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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35화 (93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35화

잠시 후.

서준은 최태우와 함께 촬영장으로 향했다.

뉴욕에서의 촬영은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었는데, 첫 촬영날인 오늘도 그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홍보도 할 겸 보통의 촬영장보다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기 쉬운 곳이라는 것.

물론 경찰이 통제하고 있어서 일정 구역 내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촬영 내용도 그저 거리를 지나가는 정도의, 스포일러라고는 1도 없는 장면이었지만 말이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서준이 탄 차는 벌써부터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촬영 구역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가 타고 왔을 것 같은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준!”

서준이 차에서 내리자, 보안팀에게 연락을 받은 듯 마린사 담당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정말 은인을 보는 듯한 얼굴이라 서준이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

담당자는 루카스 터너에 대한 소식을 듣고 서준이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매일같이 훈련장에 나와 서준을 보며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서준의 숙소로 루카스 터너의 상태를 보러 와도 괜찮았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오지 않지만 가장 루카스 터너의 회복을 바란 이였을 터였다.

다른 배우들과 마크 웨버 감독도 그렇겠지만.

“루카스는 만나셨어요?”

“네. 아까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니, 저희 쪽에서 좀 더 지지해 줘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저희에게 팬텀은 루카스 터너뿐인데 말입니다.”

한 편으로 끝나는 영화라면 몰라도, 시리즈 영화는 몇 년이고 이어지는 프로젝트였다.

배우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게 소속사의 일이라지만, 제작사 또한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미안한 표정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서로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루카스 터너와 담당자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봤던 루카스 터너 배우의 모습이기도 하더라고요.”

그저 시간이 흘러 성격이 조금 변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다른 사람이었던 거였다.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이라니.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영화계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담당자 또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해결방법도 몰랐다. 그저 정신과 의사에게 맡기는 수밖에.

그런데, 여기 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준 배우가 있었다.

다시금, 반짝반짝한 눈으로 바라보는 담당자의 모습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준.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담당자는 서준과 최태우를 천막으로 만든 대기실까지 데려다주고 떠났다.

“준, 왔어?”

대기실 안에는 랜스 레먼이 있었는데, 의자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아주 편안해 보였다.

“그 의자가 그거예요?”

“맞아. 앉아볼래?”

보통 이런 대기실에 있는 물건들은 촬영팀이 준비하는데, 저 의자는 랜스 레먼이 야외촬영을 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의자였다. 굉장히 편하다고 들었다.

뭐, 마시는 물까지 지정해서 준비하게 하는 할리우드 배우를 떠올려 보면 본인이 가지고 다니는 의자쯤이야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차에 하나 더 있어. 비상용이야.”

“하하.”

아니. 특이한 일일지도.

서준이 웃음을 터트리며 괜찮다고 말했다.

“말릭하고 테사는요?”

“테사는 통화하는 중이고, 말릭은 마크 감독님이랑 이야기 중일 거야.”

오늘 촬영할 장면에 매드해터는 등장하지 않지만, 테사 해리슨은 첫 촬영을 구경하러 왔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루카스는요?”

테사 해리슨이야 이전부터 루카스 터너를 알고 있었지만, 말릭 스펜서나 랜스 레먼은 얼마 전에 처음 만난 배우였다.

그래서 랜스 레먼에게 루카스 터너가 어떤 이미지일지 조금 걱정이 됐다.

그에 랜스 레먼이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아까 와서 사과했어. 촬영은 일정대로 진행되니까 괜찮다고 했지.”

“LA 스케줄은 바뀌었는데요?”

“조금만 바뀐 건데, 뭘.”

랜스 레먼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연기를 좀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효율적인 걸 좋아하긴 하지만, 나도 배우니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액션 장면도 몇 개 스턴트맨한테 넘긴다고 들었거든.”

“네. 맞아요. 일단 연기에 집중해야 해서요.”

원래는 위험한 장면만 스턴트맨이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아무래도 루카스 터너는 훈련 시간이 적었다 보니 단체로 합을 맞춰야 하는 장면들 중 일부는 팬텀의 스턴트맨이 진행하기로 했다.

“연기 욕심이 많은 배우 같던데, 그렇게 한다는 건 영화에 진심이라는 이야기니까.”

랜스 레먼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 자기관리는 더 주의해야겠지만.”

“하하.”

통화를 끝내고 온 테사 해리슨도, 마크 웨버 감독과 말릭 스펜서도 랜스 레먼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에 서준이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 * *

해가 넘어가고 하늘 끝에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사이에도 [이레귤러스]의 첫 촬영은 빠르게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마크 감독과 조감독, 그리고 다른 감독들과 마린사 담당자가 가장 의욕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까딱했으면 오늘 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촬영이었으니까.

그런 윗사람들의 분위기에 스태프들도 휩쓸려 열심히 촬영을 준비했다. 그중에는 마린사 영화의 팬으로, 진심으로 즐기며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이레귤러스의 촬영을 보다니!”

스태프 말고도 있었다.

사람들을 통제하러 온 뉴욕시 경찰, 샘 리드였다.

“너 오늘 순찰 아니었어?”

“국장님이 저번 일로 바라는 게 뭔지 물어보시길래 여기 일로 바꿔달라고 했지!”

“그걸 그렇게 쓴다고?”

유급휴가의 기회를 날려 버린 샘 리드를 동료 경찰이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구경하러 오면 되잖아.”

“아니지. 그럼 멀리서 봐야 하잖아.”

어차피 통제선에서 떠날 수도 없는데…….

동료 경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준이 알아봐 줄지도 모르고!”

“글쎄…….”

사인을 남겨줄 정도로 친절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냥 잠깐 스쳐 지나간 경찰을 할리우드 스타가 알아볼까, 싶었다.

