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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37화 (93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37화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들은 서준과 두 사람도 웃고 말았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웨이터가 준을 알아본 것 같지?”

코스 요리라서 웨이터가 드나들고 있었다. 모자도 벗고 있는 데다가 딱히 신경 쓰지 않은 터라, 웨이터가 서준을 알아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도 딱히 신경 안 쓸걸. 여기 유명인도 많이 오는 것 같더라. 아까 밖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

그레이스의 말에 사라 웰튼이 웃으며 홀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가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한창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가수였다.

“그건 모르지. 웨이터나 여기 직원들 중에 준의 팬이 있을지도.”

그레이스의 말대로.

‘서준 리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 속에 있던 새싹이 발을 동동 구르며 ‘바꿔달라고 할까? 아니, 아니야. 백 프로 실수할 거야.’ 하고 혼자 갈등하다가 이내 ‘나갈 때 봐야지!’ 하고 결정을 내렸지만, 서준과 친구들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는 맛있는 요리와 즐거운 이야기와 함께 점점 무르익었다.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잠깐 울렸다.

메시지였다.

“아, 잠시만요.”

서준이 휴대폰을 보았다.

“급한 연락이야?”

“아니, 그건 아니고.”

서준이 웃으며 찰리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 친구가 출연한 영화가 곧 개봉한대.”

“와! 잘 됐네!”

그 이야기에 찰리와 웰튼 자매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 서준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그런지 친근했다. 영화도 봤고.

“무슨 영화야? 미국에서도 개봉해?”

“상영관이 좀 적겠지만 미국에서도 개봉할 것 같아요.”

서준은 웃으며 친구 박시영이 출연한 영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원래는 나한테 들어온 작품이거든. 재미있었는데, 마침 뉴 이클립스 대본을 먼저 읽는 바람에 출연은 거절했어.”

그 말에 잠깐 웰튼 자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찰리가 웃으며 웰튼 자매가 생각하고 있는 걸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럼 까딱했으면 뉴 이클립스 대신 그 영화를 찍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지.”

“……으아아. 다행이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에, 웰튼 자매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 없는 [뉴 이클립스]라니. 상상도 하기 싫었다.

“네가 출연을 고려했을 정도라면 재미있는 작품이었겠다.”

“응. 재미있었어. 코코아엔터도 투자했고.”

“오.”

코코아엔터의 영화투자팀에 대해서는 서준에게 이야기를 들었었다.

서준의 대본 보는 능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투자팀.

물론 드라마도 투자하고 있긴 하지만, 그쪽은 PPL이나 방송국 관계자들, 그리고 시청자들 반응까지 고려해서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어 투자가 드문 상태였다.

하여튼.

영화계에서 코코아엔터의 영화투자팀은 유명했다.

처음에야 연예인 소속사가 뭘 알고 투자하나 비웃었지만, (배우 이서준의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긴 했다.) 지금은 ‘여기 코코아엔터도 투자했습니까?’ 하고 묻는 게 평범한 일이 될 정도로 작품을 보는 눈이 좋았다.

구 사옥에 있을 당시 이서준 배우 전담 2팀 직원이었던, 현재는 영화투자팀 팀장이 된 직원에게도, 그 휘하의 부하직원들에게도 스카우트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코코아엔터만큼 일하기 좋은 곳은 없다며 아무도 가지 않았지만.

그정도로 투자 성적이 좋았다.

신인감독의 작품부터 중고신인 감독, 유명 감독의 작품까지.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서준이 좋다고 한 작품들과 투자팀에서 고른 작품들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대신 조건이 걸려 있긴 했다.

바로 대본 수정에 대한 것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대본을 보고(감독이나 제작사에 대해서 조사도 하지만) 투자하는 만큼 투자팀은 대본을 중요시했다.

물론, 좀 더 좋은 내용으로 바뀐다면 환영할 일이었지만, 그런 수정이 쉽게 되는 법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작에 고쳤을 거다.

투자금이 들어오면 감독은 당연히 자신의 작품이 좀 더 좋은 퀄리티의 작품이 되길 바랄 터였다.

돈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CG를 넣고, 멋진 CG를 넣게 되었으니 이왕이면 스케일도 좀 키우고,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금 MSG도 뿌려주고. 캐릭터도 부족한 것 같으니 등장인물도 늘리고, 대사도 좀더 멋들어진 걸 바꾸고.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불필요한 것들을 덕지덕지 붙이게 되는 것이었다.

영화투자팀에서 조언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본 보는 눈이 좋은 거지 새롭게 창작을 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감독은 참견이라고 느낄 터였고.

코코아엔터도 서준이나 다른 배우들의 작품에 투자사가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내로남불을 시전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투자금을 뺄 뿐.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른 투자사가 있으니 영화는 만들어지고 개봉했지만, 망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다 보니 감독들도 다른 영화투자사도 코코아엔터가 어떻게 투자하는지 알아챘다.

대본 수정하면 투자금 뺀다.

그래서 코코아엔터가 투자한다고 하면 감독들은 그 순간부터 대본에 절대 손대지 않았다.(약간의 수정 정도는 괜찮다.) 다른 투자사들도 참견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 하면.

“운명은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를 아예 바꿔 버렸거든요.”

서준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놀란 건 아무래도 소설가 사라 웰튼이었다.

주인공 나이를 바꿨을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주 큰 변화였다.

간단히 생각해 봐도 돈에 대한 십 대와 이십 대의 생각, 건강에 대한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생각이 다르지 않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의 나이가 바뀌었으니,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분위기도 달라질 게 분명했다.

