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23화
생의 도서관은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눈을 뜬 서준은 지체하지 않고 선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찾아야 할 능력은 두 개.
루카스 터너의 불안정한 상태를 해결해 줄 능력과 루카스 터너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자에 알맞은 능력은 좀 더 신중하게 찾아야 하니 나중으로 미뤄두고, 일단 후자의 능력부터 찾을 생각이었다.
“여기 놔둔 것 같은데…….”
적당한 능력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옛날에, 그러니까 아직 은수와 수빈이가 더 어렸을 적에 혹시나 미아가 됐을 때 사용할까 싶어 따로 보관해 뒀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각자 연락할 휴대폰도 있고 실종될 가능성도 극히 낮으니, 자주 사용할 것 같은 능력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놔뒀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미래이니, 챙겨두고 있었다.
“이렇게 쓸 줄은 몰랐지만. 아, 찾았다.”
서준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 중 하나를 들자, 서준에게 반응한 듯 책에서 능력이 담긴 구슬이 나타났다.
서준이 그 구슬을 잡자, 구슬은 손바닥으로 스며들듯 사라졌고 이내 손바닥에 반짝이는 별과 같은 무늬가 새겨졌다.
할 일을 끝낸 서준은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의 풍경이 책이 가득하던 도서관에서 딱딱한 경찰국의 회의실로 바뀌었다.
최태우가 오려면 좀 멀었기에, 서준은 마음 편하게 능력을 썼다.
서준이 둥그렇게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그 가운데에서 새하얀 빛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선)지혜의 신의 길잡이별-중급-을 발동합니다.]
[(선)지혜의 신의 길잡이별-중급-]
지혜의 신의 명을 받아, 신도들의 길을 밝혀주는 존재입니다.
범위 내에서 대상자가 현재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줍니다.
범위:
지혜의 신이 이르시되, 해답을 찾고 싶다면 저 길잡이별을 따르라.
이에 길잡이별이 신도의 앞에 나타나매 환하게 반짝이더라.
라는 글이 어떤 세계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 길잡이별이 이 세계에 나타났다.
서준은 범위를 뉴욕시로 설정하고 능력을 사용했다.
동그랗게 모은 두 손바닥 안에서 별처럼 반짝이고 있던 길잡이별이 폭죽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경찰국 건물의 천장을 뚫고 위로, 위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에 다다라, 북극성처럼 선명하게 반짝였다.
세상의 해답을 (반쯤) 알고 있는 길잡이별의 빛이 뉴욕시에 퍼졌다.
“/으아아앙!/”
해가 진 저녁.
남자아이가 혼자 울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사람들이 막 경찰에게 연락하려던 때.
“/도대체 어디……! 아들!/”
외국인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관광객 부부가 길잡이별의 인도를 받아 펑펑 울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엄마 아빠를 보며 더 크게 울어대는 아들의 모습에 사색이 되어 있던 부부의 얼굴에는 그제서야 안도의 미소가 맴돌았다.
“음…….”
좁은 방.
저녁도 먹지 않고 이 시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일자리를 찾고 있던 여자가 어떤 회사의 공고문을 발견했다.
“괜찮은데?”
어떻게 지금에서야 봤는지 모르겠지만 회사가 내건 조건이 여자에게 딱 들어맞았다. 복지도 괜찮았다.
물론 이렇게 적혀 있어도 입사하면 해야 하는 일이 다를 수도 있었고, 복지도 말뿐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이력서를 써내려갔다. 어쩐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오늘따라 시원시원했다.
그렇게 뉴욕시 곳곳을 비추는 길잡이별의 빛은 이곳에도 닿았다.
“너 오늘 비번 아니냐?”
경찰차가 아니라, 암행순찰용 일반 승용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동료 경찰이 조수석에 앉은 샘 리드에게 물었다.
오늘 비번일 게 분명한 놈이 주차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그에 방탄유리창에 거의 얼굴을 박은 듯한 상태로 밖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샘 리드가 말했다.
