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34화
“그럼 저흰 출발할 때까지 연습할까요?”
아침 식사를 끝내고 두 매니저들이 오후에 있을 [이레귤러스]의 첫 촬영 준비 때문에 이리저리 연락하는 것을 본 서준이 말하자, 루카스 터너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 첫 촬영도 아닌데, 사고가 있었던 탓인지 그때만큼이나 긴장이 되던 참이었다.
서준과 함께 연습실 안으로 들어간 루카스 터너는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사용했던 깔끔한 연습실이 익숙했다. 자신의 집에 있는 연습실과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 안락한 느낌도 들었다.
“그럼 일단 오늘 것부터 할까요?”
“좋습니다.”
익숙하게 자기 자리에 앉은 서준과 루카스 터너가 대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대사나 지문은 다 외운 상태지만, 몇 번이고 확인한다고 나쁠 건 없었다.
서준이 ‘로건 테이트’를 연기하는 루카스 터너를 바라보았다.
겨우 열흘가량.
아니,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을 없애고 루카스 터너가 자신의 의견을 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으니, ‘로건 테이트’를 연습한 건 그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로건 테이트’를 전부 세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저 전체적인 틀을 다시 잡아 고치고, 뉴욕에서 할 촬영에 나오는 부분들에 대한 것들에 대해 먼저 의견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촬영이 먼저니까.’
그것도 어려운 일이긴 했다.
영화 촬영이 영화 내용처럼 1, 2, 3, 4로 차례대로 이루어지면 감정 변화도 그에 따라 천천히 바꿔가면 됐지만, 그렇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4, 1, 3, 2순으로 캐릭터의 감정 변화와는 상관없이 스케줄과 장소가 되는대로 촬영하는 게 보통이었고, 이번 뉴욕 촬영에서도 그렇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여기가 LA에 있는 마린 휘하의 스튜디오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마린사의 권한으로, 이전의 다른 시리즈 촬영처럼 최대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촬영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여긴 뉴욕.
뉴욕이 배경이 되는 부분들의 촬영이 스토리 순서와 상관없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가 뒤죽박죽인 상태라서 준비하기가 조금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루카스 터너는 잘하고 있었다.
서준의 의견을 무작정 받아들이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고 자신의 판단 아래 ‘루카스 터너의 로건 테이트’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뉴욕에 있는 동안은 서준의 도움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LA에서 촬영하는 동안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게 루카스에게도 좋은 일이지.’
앞으로 평생 서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조언이 필요하다면 해주겠지만.’
서준도 에반 블록이나 라이언 감독 그리고 다른 배우들에게 가끔 조언을 구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게 좋지.’
같은 일을 하는, 의지가 되고 본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최태우가 와서 잠시 후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에 서준과 루카스 터너는 보고 있던 대본과 메모했던 종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기, 준.”
루카스 터너의 부름에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네.”
편하게 말하라는 듯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조금 머뭇거리던 루카스 터너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루카스 터너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지금 밖에 있을 코너 밀스도, 이야기를 들었을 다른 배우들이나 마린사도 의문이 들었을 거다. 물론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사하고 있지만 말이다.
“첫 만남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도 아니고 친한 사이인 것도 아니었다.
“이후의 제 태도도…… 나빴지 않습니까.”
루카스 터너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몇 번이고 사과한 일이지만, 말할 때마다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었다.
“정말 준에게는 감사하고 있지만, 궁금해서요.”
누구라도 이 열흘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해할 터였다.
그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사고였으니까요.”
“하지만…….”
“사고 맞아요. 루카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하늘에서 떨어진 낙석을 피하기 위해 물러나다가 뒤에 있던 사람과 부딪히는 정도의 사고.
그런 상황이라면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부딪힌 사람이 놀라, 낙석을 피하던 사람을 걱정할 터였다.
루카스 터너도 그랬다.
