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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24화 (92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24화

서준과 우리 킴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경찰서가 치안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저녁이 되면 아무래도 사람도 적고 조용할 수밖에 없는데 어쩐지 다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두 손 가득 종이들을 들고 뛰어다니는 걸 보면 일 때문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한 서준이 물었다.

“다들 퇴근 안 하세요, 삼촌?”

“아.”

그에 우리 킴 국장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갑자기 몇 명이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생각났다고 하더라고. 그거 때문에 조금 어수선해진 거야. 나도 그것 때문에 겸사겸사 내려온 거고.”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마침 누군가 우리 킴을 불렀다.

“국장님!”

평상복을 입은 덩치가 큰 남자가 한껏 생기가 도는 얼굴로 서류를 들고 다가왔다. 그러고는 서준은 보이지도 않는 것인지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작년 살인사건 있지 않습니까. 실마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실마리라고 하지만 엄청 중요한 것인 듯, 아주 사이다를 들이마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에 우리 킴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조사해 봐.”

“옙!”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덩치로 신나게 사무실로 달려가는 경찰관이었다.

“대부분 이런 상태야. 저 친구처럼 퇴근했다가 다시 출근한 녀석들도 있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건 타이밍이 중요해서 다들 열심히 조사하고 있지.”

그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아마도 [(선)지혜의 신의 길잡이별] 때문이 아닐까.

실마리를 잡았다고 다시 출근할 정도로, 간절히 해답을 바라왔던 이들에게 길을 알려준 것일 터였다.

길을 찾아 낮보다 더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경찰국과는 달리, 조금 차분한 분위기의 장소가 있었다.

“이쪽이 터너 배우를 찾아준 경관들.”

1층 회의실 앞.

어정쩡하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경찰관이 국장을 보며 바로 섰다. 그런데 둘 중 하나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숨도 안 쉬는 것 같았다.

서준이 웃고 말았다.

우리 삼촌이 사인을 해달라고 했던 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서준 리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샘 리드입니다. 아,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서준이 먼저 손을 내밀자 샘 리드가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서준이 동료 경찰과도 인사를 나누자, 샘 리드와 동료 경찰이 국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어쩐지 환호성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준과 악수를 했어! 악수를 했다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평생 손 안 씻을 거야!”

“……새 파트너 찾는 사람 어디 없나…….”

잔뜩 흥분한 경찰과 해탈한 경찰의 모습에 마침 그들을 스쳐 지나오던 최태우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준과 우리 킴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 대화를 들었는지, 서준과 우리 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나도 이만 가 볼게. 서준아.”

“네. 삼촌. LA 가기 전에 한번 들를게요.”

서준의 말에 씩 웃은 우리 킴이 최태우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터너 배우는 만났어, 서준아?”

“이제 들어가 보려고요.”

서준이 회의실 문을 똑똑 노크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코너 밀러가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서준과 최태우가 눈을 깜빡였다.

“준…….”

울적한 목소리를 자신을 부르는 코너 밀스에 서준이 상황을 파악했다.

“상황이 나쁜가요?”

“……예. 잠깐 절 알아보는가 싶더니, 지금은 전혀 못 알아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왜 여기 온 건지도 모르고, 같이 돌아가자니까 의아하게 쳐다보더라고요…….”

‘로건 테이트’에게 코너 밀스는 모르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 같이 돌아가자고 하면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게 당연하겠지만, 모든 걸 아는 사람들로서는 답답할 뿐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준.”

어떻게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의 루카스 터너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안심이 됐다.

똑똑-

하고 노크한 서준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로건, 여기 있었네요.”

“……리?”

서준 리가 아니었다.

윌리엄 리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서준에 최태우와 코너 밀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서준은 태평하게 연기를 이어나갔다.

‘아는 사람’을 만난 ‘로건 테이트’, 루카스 터너가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로건을 찾고 있었어요.”

“나를? 왜?”

“퍼스트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진짜 윌리엄 리와 로건 테이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 카메라와 감독, 스태프들만 있었다면 정말, 정말 좋았겠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데 코너 밀스는 암담해졌다.

“퍼스트에서?”

“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저랑 로건이랑 같이 지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나랑 쟤가? 같이?

로건 테이트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왜?”

“자세한 건 퍼스트에서 알려주지 않아서 저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임무 때문이지 않을까요?”

의뭉스러운 퍼스트.

변명거리로 딱이었다.

그말에 잠시 생각하던 로건 테이트가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은?”

“퍼스트 요원들이에요.”

매니저에서 퍼스트 요원으로 전직한 최태우가 크흠 헛기침을 했고, 코너 밀스는 설득된 루카스 터너의 모습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슬퍼졌다.

진짜 원래대로 돌아오기만 해봐라……!

“갑자기 왜 같이 지내라는 거야…….”

툴툴대는 로건 테이트를 데리고 서준과 매니저들은 경찰국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서준의 숙소였다.

아무래도 더 깊게 동화할 수밖에 없는 루카스 터너의 숙소에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동 중, 차 안의 분위기는 어색했다.

운전대를 잡은 최태우는 최대한 운전에 집중했고, 코너 밀스는 나올 것만 같은 한숨을 참으며 루카스 터너의 상태를 살피는 데 바빴고, 뒷좌석에 앉은 루카스 터너는 옆자리에 앉은 ‘윌리엄 리’가 신경 쓰여서 불편해했다.

