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43화
“이걸로 테스트해 볼까?”
눈을 번뜩이며 말하는 말릭 스펜서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랜스 레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서준과 테사 해리슨이 웃음을 터뜨렸다.
루카스 터너만 무슨 의미인지 몰라 눈을 깜빡였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신체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 만한 곳이라면 꼭 기록을 남겨야 하고 마는 말릭 스펜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테스트실 이용해 본 적 있어?”
말릭 스펜서의 물음에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훈련만 했지 테스트실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말릭 스펜서의 눈이 더욱 번뜩였다.
“이번 기회에 해보는 건 어때?”
촬영 준비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뉴욕 촬영 전 루카스 터너를 데리고 테스트실로 가서 체력을 측정해 볼 생각이 있었던 말릭 스펜서였는데, 사고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었고.
“남는 건 몸하고 기록뿐이니까!”
한 번 지나간 몸과 체력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라고 말하는 말릭 스펜서의 모습에, 서준과 테사 해리슨이 웃으며 속닥거렸다.
“진짜 버서커랑 잘 맞는 것 같지 않아요?”
“말 많은 거 빼고는 말이야.”
랜스 레먼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승낙하는 게 나아. 안 그럼 계속 이러거든.”
그에 뉴욕에 있을 당시, 끈질기게 달라붙어 테스트하자고 말하던 말릭 스펜서와 귀찮다고 거절하다가 이내 질린 듯 뉴욕 트레이닝 센터의 테스트실로 들어가는 랜스 레먼을 떠올린 서준과 테사 해리슨이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말릭 스펜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한테나 그러진 않아. 나도 사람 가려가면서 한다고.”
그럴 정도로 루카스 터너가 편해졌다는 거다.
첫 만남에 약간의 사고가 있어,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던 루카스 터너는 그걸 깨닫고는 마음속 짐을 조금 내려두었다.
“네. 저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말릭?”
“오! 그래? 이거 지금 써도 되는 겁니까?”
“네. 마침 작동이 되는지 시험해 보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현실감을 위해 기계를 작동시켜 촬영한 후, 결과만 나중에 수정할 예정이었다.
스태프의 말에 말릭 스펜서가 활짝 웃으며 루카스 터너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음.
문득 게임 속 뉴비를 반기는 고인물을 보는 기분이 들어 서준이 웃고 말았다.
* * *
“레디, 액션!”
“와!”
테스트를 구경하러 온 매드해터가 연구실에 눈을 빛냈다.
먼저 신체적 능력을 테스트할 연구실은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한쪽은 대상자가 들어가서 몸을 움직일 공간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연구원들이 그 기계를 조작하고 그 결과를 보는 곳이었다.
유리창으로 나뉜 그 공간에 가득한, 처음 보는 기계들에 매드해터가 눈을 반짝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진짜 처음 보는 건 아니었고.
이미 체셔캣과 함께 퍼스트 내부를 탐험해 봤다.
‘그건 들키면 안 되겠지.’
히히, 웃은 매드해터가 ‘현실에서는’ 처음 보는 기계들을 보며 퍼스트 연구원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를 이어 테일러 국장과 이레귤러스 멤버들이 들어왔다.
전(前) 퍼스트 요원이면서 상태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자주 이곳을 드나드는 버서커를 빼고, 남은 세 히어로들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많은 기계들이 낯설었다.
“먼저 버서커가 시범을 보일 테니, 따라 하시면 됩니다.”
버서커가 먼저 안쪽 구역으로 들어갔다.
함께 들어간 연구원들이 버서커의 몸이 이것저것 달자, 유리벽 너머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그래프들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시범 겸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이건 각 부분의 신체활동을 분석해서 그래프로 보여주는…….”
움직이기 시작한 트레드밀의 위를 달리는 버서커의 움직임에 그래프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퍼스트의 연구원은 그 변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버서커의 몸은 기계라고 하지 않았어요?”
기계라면 분명 ‘인간의 신체활동’을 측정하지 않을 텐데, 양쪽 팔과 다리에 달려 있는 선을 통해 전해진 신호는 마치 인간의 그것처럼 그래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건 저희로서도 의문인 부분입니다. 분명 버서커의 신체와 분리되어 있을 때는 전혀 반응이 없는 기계일 뿐이거든요.”
떨어져 있을 때는 평범한 기계일 뿐인데, 버서커와 이어지면 인간의 신체처럼 반응한다고?
매드해터와 어느새 모니터에 나타난 체셔캣이 눈을 반짝였다.
“다른 기계들에는 어떻게 반응해요?”
“일단 저희가 테스트해 본 결과로는…….”
신난 매드해터와 달리, 나이트 진과 팬텀, 화이트 블러드는 반도 못 알아들은 상태였다.
그저 버서커와 매드해터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윌리엄이 테일러 국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런 이야기까지 저희가 들어도 되는 건가요?”
좀 개인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에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모두 버서커가 이야기해도 좋다고 한 내용들입니다. 함께 싸울 동료니까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정확히는 싸우는 중에 팔다리가 떨어져도 기계일 뿐이니 당황하지 말고 계속 싸우고, 나중에 떨어진 팔다리를 수거해 오라는 뜻이었지만 말이다.
그걸 모르는 윌리엄과 화이트 블러드는 어쩐지 조금 감격한 얼굴이었고, 팬텀은 대충 짐작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매드해터에게는 버서커의 신체에 대해서 연구를 부탁할 예정이었습니다. 버서커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죠.”
유리벽 너머.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음에도 조금의 숨도 몰아쉬지 않고 있는 버서커가 보였다.
* * *
이능력 테스트는 다른 곳에서 진행되었다.
