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25화
안타까움의 침묵이 흐르고.
가볍게 마른세수를 한 코너 밀스가 물었다.
“그럼 준. 정답이라는 건, 뭔가요?”
연기에 정답이라는 건 없는데, 어떻게 정답을 보여준다는 걸까.
그에 서준이 대답했다.
“제가 하는 로건 테이트 연기를 보여주려고요.”
그러고는 덧붙여 설명했다.
“제가 하는 연기가 정답이라는 게 아니라, 루카스의 연습실을 보니까 그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준이라면 어떻게 연기했을까, 하고요.”
그것도 한두 번 언급된 게 아니었다. 눈을 돌릴 때마다 그런 글이 보였다.
“전 루카스가 부작용이 생길 정도로 배역에 몰입한 게 불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연기에 확신이 없었던 거죠.”
예를 들어, 어떠한 과제(프로젝트)가 있다.
아주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볼 예정인.
첫 번째 과제에서 그는 제법 훌륭히 해냈다.
하지만 다른 과제를 했던 동료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정한다. 자신이 봐도 잘했으니까. 동료가 그의 과제를 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하는 말도 들었다. 맞다. 그랬을 거다.
그런 상황에 두 번째 과제가 나왔다.
그는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밤을 새우고 밥도 먹지 않은 채.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더욱더 과제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때때로, 아니, 자주 동료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동료가 자신의 과제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지 않아?’
하고.
그럴 때.
그는 어떤 마음이고 어떻게 행동할까.
“그만큼 신경을 쓰던 배우가 눈앞에서 연기를 보여주면, 루카스도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그냥 하는 연기가 아니라, 배우 서준 리가 하는 연기다.
훌륭하고 굉장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줄곧 서준이라면 어떻게 연기했을까, 하고 고민했던 루카스 터너에게만큼은 ‘완벽한 정답’으로 보일 터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연기가 어색하고 부족하게 느껴지겠지.
‘정답’과 다른 건 ‘오답’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 이질감이 메소드 연기에서 빠져나오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준의 말에 코너 밀스와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 보는 건 좋을 것 같았다.
* * *
어색한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로건.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 괜찮아요?”
“뭐, 그래.”
두 매니저가 바짝 긴장한 것과 달리, 서준은 태평하게 로건 테이트(루카스 터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방에 있는 의자에 앉은 서준은 로건 테이트를 살펴보았다.
원래의 루카스 터너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희미할 정도로 사라지고 로건 테이트만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아침 식사는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서준이 웃으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 뭐지? 하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로건 테이트가 대답했다.
“뭐, 먹을 만했어.”
‘일단…….’
제일 먼저, 서준은 저 안에 아직 남아 있을 ‘루카스 터너’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했다.
[(선)메아빌의 보호마법-중하급]
약해진 의식을 보호합니다.
현혹마법에 면역이 생깁니다.
보통 현혹형 몬스터들의 마법에서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마법인데, 지금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에 살짝 다른 능력들도 사용했다.
[(악)투투라지아의 냄새-최하급]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오래 맡을 시, 정신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로건 테이트의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초조해지도록.
그리고,
[(선)모투라스의 연설-하급]
상대방이 시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신의 말에 설득력이 생기도록.
서준의 감각이 바쁘게 움직였다.
루카스 터너의 의식을 보호하며, 마기가 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고, 설득할 수 있게 목소리에 진정성을 담았다.
사람의 불안함을 이용한 설득이라니.
‘사기꾼이 된 것 같은데…….’
서준이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래도 지금은 필요한 일이었다.
“메이플 시럽을 얹은 팬케이크도 맛있었죠?”
“그랬지.”
슬쩍 던진 말에 로건 테이트가 걸려들었다.
“그래?”
윌리엄 리를 연기하며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서준이, 자세를 바꿔 조금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갑작스럽게 바뀐 서준의 분위기에 로건 테이트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건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였다.
“‘로건 테이트’는 메이플 시럽을 싫어하는데.”
거짓말이었다.
그런 설정이 ‘로건 테이트’에게 있는지 없는지 서준은 몰랐다.
하지만 서준이 사용한 능력들과 서준이 풍기는 분위기와 태도는, 서준의 말에 충분한 설득력을 실어주었다.
그 결과를 보여주듯, 로건 테이트, 아니, 루카스 터너는 급소에 찔린 듯,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들킨 것처럼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그가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삐죽 웃는 웃음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루카스 터너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심장이 온몸을 울릴 정도로 쿵쿵 뛰었다.
이건 긴장 때문인가, 두려움 때문인가.
아니면…… 기대 때문인가.
“자신이 로건 테이트라고 생각해?”
눈앞에 자신이 그렇게나 바라던 ‘로건 테이트’가 있었다.
* * *
그는 용사였다.
멋진 갑옷을 입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날카로운 검을 들고 적을 물리치는 용사.
더 완벽한 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더 훌륭한 용사가 되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용사’처럼 보이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제 몸을 다 바쳤다.
그렇게 어느새 자신마저 잊을 정도로 ‘용사’에게만 몰두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진짜’ 용사가 나타났다.