“로건. 저녁은 먹었어요?”

윌리엄 리를 연기하는 서준만 태평했다.

“어? 어. 먹었어.”

“다행이네요. 뭐 필요한 건 없고요?”

“딱히.”

그냥 로건 테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윌리엄 리처럼 보였다.

배우는 역시 다른 건가 싶었다.

그런 서준 덕분에 모두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많이 불편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이 방에서 지내면 돼요. 필요한 게 있으면 코너 요원에게 부탁하고요.”

그렇게 서준이 숙소의 방 하나에 로건 테이트가 된 루카스 터너를 집어넣고 나서야, 최태우와 코너 밀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준.”

눈 깜빡할 사이, 다시 서준 리로 돌아온 서준이 코너 밀스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일이 많았으니까 푹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요.”

“네. 마린에서도 정신과 의사를 보내준다고 하니까…….”

촬영이 1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연히 제작사인 마린에게도 연락을 해야 했었다.

‘저쪽도 엄청 뒤집어졌겠지.’

코너 밀스가 한숨처럼 말했다.

“잘 되겠죠?”

“잘 될 거예요.”

확신 어린 서준의 말에 코너 밀스가 조금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오늘은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여기 잠들지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아니, 잠을 자긴 했다.

정신은 멀쩡했지만.

잠이 든 서준이 생의 도서관에서 깨어났다.

지금부터 아침까지. 능력을 찾을 시간은 넉넉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선의 도서관으로 들어간 서준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둘러보았다.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겠지.”

아무래도 ‘연기’와 관련된 생은 첫 생을 제외하고, 이번이 처음이니 부작용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을 터였다.

“정신…… 정신력…….”

아마도 그쪽과 관련된 능력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수십 권이나 되는 새로운 생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없느니, 기존에 읽은 책들 중에서 적절한 것을 골라야 했다.

서준이 책 하나를 꺼냈다.

정신력 강화와 관련된 책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로건 테이트’가 강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큰일이지.”

의식이 두 개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로건 테이트’ 쪽을 약하게 만드는 것도 괜찮고.

그렇게 밤새.

서준은 에반 블록과 라이언 윌 감독이 이야기해 줬던 조언들을 떠올리며 선의 도서관과 악의 도서관을 오가며 적절한 능력들을 찾기 시작했다.

* * *

해가 살짝 고개를 내민 이른 새벽.

루카스 터너가 걱정이 되어 깊게 잠들지 못한 두 매니저와 서준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무래도 적당한 의사를 찾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답니다.”

코너 밀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제오늘 일 년 치 한숨은 다 쉰 것 같았다.

“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네. 제가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거든요.”

무려 19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서준은 인맥도 남달랐다. 그런 서준 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직접 치료해 본 사람은 얼마나 있겠나.

“아마, 다중인격이나 해리 장애 같은 것으로 진료하지 않을까 싶어요.”

해리 장애.

정체감, 기억 그리고 의식 기능상의 장애나 변화를 말했다.

“영 틀린 것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해리 장애라는 개념이 있어서 다행인 건지,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에 대한 사례가 없어서 불행인 건지 모르겠다.

그런 코너 밀스에게 서준이 말했다.

“코너만 괜찮다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이 있는데 말이죠.”

“어떤 방법이죠?”

코너 밀스가 눈을 번뜩였다. 믿음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일단 캐릭터에 몰입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게 중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야 본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납득을 하든가 치료를 하든가 할 테니까요.”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냥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좀 과격하더라도 부수는 건 어떨까 싶어요.”

“부숴요?”

“어떻게?”

눈을 끔벅이는 매니저들에 서준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아무래도 루카스에게만 통하는 방법일 것 같은데, 자신이 연기하는 로건 테이트가 ‘정답’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서준의 말에 최태우와 코너 밀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 천동설이 있었잖아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움직인다는 이론이요.”

갑자기 천동설?

의아했지만 두 매니저는 서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지동설이 증명되면서, 천문학자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고 천동설은 완전히 폐기되었죠.”

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처럼, 루카스가 지금 연기하는 ‘로건 테이트’는 부족한 연기이고, 제대로 된 정답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럼 루카스도 충격을 받을 테고, 캐릭터를 ‘폐기’하겠죠.”

그에 코너 밀스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최태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그건 과학이고. 이건 연기잖아. 정답이라는 게 있어?”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빙그레 웃었다.

역시 내 매니저. 멋지다.

그말에 코너 밀스는 아차, 한 얼굴이었다.

잘하는 연기, 못하는 연기는 있어도 정답은 없었다.

서준 자신이 연기했던 작품들도 지금 보면 부족해 보이는 점이 많았다. 하지만 다시 촬영할 수는 없는 법. 그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연기할 뿐이었다.

또, 연기에는 배우 각자의 매력이 담겨 있었다.

에반 블록의 쉐도우맨, 데이비스 가렛의 레드본, 화이트 블러드의 랜스 레먼 등등.

서준이 연기해도 분명 잘하겠지만, 지금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들이었다.

“맞아요. 그렇죠.”

그리고,

루카스 터너의 팬텀도 그러했다.

“지금의 루카스는 잊고 있는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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