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41화
버서커는 이레귤러스의 첫 소집 직전, 테일러 국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곳은 퍼스트 본부의 내부였지만, CCTV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매드해터를 경계한 것이리라.
“이레귤러스라는 팀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죠.”
테일러 워런 국장이 이레귤러스 멤버 중 유일하게 퍼스트 소속이었던 버서커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네 명 모두 퍼스트 내부의 인물이 아니라 외부의 인물이고, 직전까지도 혼자 활동하던 인물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버서커는 테일러 국장이 내부 인물인 자신 또한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건 지구 방위라는 목적을 가진 퍼스트라는 기관의 국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테일러 국장의 방심은 지구 전체를 위험으로 몰아넣을 테니까.
테일러 국장은 먼저 매드해터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제 곧 졸업할 고등학생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매드해터는 신체 능력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고,”
다음으로는 그 옆에 놓인 팬텀의 사진을 가리켰다.
“팬텀은 그가 소중히 여기는 보육원이 있고 유령화 능력도 에너지 패턴이 남아 추적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테일러 국장이 말했다.
“게다가 둘 다 지금까지 크게 사고 친 적도 없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죠.”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퍼스트는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두 히어로입니다.”
두 명의 사진이 내밀어졌다.
새하얀 머리칼을 지닌 백인 남자와 동양인 청년.
“화이트 블러드는 언제 뱀파이어의 본능이 깨어나 바로 옆에 있던 인간의 목을 물어뜯을지 모르지만, 뱀파이어가 되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피를 먹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에서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테일러 국장이 덧붙였다.
“게다가 신체적 능력 또한 피를 겨우 한 번 섭취했다고 놀라울 정도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니, 사건이 일어나도 곧바로 대처한다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버서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화이트 블러드 또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으니 주의 깊게 살펴보는 정도면 됩니다. 진짜 문제는 이쪽이죠.”
테일러 국장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동양인 청년의 사진을 가리켰다.
“나이트 진. 소중한 가족도 있고 의지하고 있는 히어로도 있죠. 성격도 좋고 성실합니다. 사교적이며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죠. 그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은 말이죠.”
유난히 ‘지금은’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어떨까요.”
그 존재.
퍼스트 내부에서도 몇몇만이 나이트 진의 이전 모습을 알고 있었다.
버서커도 듣기는 했다.
“과연 그는 윌리엄 리의 부모를 사랑할까요, 아니면 미워할까요. 쉐도우맨을 의지할까요, 원망할까요.”
동화처럼 모든 걸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결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테일러 국장과 버서커는 잘 알고 있었다.
“두 행성과 자기 자신을 저울에 올렸던 그가 다시 일을 저지르게 된다면 이번엔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
가늠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작게 젓는 테일러 국장에게 버서커가 물었다.
“그럼 영입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위험한 존재는 바로 옆에서 관리하는 게 좋죠.”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의 그는 누가 봐도 히어로니까요.”
테일러 국장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많은 전쟁터를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보아온 버서커는 제법 사람을 볼 줄 알았다.
“윌리엄 리입니다. 윌리엄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렇게 자신의 소개한 나이트 진은 한눈에 봐도 의지가 곧고 반듯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매드해터예요! 앨리스라고 불러도 돼요.”
“반가워요. 루크 메이너드입니다.”
“팬텀.”
기계에 미친 고등학생, 뱀파이어 성직자, 불량아 유령, 사이보그 싸움광과 다르게 멀쩡해 보이는, 진짜 히어로 같았다.
이 남자가 그 존재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테일러 국장도 위험함을 알면서도 영입한 거겠지.
“버서커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동료가 될 이들을 보며 꾸밈없이 웃는 나이트 진의 표정에, 앞으로 그를 감시하고 경계해야 하는 버서커는 아무래도 일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컷, 오케이!”
마크 감독의 외침에 세트장 밖에서 풀샷을 찍고 있던 카메라들이 세트장 안으로 이동했다.
이제 배우들의 표정을 가까이서 자세하게 촬영해, 처음 만나게 된 히어로들의 감정 상태를 관객들이 보다 확실히 판단할 수 있도록 할 터였다.
미술팀과 분장팀도 세트장에 올라갔다.
연기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흐트러진 소품이나 배경, 그리고 배우들의 화장 상태를 살펴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난 후,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이레귤러스 멤버들이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다.
개성 강한 히어로들인 만큼 앉아 있는 모습도 제각각이었는데, 특히 삐딱하게 앉아 있는 ‘팬텀, 로건 테이트’와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나이트 진, 윌리엄 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 앉아 있어서 눈에 띄었는데, 서로 다른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 너무 좋다…….”
그에 스태프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시즌1 때부터 팬이었고 시즌2 또한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히어로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정말이지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세나 표정도 마치 진짜 캐릭터 그 자체인 듯 보여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히어로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진짜 좋다…….”
좋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이런 게 바로 [어셈블]이나 [이레귤러스] 같은 영화의 재미가 아닐까.
그렇게 설레는 얼굴로 세트장을 바라보는 스태프가 한두 명이 아닌 상태에서, [이레귤러스]의 촬영은 계속되었다.
* * *
“레디, 액션!”
