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29화 (92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29화

그는 정신을 차렸다.

살짝 머리가 아픈 것 같은데 괜찮았다.

“이게 무슨…….”

사실은 안 괜찮을지도.

자신이 제법 유명해졌다는 건 알고 있지만,

“스토커까지 생길 줄이야.”

네 개의 벽을 가득 채운 ‘팬텀’의 사진들과 뭐라고 적힌 종이들에 로건 테이트는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로건 테이트는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납치를 당한 것 같은데, 팔과 다리가 묶여 있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로건 테이트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가는 족족 보이는 ‘팬텀’의 사진들은 정말 싫었지만 왠지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로건 테이트는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종이에 적힌 ‘글자’들(대본)도 ‘읽히지’ 않았다.

현실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무의식중의 행동일지도 몰랐다.

하여튼.

자신이 어떤 스토커에게 납치당했다고 생각한 로건 테이트는 조심스럽게, 유일하게 종이가 붙여져 있지 않은 방문으로 향했다.

손과 발이 묶여 있지 않다면 다른 장치가 있다는 건데, 문이 열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바로 밖에 적이 있을지도.

로건 테이트는 까딱하면 능력을 쓸 생각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돌렸다.

스르륵-

긴장했던 것과 달리 문은 쉽게 열렸다. 방 밖도 조용했다. 작은 거실이 보였다. 낡은 집과 다르게 아늑하고 깨끗한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스토커가 생활하는 집이라기엔 너무 평범했다.

“뭐, 원래 그렇지.”

범죄자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면 ‘그럴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하고 말하는 게 뻔한 레퍼토리 아닌가. 물론 주변 인물들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 누가 범죄자인지 알기 힘들다는 거다.

온갖 범죄들을 겪어봤지만 (자신의) 스토커는 처음인 로건 테이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익숙하게’ 거실을 ‘뒤졌다’.

방은 자신이 빠져나온 공간 하나.

거실은 생활감은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여기서 자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또 두 사람이 자주 드나들었던 것처럼 보였다.

“무기는 없고.”

로건 테이트가 턱을 긁적였다.

부엌칼도 무기라면 무기지만, 조금 더 살상력 있는 총 같은 무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마취제나 수상한 가루, 약품 같은 것들도.

저 수상한 방을 빼면 평범했다.

그때 바깥에 인기척이 들렸다. 로건 테이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바닥을 딛는 발소리가 묵직하고 규칙적이었다. 덩치도 클 것 같고, 군인 같은 느낌이었다.

평범하다는 거 취소.

굉장히 수상했다.

바깥의 인기척을 느끼고 나니, 위층 아래층에서의 ‘인기척’도 느껴졌다.

배우에 불과한 ‘루카스 터너’에게 그런 능력은 없으니, ‘루카스 터너’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느낌’이었지만,

로건 테이트는 알지 못했다.

“일단 나가야겠네.”

적을 상대하든 퍼스트를 만나 의논하든, 일단 여기서 탈출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디 외국은 아니겠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뒷머리를 벅벅 긁은 로건 테이트가 거실에 놓여 있던 겉옷과 모자를 챙겨 창문 쪽으로 향했다. 창밖을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미국인 것 같긴 했지만 자신이 살던 동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어린애도 아니고 집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로건 테이트는 ‘자연스럽게’ 창문을 열고 창틀에 발을 올렸다.

“거 되게 조심성 없네.”

보통 범죄에 이용하는 집은 창문이 작은 곳을 이용하지 않나? 감시자도 없고.

로건 테이트는 납치범을 비웃으며 창밖으로 몸을 빼냈다. 2층이라 탈출하기는 쉬웠다. 벽돌과 1층 창문틀을 밟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타닥-

제법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땅에 발을 디딘 로건 테이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발로 바닥을 툭툭 쳤다.

팬텀이라는 히어로네임답게 가볍고 조용한 몸놀림이 특기인 로건 테이트였다.

