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39화
서준은 소피아 켈리와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스튜디오 안은 한창 촬영 준비로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카메라들과 조명이 설치되어 있고 스태프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앙에 잠시 후 서준과 소피아 켈리가 올라갈 세트장이 보였다.
바테이블은 물론이고 아늑한 의자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는, 어디 개인 카페처럼 보이는 세트장은 당장에라도 영업을 해도 될 것같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준. 소피아.”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고 있던 마크 웨버 감독이 웃으며 두 배우를 반겼다.
“첫 촬영이죠? 오늘 촬영 잘 부탁합니다, 소피아.”
“저도 잘 부탁드려요, 감독님.”
“준은 컨디션 어때? 피곤하지는 않고?”
“걱정 마세요. 아주 좋아요.”
마크 감독은 서준의 대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준의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겠냐는 듯, 눈동자에 신뢰가 가득했다.
그 후에는 LA에서의 첫 촬영을 보기 위해 들른 마린사 담당자가 와서 인사를 하며 서준에게 아주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그에 소피아 켈리가 작게 웃으며 속닥거렸다.
“무슨 일이 있긴 했구나?”
그것도 준과 관련된 일이.
“하하.”
서준은 그냥 웃기만 했다.
“소피아!”
“그럼 난 준비하러 가 볼게, 준.”
“네. 잠시 후에 봬요.”
준비할 게 많은 소피아 켈리는 분장실로 향했고, 소피아 켈리보다 여유가 있는 서준은 오늘 함께 촬영할 단역 배우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장면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없었지만, 함께 세트장에 올라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것만 해도 같이 연기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아, 아! 네!”
갑작스러운 서준의 인사에 놀랐던 단역 배우들이지만 이내 상기된 얼굴로 서준과 악수를 나누었다.
마침 서준 리의 연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지라, 단역배우들의 움직임이 좀 뻣뻣했다. 다행히도 ‘진짜 잘한다고 하더라.’ 하는 칭찬과 ‘직접 보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담긴 대화였다.
그렇게 인사를 한 후, 서준은 분장을 위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쉐앤나] 때도, 뉴욕 촬영에서도 분장을 맡아 해주었던 스태프들이 서준을 반겼다.
잠시 후.
촬영 준비가 끝나갈 무렵.
준비를 끝낸 배우들이 하나둘 촬영장에 나타났다.
퍼스트의 국장 역의 소피아 켈리와 요원 역을 맡은 단역 배우가 검은색 일색의 복장으로, 힘이 빡 들어간 분장을 한 상태였다.
“우린 뭐 분장할 것도 없네.”
“그러게.”
요원이지만 일반인 복장을 입은 단역배우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옷 스타일이 좋아진 것 빼고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대로 밖에 나가도 아무도 배우(단역이지만)라는 걸 몰라볼 게 분명했다.
“리도 대학생 분장이라던데.”
“그럼 우리랑 별로 다를 게 없는 거 아니야?”
그와 동시에 대기실에서 서준 리가 나왔다.
“……완전 다른데?”
서준 리는 평상복을 입고 있어도 반짝반짝 빛나, 누가 봐도 배우 같았고 스타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도 모든 진가가 드러나는 모습은 아니라는 걸, 단역 배우들은 아직 몰랐다.
서준 리의 반짝임은 연기를 할 때 더욱 빛이 나기 때문이었다.
* *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의 외침에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점검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물러나고, 배우들이 세트장 위로 올라갔다.
마크 웨버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세트장 밖이나 안이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이제 곧 세트장 안은 이곳과 별개의 세계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마크 웨버 자신의 손에 의해 완성되겠지.
창조.
일개 인간이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굉장히 짜릿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캐릭터의 생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 큰일 날 뻔하긴 했지만…….’
루카스 터너를 떠올린 마크 웨버 감독이 쓰게 웃었다. 앞으로는 감독으로서 주의해야 할 것 같았다.
마크 웨버 감독은 고개를 들어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준 배우가 보였다. 정말 고마울 뿐이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다른 때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배우의 연기를 온전히 담아내고 더 멋지게 저 세계를 완성하고 싶었다.
“카메라 체크!”
“조명 체크!”
마크 웨버 감독의 지시 아래, 별개의 세계가 된 세트장 위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 마크 감독이 외쳤다.
“레디,”
그에 세트장 위에 있던 서준이 집중했다.
앞 장면은 이미 뉴욕에서 찍고 왔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 지금의 장면과 이어붙여야 했다.
시간의 흐름대로 이어지지 않는 감정의 변화는 처음 촬영하는 배우들에게는 힘든 일일지도 모르지만, 여기 있는 건 베테랑 배우 서준 리였다.
“액션!”
그렇게 서준 리는 윌리엄 리가 되었다.
* * *
뉴욕의 한 대학교.
어느 대학이 그러하듯 이곳 또한 시끌벅적했다.
강의 시간에 늦어 강의실로 달려가는 학생부터 지친 표정으로 산더미 같은 과제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걸어가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 학생, 그리고 수업이 모두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까지.
“윌리엄!”
그중에는 올해 입학한 윌리엄 리도 있었다.
“지금 가는 거야? 강의는?”
