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45화 (94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45화

팬텀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윌리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팬텀도 같은 생각인 듯 별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전 아래쪽을 맡을게요.”

“위쪽은 내가 간다.”

동시에 말한 두 히어로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둘 다 나이트 진이 그림자로 이동하는 것보다 팬텀이 천장을 통과해 위쪽으로 가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헬멧을 다시 쓴 팬텀의 몸이 투명해지고 윌리엄도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피한 사람들 모르게 불이 난 건물 안으로 향했다.

든든한 파트너, 제이는 불이 난 복도를 통과해 폭발한 집의 옆집 안에 나이트 진을 토해냈다.

“제이, 저 집 사람들은?”

그 물음에 제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이트 진의 얼굴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연기를 최대한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그림자로 코와 입을 덮은 나이트 진은 제이를 따라 움직였고 곧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폭발에 휩쓸린 것인지 아니면 대피하다가 기절한 것인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여자가 있었다. 다행히도 약하지만 숨을 쉬고 있었다.

나이트 진은 여자를 안고 불길이 가득한 복도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림자 이동은 그림자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고 나서는 직접 두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제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화르륵-

불에 탄 천장재가 떨어져도, 구조자를 살피는 데 신경 쓰고 있어도 제이가 막아내 주었다.

구조자를 1층 안전한 구역에 내려다 놓은 나이트 진은 ‘저기 사람이 있어요!’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다른 요구조자에게로 이동했다.

구조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나이트 진을 덮쳤다. 그림자로 막고 있음에도 열기가 느껴졌다. 새까만 연기에 숨이 턱 막히고,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땀이 턱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문득 팬텀이 떠올랐다.

생명체와 함께 투명화를 할 수 없는 팬텀 또한 구조자를 데리고 나갈 때 맨몸으로 열기 속을 뚫어야 할 터였다.

“물론 염력이 있긴 하겠지만,”

와르르-

쏟아지는 천장재에, 아이를 안고 있던 나이트 진이 반사적으로 제 몸으로 감싸고, 그 위를 제이가 그림자로 막아냈다.

“이런 것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그런 나이트 진의 걱정대로,

“젠장!”

팬텀은 고생하고 있었다.

나이트 진과 마찬가지로, 팬텀 또한 폭발한 집 바로 윗집부터 가장 위험해 상태의 요구조자들을 구해내 옥상으로 옮기고 있었는데, 구조자가 더 이상 다치지 않게 조심하다 보니 가끔가다 자신에게 닿는 불길이나 갑자기 튀는 불똥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입고 있던 옷도 어느새 탄 자국과 재로 가득했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다.

다짐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을 돕는 히어로가 되기로.

크게 숨을 쉬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팬텀은 다시 한번 유령이 되어 요구조자를 찾으러 나섰다.

그렇게 두 히어로가 사람들을 구조하는 사이, 소방차와 구급차들이 도착했고 소방관들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요구조자를 찾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전부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물론 아무도 없었지만.

소방차가 늦었다기보다 두 히어로의 구조가 빨랐다.

몇 번이고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없나 살펴본 새까만 그림자와 투명한 유령은 안심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로 막아내 제법 멀쩡해 보이는 나이트 진과 달리, 팬텀은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 화상도 약간 입은 것 같았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

옷에 묻은 재를 툭툭 털다가 이내 몸을 돌려 바이크 쪽으로 걸어가는 팬텀을 보며 윌리엄이 한숨처럼 말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 * *

“레디, 액션!”

이번 사고는 제법 컸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야기도 하지 않고 밤 순찰을 하고 있었던 나이트 진과 팬텀 덕분에, 폭발한 집에 살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자세히 조사해 봤지만 역시 폭탄은 아니었어요.”

매드해터가 회의실에 모인 이레귤러스 멤버들에게 말했다.

퍼스트 요원들이 직접 나가 화재의 발화점과 그 근처를 그대로 옮겨와 돌멩이 하나까지도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조사한 데다가 매드해터까지 분석했으니 확실할 터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지.”

버서커가 말했다.

화이트 블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화재뿐이었지만, 퍼스트도 감지해 내지 못한 방법을 알고 있으면 폭탄 같은 걸 설치하기도 쉽겠죠.”

“사람 많은 쇼핑몰이나 빌딩 같은 곳이면 더 피해가 클 거고요.”

나이트 진이 체셔캣이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는 CCTV를 보며 말했다.

어젯밤 화재가 일어난 건물을 비추고 있는 CCTV였는데, 역시 수상한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갑작스레 불길이 일어났다가 건물 내에 있던 인화성 물질과 우연히 만나 폭발하는 것이 보였다.

음소거가 되어 있지만, 뛰쳐나오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감지 프로그램 제작은 어느 정도로 진행된 거야?”

팬텀의 물음에 매드해터가 초췌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테일러 국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날부터 학교 수업도 뒤로하고(원래 안 들었지만) 퍼스트 연구원들과 함께 ‘특이 에너지’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영 나오지 않았다.

모니터로 어젯밤 사고 영상과 함께 지도가 나타났다.

사고가 일어나는 시간에서 3초 정도 지난 후에 지도에 붉은 원이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사고 후 남아 있는 특이 에너지만 감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고가 일어난 직후 에너지도 감지할 수 있게 됐어요.”

다 매드해터가 ‘특이 에너지’ 연구에 합류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감지하는 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문제가 좀 있거든요.”

“무슨 문제?”

나이트 진과 히어로들이 매드해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화재가 일어나기 전이랑 후의 에너지가 다른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지?”