겨우 2층에서 탈출하는 건데 타닥-이라는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몸도 좀 무거워진 것 같고…….”

아무리 ‘루카스 터너’가 열심히 훈련했다고 하더라도 CG와 와이어를 사용해서 만드는, 영화 속 능력을 가진 ‘팬텀’의 몸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퍼스트와 상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로건 테이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이 전부 다 본 것 같았다.

탈출에만 신경 쓰고 있다 보니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로건 테이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목격자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쉭- 쉭- 저리 꺼지라는, 익숙함과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손짓이었다.

그에 남자가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비틀비틀 걸어갔다.

잔뜩 취한 얼굴로 술병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예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못 본 척하거나.’

뭐, 끼어들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했다.

로건 테이트가 동네를 돌아보았다. 이곳도 자신이 사는 곳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럼 가 볼까.”

납치당한 것치고는 탈출은 쉬웠다.

휴대폰은 어디 떨어뜨린 것 같았지만 주머니에 돈도 있어 이것저것 사 먹기도 했다.

묘하게 거리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보여야 하는 빌딩(레드본의 회사 같은 거)이 보이지 않았지만, 로건 테이트의 머릿속에 인식되지는 않았다.

“여기도 아닌 것 같은데…….”

나 사실 집도 못 찾는 바보였을까.

로건 테이트는 두 번째로 들른 동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여기에 온 기억이 있는데(루카스 터너의 기억이다.) 집이 없었다.

한숨을 내쉰 로건 테이트는 장소를 옮겨 세 번째 동네로 향했다. 하늘은 해가 져 어두워진 상태였다. 로건 테이트는 길을 걷다 만난 동네 청년들과 잠시 이야기했다. 그들도 동류의 느낌이 나는 로건 테이트를 보고 슬며시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결론은, 여기도 아니었다는 거다.

‘뭐가…… 잘못됐나?’

아무래도 퍼스트에 가 봐야겠다.

‘근데 어떻게 가지?’

하고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 --씨?”

이름은 노이즈로 가려진 듯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은 아니었다.

“--- --씨?”

그래서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묘하게 경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욱 그랬다.

잘못한 일은 없,

‘……진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 팬텀이라는 건 모를 거다.

“로건 테이트 씨?”

하지만 저를 찾는 사람이었나 보다.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로건 테이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딱 봐도 경찰 냄새가 풀풀 풍기는 남자였다.

하지만 딱히 범죄자를 잡으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뭐, 미아라면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지.

동행을 요청하는 경찰에 로건 테이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기,

“로건, 여기 있었네요.”

‘윌리엄 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여전히 평범한 일상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녀석이었다. 각자 사연이 있다지만, 정말이지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저랑 로건이랑 같이 지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지.

로건 테이트는 퍼스트의 지시라는 윌리엄 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윌리엄 리와 퍼스트 요원들을 따라간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난 다음 날 아침.

로건 테이트는 윌리엄 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정말로,”

아니.

“자신이 로건 테이트라고 생각해?”

진짜 로건 테이트와.

눈앞의 세상이 조각난 유리처럼 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야뿐만이 아니라 머릿속도 뒤집어진 것 같았다. 심장도 바닥까지 내려가듯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앞의 ‘로건 테이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엔 조금 열 받긴 했는데, 잘 보니까 다르더라고. 날 열심히 연구한 게 보였달까. 뭐, 잘 따라 하긴 했지만, 결국 ‘따라 한’ 거잖아?”

눈썹의 움직임부터 눈빛, 움직이는 입과 표정, 가볍게 으쓱이는 어깨, 다시 편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서늘하게 바라보는 모습까지.

“진짜가 될 순 없지.”

그 모든 게 로건 테이트였다.

어설프게 연기한 자신과 다른, 항상 궁금해했던,

서준 리가 연기하는 로건 테이트.

