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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38화 (93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38화

“그래. 영화 촬영은 언제까지 한다고 했었지?”

“5월 말쯤에 끝나요. 아무래도 LA에서는 스튜디오 촬영만 해서 빨리 찍거든요.”

우리 킴 국장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루카스 터너의 일이 있긴 했지만, 스케줄이 변경됐을 뿐 [이레귤러스]의 촬영 기간은 비슷했다.

“그 친구는 괜찮아?”

마침 우리 킴 국장도 루카스 터너가 떠올랐나 보다.

하긴. 경찰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이었으니,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 괜찮아요. 촬영에 지장을 줬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긴 하지만, 몸 관리도 확실히 잊지 않고 있거든요.”

살수차의 물을 맞는 비가 오는 장면에서도 몇 번이고 리테이크를 할 만큼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몸이 상할 정도로 연기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함께 촬영하는 배우와 매니저, 감독의 말을 들으며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들었다.

친구로서 얼떨결에 매니저로 일하게 된 (관심이 있긴 했지만) 코너 밀스도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잘했고, 나머지 촬영도 잘할 거에요. 저 말고도 조언을 해줄 사람도 생겼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우리 킴 국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준이 너도 촬영 잘하고. 또 몸이 제일 우선이라는 거 잊지 말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 있으면 나라나 태우 씨한테 꼭 말하고.”

“그럴게요.”

“문제가 생기면 삼촌한테 말해. LA경찰국하고도 잘 아는 사이니까.”

진짜 ‘한마디’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봐서 그런가.’

이십 대 중반이 된 지금도 마냥 아이처럼 대하는 우리 킴 국장에 서준은 하하 웃고 말았다.

* * *

이틀 후.

뉴욕에서 출발한 서준과 최태우는 LA에 도착해 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최태우가 눈앞의 집을 바라보며 서준에게 말했다.

“서준아, 확실히 여기가 더 편한 것 같지?”

“그러게요.”

서준도 익숙한 집을 보며 동의했다.

뉴욕에 있는 숙소도 괜찮았지만, 역시 LA에 있는 집이 훨씬 집 같고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앞으로 2달가량 머무를 집으로 들어간 서준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짐을 풀고는 잠시 쉬다가 거실로 나왔다.

“태우 형, 이제 가요.”

뉴욕과 LA 사이에 시차가 있긴 한데 3시간뿐이라 적응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생생하다 못해 빛나는 서준의 모습에 최태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시작할 시간도 됐고.”

서준의 지인들이 나오는 영화 [운명]을 보러 갈 예정이었다.

밖으로 나온 서준과 최태우가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앉은 서준이 신나게 이야기했다.

“사람들 평도 좋고 평론가들 평도 좋대요. 예매율도 지금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제일 좋고요!”

그 모습을 보니 [운명]이 개봉하는 날, ‘개봉날 봐야 하는데!’ 하고 아쉬워하던 서준의 모습이 떠올라, 최태우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운명]은 며칠 전 개봉했지만 서준은 촬영 중이라서 볼 시간이 없었다. LA에서도 내일부터 촬영이라, LA에 도착한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영화관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니, 시간이야 많지.’

촬영하는 중에도 쉬는 날은 꽤 있었다.

‘서준이가 최대한 빨리 보고 싶어해서 그렇지.’

완전 재밌겠다! 하고 들뜬 서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최태우가 작게 웃었다.

“지석이 형한테 들었는데, 형도 지금 홍보 행사 돌고 있대요.”

“응? 이지석 배우님은 카메오 아니었어?”

분명히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와 아는 사이라서 카메오로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의아해하는 최태우의 모습에 서준이 키득키득 웃었다.

“운명 감독님이랑 송문석 작가님이 대본 수정했다고 했잖아요.”

“응. 그랬지.”

“수정하다 보니까 지석이 형이 맡은 캐릭터의 분량이 조금 늘었대요. 게다가 지석이 형이 연기한 캐릭터가 인상 깊어서 아무도 카메오인 걸 모른대요.”

아하.

그에 최태우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라? 이지석 카메오였어??