더 이상 서준이 읽었던 ‘그 대본’이 아닌 것이었다.

“근데 그렇게 수정했는데도 투자했다고?”

“난 감독님이 더 굉장하신 것 같은데. 코코아엔터가 투자금을 뺀다는데도 바꾸셨다는 거 아니야.”

“그러게.”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것을 뱉어내는 세 사람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투자사들이 전부 감독님한테 매달렸대. 왜 수정하냐고.”

작년, [뉴 이클립스] 촬영을 끝내고 돌아가니, 영화투자팀 팀장이 신나게 이야기해 주었다.

보통 감독이 투자사에 쩔쩔매는데, 정반대의 상황이라면서 말이다.

“그럴 만도 하지. 그대로 만들어도 성공할 만한 영화일 테니까.”

찰리의 말에 웰튼 자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사는? 그쪽도 곤란했을 텐데?”

“제작사도 이해했다고 하더라.”

가장 돈에 신경 쓸 제작사가?

서준에게서 영화계에 대해 이것저것 들어 아는 게 많은 찰리와 영화화를 진행하면서 많이 알게 된 웰튼 자매가 눈을 깜빡였다.

“정확히는 코코아엔터가 대본 수정을 납득하고 투자금을 안 뺄 거라고 판단했대.”

“왜?”

서준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정말로 즐거운 듯 보였다.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했다고 하더라고.”

아하.

어째서 서준이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했다.

들뜬 표정의 서준이 신나게 이야기했다. 반짝이는 생기가 흘러넘쳤다.

“원래 주인공은 나랑 비슷한 나이였는데, 그 배우의 연기를 보고 나니까 삼십 대로 나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대.”

그렇다고 이전의 대본이 좋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서준이 연기했다면 이전의 대본이 베스트였을 터였다.

하지만,

“감독님은 이 배우가 연기한다면 주인공의 나이는 삼십 대가 더 잘 어울릴 거라고 판단한 거야.”

배우들이 하나둘 캐스팅되고 촬영장소도 정해지고, 이지석이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결정된 다음에도 감독은 계속 고민했다고 들었다.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그러다 결국.

‘……하자!’

바꾼 것이었다.

“그렇게 수정한 대본을 보고 영화투자팀도 그대로 투자 진행하기로 했대.”

코코아엔터가 수정한 대본으로 투자한다고?

감독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리던 투자사들도, 내심 짐작하고 있었던 제작사로서도 놀랄 일이었다.

“와…….”

대본을 바꿀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라니.

서준이 들뜰 만도 했다.

“어떻게 바뀌었는데?”

“저도 자세한 건 아직 몰라요. 이야기 듣고 영화로 보려고 대본을 안 봤거든요.”

직업상 스포일러가 익숙한 서준이었지만, 때때로는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뭐, 이미 초고(?)를 보긴 했지만.

“들어보니까 생존자들 같은 느낌이라고 했어요. 전체적인 분위기랑 결말도 바뀌고, 거기에 작은 에피소드들도 바뀐 느낌?”

서준의 설명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건지 알 것 같네.”

“나도.”

금세 이해하는 세 사람을 보며 서준이 웃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 기대하고 있는 중이야.”

서준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세 사람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보고 싶은데, 프랑스에서도 개봉하려나?”

“좀 늦긴 하겠지만 할 것 같아.”

좋은 작품은 누군가 꼭 알아볼 테니까 말이다.

“그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는 신인이야?”

그레이스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이전에는 드라마에 출연했었어. 그전에는 영화에 출연했었고.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연기력이 부쩍부쩍 느는 게 보이는 배우야.”

“오. 준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러게요. 근데 만난 적은 없어?”

찰리의 말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쉽게도. 연예계가 좁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 넓거든. 서로 촬영이 있으면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게다가 서준은 한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꼭 같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서준에 그레이스와 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 많이 들었는데.”

“맞아. 저번에 ‘당신의 곁에서’에 출연한 배우들이랑도 촬영해 보고 싶다고 했잖아.”

“‘더 도어’였나? 거기 배우들도.”

연기 잘하는 배우나 좋은 연출력을 가진 감독,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봤다 하면 서준은 항상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라 웰튼이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 전부 만나서 같이 일하려면 평생 활동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농담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럴 생각이에요.”

완전 진지하게, 진심으로 말하는 서준에, 세 사람은 감탄하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 * *

“준, 친구들이랑은 재미있었어?”

“네. 테사가 추천해 준 가게에 갔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다행이네.”

테사 해리슨이 활짝 웃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온 다음 날인 오늘은 테사 해리슨과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서준이 일하는 동안, 찰리는 서준의 숙소에 머물면서 며칠 더 여행할 예정이었고 그레이스는 종종 시간을 내 찰리를 안내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서준이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같이 놀지는 않고?”

“촬영에 집중해야죠.”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테사 해리슨도 웃고 말았다.

* * *

찰리 베르나르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고 나서도 서준의 촬영은 계속되었다.

혼자 촬영할 때도 있었고, 다른 배우들과 함께 촬영할 때도 있었는데 어느 촬영이든 재미있었다.

루카스 터너와의 연기 연습도 계속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서준이 말하지 않아도 루카스 터너가 알아서 잘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월이 되기 며칠 전.

서준은 우리 킴 국장과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짐은 다 챙겼어?”

“네. 일단 필요한 것만 챙겼어요. 나머지는 LA에 다 있거든요.”

뉴욕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나 이제 LA에 가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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