그는 메소드 연기법을 통해 연기를 잘하고 싶었을 뿐이지, 부작용에 걸리기 위해 열심히 한 것은 아닐 테니까.
“루카스는 사고를 당했을 뿐이고, 전 그걸 도와줄 방법이 있었던 것뿐이에요.”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루카스 터너가 입을 꾹 다물었다.
도와줄 방법이 있다고 한들, 전부 그렇게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 욕심도 좀 있었어요.”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예전부터 루카스의 연기가 인상 깊어서 같이 연기해 보고 싶었거든요. 거기다가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이 생길 정도면 정말 열심히 캐릭터를 연구했다는 거잖아요. 그런 열정을 가진 배우랑 같이 연기할 수 있다는 건 드문 일이니까요.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서준이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루카스가 앞으로 연기할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었어요. 좋은 배우가 연기한 작품은 분명 멋진 작품일 테니까요.”
사심이 가득한 말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다가왔다.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던 자신의 연기를, 노력을 알아주는 서준의 말이 루카스 터너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 * *
“울었어?”
“아니.”
코너 밀스의 말에 루카스 터너가 대답했다.
울지는 않았다. 그냥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을 뿐이다.
“뭐, 아니라면 다행이고.”
루카스 터너에게 조금의 변화만 있어도 코너 밀스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도 준이 있어서 이 정도지.’
준이 아니었으면, 일단 사라진 루카스 터너를 찾는 것부터 문제였을 터였다. 기사도 분명 났을 테고, 촬영도 미뤄졌겠지. 촬영을 못 하게 됐다면 어마어마한 위약금도 내야 했을 테고, 다른 영화도 못 찍었을 터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루카스의 인생이 망가졌겠지.’
자신의 친구였지만 친구가 아니었던 그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진짜 서준 리는 자신과 루카스 터너의 인생의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준의 생일이 곧이었지.’
오늘이 3월 6일.
3월 10일인 서준의 생일이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생일선물을 준비해야겠다.
물론 이 은혜를 생일선물로 갚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조그마한 감사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코너 밀스가 루카스 터너를 불렀다.
“가자. 먼저 가서 사과해야지.”
“그래.”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라고는 해도 폐를 끼쳤다.
마크 웨버 감독과 배우들, 촬영팀 그리고 마린사 직원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나중에 사과의 선물도 줄 계획이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준.”
“네. 조금 이따 봐요, 루카스. 코너.”
서준까지 함께 등장하면 아무래도 관심이 둘로 나뉠 것 같아서, 서준과 최태우는 조금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루카스 터너와 코너 밀스가 떠나고.
서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친구들과 바나나톡을 주고받으며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그레이스: 그럼 15일에 보는 거다?
>그레이스: 준의 생일 파티도 하고!
>찰리: 5일이나 지났겠지만.
>그레이스: 3월 안에만 하면 되지!!
3월에 뉴욕에서 만나기로 한 그레이스 웰튼과 찰리 베르나르였다.
>그레이스: 그리고 생일 당일 축하는 준의 팬들이 해줄 거니까!
>찰리: 그건 그렇긴 해.
>찰리: 이번엔 뭘 할지 궁금하네.
>그레이스: 작년에 대단했지!
>찰리: 우리 동네에도 걸렸었지. 현수막.
작년 3월, 찰리가 보내준 사진이 떠올랐다.
핼러윈 축제 때문인지, 프랑스 오르체시에는 당시 축제에 참여했던 9살 서준의 사진이 사용되었다.
그레이스의 동네에는 [생존자들]의 사진이 걸렸다.
>찰리: 이번에 뭐 한대?
아무래도 [새싹부터]의 규모가 규모다 보니 생일 이벤트를 숨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코코아엔터와 논의하는 건 잘 숨겨졌지만, 외부 회사나 단체와 논의하는 건 철저하게 주의하더라도 소문이 조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싹부터]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는 했고, 서준도 의식적으로 생일 이벤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새싹들은 서준이 깜짝 놀라기를 바랐으니까.
