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22화
똑똑.
노크 소리에 사무실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서준이 문을 열자, 국장실 안에 놓인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라 킴과 케빈 킴을 닮은 중년의 남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업 탓인지 체격은 두 사람보다 듬직했다.
“서준아.”
“잘 지내셨어요, 삼촌?”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요새 자주 보네.”
반갑게 맞이하는 우리 삼촌에 서준도 빙그레 웃었다.
얼마 전 [이레귤러스]의 촬영을 준비하러 뉴욕에 왔을 때도 한번 얼굴을 보러 왔었고, 또 작년 10월에도 만났었다.
작년 10월, [뉴 이클립스]의 홍보차 참여했었던 뉴욕 핼러윈 퍼레이드의 경호를, 당연하게도 NYPD가 맡았기 때문이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서준은 시간을 내 이곳에 들러, 우리 킴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우리 킴과는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아직 아기 서준일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옛날, LA에서 살고 있었던 서준의 가족은 나라 킴의 초대를 받아 나라 킴의 본가에 종종 놀러 갔었다. 어린아이가 없는 킴씨 가문에서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때라, 킴씨 가문의 사람들도 서준과 부부를 아주 좋아라 했다.
그때 서준은 우리 킴을 만났다.
뉴욕에서 경찰 일을 하고 있었던 우리 킴은 보통 때는 뉴욕에서 지냈지만, 휴가 때나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LA의 본가에 왔기 때문이었다.
‘……조카야?’
나라 킴과 으샤으샤 놀고 있는 아기 서준을 보며 우리 킴은 얼빠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었다.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애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는데, 뿅! 하고 조카가 생겨난 것이었다.
그에 빵 터지려는 웃음을 참은 나라 킴이 아기 서준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때, 내 아들 귀엽지? 서준아. 삼촌이야. 삼촌- 해봐.’
‘삼촌!’
아기 서준도 꺄르르 웃으며 그런 나라 킴의 장난에 어울렸다.
그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던 우리 킴이 정신을 차렸다.
‘조카가 아빠를 닮았나 보네. 귀엽다.’
내 동생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외모야, 하고 덧붙였다. 본인도 나라 킴과 닮았으면서 말이다.
참고로, 두 사람과 남매인 케빈 킴이 아이돌이니, 두 사람도 결코 모자란 외모가 아니었다.
웬수 같은 오빠를 나라 킴이 살벌하게 웃으며 응징했다.
찰싹찰싹, 하고 등을 때리는 소리에 아기 서준이 꺄르르 웃었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 와봤던 케빈 킴이 평소와 다름없는 형과 누나를 발견했다.
‘아, 그러고 보니 본 것 같아.’
케빈 킴에게서 서준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 킴이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에서 경찰 일을 하면서도 남동생이 나온 [48시간]은 봤었다. 그때보다 부쩍 자라 있는 데다가 여동생이랑 같이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 보니까 아기 때 얼굴 그대로네.’
지금도 여전히 아기였지만.
우리 킴은 웃으며 아기 서준을 조심스럽게, 번쩍 들어 올렸다.
‘안녕, 서준아. 우리 삼촌이야.’
‘안녕! 삼촌!’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도, 커다란 몸집의 남자에게 들려도 아기 서준은 대범하게 꺄르르 웃었다. 그에 우리 킴이 웃으며 말했다.
‘너 경찰 할래?’
아주 잘할 것 같은데, 하고.
아기 서준이 곧바로 ‘아니!’를 외쳤지만, 우리 킴은 만날 때마다 경찰과 관련된 장난감들을 사오며 이리저리 꼬셨다. 덩달아 케빈 킴도 눈을 반짝이며 ‘아이돌 할래, 서준아?’하고 꼬셨지만, 나라 킴만큼은 아기 서준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여튼.
그때부터 서준과 우리 킴은 가끔 보지만 친한 친척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러게요. 이번엔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요.”
서준이 국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서준과 우리 킴의 친분에 대해 알고 있었던(몇 번 보기도 했다.) 최태우도 그 뒤를 쫓아가려다가, 놀라 바짝 굳어 있는 코너 밀스를 발견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이런저런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서 정재계 인사들을 아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런 공적인 사이가 아니라는 듯 경찰국장과 서준 리는 굉장히 친해 보였다.
“어떻게, 아시는……?”
“킹즈에이전시 사장님과 남매십니다.”
조금만 조사해 보면 나오는 정보라서 최태우는 편하게 밝혔다.
아하.
코너 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납득이 간다.
물론 에이전시 사장의 가족과 소속 배우가 사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킴입니다.”
“코, 코너 밀스입니다.”
서준과 짧게 인사한 우리 킴 국장은 루카스 터너의 매니저, 코너 밀스와 악수를 나누고 국장실 내에 있는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준이에게 연락받았습니다. 루카스 터너 배우가 사라졌다고요.”
“어, 언제?”
놀라 바라보는 코너 밀스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문자로 연락드렸어요.”
그 말에 서준이 계속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던 게 떠올랐다.
바쁜 일인가 했는데, 루카스 터너의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뭉클함에 코너 밀스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 있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네. 그렇습니다. 숙소에 없는 걸 발견한 건 조금 전인데…… 정확히 언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보디가드분들은?”
“나가는 것을 못 봤다고 합니다.”
그에 서준이 말했다.