자신보다 훨씬 더 멋진 갑옷을 입고 더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 더 날카로운 검을 든 ‘진짜 용사’가.
그 빛나는 모습을 본 ‘가짜 용사’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진짜 용사는 저 사람이다.
그럼 난 뭐지?
‘가짜 용사’는 입고 있던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멋졌다고 생각했던 갑옷은 낡아 있었고, 붉은 망토는 거무죽죽하고 더러웠다. 날카로운 검은 뭉툭하고 녹이 슬어 있었다.
아.
아아.
가짜 용사는 부끄러워졌다.
겨우 이런 걸 입고, 이런 걸 들고 자신이 용사라고 말했던 건가.
자신의 갑옷은, 자신의 검은.
……자신의 연기는,
‘진짜’에 비해 모자라고 부족했다.
절망 속에 가짜 용사는 납득했다.
어쩐지 이럴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과 몸을 다 바치는 위험한 선택을 했어도, 자신이 용사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던 거다.
반짝이는 진짜 용사를 보며 가짜 용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루카스 터너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 * *
달칵-
서준이 손님방 방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코너 밀스가 얼른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나요, 준?”
“일단은, 생각대로 된 것 같아요.”
원래의 루카스 터너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보였던 ‘로건 테이트’의 모습이나 분위기는 사라진 것 같았다.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나왔어요.”
물론 루카스 터너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선기를 듬뿍 풀어놓았다.
그런 서준의 말에 코너 밀스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함으로 꽉 조여졌던 심장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준.”
코너 밀스보다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 최태우는 조금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빠른 것 같은데…… 괜찮은 거야?”
한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들어갔다 나오니 해결된 것 같았다.
“불안이란 게 원래 그렇거든요.”
어정쩡하게 ‘이게 맞는 건가? 아닌 건가?’ 하고 고민할 때 사람의 불안감은 더욱 심해진다.
시험을 칠 때도 그렇지 않나.
제대로 답을 적은 건지, 혹시 잘못 적은 건 아닌지.
점수가 나올 때까지 불안감에 휩싸여,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우울해지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차라리 ‘맞다, 아니다.’ 하고 정해주는 게 나았다.
“그리고 루카스의 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역시…… 준이라면 저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루카스 터너가 서준에게 처음으로 꺼냈던 말이었다.
조금 더 자신의 연기에 자신이 있었다면, 고집이 있었다면 시간이 걸렸을 텐데, 루카스 터너는 조금의 고집스러움도 없이 단번에 인정했다.
루카스 터너의 마음이 아주 약해진 상태라는 의미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준과 최태우의 대화를 들으며,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던 코너 밀스가 물었다.
“일단 마린에서 의사를 보내준다고 하니까, 의사가 올 때까지 상태를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평범한 대처였지만, 메소드 연기 전문가의 말이었다.
코너 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루카스가 대본이나 자료를 달라고 해도 주시면 안 돼요. 잘못하면 다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됐을 때, 이번에 했던 방법이 또 통할지는 서준도 알 수 없었다.
“……설마, 달라고 할까요?”
그걸 보다가 저렇게 됐는데?
코너 밀스의 표정으로 드러낸 뒷말에 서준이 말했다.
“촬영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아.
그에 코너 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주겠습니다.”
“아마 괜찮을 거예요. 부작용이 생길 정도라면 대본이나 설정은 다 외우고 있을 테니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준과 두 매니저가 쓰게 웃고 말았다.
* * *
그날 오후.
서준과 최태우가 훈련센터에 간 사이.
마음을 조금 정리하고 방에서 나온 루카스 터너는 코너 밀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진짜…….”
“미안.”
시무룩한 얼굴로 말하는 루카스 터너에 코너 밀스는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참았다. 루카스 터너도 힘들 테니까.
“넌 진짜 준에게 감사해야 돼.”
……나도 그렇고.
이렇게나 다른데, 어째서 못 알아봤을까.
확연히 달라진 루카스 터너의 분위기에, 코너 밀스는 나오려던 한숨을 삼켰다.
루카스 터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바로 촬영 준비하려고.”
서준과 배우들이 스케줄대로 촬영할 수 있게 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일 것 같았다. 물론 다른 보답도 할 생각이었다.
“대본이랑 자료는 못 줘. 준이 주지 말라고 했어.”
“음. 알았어.”
루카스 터너가 느릿하게 대답하자, 코너 밀스가 눈을 부릅떴다.
“무슨 생각이야? 넌 앞으로 생각하는 거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말해.”
거의 이를 갈며 말하는 친구에, 루카스 터너는 얼른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준이랑 같이 연습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 말에 코너 밀스가 눈을 깜빡였다.
‘……좋은데?’
서준이 함께 있으면 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 또 서준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지금까지 신세를 얼마나 많이 졌는데.’
그건 안 되겠다, 하고 이야기를 끝낸 루카스 터너와 코너 밀스였는데.
“같이 연습할까요?”
훈련센터에서 돌아온 서준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세상에.
여기 천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