요!

-그럼 왜 화재는커녕 불씨도 안 보이는 건데.

팬텀의 말대로 특이 에너지가 다섯 번이나 감지되는 동안, 단 한 번도 화재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퍼스트에서 현장을 조사해 봐도 매번 현장에서 나왔던 화재를 일으키는 물질도 나오지 않았다.

-그거야…… 저도 모르죠.

매드해터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새로운 에너지 감지 장치를 만드느라 머리가 아픈데, 기존 에너지 감지 장치까지 고장 난 거라면 큰일이었다. 벌써부터 매드해터와 연구원들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게 아닐까요?

나이트 진이 입을 열었다.

“새로운 실험?”

-적들이 화재사고를 일으킨 이유를 좌표를 찾기 위해서라고 추측하고 있잖아요.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뉴욕으로.

범위를 좁혀 목적지의 좌표를 찾아내기 위해 화재와 뉴스를 이용한 것으로 퍼스트는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거죠.

나이트 진의 무거운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이레귤러스와 퍼스트에게로 전해졌다.

-……적들이 원하는 좌표를 찾았다는 이야긴가요?

화이트 블러드의 말에 나이트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도 적들의 목표가 뉴욕 맨해튼인 건 알아냈잖아요?”

물론 맨해튼도 넓어서 정확한 목적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새로운 실험이라…….

버서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좌표를 알기 위해 전 세계에 불을 질렀던 적들이었다. 새로운 실험이 뭔진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심상치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숨기는 거 아니야?

팬텀이 삐뚜름하게 말했다.

-퍼스트의 개입도 알아챘을 거고, 이제 슬슬 목적지와 가까워졌으니까 정확한 장소를 숨기기 위해서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는 거지. 현장 조사에도 아무것도 안 나왔다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말이죠…….

퍼스트 본부에 있던 매드해터가 볼을 긁적였다.

모니터에서 식빵을 굽고 있던 체셔 캣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왜 쟤가 말하면 그냥 나이트 진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것처럼 들릴까?

“그러니까 말이야.”

팬텀이나 다른 히어로들에게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곧 일이 일어난다는 것만은 확실하군요.

화이트 블러드의 말대로였다.

적의 정체도, 목적도 알지 못하지만 조만간 큰일이 터진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제이?”

나이트 진은 한숨을 삼키며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맨해튼을 바라보았다.

* * *

-이스트 132번가 에너지 감지.

-이스트 11번가 에너지 감지.

해가 질 무렵, 동시에 나타난 에너지 반응.

이스트 132번가에는 화이트 블러드가, 11번가에는 버서커가 향했다.

“역시 아무것도 없네요.”

푸드득- 날아가는 새 아래.

화이트 블러드가 평화로운 공원을 보며 말했다.

“여기도 없다.”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구석진 곳을 살펴보며 버서커가 말했다. 인기척에 벌레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아무 일도 없는 건 다행이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매드해터는 도통 알 수 없는 적들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감지 장치가 완성될 거야!

체셔 캣의 말대로였다.

마지막 화재 사고 이후 빈번하게 감지되는 에너지 반응에, 매드해터와 퍼스트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에너지를 감지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을 터였다. 또 그 너머에 있는 적들을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웨스트 45번가 에너지 감지.

또 한 번 에너지 반응이 감지됐다.

“가자, 제이.”

그에 가까운 곳에 있던 나이트 진이 웨스트 45번가로 향했다.

어두운 골목.

해가 지고 있어 더욱 어두웠다.

딱히 큰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나이트 진은 긴장을 풀지 않고 에너지 반응이 나타난 골목 안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림자가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왕!

“……개?”

금색 털을 가진 골든 리트리버였다.

* * *

이레귤러스가 웨스트 45번가에 모였다.

에너지 반응이 일어난 곳에서 나타난 개라니.

딱 봐도 수상하지 않나.

“진짜 개 맞아?”

-맞아요. 진짜 개.

팬텀의 말에, 드론에 달린 카메라로 골든 리트리버를 한차례 스캔한 매드해터가 말했다.

“어디 실험체였다든가.”

한때 실험체였던 버서커와,

“다른 종족 같은 건 아니고요?”

뱀파이어 화이트 블러드가 물었다.

