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40화
그에 테일러 국장은 그 소리를 무시하면서 윌리엄을 관찰했다. 다행히도 윌리엄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손님 중 하나가 실수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윌리엄은 이미 이곳에 있는 모두가 퍼스트의 요원이라는 것을 눈치챈 상태였다.
“일반인이라기엔 작년 사건 때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테일러 국장의 말에 윌리엄이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에 그때 절 본 요원님이 계시는 거군요. 하긴 그 모습을 보면 일반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긴 하죠.”
윌리엄의 말에 테일러 국장과 그 옆에 서 있던 요원, 그리고 손님으로 분장하고 있던 요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눈치챘어요, 윌리엄?”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퍼스트 요원님들이라는 거, 말이죠?”
“……이 모습만 봐도 일반인이라고 생각하긴 힘들죠.”
쓰게 웃으며 말하는 테일러 국장의 모습에 윌리엄이 볼을 긁적였다.
“단어 선택을 잘못한 것 같네요. 제 말은, 제가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게 아니라서 다른 히어로분들과 합을 잘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되면…… 큰일이니까요.”
빌런에게 납치당해 쉐도우맨을 위험에 빠뜨렸던 작년 그 사건 때처럼.
쉐도우맨이 살아 돌아왔음에도 그날은 윌리엄의 마음속에 낙인처럼 남아 있는 상태였다.
“쉐도우맨과 함께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윌리엄을 아끼는 쉐도우맨이 그렇게 설렁설렁 훈련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테일러 국장의 말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림자와 함께 싸우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가장 먼저 배운 건 그림자를 이용해 도망치는 법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힘이 다 떨어져서도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게.
자신의 이야기에 테이블 위에 나타나 있던 제이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제이를 보고 작게 웃은 윌리엄이 테일러 국장을 바라보았다. 착실하고 반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저 혼자 싸우고 피하는 건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만 다치고 자신만 위험한 것은 괜찮았다.
쉐도우맨에게 ‘계승’받아 나이트 진이 된 이후로는 문제를 해결할 힘도 충분했다. 테일러 국장이 혼자서 히어로로 활동하라고 한다면 바로 승낙했을 터였다.
하지만 테일러 국장이 제안한 것은 팀.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다른 이들이 다친다고 생각하니, 얼굴도 보지 못한 히어로들이지만 걱정부터 불쑥 솟아났다.
“하지만, 팀으로 활동한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죠. 동료와 함께한다면 동료까지도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장님은 저한테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걱정이 깃든 그 말에 테일러 국장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나이트 진. 훈련이 필요하다면 퍼스트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할 히어로들은 그렇게 약한 사람,”
음.
한 명은 사람이 아니긴 했다.
“약한 이들이 아닙니다. 각자 충분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팀으로서 활동한다면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잘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 퍼스트도 도와드릴 거고요.”
하긴 운동할 때도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히어로들이잖아.’
히어로라면 가장 먼저 쉐도우맨을 떠올리는 윌리엄은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이트 진이 믿음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을 구하는 데 저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그에 퍼스트 국장이 답했다.
“이레귤러스의 멤버가 된 걸 환영합니다, 나이트 진.”
* * *
다음 날.
서준은 루카스 터너와 함께 세트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늘 촬영할 장소는 퍼스트 본부 세트장이었는데, 사무실 하나가 아니라 연구실이나 다른 방들에 복도들까지, 아예 한 층을 통째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쉐앤나]를 촬영할 때 여기서 한 적도 있으니 놀라지는 않았다.
“엄청 크네요.”
퍼스트 본부 세트장에 온 적이 없는 루카스 터너는 그 규모에 놀란 모습이었다.
[팬텀]에 퍼스트 본부가 나오기는 했지만 팬텀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니라서, 오늘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준. 루카스.”
서준이 마치 퍼스트의 요원이 된 것처럼 루카스 터너에게 이곳저곳을 알려주고 있을 때 말릭 스펜서가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랜스 레먼과 테사 해리슨도.
“다들 일찍 왔네!”
거기에 여기 있는 히어로들의 솔로무비에 잠깐씩 등장하면서 친해진 퍼스트 국장 역의 소피아 켈리까지 왔다.
주연배우들이 모두 나타난 것이었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오늘 촬영할 장면이 바로 이레귤러스 멤버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이미 뉴욕에서 전투까지 했지만.”
“하하.”
말릭 스펜서의 말에 서준과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뉴욕에서 한바탕했는데 다시 처음 보는 척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웃겼지만, 원래 영화촬영이라는 건 그런 거였다.
“그럼 이제 촬영 준비하러 갈까?”
잠시 후.
분장을 마치고 나온 배우들 중 서준과 소피아 켈리가 먼저 촬영을 하기 위해 세트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배우는 곧 들려오는 ‘액션’ 소리에 맞춰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루카스 터너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몰입해서 연기하는 서준의 모습은 역시나 대단했다.
하지만 이제 무작정 부러워하지만은 않는다.
서준에게 서준의 연기가 있다면 자신에게는 자신의 연기가 있다는 걸 아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하는 서준의 모습을 홀린 듯 보게 되는 건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로서, 서준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루카스 터너는 생각했다.
‘나 말고도 그러니까.’