“맞아. 내가 자원했어. 사람 찾는 건 내가 제일 잘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각자 잘하는 특기가 있기 마련인데, 운인지 실력인지 모르겠지만 샘 리드는 사람을 잘 찾았다. 그게 범죄자든 실종자든.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자원이라니.
할리우드 배우를 찾는 일이라 아직 경찰국 내부에도 그렇게 퍼지지 않은 일이었다. 사무실에 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너 오늘 사무실 나왔어?”
동료 경찰의 물음에 샘 리드가 씩 웃었다.
“맞아.”
그리고 눈을 번뜩이며 덧붙였다.
“준이 뉴욕에서 촬영한다잖아. 그럼 분명히 국장님 만나러 올 테고.”
우리 킴 국장이 서준 리와 친한 사이라는 건 경찰국 내에 제법 알려진 사실이었다. 작년 10월 핼러윈 때도 왔었는데, 동료 경찰은 서준을 봤지만 샘 리드는 못 봤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만 봐도 좋아서 핼러윈 퍼레이드 경호에도 자원해서 나갔는데, 서준 리가 지나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게 /덕계못/……!’
내가 봐도 잘생겼더라, 하고 말하는 동료 경찰에 샘 리드는 맥주를 들이마시며 알 수 없는 외국어를 외쳤다. 분명 한국어겠지.
‘그럼 국장님 이름이 고래 우리랑 같은 이름입니까?!’
서준 리와 국장이 친하다는 걸 알고, 그걸 대놓고 묻는 놈이었으니까.
웃으며 ‘서준이 팬인가?’ 하고 묻는 우리 킴 국장이 아니라 다른 국장이었다면 좀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서준!/ 준이 아니라 /서준!/’
진짜 미친놈인가 싶었다.
당시의 샘 리드를 떠올린 동료 경찰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준이 경찰국에 올 때까지 매일 갈 생각이었지.”
“……언제까지?”
“뉴욕 떠날 때까지!”
사실, 이놈을 제일 먼저 체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정지 신호에 잠시 멈춘 동료 경찰은 수갑과 샘 리드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 동료 경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샘 리드는 열심히 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눈빛이 진지했다.
‘루카스가 실종이라니…….’
샘 리드는 서준 리를 좋아하는 만큼 마린사의 히어로 영화들도 좋아했다.
애초에 서준 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쉐도우맨]이었다. 그래서 [어셈블4]를 끝으로 시즌1이 끝났을 때 굉장히 아쉬웠었다.
하지만 곧 시즌2의 시작을 알리는 [팬텀]이 나오고 다른 히어로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쉐앤나]까지 나오며 [나이트 진]의 탄생을 알렸다.
샘 리드는 서준 리는 물론이고, 다른 히어로들도 좋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촬영을 시작할 [이레귤러스]에 그들 중 한 사람도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꼭 찾아야지.’
배우를 위해서도, 영화를 위해서도.
그리고 거기엔 아주 조금, 자신이 찾는다면 준과 루카스와 짧게나마 인사를 나누거나 사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적인 바람도 있었다.
“샘. 다 왔어.”
다른 지역을 돌고 있던 그들이 탄 차가 조금 전 국장이 보내준 후보지 중 하나에 도착했다. 함께 도착한 메시지도 있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으면, 로건 테이트라고 부르라고?”
“로건 테이트는 팬텀 이름인데?”
서로 눈이 마주친 샘 호너와 동료 경찰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어쨌든 여기서 찾아보기로 했다.
하루건너 총소리가 들리는 지역이다 보니, 조심해야 했다. 입고 있던 방탄복을 가볍게 두드리며 확인한 샘 리드와 동료 경찰이 조심스럽고 평범하게 차를 몰며 움직였다.
저녁이라서 그런지, 동네는 어두웠다.
희미한 불빛들과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옷차림은?”