마크 감독의 외침과 함께, 카메라가 슥- 돌아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는 히어로들을 비춘 다음, 브리핑을 하는 테일러 국장을 비췄다.
“이렇게 모이게 됐으니 서로 친해질 겸 이레귤러스 결성 기념 파티라도 열어야겠지만, 그건 좀 미뤄야겠네요.”
그에 한창 파티를 좋아할 나이인 매드해터와 사람 좋아하는 나이트 진의 얼굴에 아쉬움이 떠올랐고, 팬텀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웬 파티? 애들도 아니고. 아, 애가 둘 있긴 하지.
팬텀은 나올 것 같은 한숨과 불만을 애써 삼켰다. 물론, 참는 건 팬텀의 성격에 맞지 않아 대신 오른쪽 다리를 덜덜덜 떨어댔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화이트 블러드가 허허롭게 웃었고, 버서커는 서로 친해져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는 듯했다.
“퍼스트가 인지한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이 화재입니다.”
개성 넘치는 히어로들을 보며 가볍게 웃은 테일러 국장이 딸각, 하고 스위치를 누르자 회의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던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났다.
그 아래 픽셀로 이루어진 고양이, 채셔캣이 꼬리를 살랑이고 있었다.
체셔캣을 처음 보는 윌리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귀엽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윌리엄과 눈이 마주친 체셔캣도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 체셔캣의 모습에 ‘매드해터는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느낀 윌리엄은 이내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상에 나타난 건 어느 가정집에서 일어난 화재였다.
소방차들이 몰려오고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영상 너머로 들려왔다.
화재가 드문 일이 아니긴 하지만, 가정집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뉴스에는 크게 뜨지 않았던 모양인지 윌리엄은 보지 못했던 화재사고였다.
“소방서 조사로는 방화로 결론지어졌습니다. 불이 붙을 만한 게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죠.”
불이 완전히 사그라진 후, 새까맣게 탄 집의 이곳저곳을 찍은 사진들이 보였다.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다친 사람은 없나요?”
“네. 다행히도 다들 출근한 상태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화이트 블러드, 루크 메이너드가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방화라면 밤에 저지를 텐데…….”
팬텀, 로건 테이트도 동의했다. 물론 낮에 일어나는 방화사건도 드물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에는 어두운 밤이 적합했다.
“요즘 화재사고가 많이 일어났네요.”
화재사건이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노트북으로 체셔캣과 함께 화재사건들을 중심으로 조사하던 매드해터가 말했다.
체셔캣이 즉시 분석해서 그래프로 만들어 모니터에 띄웠다. 눈에 띄게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보는 이레귤러스 멤버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퍼스트가 인지한 첫 번째 사건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버서커의 물음도 이어졌다.
테일러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매드해터의 말대로, 이 사건 이후로도 화재사건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전부 방화였죠. 연쇄방화범으로 경찰에서 조사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영상이 발견되었죠.”
딸각, 스위치를 누르자 영상이 나타났다. CCTV였다.
어두운 밤인 듯, 화면으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보였다. 가게들이 있는 곳이라서 CCTV가 있었던 것 같았다.
“여길 봐주세요.”
테일러 국장이 화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CCTV 영상 속 한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곧 네모난 픽셀 하나가 번쩍이더니, 점점 커져 끝내 커다란 불이 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도 없던 곳에서 갑자기 불이 생겨난 것이었다.
분명 방화인데, 아무도 없다?
“……난 아니야.”
지레 찔린 팬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팬텀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순 있겠군요.”
투명화.
나이트 진의 말에 이레귤러스는 모두(팬텀마저도) 동의했다.
“네. 그래서 저희 퍼스트가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팬텀을 조사하기도 했지만, 그건 비밀이었다.
하지만 매드해터가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벌써 관련 보고서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래도 말하지는 않을 터였다. 매드해터는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니까.
테일러 국장이 말을 이었다.
“사건 현장은 그대로 보존된 채로 저희 퍼스트에 인계되었고, 조사를 하던 도중 이걸 발견했습니다.”
모니터로 사진이 나타났다.
찾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조각이었다.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화재를 일으킨 원인입니다. 폭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폭발성은 전혀 없고 불만 일으키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그에 이레귤러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버서커가 말했다.
“흔적이 이 정도밖에 남지 않은 걸 보면 타이머 기능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매드해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타이머 기능이 있었다면 기계의 부품이 남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 퍼스트가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죠.”
“그럼 저기에 범인이 있었다는 건데…….”
투명화 능력을 가진 팬텀이 미간을 찌푸리며 체셔캣이 반복해서 틀어주는 CCTV 영상을 바라보았다.
같은 투명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 볼 수는 없는 모양인지 아니면 투명화 능력이 아닌 건지, 불이 시작될 때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네. 저희도 그렇게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다른 쪽으로 영상이나 현장을 조사했죠. 그 결과,”
테일러 국장이 스위치를 누르자 모니터에 지도가 나타났다.
화재사건이 일어난 가게가 있는 뉴욕주 퀸즈의 지도였는데, 가게의 위치로 보이는 곳에 붉은색의 원이 반짝이고 있었다.
“현장에 특이한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