이것도 앞서 갔던 연구실처럼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벽의 두께나 재질이 더 두껍고 튼튼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테스트 중에 폭주할 수도 있으니까요.”
연구실을 반파시켜놓은 어셈블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말하는 테일러 국장이었다.
“들어가셔서 연구원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버서커는 이능력이랄 게 없어 이번 테스트에서 제외되었다.
먼저 화이트 블러드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용하실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화이트 블러드가 퍼스트에게 받은 마법책에서 익힌 마법들을 펼쳐 보였다.
처음 보는 화려한 마법들에 윌리엄과 매드해터가 와! 하고 감탄했다.
팬텀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화이트 블러드가 박쥐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그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라고 하더니…….”
퍼스트가 준비한 횃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검은색 박쥐를 본 팬텀의 혼잣말에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저희는 화이트 블러드가 뱀파이어라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에 윌리엄과 매드해터, 팬텀이 테일러 국장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동료 중 하나가 인간의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라는 건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화이트 블러드는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화이트 블러드는 동료들을 속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공개해도 괜찮다고 했죠. 여러분들이 그를 거부하지 않아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에 윌리엄과 매드해터의 눈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하고 말하며 테스트를 끝내고 나온 화이트 블러드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그 모습에 당황하던 화이트 블러드는 이내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면, 화이트 블러드 다음으로 테스트를 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간 팬텀의 표정은 삐뚜름했다.
‘숨길 건 숨겨야지.’
남과 다른 건 좋지 않다.
언제나 배척받고 거부당한다.
뭐, 저기 있는 사람들처럼 신경도 쓰지 않는 성격 좋은 이들도 가끔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물었다.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팬텀, 로건 테이트가 움직였다.
먼저 투명화.
사라지는 팬텀을 보며 유리벽 너머 놀라는 나이트 진과 매드해터, 화이트 블러드의 표정이 보였다. 팬텀은 저도 모르게 조금 우쭐해졌다.
그리고 다음은 벽 통과.
팬텀은 퍼스트가 준비해 둔 가림막을 통과해 반대편에 나타났다.
다음은 염력.
화이트 블러드의 마법 중 하나와 비슷한 능력이었지만, 팬텀의 능력이 더 강력했다.
-다른 능력은 없으신가요?
“투명화를 했을 때 날 수 있습니다.”
-능력은 어느 정도로 유지할 수 있죠?
그에 팬텀이 대답했다.
80%로 낮춰서.
다시 말하지만,
숨길 건 숨겨야 한다.
이전 사건(팬텀1 때)으로 인해 퍼스트는 이미 팬텀의 능력을 알고 있어서 능력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지시간은 충분히 숨길 수 있지.’
이 거짓말이 나중에 자신의 힘이 될 터였다.
‘퍼스트가 언제 등을 돌릴 줄 알고.’
때문에 버서커야 그렇다 치더라도,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전부 말한 것 같은 화이트 블러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생물도 통과할 수 있습니까, 팬텀?
“아, 그건 안 됩니다. 개미로 실험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럼 살아 있는 생물과 함께 투명화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안 됩니다.”
그래도 나머지 질문들에는 솔직히 말했다.
팬텀 또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히어로였으니까.
테스트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팬텀은 자신 다음으로 테스트를 받은 나이트 진을 바라보았다.
‘얘도 솔직하게 다 말하겠지.’
윌리엄 리.
알고 있는 정보로는 대학생이며, 어셈블의 쉐도우맨처럼 그림자를 다룬다는 것 정도.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네!
그늘 한 점 없는 얼굴을 보니 가정도 행복하겠고.
딱히 뭔가 숨길 것도 없고 굴곡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팬텀이 팔짱을 끼고 나이트 진을 삐뚜름히 바라보았다.
‘왜 여기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이.
나이트 진이 누군가를 불렀다.
팬텀과 화이트 블러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해킹으로 미리 ‘제이’와 ‘파트너’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매드해터는 눈을 빛냈다.
퍼스트야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곧 그림자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에 팬텀과 화이트 블러드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림자’는 히어로들을 보며 마치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저게 무슨……?”
그림자를 다룬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살아(?) 움직일지는 몰랐다.
테일러 국장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나이트 진 대신 설명해 주었다. 눈을 반짝이고 있는 매드해터를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나이트 진의 파트너, 그림자 제이입니다. 저렇게 방패도 되고 무기도 되는, 자아를 가진 그림자죠.”
그 말대로 그림자는 딱딱한 벽이 되어 나이트 진의 주변을 막기도 했고, 나이트 진의 손에서 날카로운 검이 되기도 했다.
“제이도 파트너처럼 혼자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까, 나이트 진?”
그건 중요한 질문이었다.
나이트 진이 방심하거나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더라도 제이가 방어하거나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네. 언제나 절 도와주는 멋진 파트너죠.
연구원의 물음에 나이트 진이 웃으며 대답했고, 제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해했다.
외계인이 있는 것도 뱀파이어가 있는 것도 이해한 팬텀이었지만 저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쉐도우맨도 그림자를 다룬다고 들었는데…… 저런 겁니까?”
팬텀의 말에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름은 파트너라고 합니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니, 특이한 일이네요.”
물론 뱀파이어들 또한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종족이 같았다.
하지만 인간인 나이트 진과 쉐도우맨은 다르지 않나.
나트라 행성 사건에 대해 알고 있으나, 나트라 인과 쉐도우맨의 능력이 같다고는(비슷한 것 같긴 하지만.)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화이트 블러드와 팬텀은 굉장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테일러 국장이 말했다.
“네. 그래서 나이트 진은 쉐도우맨에게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다루는 방법도 말이죠.”
어셈블 소속 히어로의 제자라니.
팬텀은 말없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