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27화
“진짜 싸운다는 건 아니구요.”
서준이 웃으며 설명했다.
“루카스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게 만든다는 거죠.”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이 있을 때는 자기주장이 흘러넘쳤다면, 지금은 아예 자기 의견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 상황이었다.
과한 것도 모자란 것도 좋지 않았다.
최태우와 코너 밀스는 서준의 설명을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려고?”
“직접 말하려고요?”
내 이야기만 듣지 말고 자기 생각을 말하라고?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루카스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해요.”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 탓이든, 서준의 연기를 본 탓이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건 지금의 루카스 터너에게는 어려운 일일 터였다.
“거슬리게 만드는 거예요.”
너무 크지 않게, 신경이 쓰일 정도.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요.”
서준의 말에 두 매니저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나타났다. 전혀 이해 못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에 가볍게 웃은 서준이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윌리엄 리를 떠올려보세요.”
그 말에 최태우와 코너 밀스는 [나이트 진](아직 영화는 나오지 않았지만)의 주인공, 서준이 연기하는 ‘윌리엄 리’를 떠올렸다.
“윌리엄이 신발을 신고 침대 위에 앉는다면 어떨까요?”
“……아!”
“……그게 왜……?”
반응이 전혀 달랐다.
최태우는 무언가 알아차린 표정이었고, 코너 밀스는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한국인과 미국인.
두 매니저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어떤 곳에 살았고 살고 있느냐일 터였다.
미국에서는 야외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집 안, 그리고 방 안 침대에까지 가도 평범한 일일 테지만, 한국에서 그러면 ‘미친 거 아니야?!’ 하고 외칠 기겁할 일이었다.
“한국에서 그러면 큰일 나거든요.”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집에서 신발을?!
신발을 신고 방 안을 걸어 다니거나 집 안을 돌아다니는 윌리엄 리를 본다면 ‘반은 미국인이잖아…….’ 하면서도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영화 스토리에 곧 몰입하겠지만, 신발을 볼 때마다 번쩍번쩍 정신이 들겠지.
-신발…… 신발 나만 신경 쓰여??
-세균이…… 흙이……
-와. 잘 때 빼고는 침대에 안 가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
많지는 않더라도 그런 댓글들도 달렸을 거다.
“물론 큰 차이는 아니에요. 윌리엄 리는 한국계 미국인이라서 집 안에서 신발을 신든, 신지 않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현재의 해석으로는 ‘한국 문화가 익숙한 가정’이라는 느낌이지만, 어머니가 미국인이니 그냥 미국 문화에 익숙한 한국계 가정이라는 설정도 충분히 가능했다.
[쉐도우앤나이트]를 대본을 쓸 때, 서준과 조나단 윌 감독도 잠깐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고.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캐릭터를 만들고.”
집 안에서 신발을 신은 윌리엄이 영화에 나온다면 신발을 클로즈업할 일은 없으니 그저 스쳐 지나갈 장면일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관객들은 스크린을 보고 있겠지.
“관객들의 머릿속에 박히죠.”
누군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굉장히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거다.
그 ‘누군가’가 배우라면 더욱 그럴 터였고,
“이런 식으로 대본이나 설정에는 크게 영향을 주진 않지만, 차이가 있는 분석을 루카스에게 이야기해 보려고요.”
그 ‘배우’가 메소드 연기 부작용이 나타날 정도로 ‘로건 테이트’를 연구했다면 더더욱 거슬릴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그 거슬림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겠죠.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아하.
서준의 말에 최태우와 코너 밀스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정보는 어떻게 찾으려고?”
거슬리는 걸 찾으려면 아무래도 정보가 필요했다.
과일을 좋아한다는 정보가 있어야 과일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할 테고, 채소를 싫어한다는 정보가 있어야 채소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최태우의 물음에 서준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정보야 많죠. 루카스의 연습실에요.”
……아.
온갖 종이들로 뒤덮여 있던 연습실을 떠올린 두 매니저가 서준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 * *
루카스 터너.
그는 학생일 적, 한 영화를 봤다.
어린 남자아이가 바이올린과 친구를 만나면서 성장해 나가던 어떤 영화를.
무채색이었던 주인공이 만남과 고난을 겪고 마침내 결실을 이뤄낸 순간은, 보는 사람마저 벅차오를 정도로 반짝이는 색을 가지게 되는 그 모습은, 주인공을, 그리고 그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까지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국 그때부터 배우라는 꿈까지 가지게 된 루카스 터너가 서준 리를 신경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마운 친구는 루카스 터너의 첫 오디션 때부터 함께 다녀주었다.
“연기는 잘 모르지만, 널 스타로 만드는 건 재미있을 것 같아.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고.”
성공하지 못한 배우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코너 밀스는 루카스 터너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듯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그렇게 루카스 터너는 배우가 되었다.
아직 무명배우였지만.
연기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있지만 어려웠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그저 얼굴만 나오는 배역을 연구하기 위해 밤을 지새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명배우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루카스 터너는 한 독립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코너 밀스와 한바탕 파티도 열었었다.
기쁨의 이유에는 오디션 합격과 주연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오디션 때 봤었죠? 감독 조나단 윌입니다.”
이번 영화의 감독이 [쉐도우맨]의 감독, 라이언 윌의 조카라는 것도 있었다.