=뭐? 카메오??

=ㅇㅇ캐릭터 이름이 끝까지 안 나와서 찾아봤더니 카메오래ㅋㅋ

=그래서 분량이 적었구나.

=그래도 일반적인 카메오보다는 많음ㅋㅋ

=개봉하기 전에 기사로 떠서 카메오구나 생각했는데 영화보니까 ??? 함ㅋㅋㅋ

-왜 이름이 안 나오냐고ㅠㅠ 주인공도 좋은데 이지석 캐도 존좋.

=이지석 인생캐 아니냐고.

=그러기엔 인생캐가 넘많ㅋㅋㅋ

-영화사도 이지석 캐 인기 많은 거 아나봐ㅋㅋ 이지석 영화 홍보하러 같이 돌아다니고 있네.

=개봉 전 시사회 때 이지석 캐가 인기 많았음.

-이지석(무대인사 참여중): ……저도 제가 여기 왜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앜ㅋㅋㅋ

=운명 배우들 웃고 있는 거 너무 웃김.

>이지석: 이게 맞는 거야?

>이지석: 나 카메오인데?

서준에게 황당함이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이지석은 [운명]팀과 함께 신나게 전국으로 홍보를 다니고 있었다. 영화 홍보를 위한 예능에도 출연했다고 들었다.

-이지석ㅋㅋ 운명 배우들이랑 워킹맨 나온대ㅋㅋ

=박시영이랑 같이 나온다니까 이서준 이야기 백퍼 나올 것 같음.

=할리우드 이야기도 해주면 좋겠다!!

=운명 편이니까 운명 이야기해주라.

-카메오인데 이래도 됨? 출연료도 못 받지 않나?

=ㄴㄴ카메오 출연료 받음

=특별출연 출연료ㅇ 우정출연 출연료x

=게다가 필모에도 들어가잖아. 홍보 다녀서 성적 좋게 나오면 이지석한테도 좋지.

=22 운명 심상치 않음.

사람들의 말대로 개봉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운명]의 성적은 심상치 않았다.

“개봉 전부터 예매률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원작 소설이 재미있잖아요.”

물론, 대본 수정 이야기가 유출되어서 원작을 망친다니 뭐니 이야기가 있긴 했었지만([이클립스]만 봐도 그렇긴 했다.), 그 대본 수정에 원작자인 소설가 송문석이 참여했다는 이야기에 반응이 바뀌었다.

-송문석 참여?!

=이건 외전이다. 작가 공인 외전!!

=ㅠㅠ오히려 좋아!!

그리고 그 기대대로 수정된 영화 [운명]은 원작 소설의 팬들에게도,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다.

“소설도 엄청 팔리고 있대요.”

-영화랑은 달라서 재미있음.

=비슷한 점들도 많더라.

=이스터에그 찾는 재미가 있음ㅋㅋ

-뭔가 생존자들 소설판, 영화판 같아서 웃김.

=생존자들ㅋㅋㅋ

-앞으로 영상화할 때 내용 바꿔서 하려면 원작자는 꼭 참여해야 할 듯.

=22 내용 바꿔서 영상화 잘된 걸 본 적이 없는데.

=33 운명이 처음인 듯.

-근데 내용 안 바꿔도 망하는 영화 많음.

=……그건 그럼ㅠㅠ

하여튼.

인터넷이 떠들썩할 정도로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래도 그중 가장 많은 이야기는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석이 형 말로는 나중에 관객 수가 좀 떨어지면 대본을 수정하게 된 비하인드도 푼대요.”

영화 개봉 전에도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대본을 수정했습니다!’하고 홍보할 수도 있었지만, [운명] 제작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반응이 걱정되었으니까.

‘그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 삐딱한 시선이 쏟아졌을 터였다. 이서준이나 다른 유명한 배우도 아니고.

반대로 ‘오, 그래?’ 하고 기대해도 문제였다. 기대가 너무 높으면 실망도 큰 편이니까.

-주인공 연기 잘하더라.

=22 나도 모르게 집중함.