그렇게 ‘정답’을 보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순식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서준 리가 방을 나가고, 루카스 터너는 한숨을 쉬며 과거를 돌아보았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를.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이라니.

그 극히 드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그 ‘부작용’ 상태임에도 서준이 연기한 로건 테이트보다 부족했다는 점에 다시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눈앞에 정답이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못 본 척 무시할 수 있을까.

루카스 터너는 저도 모르게, 아니, 알면서도 서준의 연기를 따라 해보았다. 하지만 뭘 해보기엔 너무 짧았다. 정보도 적었다.

조금만 더 준의 연기를 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조언을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준이 먼저 같이 연습하자고 말해주었다.

루카스 터너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서준의 로건 테이트’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대로. 똑같이.

서준의 로건 테이트가 정답이니까.

서준이 오기 전, 루카스 터너는 텅 빈 노트를 하나 펼쳐놓고 ‘로건 테이트’에 대해서 적어 내려갔다. 대본도 자료도 없었지만 전부 머릿속에 있어 루카스 터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서준과 루카스 터너는 마주보고 앉아 ‘로건 테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는 서준만 이야기하거나 루카스 터너의 물음에 서준이 답할 뿐이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서준의 설명에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당연한 거다. 서준이 정답이고 자신은 오답이니까.

“이 부분도 수정하고요.”

서준이 문제로 삼은 부분이 많아서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반대로 기쁘기도 했다. 괜찮았다. 이게 바로 자신이 바라던 ‘로건 테이트’였으니까.

“아, 여기도 고치죠.”

이미 개봉한 [팬텀1]의 설정에 부딪히지 않고 스토리에도 큰 영향을 주는 부분들이 아니었다. 겨우 사막의 모래 한 알처럼 아주 작은 부분들이었다.

루카스 터너는 기꺼이 서준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쳐나갔다.

사막이 모래 한 알 한 알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렇게 며칠쯤 흘렀을까.

정신과 의사의 진료도 계속 이어졌고 서준과의 연습도 이어졌다. 물론 여전히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본을 보지는 못했지만. 서준의 숙소에 운동실이 있어 체력 훈련을 하기도 괜찮았다.

“이제 연기 연습해도 된다고 하더라.”

“그래?”

코너 밀스의 말에 루카스 터너는 기뻐했다. 그동안 친구의 철저한 감시 아래, 얼마나 연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루카스 터너는 지금까지 들어가지 못했던 서준의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 앞에 선 루카스 터너는 기대가 조금 담긴 한숨을 내쉬고는 연기했다.

‘서준의 로건 테이트’를.

그렇게 계속 바라왔던 정답을 직접 연기하게 되다니.

겨우 한 장면, 상대방도 없이 홀로 연기했는데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기뻤다.

루카스 터너는 코너 밀스가 밥 먹으라며 부르러 올 때까지 오전, 오후 내내 그렇게 ‘서준의 로건 테이트’를 연기했다.

“실제로 연기해 보니까 어때요, 루카스?”

“정말 좋았습니다, 준. 제가 정말 바라왔던 로건 테이트가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연습해서, 촬영 때 더 완벽한 로건 테이트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분명 좋아하시겠죠.”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루카스 터너에, 서준과 최태우, 코너 밀스가 서로 눈을 마주쳤지만 루카스 터너는 알지 못했다. 그저 오늘처럼 내일도 ‘정답’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만족스러워할 뿐이었다.

그래.

분명 그랬는데…….

그날 밤.

루카스 터너는 꿈을 꾸었다.

‘팬텀’의 사진과 대본들로 뒤덮인 자신의 연습실.

홀로 놓여 있는 나무의자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로건 테이트’였다.

루카스 터너의.

그가 읽고 있던 대본을 내리고 고개를 들어 눈앞에 서 있는 루카스 터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불만은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썹을 까딱 움직였다.

루카스 터너는 저도 모르게 그 작은 움직임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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