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42화
“특이한 에너지요?”
매드해터가 눈을 반짝였다.
“네. 퍼스트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에너지가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었죠. 그래서 저희는 이 에너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전 세계를 스캔했고, 이런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테일러 국장이 그렇게 말하며 스위치를 눌렀다.
뉴욕의 퀸즈의 한 가게를 가리키고 있던 빨간 원은 그대로인 채 지도가 축소되었다. 뉴욕주만 보이던 지도가 그 옆에 있던 지역들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 왼쪽에 한쪽에 빨간 원이 생겨났다.
“뉴저지주의 허드슨 카운티군.”
버서커가 말했다.
곧바로 지도 오른쪽에 빨간 원이 하나 더 생겨났다.
“뉴욕주 나소 카운티.”
팬텀이 살고 있는 브루클린 시와 함께 롱아일랜드에 속해 있는 지역이었다.
또 하나. 지도 위쪽에도 빨간 원이 생겨나 반짝였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네요.”
화이트 블러드가 뉴욕 맨해튼의 위쪽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말했다.
빨간 원이 또 하나 생겨났다.
“……브루클린?”
팬텀이 미간을 찌푸렸다.
브루클린에서도 사건이 일어났었다고?
그사이에도 빨간 원은 나타났다.
“더치스 카운티네요.”
나이트 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웨스트체스터보다 위쪽에 있는 지역에서 반짝이는 붉은 원을 보았다.
지금까지만 해도 총 여섯 군데.
평범한 화재사건이라면 적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또는 어떤 단체가 퍼스트의 눈을 피해 일으킨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많았다.
하지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설마, 더 있어요?”
매드해터의 물음에 테일러 국장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모니터에 뜬 지도가 붉게 물들었다.
뉴욕 주부터 뉴저지 주, 코네티컷 주, 펜실베니아 주까지.
여기저기에서 빨간 원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도가 축소되어 미국 동부와 중부 지역을 보여주었다.
이전보다야 듬성듬성하긴 했지만, 여기에도 붉은색 원이 가득했다.
또 한 번.
지도가 축소되었다.
이번엔 미국 서부와 남부 지역까지 포함한, 미국 전체 지도였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전보다 원과 원 사이의 거리가 멀었지만, 빨간 원은 지도 전체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것만 해도 경악스러운데, 지도는 한 번 더 축소되었다.
이제는 아예 세계지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설마?”
나이트 진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답하듯, 빨간 점들이 동시에 생겨났다.
이름을 아는 나라든 모르는 나라든 상관없이 나타난 붉은 점들에, 화이트 블러드와 매드해터가 침음성을 흘렸다.
“여기까지가 저희가 알아낸 정보입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 테일러 국장이 말했다. 그러나 브리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는 곳들만 찾을 수 있었죠.”
“……에너지가 남아 있는 곳이요?”
화이트 블러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매드해터는 이미 테일러 국장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린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네.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가 사라지더라고요. 흔적도 없이.”
버서커가 이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말했던 ‘퍼스트가 인지한 첫 번째 사건’이라는 게 그런 의미였습니까.”
“맞습니다. 에너지가 가장 약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였죠.”
테일러 국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보다 먼저 화재사건이 일어난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흔적이 이미 사라져서 저희가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지도에 표시된 붉은 점들 말고도 더 많은 화재사건들이 이번 일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팬텀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피부병도 아니고.”
이레귤러스는 그 말에 동의했다.
마치 손끝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퍼져가는 반점처럼, 아니, 보이지 않는 곳까지 퍼진 것처럼 뉴욕주 퀸즈에서 시작한 붉은 원이 전 세계로 퍼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범위가 넓으면 저희가 있어도 해결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매드해터가 말했다.
이레귤러스는 고작 다섯.
퍼스트가 함께 하겠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전력이었다.
“그럼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죠.”
테일러 국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본론이라고?”
이레귤러스는 전혀 침착하지 못했지만.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히어로들에 테일러 국장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지도가 확대되었다.
“저희가 인지한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두번째는 한국이었죠.”
한국.
윌리엄 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윌리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걸 아는 매드해터도 윌리엄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도가 확대되어 한국의 어딘가를 비추었다.
“시골이라서 CCTV는 없었습니다.”
동시에 화재로 홀랑 타버린 어느 시골집의 모습이 사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호주였고 네번째는 핀란드였죠.”
테일러 국장이 말할 때마다 모니터로 지도와 함께 화재 후 찍은 사진들이 나타났다.
그 아래, 각 나라의 소방서가 화재가 일어난 날짜를 적어둔 자료도 보였다.
“이걸 바탕으로 첫 번째 화재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흐름으로 사건이 일어난 것을 표시하면 이렇습니다.”
핀란드를 보여주던 지도가 다시 세계지도로 변했다. 빨간 원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곧 미국 뉴욕에 빨간 원이 생겨났다. 첫 번째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한국에 빨간 원이 나타났다. 두 번째 사건.
다음으로 호주, 핀란드에 빨간 원이 나타나 깜빡였다. 세 번째, 네 번째.
그걸 시작으로 차례차례로, 세계 지도 위에 빨간 원들이 생겨났다.
