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44화
“훈련은 테스트 자료를 바탕으로, 버서커가 맡아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테스트가 모두 끝나고, 각자의 테스트 결과를 보고 있는 이레귤러스에게 테일러 국장이 말했다.
“그리고 매드해터도 참여할 겁니다.”
“저도요?”
매드해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기초체력은 필요하니까요. 해트를 입고 있어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도망칠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남들 열심히 훈련할 때 시원한 연구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려고 했던 매드해터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윌리엄이 매드해터를 바라보았다.
객관적인 테스트 결과는 윌리엄에게 제법 안심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은 다른 히어로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약하지 않았고, 다른 히어로들도 자신의 한 몸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매드해터는 정말 똑똑했지만 약했다. 자신보다 어리기도 했고.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테일러 국장이 버서커를 제외한 이레귤러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3쌍의 무선이어폰이 든 네모난 상자였다.
“이건 뭐죠?”
상자를 받아 든 윌리엄이 의아한 듯 눈을 끔벅였다. 팬텀과 화이트 블러드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매드해터만이 눈을 반짝이며 무선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버서커야 그렇다 치지만, 매드해터는 정말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테일러 국장이 한숨을 삼켰다.
퍼스트 컴퓨터 보안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그걸 또 매드해터에게 맡기기는 좀 그랬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 아닌가.
타이밍 좋게 체셔캣이 미야옹- 하고 우는 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왔다.
“퍼스트와 통신할 수 있는 통신기입니다.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했죠.”
아.
세 히어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 국장이 무선이어폰의 탈을 쓴 통신기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 버튼을 한 번 누르면 퍼스트와 통신이 가능하고, 두 번 누르면 이레귤러스 멤버들끼리의 통신이 가능합니다.”
한쪽이 부서지는 경우에 대비해서 양쪽 통신기 모두 버튼이 있었다.
“이렇게 핸드제스쳐 설정도 가능한데,”
테일러 국장이 시범을 보이듯, 손을 들어 귓가에서 움직였다.
“이건 전투나 임무에 들어갔을 때 사용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실수로 연결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자, 다들 한번 껴보세요.”
그에 윌리엄이 통신기를 꺼내 귀에 꽂았다.
그러고 보니 쉐도우맨도 이런 통신기를 귀에 꽂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아마 새로 만든 거겠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적용한다는 퍼스트 본부처럼, 히어로들을 서포터하는 기계들도 바뀐 것일 터였다.
귀에 통신기를 꽂은 윌리엄이 버튼을 눌렀다.
-확인. 나이트 진.
기계음이 들리고,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퍼스트 본부와 연결되었다. 게다가 자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레귤러스의 신체 정보를 등록해 두었습니다. 히어로들이나 퍼스트 요원들을 제외하고는 통신기를 사용할 수 없죠.”
오.
조금 놀란 표정의 히어로들에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평범한 이어폰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편하게 사용하세요.”
그에 윌리엄이 손에 있는 통신기를 보며 작게 웃었다.
최신 음악이 흘러나오는 퍼스트의 통신기라니. 조금 웃겼다.
“마지막으로…… 그런 일은 없길 바라지만, 통신기의 버튼을 꾹 누르거나 부수면 퍼스트로 위치 신호가 보내집니다.”
그 말에 이레귤러스가 테일러 국장을 바라보았다.
테일러 국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들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말했다.
“위험한 임무를 드리지 않는다고는 못하겠지만, 여러분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언제 어디든 저희 퍼스트가 구하러 가겠습니다.”
새삼 히어로라는 말의 무게가 느껴진 윌리엄이었다.
* * *
다음 촬영할 장면은 이레귤러스가 훈련하는 장면이었다.
뉴욕에서도 액션 장면을 몇 번 찍었기 때문에,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익숙하게 촬영을 준비했다.
“레디, 액션!”
퍼스트 훈련실.
퍼스트 마크가 새겨진 훈련복을 입은 이레귤러스가 거기에 있었다.
마법이 주력이면서 인간의 피를 섭취하지 못해 체력적으로 부족한 화이트 블러드와 두뇌파인 매드해터는 체력 위주의 훈련을 받고 있었고, 나이트 진과 팬텀은 버서커에게 전투 훈련을 받고 있었다.
