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21화 (92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21화

여기 한 가문이 있다.

조금 오래전, 머나먼 이국의 땅에 자리를 잡은 이들로 이루어진.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은 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일했고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일했다. 해야 하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의지와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이 나라에 무사히(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사에 재능이 있었는지, 정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려운 고국에 얼마간이라도 돈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가세를 불릴 수도 있게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그들이 운영하던 조그마한 점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회사가 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보고서를 통해 묻고 답할 정도로 기업가적인 가풍이 깃들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이 큰 회사를 이끌어가던 사장에게 세 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아이들이 자라자, 사장과 집안 어르신들은 후계자를 정하기로 했다.

옛시절이 그러했듯, 회사는 첫째에게, 둘째와 셋째에게는 얼마간의 재산을 나눠주기로 했다.

첫째는 똑똑했고 성실했다. 회사를 맡겨도 든든할 터였다.

바란다면 둘째와 셋째가 함께 일해도 괜찮을 터였다. 사이좋은 남매였으니까.

완벽한 계획이었다.

첫째가 탈주할 때까진.

‘뭐어!?’

첫째가 남긴 보고서의 탈을 쓴 편지를 읽은 아버지와 어머니, 집안 어르신들이 뒷목을 잡았다. 슬쩍 중요하지 않은 서류들 사이에 끼워 넣은 터라, 탈주하고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이, 이놈의 자식을 그냥!’

사장이 당장 첫째 놈의 카드를 정지시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건 필요 없는 조치였다.

첫째가 가지고 나간 건 그동안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받았던 소중한 물건들과 옷 몇 가지, 그리고 인생 경험이라며 했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억!

아버지가 다시금 뒷목을 잡을 정도로 깔끔한 도망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하루 이틀 계획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바라신다면 키워준 비용도 갚을 용의가 있다는 글이 편지에 있었다. 물론 다만 다 갚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도 적혀 있었다.

‘이놈이 부모를 뭐로 보고!’

키워준 비용을 받아내는 부모도 있다지만 사장 부부는 그런 부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연락이 닿았을 때, 버럭 화를 내는 부모님께 첫째는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드려야 했다.

하여튼 완벽했던 계획에 금이 갔다.

다시 후계자를 찾아야 했다.

둘째와 셋째.

누구로 하지, 하고 고민하려고 하는데, 고민할 틈도 없이 셋째가 탈주했다.

아무래도 첫째를 보고 배운 듯, 제집 앞마당인 것처럼 LA를 돌아다니며 랩을 배우고 즐기던 셋째가 아이돌을 하겠다며 훌쩍 한국으로 떠난 것이었다.

……하아.

또 한 번 받은 보고서의 탈을 쓴 편지를 읽던 사장 부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것 같았지만, 진짜로 그럴 줄은 몰랐다. 제 갈 길 찾아 떠나는 자식들을 보니 교육을 잘못한 것인지 잘한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제 남은 자식은 하나.

둘째뿐.

그렇게 둘째가 회사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어부지리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사실 형이 있을 때도 누나를 후계자로 하면 어떨까 종종 이야기가 나오긴 했어.”

한국으로 탈주해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귀여운(또 아무도 모르지만 ‘능력’ 있는) 아기 덕분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꽃길을 걷고 있는 킴 씨 가문의 셋째, 케빈 킴(만세 킴)이 이야기했다.

꼬마 서준과 블라운블랙 멤버들과 함께 치열하게 후계자 싸움을 하고 있는 재벌들의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바로 옆에 재벌인 데다가 남매가 있는 멤버가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

“다들 옛날 사람이라서 반쯤 꽉 막혔거든.”

“꽉 막힌 것도 아니고, 반쯤 꽉 막힌 건 뭐야?”

꼬마 서준과 브라운블랙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케빈 킴도 따라 웃었다.

