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28화
루카스 터너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보다도 더.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뭐가 부족했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뭘 고치는 게 맞을까.
“역시…….”
연기밖에는 없었다.
루카스 터너는 자신의 연기법을 되돌아보았다.
조나단 윌 감독에게 들은 에반 블록 배우의 분석력보다도 못하고, 즉흥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게 문제였을까.’
유명 배우 데이비스 가렛도 아예 작품 그 자체를 바꿔 버릴 정도로 몰입하지 않나. 서준도 그렇고.
루카스 터너는 그들 이외의 다른 배우들이 대본을 따라 연기하는 건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다. 초조하고 슬픈 마음에 시야가 좁아진 탓이었다.
그 결과.
“메소드 연기…….”
당연하다면 당연한 답이 나왔다.
그날 이후, 루카스 터너는 메소드 연기에 대해 공부했다.
분석한 자료와 캐릭터에 대한 정보로 하나하나 계산해서 연기하는 루카스 터너에게 ‘캐릭터’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괜찮았다.
[팬텀2]의 촬영까지 기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이때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새로운 연기법을 익히고 학습하는 정도였으니까.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하는 것처럼, 롤모델을 보며 그의 하루 일과나 공부법,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따라 하는 것과 비슷했다.
루카스 터너도 큰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조금이나마 지금의 연기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슬쩍 시험 삼아 자신과 함께 지내왔던 코너 밀스에게 ‘로건 테이트’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영 알아채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준이 연기하면 바로 알아차리는데 말이야.”
루카스 터너의 눈앞에 있는 TV에서는 시상식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서준의 첫 아카데미 시상식.
[오버 더 레인보우]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서준이 소감을 말하던 도중 ‘그레이 바이니’를 연기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코너 밀스도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연기를 한 자신과 달리, 수십, 아니, 수백, 어쩌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저 순간의 변화를 알아차렸을 터였다.
“역시 대단하네.”
메소드 연기를 공부하지 않았을 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공부하면서 보니 더욱 굉장했다.
마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 것처럼 서준은 ‘그레이 바이니’가 되었다가 ‘서준 리’가 되었다가 했다.
조나단 감독님의 말을 떠올려보면 분명 영화 촬영장에서도 그런 모습이었겠지. 부작용은 전혀 없는 모습으로.
부작용.
그걸 떠올린 루카스 터너는 가볍게 웃었다.
완전히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은 유명했다. 연기를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알 정도로.
하지만 유명세와 달리 부작용을 겪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과거의 유명한 사례들 말고는 현재 누구도 부작용을 겪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조금 궁금하기는 하네.”
과연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무리 연구하고 연기 연습을 해도 그 정도로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루카스 터너는 [팬텀1]의 대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입대했던(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준이 전역한 후, [오버 더 레인보우2]를 촬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인생영화라 10주년 영상을 한껏 기대하고 있는 루카스 터너에게 코너 밀스가 달려왔다. 어쩐지 굉장히 들뜬 얼굴이었다.
“루카스! 이것 봐!”
“뭐길래 그래?”
코너 밀스가 한껏 웃으며 종이를 내밀었다.
그건 기획서였는데, 마린의 시즌2 히어로들을 모아 한 영화에 출연시킨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어셈블 같은 거지?”
“맞아.”
루카스 터너의 물음에 코너 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즌1에 [어셈블]로 재미를 봤으니, 시즌2에도 같은 형식의 영화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팬텀]을 계약할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일이기도 했다.
“이레귤러스라…….”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았다.
루카스 터너가 종이를 넘겼다.
아직 틀도 제대로 잡힌 것 같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흥미로웠다. 나오는 히어로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버서커, 매드해터, 화이트 블러드, 팬텀.
그리고 나이트 진.
“……나이트 진?”
그런 히어로가 있었나?
처음 듣는 이름에 눈을 깜빡이는 루카스 터너의 모습에, 코너 밀스가 으하하하 웃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루카스 터너가 얼마나 놀랄지!
몇 번이고 마린의 담당자에게 되물었던 코너 밀스가 신나게 설명했다.
“진 나트라야.”
“……뭐?”
“진 나트라가 히어로로 돌아온 거라고!”
그에 코너 밀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루카스 터너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나이트 진]
선명하게 적혀 있는 이름에 숨이 멈춘 것만 같았다.
진 나트라가 히어로가 되었다고?
‘그럼 나이트 진을 연기하는 배우는…….’
루카스 터너의 머릿속에 한 배우가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앞에 적혀 있는 이름도 확실히 보였다.
[팬텀]
루카스 터너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먼저 나이트 진의 솔로 무비를 제작한 다음에 이레귤러스를 제작할 거래. 리랑 계약하는 중이라고 하니까 곧 기사도 나올 거야.”
하고 코너 밀스가 설명했지만 루카스 터너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가만히 기획서를 내려다보았다.
‘준과 같이…… 연기한다고? 내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아플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중요한 시험이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었다.
언젠가 서준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이렇게 가까운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루카스 터너는 반사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지금 현재 자신의 연기는 어떤가. 과연 준과 함께 연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까.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지는 않나. 준이,
‘실망하지 않을까…….’