“어쩌면 창문으로 나갔는지도 몰라요.”
최태우와 코너 밀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킴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메모했다. 의아한 의견이라도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게 서준의 말이라면 좀 더 신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엔 합당한 이유도 있었다.
“메소드 연기 때문인 거지?”
“네. 남의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팬텀은 조용히 나가고 싶어 할 테니까요. 마침 2층이기도 하고요.”
창문을 통해 2층에서 탈출하는 건, 스턴트 훈련을 받은 루카스 터너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숙소가 있는 동네를 보면…… 목격자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네.”
좀도둑이 흔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괜히 갱단의 일에 엮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고가 잘 들어오는 곳이 아니었다.
“그, 그럼…….”
코너 밀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왔다.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지 않는 망할 친구지만 무사하길 바랐다.
“일단 연락을 받자마자 최대한 조용히 경찰들을 보냈습니다. 서준이 말대로 할렘가도 찾고 있습니다. 또 유명 배우인 만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SNS도 조사하고 있죠.”
서준의 문자를 받자마자 조용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했던 우리 킴 국장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오는 소식이 없다 보니 좀 더 대대적으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네, 네.”
우리 킴 국장의 말에 코너 밀스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분께서는 루카스 터너 배우가 어떤 성격인지, 어디로 갔을지 직원에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나는 건 전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코너 밀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루카스 터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는 정말 자신의 친구 루카스 터너일까, 아니면 ‘팬텀’ 로건 테이트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중간의 어떤 이일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삼촌.”
그때, 서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믿음직하고 안심이 되는 목소리였다.
우리 킴 국장과 코너 밀스, 최태우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제가 루카스가 있을 만한 곳들을 찾아봤거든요.”
“응? 어떻게?”
“팬텀이 사는 곳과 비슷한 곳에 있을 것 같아서 감독님께 관련된 자료를 받았어요.”
갑작스러운 서준의 연락에 마크 웨버 감독은 의아해했지만, 금방 [팬텀1]과 [이레귤러스]와 관련된 팬텀의 자료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스트리트 뷰로 찾아봤어요.”
스트리트 뷰.
실제 거리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사진들이라, 동네 분위기를 파악하기 좋았다. 서준은 그 사진들을 보며 영화에 나오는 ‘팬텀’의 동네로 가장 어울리는 곳들을 찾아냈다.
‘아마 루카스도 이랬겠지?’
어쩌면 직접 가 본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서준의 말에 최태우와 코너 밀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스트리트 뷰라니…….”
서준이 경찰국에 오는 내내 휴대폰을 보고 있었던 게, 우리 킴 국장과 문자를 주고받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킴 국장이 가볍게 웃었다.
스트리트 뷰야 생각해 낼 수 있다고 해도, ‘팬텀이 사는 동네’의 이미지를 추출하는 건 아마 배우들만 할 수 있는 것일 터였다.
“후보지는 몇 곳이나 있어?”
“여섯 군데요.”
“적당하네. 바로 문자로 보내줘, 서준아.”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후보지의 주소와 사진들을 우리 킴에게 보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알아. 다른 곳도 찾아보라는 이야기지?”
척하면 척이다.
우리 킴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야 90%의 확률로 저 후보지들 중 루카스 터너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후보지들까지 추려낸 상황에 코너 밀스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어쩌면 금방, 무사히 루카스 터너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 이제…….”
루카스 터너의 매니저에게서 다른 정보를 얻기 위해 부하직원을 부르려던 우리 킴 국장이 무언가 떠오른 듯 내선전화로 향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아. 지금 루카스 터너 배우가 ‘팬텀’이라면, 아무래도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은데.”
하긴 그랬다.
제정신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조금 불안정한 상태가 아닌가.
[팬텀]에서도 경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팬텀이었다.
“어떻게 하면 무사히 데려올 수 있을까?”
어쩌면 ‘팬텀’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을 서준에게 우리 킴 국장이 물었다.
그에 서준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보통이라면 ‘메소드 연기의 부작용’이란 이야기도 믿기 어려울 텐데, 한발 앞서 실종자의 태도를 생각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하긴 찾는다고 다가 아니지.’
뒤늦게 코너 밀스도 그 문제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아마 괜찮을 거예요. 팬텀은 몰라도, 아직 로건 테이트는 일반인일 뿐이니까요.”
할렘가의 주민으로서 경찰들에게 좀 경계도 하고 진짜 경찰인가 싶어 의심도 하겠지만, 협조에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대신,”
서준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루카스 터너라고 불러도 반응이 없으면, 로건 테이트라고 불러야 할 거예요.”
코너 밀스의 손이 떨렸다.
어쩐지 숨이 턱 막혔다.
* * *
“그럼 난 저녁거리 사 올게. 서준아.”
코너 밀스가 NYPD 직원과 함께 떠나고, 서준과 최태우도 국장실을 나와 경찰국 내의 회의실로 향했다. 오늘 루카스 터너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늦지 않은 시간까지는 함께 기다려 보기로 했다.
최태우는 아직 못 먹은 저녁을 사러 가기 위해 회의실을 나갔다.
큰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진짜 상상해 본 적도 없는 큰일이 생겨 버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건 플래그였나?’
다시금 한숨을 내쉰 최태우는 서준과 코너 밀스가 먹을 음식을 사러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던 서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생의 도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