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30화 (93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30화

번쩍.

루카스 터너는 눈을 떴다.

아직 달이 떠 있는 밤중이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은 루카스 터너는 조금 전 꿈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겠냐니.

“안 괜찮을 게 있을 리가.”

무려 서준이 직접 분석한 ‘로건 테이트’를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도 얼마나 멋졌는가. 준과 동료 배우들, 감독님 그리고 관객들에게 보여주면 정말로 감탄할 터였다.

서준의 로건 테이트는 완벽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조금 답답한 걸까.

그날 밤 이후, 이틀이 지났지만 루카스 터너는 같은 꿈은 꾸지 않았다.

괜히 찜찜했는데 잘된 일이다 싶었지만, 루카스 터너는 연기 연습을 할 때 때때로 거울을 보며 멍하니 있고는 했다.

거울 속에 꿈에 나왔던 로건 테이트가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외모는 똑같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이다.

‘로건 테이트는 좀 더…….’

루카스 터너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자신이 만들어낸, 꿈에 나왔던 ‘로건 테이트’에 대해 생각했다.

“차라리…….”

또 한 번 나타나서 뭐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 이 알 수 없는 답답함의 원인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아.”

한숨을 쉰 루카스 터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연기 연습을 이어나갔다.

이제 정말 촬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급하게 캐릭터의 분석을 바꾸고 연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촬영하는 중에도 쉬는 시간이나 쉬는 날이 있어 그때마다 연습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도 도와주기로 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더 열심히 해야지.”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서준에게 보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루카스 터너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연기를 멈추고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했다.

그날 저녁.

며칠 동안 계속된 서준과의 분석 시간이 돌아왔다.

“그럼 여기는…….”

여느때와 같았다.

서준이 이야기를 하면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그걸 적어 내려갔다. 수정도 하지 않았고 의견도 내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서준의 분석은 [팬텀1]과도 맞았고 [이레귤러스]와도 잘 이어졌다. 어디 하나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었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해주었다.

그런데, 왜일까.

‘정말 이대로 괜찮겠냐?’

꿈 속, 대본과 사진으로 가득한 연습실에서 삐딱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로건 테이트’가 떠올랐다.

“아, 거긴…….”

그에 루카스 터너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료를 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다. 검은 눈동자가 의아한 듯한 눈빛으로 루카스 터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심장이 뛰었다. 귓가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한 심장박동이 온몸을 가득 채워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꽉 쥔 손 안쪽이 땀으로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모르겠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분명, 분명 서준의 로건 테이트는 완벽한데.

“그 부분은…….”

어쩐지 입이 멈추지 않았다.

“바꾸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준.”

멈추고 싶지 않았다.

서준의 표정이 마치 슬로우모션을 건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루카스 터너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꼭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어린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취소할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못 말했다고. 서준의 말대로 하겠다고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기엔 마음이 편했다. 연습실 거울을 볼 때마다 느꼈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자그마한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았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루카스 터너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 긴장한 것과 달리, 서준의 반응은 평범했다.

놀라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화낼 사람이 아니었지만.

“어째서요?”

그저 이유를 물어볼 뿐이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오히려 루카스 터너가 당황했다.

“그, 그게…….”

하지만 입은 자연스럽게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로건 테이트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퍼스트의 영입 제안을 받으면서 조금이나마 단체 생활을 할 각오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할렘가가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해도 갱단 같은 경우는 보통의 단체보다 더 끈끈하고 강력한 유대감을…….”

말이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멈추게 하는 스위치를 고장 내버린 것만 같았다.

루카스 터너는 자신의 입을 제어하지 못했다. 아니, 제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스위치는 루카스 터너가 할 말을 모두 끝낸 후에야 다시 고쳐졌다.

아!

루카스 터너가 정신을 차렸다.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서준이 보였다. 자신이 쉴 새 없이 뱉어냈던 말들도 떠올랐다.

이러면 안 된다.

기껏 준이 도와준다고 했는데!

‘설마 불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불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자그마한 의견일 뿐인데. 아니, 잠깐. 그게 불만인가? ……내가 준에게 불평을 했다고?’

입을 벙긋거리던 루카스 터너가 화들짝 놀라 얼른 입을 열었다.

“좋네요.”

“죄, 죄송…….”

……네?

그보다 먼저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터너는 멍하니 서준을 바라보았다.

좋네요. 그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잘못 들은 것이거나 서준이 착해서 거짓말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루카스 터너와 눈이 마주친 서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듯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좀 고민했거든요.”

그렇겠지.

서준이라면 이것저것 다 생각해봤을 거다.

“그런데 루카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루카스가 생각한 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 정말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준이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그럼 이건 그대로 놔두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서준의 로건 테이트’에 ‘루카스 터너의 로건 테이트’가 한 조각 남게 되었다.

루카스 터너는 서준이 메모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겉과 다르게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서준의 로건 테이트는 완벽하다.

그런데 방금 거기 ‘루카스 터너의 로건 테이트’가 들어갔다.

그럼 질문.

서준의 로건 테이트는 완벽한가?

‘준이잖아.’

완벽할 터였다. 분명.

‘하지만 내 의견도 들어갔는데……?’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루카스 터너의 의견이 들어간 서준의 로건 테이트는 완벽한가?

‘완벽……하겠지?’

준이 납득했잖아. 준이 좋다고 했잖아.

그럼.

루카스 터너의 로건 테이트는?

‘정말 이대로 괜찮겠냐?’

루카스 터너가 오답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그대로 지워 버리려고 했던 그는?