함께 연기하는 배우가, 에반 블록도 리첼 힐도 데이비스 가렛도 아닌,
나라서.
루카스 터너의 심장은 계속 거칠게 뛰고 있었다.
기대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과 함께.
그는 메소드 연기에 더욱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팬텀’을 연기하는 데만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아마 레버가 당겨진 건 그때이지 않았을까.
1년 후.
솔로 무비라기보다 [쉐도우맨]과 [나이트 진]의 연결고리라고 할 만한 영화 [쉐도우앤나이트]가 개봉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2]에서 그러했듯, 서준은 [쉐도우앤나이트]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누가 봐도 ‘그레이 바이니’였고 ‘윌리엄 리’였으며 ‘나이트 진’이었다.
“루카스. 이레귤러스 촬영 일정이 잡혔어.”
그사이, [이레귤러스]의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코너 밀스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루카스 터너는 더욱 몰입하기 위해 집중했다. ‘로건 테이트’가 되어 먹고 말하고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준은 뉴 이클립스 촬영한다는데, 넌 다른 영화는 안 찍을 거야?”
“어. 안 찍어.”
조금 딱딱하게 대답했나, 싶어 아차 했지만 지금은 [이레귤러스]에 집중하고 싶었다. 코너 밀스도 이해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볼만한 자료는 [팬텀1]에 대한 것밖에 없었는데, [이레귤러스]의 시나리오팀이 돌아가기 시작한 덕분에 새로운 설정들과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다른 영화도 그렇듯 삭제되고 변경되는 에피소드들이 많았지만, 루카스 터너는 그것들조차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기억하고 연구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면, 캐릭터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납득하고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를 이해해야 했는데, ‘루카스 터너’와 ‘로건 테이트’는 다른 사람이라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겉만으로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루카스 터너는 마음으로도 ‘로건 테이트’를 이해하고 그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준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그렇게 적게 되었다.
서준이 연기하는 ‘로건 테이트’.
그건 상상이 되면서도 되지 않았다.
마치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윤곽은 보이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에 루카스 터너는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헤메는 여행자처럼,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정보들 속을 맴돌았다.
그사이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우던 자료들은, 루카스 터너를 뒤덮는 사막의 모래들처럼 벽 하나를 뒤덮었고, 이내 그 옆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 옆 벽을, 또 그 옆에 있는 벽을 가득 메웠다.
낮에는 뜨거운 열을 내뿜고 밤에는 차가운 기를 흘려보내는 사막의 모래처럼, 사방에 가득한 정보들은 루카스 터너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본인은 그걸 알지 못했다.
“이제 모여서 훈련한다던데…….”
코너 밀스는 제 친구의 성격이 좀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지만, 그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미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며칠만 미뤄주면 안 될까?”
연기에 열심히인 점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개인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었고.
“알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설마 그 며칠이 지금까지일 줄은 몰랐다.
“루카스! 테사 씨도 합류했대.”
차례차례로 배우들이 합류하고 크랭크인까지 2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테사 해리슨이 합류했다.
“이제 가도 괜찮을 것 같아.”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루카스 터너는 [이레귤러스] 트레이닝에 합류했다.
서준을 만나 정말 기쁜 제 마음과 달리, 몸뚱아리는 무뚝뚝하게만 서준 리를 대했다. ‘준’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준’이라고 불렀던 평소와 달리 제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리’였다.
하지만 루카스 터너는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건 서준 리가 아니라,
윌리엄 리였으니까.
‘아니, 준이지.’
음.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잠시 헷갈렸나 보다.
먼저 루카스 터너는 다른 배우들과 연기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만든 ‘로건 테이트’에, ‘팬텀’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좋아……!’
이제 서준과 함께 연기할 차례였다.
서준과 말릭 스펜서가 먼저 연기하고, 자신이 끼어드는 장면.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해왔던 것을 서준에게 처음으로 보여줄 때였다.
바라건대.
준이 실망하지 않기를.
그렇게 긴장하는 것만큼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루카스 터너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서준 리의 연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건 충격적이었다.
꼼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루카스?”
서준의 부름에, 흠칫 놀란 루카스 터너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로건 테이트’에 몰입했다. 오랫동안 연습했던 덕분에 몸은 알아서 움직여주었다. 하지만,
‘……안 돼.’
이대로는 부족하다.
이 정도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던 것이었다.
‘좀 더…… 좀 더…….’
몰입하고, 몰입하고, 몰입해서.
‘로건 테이트’가 되어야 했다.
그에 루카스 터너는 ‘윌리엄 리’를 연기하는 서준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바라보며 배워나갔다. 또한 서준을 ‘윌리엄 리’라고, 다른 배우들을 각자의 캐릭터라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건 테이트’가 사는 동네를 닮은 곳에 마련한 숙소로 돌아가서도 그랬다. 이전보다도 더 오래, 열심히 ‘로건 테이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로건 테이트’가 살 법한 할렘가를 가 보기도 했다.
가끔 정신이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사막의 모래에 파묻히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서준에게 사과하기 위해 정신줄을 꽉 붙잡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한껏 당겨진 레버처럼 제자리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래 폭풍에 쓸려가듯, 그는 ‘로건 테이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로건 테이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