“……어?”

근데 알아봤다.

아마도 분장을 끝내고 나온 듯한 서준 리가 나타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촬영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다들 나올 것 같은 비명을 참고 있는 듯했다.

문득 샘 리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준의 팬들이 유난히 질서정연하다는.

그런 서준 리의 팬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구경하러 온 다른 이들도 조용한 상태였다.

그때 팬들을 발견했는지, 서준 리가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에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과격한 속마음들이 새어 나왔지만, 뭐, 샘 리드를 친구로 둔 동료 경찰은 익숙했다.

그러다가 서준 리와 동료 경찰의 눈이 마주쳤다.

배우라서 그런지, 오!하고 변하는 표정이 확실하게 보였다.

샘 리드와 동료 경찰을 알아본 서준 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갯짓을 했다.

“봐봐! 알아본다니까!”

“그러네.”

눈도 좋지.

경찰복에 모자까지 쓴 데다가 경찰도 한둘이 아닌데, 어떻게 알아봤나 싶었다.

그렇게 인사를 한 서준 리가 다시 고개를 돌려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배우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버서커와 화이트 블러드, 팬텀. 매드해터 역을 맡은 테사 해리슨도 있었지만, 분장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미친……!”

정말 좋아하는 샘 리드의 모습에 그 정도인가, 생각하던 동료 경찰은 턱을 긁적이고는 다시 통제 임무를 수행했다. 다들 질서정연해서 할 일이 없긴 했지만.

“다들 엄청 친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배우들끼리 정말 친해 보였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들의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셈블] 때도 그랬지만, 좋아하는 히어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정말이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끼리 사이가 좋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사이가 나쁘다면 촬영 내내 불편하게 지내야 했을 테니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서준과 배우들이 보였다. 슬쩍 끼어 있는 마크 웨버 감독도 보였다.

“안 들려!”

“……들리겠냐.”

사람들의 목소리가 음향기기에 들어가지 않게 떨어져 있는데.

점점 정신줄을 놓는 것 같은 샘 리드를 보며 동료 경찰은 할 말을 잃었다.

곧 스태프가 와서 촬영이 시작된다고 알려주었다.

방해가 되는 소리는 삭제하면 되니 너무 철저하게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지만, 통제할 필요도 없이 모두 알아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배우들 사이도 좋으니까 캐릭터들 간의 합도 좋겠지?”

“그렇겠지.”

‘이레귤러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할 히어로들이니까.

중요한 장면도 아닌 데다가 홍보도 겸한다고 했으니,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줄 터였다.

그때.

생각을 이어가던 동료 경찰의 눈이 커졌다.

‘액션!’이라는 외침과 동시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자의 위치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 리와 루카스 터너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지금 싸우는 거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루카스 터너가 날 선 말을 내뱉으면 서준 리가 미간을 찌푸리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다른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 봤던 친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화기애애의 ㅎ도 없었다.

게다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조금 전과 바뀐 것이 전혀 없는데도, 배우들이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윌리엄이다……!”

아니.

처음 본 사람은 아니었다.

샘 리드의 감격에 찬 중얼거림에 동료 경찰은 [쉐도우앤나이트]를 떠올렸다. 그래. 거기에 나왔던 ‘윌리엄 리’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팬텀]의 ‘로건 테이트’.

열흘쯤 전 할렘가에서 봤던 인물이었지만, 그때랑은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거기에 버서커, 화이트 블러드, 매드해터까지.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현실에서 영화 속으로 이동한 것만 같았다.

‘……대단하네.’

뉴욕에서 촬영하는 영화를 종종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감탄이 나온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분위기가 확 바뀌는가 싶었다.

‘사실은 안 친한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컷!’ 소리가 들리고 다시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지는 배우들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연기 잘한다니까……!”

샘 리드의 말대로 그저 연기였을 뿐이었다.

아주 훌륭한 연기.

동료 경찰의 눈동자가 한곳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준 진짜 대단하지 않아?”

서준 리가.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다 보니 홀로 튀는 느낌이 아니었는데도,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샘.”

“어?”

다시금 시작되는 촬영에 집중한 샘 리드가 친구의 부름에 대충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준이 출연한 작품이 어떤 거라고?“

그에 샘 리드가 히죽 웃었다.

새로운 새싹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 * *

[(실시간)뉴욕에서! ‘이레귤러스’ 첫 촬영 중!]

[이레귤러스 크랭크인! 시즌2 히어로들이 모였다!]

[이레귤러스 촬영 시작! 개봉은 언제?]

-이렇게 한자리에 있는 걸 보게 되다니 너무 좋다ㅠㅠ

-근데 사진 올려도 됨?

=허락받은 사진일걸. 안 그러면……ㅎ

=미국 법원: 어서 오십시오.

-뭐야, 왜 사이가 나쁜 것 같지?

=22 싸웠어? 이제 1편인데 싸운 거야??

-히어로들끼리 싸우는 것도 재미있겠다.

=그러지 말라고ㅠㅠ

-배우들: 사이 좋음 / 히어로들: 사이 안 좋음

=ㅋㅋ너무 차이나서 웃김ㅋㅋ

-구경간 새싹인데 현장 분위기 정말 좋았음. 근데 통제하던 경찰이 서준이 팬이었던 것 같았음ㅋㅋ동지애가 느껴짐ㅋㅋㅋ

=22 서준이가 손 흔들면 나도 좋아하고 경찰분도 좋아하고.

=앜ㅋㅋㅋㅋ

-기사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고ㅋㅋ이제 크랭크인인데 개봉날ㅋㅋ

=ㅎㅎ나도 그럼. 언제 개봉하는지 검색하고 있음.

=22 근데 안 나와ㅠㅠ

=나올 리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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