-다른 작품 출연한 거 뭐 있어?

=드라마랑 영화랑 꽤 한 듯?

=연극도 했나봄.

하지만 사람들에게 연기력을 인증받은 지금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패였다.

아마 며칠 후면 신나게 홍보 기사를 뿌려댈 터였다.

최태우가 감탄했다.

“그러면 진짜…… 천만 가겠는데?”

천만 영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긴 했지만, 그럼에도 배우에게는 매우 뜻깊은 단어였다.

“영화를 봐야 알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많은 작품들을 흥행시킨 서준에게도 그랬다.

대중들이 재미있게 봐준 영화. 대중들의 인정을 받은 영화.

사람들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배우들에게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터였다.

‘아마 운명의 배우들도 그렇겠지.’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 곧 보게 될 영화가 정말 기대되었다.

* * *

“완전 재미있었어요! 지석이 형!”

-으하하하! 그래?

[운명]을 보고 온 서준이 신나게 이야기했다. 휴대폰 건너 이지석도 으하하하 웃으며 좋아했다.

-서준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천만 가겠는데?

“운명 쪽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래. 배급사랑 제작사도 다들 신나서 홍보일정 잡더라. 나보고 또 오래.

쉴 시간이 없다고, 기분 좋게 한탄하는 이지석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분명 종호 삼촌에게도 잔뜩 자랑하고 있을 터였다. 눈에 훤히 보였다.

“배우분들도 좋아하죠?”

-다들 필모에 천만영화 들어갈지도 모른다니까 엄청 좋아하더라. 시영이도.

친구 박시영의 이야기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준의 친구였던 만큼 가끔 이지석을 보기도 했고, 서준이라는 공통화제도 있었으니 금세 친해졌다고, 박시영에게 들었다.

“안 그래도 단톡방이 시끌벅적해요.”

서준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조용했었는데, 영화를 봤다고 하니까 [운명]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스포일러를 조심하기 위해 조용히 있었던 듯했다.

-근데 김칫국 마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아쉽게 999만 되는 거 아니야?

서준이 하하 웃었다.

그렇게 아쉽게 천만이 못된 영화도 꽤 있긴 했다.

“그래도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어떤 점이?

웃으며 묻는 이지석에 서준이 영화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좋았던 장면들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진심이 가득했다. 영화를 겨우 한 번 봤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세하고 정확했고, 또 색다른 시선이었다.

-배우들한테 말해줘도 돼? 서준이 네가 그렇게 말해줬다고 하면 엄청 좋아할걸. 네 팬들도 있어. 옛날부터 좋아했다고 하더라.

“하하. 네. 괜찮아요.”

좋아한다면 다행이었다.

‘내 팬이라…….’

문득, 루카스 터너가 떠올랐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서준의 팬이며 서준의 영화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하던.

얼떨결에 덕밍아웃을 해버리고만(그것도 배우 본인에게) 루카스 터너는 마른세수만 했고, 친구 코너 밀스는 으하하핳 웃음을 터뜨렸었다.

‘한국에도 있지.’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종종 배우가 된 계기가 서준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성인 배우도 종종 있었고, 아역배우들은 십중팔구였다.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나중에 한번 소개해 줄게. 다들 좋은 배우들이거든.

“네. 저도 꼭 만나고 싶어요.”

이지석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우니까 말이다.

* * *

다음 날.

오늘은 LA에서 하는 [이레귤러스]의 첫 촬영날이었다.

야외에서 촬영했던 뉴욕과는 달리 LA에서는 대부분 스튜디오 내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야외 촬영도 있긴 했는데, 그것 또한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진행될 계획이었다.

“잘 지냈어, 준?”

“네. 소피아도 잘 지내셨어요?”

서준은 오랜만에 만나는 퍼스트 국장, 테일러 워런 역을 맡은 소피아 켈리와 인사를 나눴다.

“뉴욕에서 일이 좀 있었다며?”

“네. 근데 지금은 괜찮아요.”

서준의 말에 소피아 켈리가 조금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고가 없으면 할리우드가 아니지.”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배우다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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