“중간에 갈아입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샘 리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이 어려워졌다.
샘 리드와 동료 경찰은 침착하게 밖을 살폈다.
한데 모여 시시덕거리는 남자들, 창밖으로 내다보는 주민, 건물 입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중년인, 아마도 갱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듯한 이들.
어디 하나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서 이곳에 정말 루카스 터너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두 경찰은 중간중간 내려 구석구석 살펴보며 동네를 두 바퀴 돌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알았어.”
이 이상 같은 차로 할렘가를 돌아다니는 건 갱단의 의심을 받기에 딱 좋았다. 평범한 동네에서도 같은 차가 계속 돌아다니면 의심받을 만하지 않나.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른 차량이 올 거지만.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다른 곳도 찾지는 못한 것 같은데…….”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 샘 리드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집 창문으로 내다보던 주민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갱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시선도. 아까보다 진득해지고 살벌해진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시선을 능숙하게 넘기며 샘 리드는 밖을 살폈다.
가로등의 빛이 살짝 닿는 곳에서 시시덕거리던 남자들이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평범하다, 고 지나치려던 샘 리드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눈길이 갔다. 어쩐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찾았다……!”
직감이 외쳤다.
분명 루카스 터너였다.
그 말에 동료 경찰이 바로 차를 세웠다.
샘 리드가 차에서 내리는 사이, 동료 경찰이 걸어가는 남자를 보았다.
‘저 남자 루카스 터너라고?’
정말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약간 마르고 초췌한 얼굴의 남자는 도저히 실종자로 보이지 않았다. 표정은 평온했고,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두 번이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게 당연했다. 남자는 그냥 이 동네의 주민처럼, 굉장히 익숙하고 편하게 보였다.
동료 경찰이 놀라는 사이, 샘 리드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루카스 터너 씨.”
하지만 남자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분명할 텐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기만 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샘 리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만요. 루카스 터너 씨.”
그럼에도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본 걸까.
아니다. 이 남자는 루카스 터너가 맞았다.
그때, 샘 리드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로건 테이트 씨?”
그제서야 걸음을 멈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 * *
“루카스 터너 씨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말에, 걱정 때문에 최태우가 사온 저녁의 반도 먹지 못한 코너 밀스가 벌떡 일어났다.
“어, 어디에! 몸은 괜찮습니까?!”
“네. 다친 곳도 없고 괜찮다고 합니다.”
기쁜 소식에 서준과 최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코너 밀스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여기서 루카스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애가 탔다.
“내려가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직원과 함께 나가는 코너 밀스를 보던 최태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안다호 이사님께 연락드렸지만, 또 한 번 찾았다고 연락드려야 할 것 같았다.
“서준이 넌 어떻게 할래?”
“저도 마중 가려고요.”
매니저인 코너 밀스가 충분히 이야기를 먼저 나눌 수 있게, 조금 텀을 두고 회의실을 나온 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연락을 받은 듯, 국장실을 나온 우리 킴과 만났다.
“아, 서준아. 찾았다는 소식 들었어?”
“네. 지금 가는 길이에요.”
“그럼 그것도?”
그거?
눈을 끔뻑이는 서준에 우리 킴이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로건 테이트라는 이름에만 반응했다고 하더라고.”
“……아.”
서준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상태인데 영화 촬영은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최대한 노력해 봐야죠. 에반이랑 라이언 감독님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었거든요. 조금 늦긴 했지만…… 많이 늦진 않았을 거예요.”
그에 우리 킴 국장이 웃으며 서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힘들면 다른 사람들이랑 의논하고. 나한테 이야기해도 돼. 연기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네.”
“아, 괜찮다면 사인 좀 해줄래, 서준아?”
“사인이요?”
“루카스 터너 씨를 찾은 경찰이 네 팬이거든. 나랑 고래 우리랑 같은 이름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정도로.”
분위기를 풀듯 살짝 웃으며 말하는 우리 킴 국장에 서준도 작게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