다만, 올해는 조금 특별했다.
[새싹부터]는 딱히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서준도 알고 있었다.
<이번엔 간단하게 한대.
>찰리:……?
>찰리: 간단하게?
>그레이스: (폭소하는 마녀 이모티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찰리의 ‘……?’에 그레이스가 웃음을 터뜨렸고 서준도 빵 터졌다.
인터넷을 살펴보면 새싹은 아니지만 [새싹부터]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들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간단? 하게?
=새싹부터가…… 간단하게?
-지금 쿨타임인가 봄.
=아, 얘네 생일 축하 강약강약으로 하지.
=그 ‘약’이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약’이 아니지만.
=규모가 규모인지라.
=코끼리가 살짝 걸어도 강아지한텐 지진ㅋㅋㅋ
-ㄴㄴ 이번에는 확실히 약하게 한대.
=??왜??
얼마 전 봤던 댓글들을 떠올리며 웃던 서준이 휴대폰을 두드려, 찰리의 의문에 답을 해주었다.
<내년이 내가 데뷔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거든.
잘 오던 찰리의 메시지가 멈추었다. 아무래도 놀란 것 같았다.
그에 그레이스가 웃으면서 넌 친구가 데뷔한 지 20주년이 되는 것도 몰랐냐고 놀려댔고, 서준도 속상한 척하면서 신나게 메시지를 보냈다.
인터넷에서 서준의 생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찰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내년이 이서준 데뷔한 지 20주년임.
=……뭐?
=벌써 그렇게 됐음??
=아니, 이서준이 20주년?? 내가 쉐도우맨1을 본 게 10년 전인 것 같은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10년 전은 10년 전이 아닙니다ㅋㅋ
-이서준 24살이잖아. 그럼 24주년 아님?
=22 아기 먹방이 7개월 때 찍은 거잖아.
=너튜브는 빼고. 공식 영화 데뷔날.
=22 쉐도우맨1 출연날로부터 20주년임.
=근데 아기 먹방도 활동으로 치는 거냐고ㅋㅋㅋ
=서준이 활동에서 아기 먹방을 빼놓을 수는 없지!
=ㅇㅇ지금 조회 수만 봐도 압도적임.
=전 세계 부모님들의 원픽!ㅋㅋ
=하지만 이제 먹방2가 맹렬하게 뒤쫓고 있음ㅋ
-……근데 이건 약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원기옥 모으는 거잖아……?
=그러게;; 그것도 진짜 전 세계 단위로;;
-원기옥? 그게 뭐예요??
=그…… 그런 게 있습니다ㅠㅠ 한방을 위해 차곡차곡 에너지를 모으는 거라고 할까요?
=이렇게 세대 차이를 느끼곸ㅋㅋㅋ
-요약: 내년 이서준 데뷔 20주년/새싹들 원기옥 모으는 중/올해 생일 축하는 약하게(?)
=과연 약할까? (의심)
=아무도 새싹부터가 간단하게 한다는 말을 믿지 않음ㅋㅋ
=그래도 무난하긴 할 듯.
-벌써부터 내년 이서준 생일이 궁금해진다ㅋㅋㅋ
=확실히 새싹들한테는 축제일듯.
-일단 방송국들부터 난리겠지.
=다큐멘터리 같은 걸로 한국 영화사에 대한 거 나와서, 이서준 이야기 나올 것 같다.
=안 나올 수가 없지. 이서준이 한국인 최초, 최연소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잖아.
=칸 영화제에서도 공동 수상했지. 감독만 받는 상을ㅋㅋ
-이서준 드라마랑 영화랑 예능도 재방송해 주는 거 아님?
=플러스+랑 유니버스에서 신나게 틀어줄 듯. 20주년 배너까지 만들어서.
-코코아엔터도 팬미팅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해주겠지!
=해줘라. 콬아ㅠㅠ
=22 내 자리는 없겠지만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