버서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매드해터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체셔캣이 서포트했다.

사고 영상과 함께 그래프가 나타났다.

사고 직전에는 잠잠하던 그래프가 불길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걸 특이 에너지, B라고 하죠. 저랑 연구원들이 만든 건 B 감지 장치예요. B만 죽어라 팠죠. 그런데 사고 전에는 전혀 잡히질 않았어요.”

“그렇다는 말은, 화재를 일으키는 에너지는 따로 있다는 건가요?”

화이트 블러드의 말에 매드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걸 A라고 한다면, A가 화재를 일으키고 난 후 남는 흔적이 B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두 에너지가 전혀 다른 에너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력 에너지로 만드는 전기 에너지처럼요.”

물과 전기.

전혀 다른 에너지였다.

이해한 나이트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화재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감지하는 건 불가능한 거구나. 지금까지 만든 건, 예를 들면, 전기 에너지 감지 장치라는 거니까.”

“네. 이제부터는 수력 에너지, A를 찾아야 하는 거죠.”

“그럼 찾으면 되잖아?”

팬텀의 말에 매드해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게 뚝딱뚝딱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제 막 A에너지의 존재를 알았으니까, 이제부터 찾아서 분석해야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사 구역이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줄어들어서 좀 더 자세히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라면 정보가 부족해서…….”

매드해터가 한숨을 쉬었다.

“몇 번 더 사고가 일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으음.

이레귤러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 몇 번의 사고는 A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피해를 당할지 몰랐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쇼핑몰이나 빌딩에서 사고가 나면 큰일이었다.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금방 만들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이레귤러스는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매드해터.

앨리스 잭슨.

하이스쿨을 다니고 있는 학생의 얼굴에는 그 사고로 다칠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한시라도 빨리 감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더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늦지 않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읽어낸 화이트 블러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매드해터. 사람들을 지키는 건 저희가 할 테니까요. 매드해터는 자신의 일에만 집중해 주세요.”

“그러라고 팀이 있는 거니까.”

버서커의 말에 나이트 진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팬텀도 고개를 까딱했다.

그 위로에 힘을 얻은 매드해터가 걱정을 내려놓은 듯 환하게 웃었다.

“알겠어요! 감지 장치는 저한테 맡겨두세요!”

* * *

오늘 촬영은 오후 촬영이었지만 서준은 조금 빨리 스튜디오로 출근했다.

“준, 오후 촬영 아니었어?”

분장을 끝낸 테사 해리슨이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서준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오전 촬영 구경하려고요.”

“아. 그럴 만하지.”

테사 해리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장면들도 흥미로웠지만, 오늘은 특히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테사!”

“갈게요! 그럼 잘 보고 있어, 준!”

“네.”

테사 해리슨이 떠나고, 서준과 최태우는 마크 감독이 모니터링하는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다 긴장되네.”

“하하.”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해리슨 가의 차고 겸 매드해터의 연구실.

그곳에 테사 해리슨이 혼자 앉아 있었다.

이리저리 자세를 잡던 테사 해리슨이 서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서준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잠시 후.

마크 감독이 ‘액션!’을 외치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작년 사건([매드해터1] 때 집이 불타 사라졌다.) 이후 이사 온 새집.

이번에는 아예 차고를 하나 더 만들어 앨리스 잭슨의 연구실로 만들었다. 퍼스트에서 지원까지 해줘서 온갖 기계들이 가득했다.

그 덕분에 매드해터는 집에서까지 A에너지에 대한 분석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끄응.

커다란 모니터를 보던 매드해터가 앓는 소리를 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수집한 정보들은 모두 분석하고 적용했다. 이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물론 이대로 손 놓고 있진 않겠지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엉뚱한 생각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매드해터!

그래도 할 일을 일단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져 잠시 쉬고 있는데, 체셔캣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스트 보안 뚫었어!

“어디…… 설마 거기?!”

-그래!

체셔 캣이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매드해터도 눈을 반짝였다.

퍼스트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정보들.

레드본과 같이 보안 프로그램을 만든 것인지 매드해터도 아직까지 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체셔 캣 혼자 뚫었단다.

“잘했어!”

-지금 볼 거야? 볼 거지?

신나게 발을 둥당거리는 체셔 캣의 말에 매드해터는 잠깐 멈칫했다.

이 비밀의 주인은 나이트 진.

같은 팀 동료였다.

자신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동료의 비밀을 파헤쳐내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당연히 안 괜찮지!’

“잠깐……!”

하지만 매드해터가 멈추라고 말하기도 전에 체셔 캣은 언제나 그래 왔듯 알아서 파일을 열어젖혔다.

궁금한 건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자.

체셔 캣을 만들 때 집어넣었던 설정이었다.

그 때문에 매드해터는 눈을 감을 틈도 없이, 퍼스트가 철저하게 숨겨왔던 문서를 보고야 말았다.

그걸 인지하고도 눈을 감을 시간이 있긴 했지만,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라 몸이 저도 모르게 굳어버려 그럴 수도 없었다.

-와…… 미친…….

화면 속 체셔 캣의 털이 삐죽삐죽 섰다.

매드해터도 입을 쩍 벌렸다. 눈도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두 개의 사진이 보였다.

매드해터와 함께 이레귤러스 팀에 소속되어 있는 히어로와,

“나이트 진이…….”

한때 지구와 나트라 행성을 멸망시키려던 빌런의 사진이.

“진 나트라였다고?!”

히어로와 빌런.

둘은 누가 봐도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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