“오늘은 다 끝났어. 오후 수업이 있긴 했는데, 교수님이 학회에 가셔서 말이야.”
“오! 그래?”
“그럼 우리랑 같이 농구할래? 마침 사람이 한 명 부족했거든.”
고등학생 때도 그랬듯, 대학에서도 윌리엄 리는 나이, 성별, 학년을 가리지 않고(심지어 교수님들까지도) 모두와 친한, 대단한 친화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한 데다가 사람을 좋아하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윌리엄 리는 누구라도 눈이 갈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어두운 그늘은 전혀 없는, 밝음으로만 이루어진 사람 같았다.
“그럴까?”
윌리엄이 그렇게 대답하려던 때,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한 윌리엄이 이내 미안한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미안. 할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는 윌리엄에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같이 농구를 하기로 약속하고 친구들과 헤어진 윌리엄은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였는데, 어떤 장소와 함께 모를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FIRST]
자신의 우상, 쉐도우맨과 히어로들이 ‘어셈블’이라는 이름으로 소속되어 있는 지구 방위 기관, 퍼스트였다.
“장난은 아니겠지? 제이.”
윌리엄의 낮은 속삭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림자가 고개를 갸웃하듯 기울었다.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려 그 그림자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형태로 대화하는 게 익숙한 둘이었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윌리엄은 작년 공원에서 쉐도우맨의 소식을 전해주었던 퍼스트의 국장, 테일러 워런을 떠올렸다.
“그때도 알아서 찾아오긴 했지.”
아마 자신에 대해서 조사를 했을 터였다.
문자를 보내온 시간도 그렇다.
평소라면 강의를 듣고 있을 시간인데, 어떻게 알고 문자를 보냈겠는가.
원래 학회에 가기로 한 교수가 갑자기 사고가 나, 윌리엄의 수업을 맡은 교수가 대신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윌리엄도 조금 전에 들었으니, 장난 문자였으면 알지 못했을 일이었다.
‘아마 지금도 주시하고 있겠지.’
윌리엄은 구경하는 척하며 주변을 살폈다.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윌리엄이 이내 조금 민망한 듯한 볼을 긁적였다. 평범하게 자란 자신이 훈련을 받은 퍼스트 요원들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 볼까, 제이?”
퍼스트.
윌리엄은 조금 들뜬 얼굴로 문자에 적힌 장소로 향했다.
* * *
딸랑-
문자에 적혀 있는 장소는 윌리엄의 생활반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어느 개인 카페였는데, 문을 열고 발을 내딛자마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윌리엄은 저도 모르게 빠르게 카페 내부를 살폈다.
다른 카페들처럼 커피나 음료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는데도, 신경이 쓰였다.
묘하게 각이 잡혀 있달까.
“손님?”
“아, 네.”
말을 걸어오는 직원마저도 그랬다.
……아하.
윌리엄은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었다. 그런 윌리엄의 모습에 오히려 직원이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에 일행이 있어서요.”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카페는 평범하면서도 조금 특별했는데, 안쪽에 창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테이블이 있었다.
거기에 작년 공원에서 만났던 퍼스트의 국장, 테일러 워런과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이 있었다.
“잘 지냈나요, 윌리엄?”
테일러 국장이 손을 내밀자, 윌리엄이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작년 테일러 국장과 만났을 때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네. 전 잘 지냈어요. 국장님은 잘 지내셨어요?”
테일러 국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잘 지내고 싶은데, 영 도와주질 않네요.”
그에 윌리엄이 고개를 갸웃했다.
운석으로 퍼스트의 이름이 종종 나왔던 작년과 달리, 뉴스나 기사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도 전부 파악한 것은 아닌데다가 윌리엄도 아직 퍼스트 소속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윌리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이라는 말은…….”
“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테일러 국장이 진중한 얼굴로 윌리엄 리, 아니, 나이트 진을 바라보았다.
“나이트 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버서커에게는 싸움터를, 화이트 블러드에게는 안전한 장소를, 매드해터에게는 연구실을, 팬텀에게는 돈을 제공했지만.
나이트 진에게는 도움을 청하는 테일러 국장이었다.
그건 ‘현재’의 나이트 진에게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이었다.
나이트 진.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그 이름은 윌리엄을 설레게 만들었다. 또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걸 느꼈는지 그림자에서 제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쉐도우맨의 파트너에게 익숙한 테일러 국장이 제이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윌리엄을 보고 말을 이었다.
“퍼스트는 어셈블의 뒤를 이을 단체를 새롭게 만들 예정입니다.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며 현재 4명이 모였습니다. 나이트 진, 당신이 마지막 자리를 채워주셨으면 합니다.”
어셈블의 뒤를 잇다니.
상상도 못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우상인 쉐도우맨을 생각하면 단번에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제이와 함께 쉐도우맨 같은 히어로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히어로가 되기 위해 야구선수가 되지 않고 대학에 온 것이니까.
사람들을 돕는 것도 좋았다.
자신이 쉐도우맨을 보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자신은 보람을 느꼈으니까.
윌리엄 안의 저울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졌지만, 걸리는 게 있는 듯 완전히 기울지는 않았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저한테 제이가 있고 제가 운동신경이 좋긴 하지만…… 일반인이잖아요.”
어디서 작게 쿨럭-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