이레귤러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빨간 원들이 전 세계에 마구잡이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쪽에 생긴다 싶으면 동쪽에, 북쪽에 생긴다 싶으면 남쪽에 생겨났다.
“무슨 애들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팬텀의 말대로 아이들이 펜을 들고 이유도 목적도 없이 세계 지도 위를 찍어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버서커는 곧 이유를 눈치챘다.
“저건…….”
그와 동시에 흐름이 바뀌었다.
목적지 없이 마구잡이로 나타나던 붉은 원들이 점점 한쪽으로 쏠려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 세계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북아메리카로, 북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버서커를 제외한 이레귤러스 멤버들도 그걸 알아챘다.
“설마 지금 좌표를 알아내고 있는 거예요?!”
매드해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에 테일러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단 아무 곳이나 표시한 후에 거리를 가늠하고 좌표를 수정해나가면서 목적지를 찾고 있는 거죠.”
그건 영점 조준과 비슷했다.
총알이 향한 곳을 보고 총구의 방향을 바꿔 다시 쏜다. 목표한 곳이 아니라면 다시 방향을 살짝 바꿔 쏜다. 그렇게 조금씩 총구의 방향을 수정하여, 끝내 목표한 곳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 표시라는 게…… 뉴스나 기사로 나와서 알아내기 쉬운 화재사건이라는 거군요.”
화이트 블러드의 말대로였다.
그 나라 뉴스에 나올 법한, 어지간한 표시가 아니라면 전 세계의 좌표를 알아내기 어려울 터였다.
그 ‘표시’가 화재라는 게 굉장히 빌런다웠다.
“……저희를 모은 이유를 알겠네요.”
나이트 진이 굳은 얼굴로 모니터에 뜬 세계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새 미국을 비추고 있던 모니터는 더욱 확대되어 동부로, 동부에서 더욱 동쪽으로 이동해 멈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저들의 목표가 뉴욕 시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뉴욕시 근처에 집중된 붉은색 원들이 마치 경고하듯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이레귤러스를 보며 테일러 국장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적의 정체도, 목표도 알아내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오는데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죠. 이레귤러스 여러분들에게 전투가 있을 때를 대비해 훈련에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화이트 블러드가 대답하고 일레귤러스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테일러 국장이 고개를 돌려 매드해터를 바라보았다.
“매드해터에게는 조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로서는 화재사건이 일어난 후에 남은 에너지만 추적할 수 있거든요.”
“화재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에너지 변화 같은 거 말이죠?”
“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파악한다면 화재도 막을 수 있고, 어쩌면 적들을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테일러 국장의 말에 매드해터는 흔쾌히 수락했다.
* * *
“컷! 오케이!”
마크 감독이 크게 외쳤다.
그에 한껏 집중하고 있던 배우들이 어깨에 힘을 풀었다. 굳어 있던 표정들도 이내 흐물흐물해졌다가 환하게 밝아졌다.
이번 장면으로 오늘 촬영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었다.
“집에 가야지.”
특히 랜스 레먼의 얼굴이 밝아, 서준과 배우들이 아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퇴근! 퇴근!’ 하고 외치는 듯, 촬영장을 정리하는 스태프들의 얼굴도 밝았다. 마린사의 스튜디오라서 뉴욕에서의 촬영처럼 전부 다 치우지 않아도 되는 점도 좋았다.
“맛있는 식당 찾았는데 같이 가 볼래, 준?”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지우고 나온 테사 해리슨이 서준에게 물었다.
아마도 테사 해리슨의 취미는 맛집 발굴이 아닐까.
뉴욕에서 친구들과 함께 갔던 테사 해리슨의 추천 가게도 맛있었고.
이번엔 어떤 음식일까, 하고 생각하며 서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감독님도 같이 가실래요?”
테사 해리슨의 물음에 랜스 레먼이 당연하다는 듯 안 간다고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하고 말하는 테사 해리슨에 다들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함께 저녁을 먹을 사람, 집에 갈 사람이 정해졌다.
“루카스도 같이 가요.”
“아, 전 연습을 해야 해서요, 준.”
캐릭터 분석을 갈아엎고 급하게 촬영을 시작한 만큼,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어도 루카스 터너는 하루하루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서준의 도움을 받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어제도 늦게까지 연습했다면서요.”
조금 주의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한 번에 바뀌기는 힘든 법이니까 말이다.
“겨우 2시간 더…… 잠깐. 준이 그걸 어떻게?”
그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범인은 하나.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친구이자 매니저인 코너 밀스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준과 연락했을 코너 밀스도 활짝 웃고 있었다. 진짜 웃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네. 같이 가겠습니다.”
그 살벌한 눈빛에 루카스 터너가 쓰게 웃으며 포기했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대강 이야기를 들은 소피아 켈리와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오늘은 두뇌파 매드해터를 뺀 나머지 네 히어로가 신체적 능력과 이능력을 테스트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이거 진짜로 되는 겁니까?”
퍼스트 본부 세트장.
그중 오늘 촬영이 있을 방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들을 보며 말릭 스펜서가 눈을 반짝였다. 그 기계들은 서준이 보기에도 굉장히 전문적인 기계들로 보였는데, 트레이닝 센터에 있던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그 물음에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만드는 것보다 사 오는 게 간단하거든요.”
과연.
할리우드다운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