“형이 장남이니까 회사를 물려주긴 해야겠는데, 누나의 재능이 아까웠다는 거지. 아마 형이 조금 부족했으면 바로 누나가 후계자가 되었을걸.”

아니다. 생각해 보면.

“형을 제대로 안 찾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누나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형이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돈으로 안 되는 건 없거든.”

훌쩍 떠나버렸다고 해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열정적으로 첫째를 찾지 않았다.

아무래도 옛날부터 그랬으니 장남에게 물려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더 잘할 것 같은, 더 알맞은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내심 고민하고 있던 걸 형이 알아차린 거구나.”

알아서 물러나 주시다니.

생각이 깊으시다, 하고 박서진이 말하는데, 케빈 킴이 픽-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형은 그냥 형 하고 싶은 거 한 거야. 그래서 누나한테 엄청 고마워해. 누나가 없었으면 하기 싫은 회사 일을 해야 했을 테니까.”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책임감이 많은 형이니 누나가 없었다면, 누나가 하기 싫어했다면 후계자 자리를 받아들였을 터였다. 조금 씁쓸함이 남은 마음으로.

“후계자 하기 싫다는 사람은 또 처음 보는 것 같네.”

“그러게요.”

황예준과 최시윤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작은 회사들도 이런저런 싸움이 나는데, 무려 미국 내 한인마켓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킹즈마켓의 후계자 아닌가.

“케빈 형은요? 후계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꼬마 서준의 물음에 케빈 킴이 웃었다.

“난 랩이랑 아이돌 활동이 더 좋아. 그리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해도 부모님이 안 시켜줬을걸. 형이 튀었을 때부터 99% 누나로 결정된 거였거든.”

회의도 필요 없었을 거다.

‘그럼 나라로 하죠.’

‘나라가 잘하지.’

진짜 1초 만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눴을 터였다.

물론 하하 호호 나누는 이야기마저도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였을 테지만. 아주 뼛속까지 기업인인 킴 씨 가문이었다.

“1%는 뭐예요?”

“누나가 하기 싫어할 경우. 근데 그때도 내가 아니라 형을 잡아 왔을 것 같긴 해.”

……그래. 건강하게만 크거라.

라는 덕담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들으며 자랐던 케빈 킴이 말했다.

“근데 나라 누나는 괜찮았대요? 후계자 되는 거?”

혹시 싫은데 하는 거 아니냐는 의미가 담긴 최시윤의 물음에 케빈 킴이 빵 터졌다. 아마 킴씨 가문 사람들이 들으면 자신처럼 바닥을 치며 웃었을 터였다.

“누난 옛날부터 회사 일 엄청 하고 싶어했어. 아마 형이 회사 일에 관심 있었으면 둘 중 하나였을걸? 드라마처럼 치고받고 싸우든가, 누나가 투자금 받고 나가서 새 회사를 만들든가.”

아무래도 후자가 더 가능성 있긴 했다.

다들 가족들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뭐, 어떤 걸 선택해도 누나는 성공했을 테지만.”

그에 서준과 브라운블랙 멤버들은 킴씨 가문의 둘째, 나라 킴을 떠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 킴이라면 그럴 것 같았다.

“이건 내 추측인데 형이 튄 것도 누나가 도운 것 같거든.”

“그래?”

“어. 나도 도와줬어. 누나가.”

나라 누님!

사실 누님이 흑막이었던가!

하고 놀란 표정을 짓는 멤버들에 케빈 킴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먼저 부탁했어.”

케빈 킴은 나라 킴을 떠올렸다.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나중에 돌아와서 후계자가 되고 싶다고 해도 유산 빼고는 안 줄 거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아마도 형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진지한 물음이었지만, 유산을 준다고 말하는 게 좀 웃겼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유산까지도 뺏지 못해서 안달이라던데.

‘만세 너 하고 싶은 거 해. 나라가 안 하겠다면 내가 하지, 뭐.’

랩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형도 떠올랐다. 형도 다 두고 떠날 정도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서 말이다.