-완전, 정말, 평범한 골든 리트리버예요. 아주 건강한 것 같아요!

골든 리트리버는 사람을 잘 따르는 듯 이레귤러스를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주인도 없이.”

-잠시만요.

매드해터는 골든 리트리버를 스캔하던 중 발견한 목걸이의 이름을 보고 검색했다.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여기 글이 있어요. 이름은 버디고, 6개월 전에 잃어버렸다고 하네요.

그말에 나이트 진은 무릎을 굽혀 골든 리트리버와 눈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었다.

“안녕, 버디?”

왕!

제이와 놀고 있던 골든 리트리버, 버디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나이트 진에게로 신나게 걸어가 앞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순하디순한 그 모습에 나이트 진이 웃으며 반질반질한 털을 만져주었다.

“이제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말을 알아들은 듯, 버디가 왕! 하고 짖었다.

* * *

게시글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하자, 전화를 받은 남자는 곧바로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아앙! 버디!”

엉엉 울며 달려오는 아이와 그 뒤를 쫓아오는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버디도 가족을 발견한 듯 끼잉거리며 이리저리 뛰었지만, 혹시라도 놓쳐버려서 사고를 당하거나 어디론가 달려 나갈까 봐 줄을 꽉 잡고 있는 윌리엄의 힘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버디! 어디 갔었어!!”

마침내 버디를 껴안게 된 아이가 엉엉 울며 말했다. 버디도 연신 아이에게 몸을 치댔다. 울면서도 행복해하는 아이와 버디에 윌리엄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저도 우연히 찾은 건데요.”

정말 고마워하는 부부에 윌리엄이 웃으며 말했다.

곧 울음을 그친 아이도 씩씩하게 ‘버디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하고 감사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윌리엄이 환하게 웃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팬텀이 다른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쟨…… 저쪽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에 화이트 블러드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내 이어지는 팬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처럼 누군가한테 쫓기는 것도 아니고.”

다시 만난 가족과 함께 떠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던 윌리엄 리가 고개를 돌려 동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

* * *

“다른 일을 찾아보는 건 어때?”

“……네?”

‘그래도 방법이 굉장히 잘못됐다는 건 팬텀에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하고 화이트 블러드는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

“굳이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아?”

부드럽게 말해도 모자랄 판에 팬텀의 말에는 특유의 삐딱함과 못마땅함이 묻어 있었다.

윌리엄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게 무슨…….”

“학교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느라 바쁘지 않냐고.”

윌리엄은 팬텀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저런 사람도 있겠거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쉐도우맨이 좋아서, 쉐도우맨을 존경해서,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거라면 지금 그만두는 게 좋다는 거야.”

같은 팀인 만큼 친하게 지내진 못하더라도 잘 지내고 싶었는데.

윌리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건 팬텀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지. 네가 실수를 하거나 제대로 못 싸우면 나한테도 피해가 올 거 아니야.”

그건 윌리엄도 걱정하던 부분이라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대답할 수 있었다.

“훈련은 잘 받고 있습니다. 방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윌리엄은 동료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자신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 ‘동료’에는 팬텀도 있었는데…….

“아, 훈련. 나랑 합도 제대로 못 맞추던 그거? 실전에서도 훈련 때처럼 되면 큰일 아니야? 아주 다 죽어 나가겠어.”

팬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삐딱한 팬텀의 말에 윌리엄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팬텀.”

걸음을 멈춘 윌리엄이 팬텀, 로건 테이트를 바라보았다.

로건 테이트.

알고 있는 건 그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브루클린의 빈민가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보육원을 유지하기 위해 퍼스트에서 일한다는 것.

성격은 많이 안 좋지만, 사람들의 구하고 돕는 것만큼은 진심인 남자.

로건 테이트도 걸음을 멈추고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윌리엄 리.

상냥한 부모님 아래에서 행복하게 자랐으며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고 좋은 친구들도 있으며, 성격마저도 바르고 올곧은 남자.

왜 굳이 이런 험한 일을 하는가 싶은, 그래서 더욱 히어로에 어울리는 이.

그래서 윌리엄 리는 로건 테이트와 동료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로건 테이트는 윌리엄 리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이레귤러스엔 네가 필요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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