‘이 사람이 서준 리와 함께…….’
건너건너 듣기로는 중학생 때부터, [쉐도우맨1] 때부터 함께 촬영했다고 하더라.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가진 게 루카스 터너만은 아니었던 듯,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서준 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에반 블록 배우나 리첼 힐 배우, 그리고 라이언 윌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 라이언 삼촌이요? 대단하죠! ……좀 무섭긴 하지만요.”
조나단 윌 감독은 대단한 삼촌을 둬서 잘난 척하거나 거리를 둘 만도 한데, 굉장히 친근하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대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다른 감독이 어떨지는 루카스 터너는 잘 몰랐지만, 필요한 조언을 정확히, 그리고 배우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는 했다.
“삼촌한테 배운 것뿐인데요, 뭘.”
하고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하고는 했지만,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좋은 감독님이네.”
코너 밀스의 말에 루카스 터너도 동의했다.
“에반이 분석하는 타입이라면, 준은 메소드 연기를 하죠. 순식간에 확 몰입했다가 확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조나단 윌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할리우드에 있었던 사람이 그러하듯, 과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게 서준 리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했다.
루카스 터너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서준 리의 작품들을 보며 조나단 윌 감독의 이야기를 되새기고는 했다.
메소드.
메소드 연기라.
“그래서 저렇게 잘하는 건가?”
“뭐?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코너 밀스의 말에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메소드 연기’에 관한 건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배우로서도 서준 리의 팬으로서도 즐거웠던 촬영이 끝나고, 영화가 공개되었다.
[신의 이름으로]
루카스 터너의 첫 주연작이었다.
그 이후로도 루카스 터너는 친구이자 매니저인 코너 밀스와 함께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배우 생활을 해나갔다. 서준 리의 작품을 보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미치인!! 루카스 너 합격이래!!”
“뭐!?”
코너 밀스가 들고온 소식은 대본에 푹 빠져 있던 루카스 터너도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내 친구가 팬텀이라니!!”
마린의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시즌2의 선두를 맡게 된 [팬텀]의 오디션 합격 소식이었다.
[팬텀]의 촬영은 순조로웠다.
감독도 좋았고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모두 좋았다. 루카스 터너도 앞으로도 꾸준히 연기할 캐릭터이기에 더욱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하고 연기했다.
그렇게 [팬텀]이 개봉했고,
결과가 나왔다.
평범했다.
수익을 거둘 수 없을 만큼 나쁜 건 아니었지만, 기대치를 넘을 만큼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기대치가 너무 높긴 했어.”
코너 밀스가 위로하듯 말했다.
“레드본만큼의 임팩트, 아니, 그 이상의 임팩트라니 서준 리가 와도 그렇게는 못할걸.”
그럴까. 기대치가 높았던 걸까.
‘아니면 내가…….’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저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 터너가 다른 영화를 준비하고 촬영하는 사이, [버서커]를 시작으로 시즌2의 히어로 솔로 무비들이 개봉했다.
다른 영화들도 평이했다.
적당히 흥행하고 적당히 수익을 얻었다.
다른 제작사들이라면 수익을 얻은 것만으로도 좋아했겠지만, 또다시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려던 마린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그사이.
시즌1 [쉐도우맨3]의 빌런을 끝으로 마린과의 계약이 끝난 배우 서준 리는 너튜브 동영상 하나로 또다시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한예대-실기/자유 연기/재연]
<원작: 신의 이름으로(조나단 윌)/In the name of God(Jonathan Will)
배우: 이서준
편집: 이서준>
의상도 일상복이었고, 배경도 그저 평범한 연습실이었다. 빛도 그냥 형광등이라 조명효과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누가 연기를 해도 몰입하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거기엔,
배우 서준 리가 있었다.
[접니다.]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을 연기하는,
[제가 여러분들을 여기로 초대했습니다.]
서준 리가 있었다.
영상은 2분가량의 분량이었다.
그 2분 동안 루카스 터너는 숨도 쉬지 못했다. 어쩌면 심장까지도 멈췄는지 모른다.
“이렇게…….”
바짝 마른 목구멍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연기해야 하는 거였구나.”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루카스 터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루카스 터너보다는 서준 리가 잘하지 않아?
=루카스는 신인이었잖아. 준은 오스카상까지 받은 천재고.
=루카스도 잘하던데.
-조나단 윌, 리랑 친한 사이 아니야? 왜 루카스 터너가 주연이지?
=다른 촬영 때문에 바빴겠지.
=내가 조나단 윌이었으면 같이 촬영하자고 매달렸을 듯.
-대학 입시 영상이 이 정도면, 영화 촬영했으면 엄청났겠네.
-팬텀을 서준 리가 했으면 좋았을걸.
=??준은 영원히 진 나트라야.
=그리고 윌리엄 리지.
=빨리 준을 불러와! 마린!!
그런 댓글들이 있었다.
루카스 터너는 그런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다시 서준의 연기를 보았다. 자신의 연기도 보았다. 서준의 작품들도 보았다. 자신의 작품들도 보았다.
그렇게 계속,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은, 아주 깊은 울음과도 같은 숨을 토해내었다.
준이 싫어진 게 아니었다.
‘싫어할 수 있을 리가…….’
그저.
그저 자신이,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다는 것이 확연하게 다가와,
슬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