‘누나가 안 하겠다고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한 말이겠지만.’

정말로 나라 킴이 안 하겠다고 했으면 형이 후계자를 했을 터였다.

이래서 케빈 킴은 누나가, 형이, 가족이 좋았다.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 바로 이런 가족을 만난 게 아닐까. 두번째 행운은 브라운블랙 멤버들과 은찬이 형과 만난 것, 그리고 서준이를 만난 거일 테고.

아마도 자신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았다.

케빈 킴이 실실 웃었다.

“근데 옛날에 한국으로 돈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뭐야?”

“아, 우리집이 독립운동 자금을 냈대. 많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도울 수 있는 건 돕기도 했다더라고. 훈장도 있어.”

와아!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꼬마 서준과 브라운블랙 멤버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를 가진 킴씨 가문의 장남, 첫째는 집을 나간 후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장남으로 가문의 기대를 받아왔고 그 기대에 잘 부응해 오던 첫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일이 하고 싶었지만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여동생이 회사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닌가. 게다가 능력도 자신보다 좋았다.

그래서,

‘이런 건 나라가 잘하더라고요.’

‘아, 나라가 그러던데…….’

하고 은근슬쩍, 그리고 열심히 나라 킴에 대해 어필했다.

‘뭐지?’ 하다가 이내 오빠의 속내를 파악한 나라 킴은 덥석덥석 그 어필을 잘 받아먹었고, 케빈 킴도 그런 형과 누나를 보며 깨달은 듯, ‘회사 일 관심 없어요. 저는 못 해요. 랩 하고 싶어요.’ 하고 열심히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참으로, 사업가 집안 자식답게 영리하고 약삭빠른 남매가 아닐 수가 없었다.

하여튼.

그렇게 꽤 오래전부터 준비한 첫째의 탈주는 성공적이었다.

가문의 앞마당 같은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나 반대편에 있는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오고 가는 사람도 많고 동양인도 많아 눈에 띄지 않을 터였다.

낡고 좁은 월세방이었지만 좋았다.

이제 바라왔던 걸 준비하면서 여동생이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나 후계자 됐어.’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만.

나라 킴에게서 온 연락에 첫째는 웃고 말았다. 다들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좋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만세도 튀었어.’

막내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지인들이 있는 미국도 아니고 태평양 건너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한국으로 튀었단다.

‘걔가 좀 그런 면이 있잖아.’

‘그렇지.’

사랑만 받고 커서 그런가, 가장 겁이 없는 막내였다.

‘그럼 잘해봐, 오빠.’

‘고맙다.’

‘아, 엄마가 연락하래. 안 하면 죽는대.’

둘째에게만 연락처를 남겨뒀다는 걸, 알고 계셨나 보다. 첫째가 볼을 긁적이다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한바탕 사과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첫째는 일단 자신의 힘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생활비도 괜찮다고 했다.

‘이게 이 집안 내력인 건지…….’

한숨처럼 말하는 어머니에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성실함과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는 의지와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진, 킴 씨 가문.

하지만 삼 남매는 어머니 성격도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열심히 해보렴.’

‘네. 그럴게요.’

‘왜 거기까지 가서 경찰을 하겠다는 건지…….’

쓸데없는 소릴!

휴대폰 건너에서 찰싹! 하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등을 내려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첫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

킴씨 가문의 세 남매 우리, 나라, 만세 중 첫째인 우리 킴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그날 이후, 우리 킴은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가다듬으며 테스트 날을 기다렸고, 단번에 합격하여 뉴욕시 경찰국의 제복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국장실?”

루카스 터너의 매니저 코너 밀스는 입을 쩍 벌리고 서준 리가 똑똑, 하고 두드리는 문에 달린 팻말을 바라보았다.

[국장실]

킴 씨 가문의 첫째, 우리 킴은 동양계 미국인 최초로 뉴욕시 경찰국의 국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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