“1 대 2 대련을 하겠다. 능력은 사용하지 않고.”
“네.”
버서커와의 1 대 1 대련에서 충분히 몸을 푼 나이트 진이 씩씩하게 대답했고, 팬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싸우는 건 처음인데…….’
나이트 진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실수는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버서커를 앞에 두고 나이트 진과 팬텀이 섰다.
두 사람을 살피던 버서커가 먼저 나이트 진에게로 주먹을 뻗었다.
1 대 1 대련 때보다 빠른 속도에 나이트 진이 반사적으로 사용할 뻔한 그림자를 내리누르고 주먹을 피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2명이니 버서커도 더 강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공격도 그랬다. 정석적이었던 1 대 1 대련과 달리 속임수도 가득했다.
그런 버서커를 상대하느라 바빴던 나이트 진은 같이 싸워야 할 팬텀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버서커가 눈썹을 까딱하자, 팬텀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리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건 버서커에게 닿는 방향이기도 했지만, 나이트 진이 있는 방향이기도 했다.
설마 팬텀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나이트 진이 인식하기도 전에 제이가 그림자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벽 바로 앞에서 팬텀의 다리가 멈췄다.
제이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나이트 진이 뒤를 보았고, 팬텀을 보게 되었다. 자신에게 닿을 뻔했던 다리도.
뭐, 왜, 뭐.
뻔뻔한 표정으로 나이트 진을 바라본 팬텀이 다리를 바닥으로 내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비킬 줄 알았지.”
……뭐?
* * *
윌리엄 리의 방.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교와 집이 그리 멀지 않아, 윌리엄은 집에서 통학하고 있었다.
방 또한 작년([쉐앤나])과 같은 2층 방이었는데, 인테리어나 책, 침구 같은 것들만 조금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
두 개의 곰인형 또한 항상 있던 그 자리에 잘 앉아 있었다.
“가자. 제이.”
늦은 밤.
부모님도 잠들어 계실 시간.
내일 첫 강의 시간을 다시 확인한 윌리엄이 제 오랜 친구, 제이에게 말했다. 그에 제이가 기다렸다는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윌리엄이 창문을 열어 빠져나와 지붕에 섰다. 2층이었지만 제이가 있어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윌리엄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바라보았다. 다들 잠들어서 그런지 불빛이 보이는 곳은 없었다. 아직도 불빛으로 가득한 저기 다운타운과는 달랐다.
그 사이, 유리창 너머 윌리엄의 그림자에서 몸을 꺼낸 제이가 익숙하게 창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윌리엄의 옆에 나타났다.
든든한 친구에 윌리엄이 씩 웃었다. 제이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달빛을 받아 윌리엄의 발밑에 있는 그림자가 일렁이면서 점점 커졌다. 순식간에 윌리엄만큼 커진 그림자가 윌리엄과 제이를 감쌌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그림자 속으로 마치 녹아내리듯 가라앉았다.
어느 그림자보다 검은 그 그림자는 창문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고, 이내 지붕에 걸쳐진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무의 그림자를 따라 정원 바닥으로 이동했고, 담벼락의 그림자로 이동했다.
빠르게 그림자와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는 검은 그림자.
그 속에 히어로, 나이트 진이 있었다.
뉴욕이 노려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퍼스트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계속되고 있는 밤 순찰이었다.
* * *
다음은 야외촬영이었다.
배경이 뉴욕이라서 뉴욕에서 촬영해도 되겠지만,
“이건 못 하죠.”
“그렇지.”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이제 곧 불타오를 건물(세트장)을 바라보며 서준의 말에 동의하는 최태우였다.
“안 다치게 조심해. 서준아.”
“네. 그럴게요.”
하지만 최태우의 걱정과 달리, 실수로 넘어져서 다치는 게 아니라면 다칠 것 같지 않았다.
진짜 불은 정해진 구역에서만 피울 예정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CG 처리를 할 예정이었으니까. 또 세트장도 다른 세트장에 불이 옮겨가지 않게 이것 하나만 세워져 있었고, 만약의 위해 소방차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외부촬영을 위한 준비였고, 내부촬영은 따로 할 예정이었다.