그는 완벽하지 않은가?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그때, 종이를 팔랑팔랑 넘겨 자료의 맨 뒷장을 꺼낸 서준이 입을 열었다. 루카스 터너는 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인데 말이죠. 이렇게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서 또 한 번, 루카스 터너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여기도 그대로 놔두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준.”

서준이 묻기도 전에 루카스 터너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치 물을 가득 채운 컵에 마지막으로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흘러넘치는 것처럼, 처음으로 의견을 낸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거기다 이 부분은, 영화의 스토리에 크게 영향도 끼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관객들도 거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로건 테이트’에게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그렇군요.”

그럼에도 다 말하고 난 뒤에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남겨두는 편이 좋겠네요.”

꽈악!

루카스 터너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서준이 종이를 팔랑팔랑 넘겼다.

서준이 의견을 말하면 루카스 터너이 반박하듯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면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번의 인정이 이어졌고, 그에 따라 루카스 터너의 마음도 널뛰었다.

서준의 로건 테이트는 정답이다.

그렇다면 서준의 인정을 받은 루카스 터너의 로건 테이트는 오답인가, 정답인가.

‘정답……이지 않을까?’

마음이 들떴다.

“음. 여긴 좀 더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네?”

이번에도 순순히 ‘좋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줄 줄 알았던 서준이 처음으로 멈추었다. 그에 앞서나가 기뻐하려던 루카스 터너가 바짝 굳어버렸다.

“여기 보면 이렇게 이어지는 데는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전 이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말한 서준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맞는 말이다. 이해도 된다. 하지만…….

“전…… 전 이쪽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 팀이 준 로건 테이트의 설정을 보면…….”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은 루카스 터너는 이내 긴장한 얼굴로 설명했다. 서준은 진지하게 그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더 반박했지만,

“루카스의 의견대로 하는 편이 좋겠네요.”

결국 설득당했다.

진땀이 났지만 결국 서준을 설득한 루카스 터너는 어쩐지 꿈속에서 봤던 ‘루카스 터너의 로건 테이트’가 웃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안 될 것 같아요.”

아니.

착각인가 보다.

* * *

코너 밀스가 시계를 보았다.

예전에 끝났어야 할 서준 리와 루카스 터너의 저녁 연습이 많이 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좋은 반응이었으니까. 열심히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거였다.

“정말이지 준과 태우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별말씀을요.”

간식을 준비할까 말까 고민하던 최태우가 코너 밀스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루카스 씨가 자신의 연기를 하게 되면 영화 퀄리티도 올라가니, 저랑 서준이에게도 좋은 일이죠.”

최태우가 루카스 터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서준을 떠올리며 웃었다.

‘아마 재미있어하고 있겠지.’

루카스 터너 본인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이 나타날 정도라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부작용에서 벗어난 것 같은 지금도 몇 년 동안이나 쌓아온 분석과 정보가 루카스 터너에게 있겠지.

배우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서준이 이런 대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야 서준의 말에 순순히 수긍해서 좀 아쉬운 느낌이었겠지만, 자기 의견을 내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신나고 즐겁게 ‘로건 테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할 터였다.

말하자면, 루카스 터너의 연기를 되찾게 도와주는 것도 도와주는 거였지만, 살짝 사심도 들어가 있다는 거였다.

봐라.

방에서 나오는 서준의 얼굴이 아주 상쾌하지 않나.

“루카스?”

대신 루카스 터너가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었지만.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니야?”

“적당히 했어요.”

코너 밀스와 함께 영혼이 가출한 듯 비틀비틀 걸어가는 루카스 터너를 보며 서준이 하하 웃었다.

잠시 후.

서준과 두 매니저가 다시 모였다.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처음으로 제 의견에 반박했거든요.”

오!

코너 밀스와 최태우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한 번만 그랬다가 다시 돌아가면 안 되니까, 일부러 제일 중요한 부분을 언급해서 반박할 수밖에 없게 했어요.”

서준이 굳이 맨 뒷장을 먼저 꺼내 이야기한 이유였다.

“그다음에는 최대한 루카스의 의견이 좋은 부분들을 언급해서 자신감이 생기게 했고요.”

그때문에 순서와 상관없이 종이를 넘기느라 좀 바빴다.

그런 서준의 말에 최태우와 코너 밀스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중간에 살짝 반대 의견을 냈다가 설득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반대했다가 설득당한 척했다면…….

코너 밀스가 약간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안 좋은 해석이었나요?”

“아뇨. 루카스의 해석은 정말 좋았어요. 아니었으면 아니라고 말했을 거예요.”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루카스 터너의 의견이 좋지 않았다면 설득당하기는커녕 별로라고 말했을 거다.

그 이후처럼.

“그다음으로는 문제가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좀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몇 년 동안 시나리오 팀에게서 자료를 받아왔잖아요. 마크 감독님의 설정도요. 그러다 보니 겹치는 부분도 있었고 설정 오류인 부분들도 꽤 많았어요. 근데 연습실 자료들을 보니까, 루카스는 그런 정보들도 전부 분석한 상태더라고요.”

즉, 불순물이 가득했다는 거였다.

“아…….”

“그런 불순물들 중에서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걸러내는 중이에요. 좀, 격렬하게.”

서준이 즐겁게 하하 웃었다.

그에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루카스 터너가 저렇게 영혼이 가출한 모습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루카스가 반응을 보여줘서 다행이에요.”

더 과격한 방법을 쓰거나 능력을 쓰려고 했는데, 루카스 터너는 그보다 먼저 이상행동을 보였다. 그래서 서준과 두 매니저는 잠시 지켜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오늘.

루카스 터너는 자신의 의견을 내보였다.

“앞으로는 빠르게 괜찮아질 거예요.”

다시 돌아온 배우를 환영하듯, 서준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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