강렬한 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세트장에서 눈을 떼지 않는 다른 배우들과 감독, 스태프들을 보며 작게 웃던 루카스 터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세트장 위에서 빛나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 * *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
윌리엄은 팀 멤버들을 소개해 주겠다는 테일러 국장의 말에 퍼스트 본부에 온 상태였다.
“작년이랑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작년 외계에서 온 기생물체, 아로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한 번 퍼스트 본부에 들렀던 적이 있는 윌리엄이 조금 달라진 본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역시 눈썰미가 좋군요.”
앞서 걸어가던 테일러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퍼스트에서는 새로 생긴 최신 기술을 그때그때 적용하고 있습니다. 퍼스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술력도 있지만 레드본에게도 도움을 받고 있죠. 또 나이트 진 당신과 같은 이레귤러스의 멤버인 매드해터의 도움도 말이죠.”
매드해터.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들었던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다른 히어로들인 버서커와 화이트 블러드, 팬텀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히 들었다.
‘뱀파이어라니…….’
그것 참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은 이야기였다.
‘외계인도 있으니까.’
영상으로만 봤던 나트라 행성인들이나 다른 히어로들과 싸우던 빌런들.
그리고 자신의 발아래에서 꿈틀거리며 두 번째 오는 퍼스트 본부를 구경하는 그림자 제이도 있고 말이다.
“여깁니다. 윌리엄.”
제이를 보며 웃던 윌리엄이 테일러 국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테일러 국장은 한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레귤러스의 회의실이죠.”
윌리엄은 조금의 긴장감을 느끼며 그 문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자신과 한팀이 될 히어로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어떤 사람들일까.’
기대와 설렘과 함께, 문이 열렸다.
“컷! 오케이!”
복도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곧바로 다음 촬영으로 이어졌다.
윌리엄이 오기 전, 먼저 도착한 네 명의 히어로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물론 이 네 명의 히어로들도 오늘 처음 보는 거였다.
서준과 소피아 켈리가 세트자에서 내려오고 네 배우가 세트장 위로 향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마크 감독이 모니터를 살폈다.
배우들을 살펴보고, 한 번 더 루카스 터너를 보았다. 다른 배우들보다 신경 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이렇지 않을까.
그래도 준이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모니터를 보러 자신의 옆으로 온 서준의 인기척을 느낀 마크 웨버 감독이 작게 웃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레디, 액션!”
* * *
화이트 블러드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루크 메이너드는 잠시 회의실 안을 살펴보았다.
정면에는 벽을 가득 채운 모니터와 컴퓨터가 있었고 그 앞에는 아마도 매드해터로 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었다.
왜 아마도라고 하냐면 아직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모니터에 고양이가 나오는데, 게임인가?) 매드해터에게서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덩치가 큰 흑인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퍼스트에서 지내면서 몇 번 스쳐 지나간 적이 있는데 분명 버서커였다. 오른손만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싶었다. 이젠 손가락을 하나씩 떼기까지 한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백인 청년이 보였다.
뭐, 루크 메이너드에게는 70세 노인을 데리고 와도 어리긴 했지만.
이 청년은 아마 나이트 진이나 팬텀 중 하나일 것 같은데, 그림자 대신 염력을 써서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보니 팬텀인 것 같았다. 팬텀은 휴대폰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신체 능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루크 메이너드에게는 다 들렸다.
욕이었다.
‘이것 참.’
개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루크 메이너드가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그냥 어깨를 으쓱이고는 들고 온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성경이었다.
‘성경이라니.’
루크 메이너드가 히어로들을 살펴본 것과 마찬가지로 팬텀, 로건 테이트 또한 휴대폰을 하면서 멤버가 될 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직 학교도 졸업 못 한 고등학생에, 이런 곳에서 성경을 읽는 뱀파이어라니.
그래도 버서커라는 군인은 좀 마음에 들었다.
그런 둘과 달리, 버서커는 다른 사람들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멤버가 되든 그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됐다.
매드해터, 앨리스 잭슨은 다른 이유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퍼스트 컴퓨터를 털어 멤버들에 대해 모두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모자라서 뚫지 못한 정보도 있긴 했다.
‘나이트 진.’
아직 오지 않은 히어로에 대한 정보였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조사해 봐야 할 듯했다. 물론 퍼스트에 들키더라도 이레귤러스에 소속된 이상 큰 문제는 없겠지만.
‘없겠지?’
물론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매드해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매드해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었다.
그때, 체셔캣에게서 작은 메시지가 왔다.
>체셔캣: 버서커에 대해 확인된 건 팔하고 다리뿐이야.
버서커의 몸 일부분(어쩌면 그 이상)이 기계라는 사실은 앨리스 잭슨의 지식욕을 확실하게 건드려 버렸다.
>체셔캣: 나머진 자료가 아예 없어.
하지만 아무리 앨리스 잭슨이라고 하더라도 없는 자료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슬쩍 버서커를 바라보는 매드해터의 눈이 번뜩였다.
그걸 알아차린 듯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던 버서커가 몸을 바로 세웠다.
그 큰 움직임에 지레 놀란 앨리스 잭슨이 움찔했지만, 앨리스 잭슨의 시선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버서커였다.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왔군.”
그말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테일러 국장과 함께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자신이 감시해야 하는 저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