내부촬영은 불길이 일어나 무너지는 건물 안을 찍는 거였는데, 무너지는 건물 내부의 천장과 벽, 바닥은 [생존자들] 때와 마찬가지로 기계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배우들의 동선에 있는 불도 CG 처리를 할 예정이었고.
“준.”
“아. 다 끝났어요, 루카스?”
그렇게 다른 때보다 철저하게 준비하는 촬영장을 바라보던 중에 오늘 함께 연기할 루카스 터너가 나타났다. 서준이 먼저 분장을 끝내고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완전 잘 어울려요.”
새까만 헬멧을 들고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는 루카스 터너를 보며 서준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루카스 터너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곧 촬영장 이곳저곳을 살피던 마크 감독도 이쪽으로 왔다. 그리고 두 배우와 감독은 함께 마지막으로 동선을 확인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커다란 외침이 들리고, 다른 때보다 짙은 긴장감이 촬영장을 가득 채웠다.
“레디,”
마크 감독의 말에 스태프가 스위치를 누르자 세트장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들에서 화르륵- 불길이 터져 나왔다. 위쪽에서 일어난 불길이라 아래까지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보기에는 굉장했다. 다른 기계들에서 시꺼먼 연기까지 나와서 더욱 그랬다.
문제가 없다는 신호가 전해지고, 배우들이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크 감독이 외쳤다.
“액션!”
* * *
윌리엄은 오늘도 순찰을 하고 있었다.
밤새 하는 건 아니었고, 일상도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히 하고 있었다.
“안 그러면 쉐도우맨한테 혼나겠지?”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이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체 모를 적들에게 노려지고 있는 뉴욕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마지막으로 화재가 일어났던 것이 몇 주 전. 평화로운 건 좋았지만 폭풍 전야 같았다.
“그럼 다시 가 볼까?”
잠시 쉬고 있던 윌리엄이 일어났다.
그림자로 이동할 때는 밖의 상황을 알 수가 없어 온전히 제이에게 의지해야 했고, 또 오랜 시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간간이 나와 밖을 살펴야 했다.
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를 부풀리려고 할 때.
콰앙!
폭발음과 함께 저쯤에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제이!”
윌리엄의 부름에 제이가 빠르게 그림자를 부풀려 윌리엄의 몸을 모두 삼켰다. 그리고 빠르게 그림자를 타고 이동했다.
‘사고? 아니면 뉴욕을 노리고 있는 적?’
지금까지 화재만 있었다는 이야기와 달리 들려온 폭발음 때문에 판단이 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현장에 도착한 제이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윌리엄을 토해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윌리엄은 순찰할 때마다 끼고 나오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쓴 적은 없는 퍼스트의 통신기의 버튼을 눌렀다.
-확인. 나이트 진.
연결되자마자, 건너편에서 테일러 국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죠, 나이트 진? 지금은 좀…….
“지금 웨스튼가 화재현장에 있습니다. 지금 이 화재에서도 그 에너지가 나타났나요?”
윌리엄은 잠옷 차림으로 급하게 건물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제이에게 건물 내부를 탐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건물을 삼키려는 새빨간 불길은 무시무시했지만, 빛은 언제나 그림자의 편이었다.
집에서 자고 있어야 할 윌리엄이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다는 말에 테일러 국장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거기 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조금 전 에너지를 감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화재 전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는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폭발이었는데…….”
-이제부터 화재 대신 폭탄을 선택한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희는 불씨와 건물 내부의 무언가가 접촉해서 우연히 폭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제이가 돌아왔다. 건물 내부에 아직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소방차가 곧 올 테지만 구하기 힘든 곳에 있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사람들을 구하러 갈 생각인가요, 나이트 진?
“네.”
사람들의 눈에 띄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림자로 이동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대답하는 윌리엄의 귀로 테일러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팬텀과 함께 가세요. 마침 거기에 있다고 합니다.
테일러 국장의 목소리에 ‘왜 둘 다 현장에 있는 건지……’ 하는 작은 한숨이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팬텀이라는 말에 놀란 윌리엄은 눈치채지 못했다.
막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한 윌리엄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바이크에서 내려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팬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