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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20화 (92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20화

서준의 말에 코너 밀스가 눈을 끔벅였다.

“루카스가…… 할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준?”

오랜 시간 친구였던 자신도 사라진 루카스 터너가 어디로 갔는지 예상을 할 수가 없는데, 서준 리는 어떻게 이렇게 확신하는 걸까.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먼저 루카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루카스의 상태……요?”

코너 밀스가 오늘의 루카스 터너를 떠올렸다.

‘그냥 평소랑 다를 게 없었는데……’

적당히 짜증 내고 적당히 순순하고.

“태우 형, 보디가드분들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

코너 밀스가 끙끙대며 루카스 터너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서준은 최태우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예상과는 다른 큰일이 터져 당황하던 최태우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서준 또한 휴대폰을 꺼내 들며 코너 밀스에게 물었다.

“루카스가 원래부터 이렇게 연기 연습을 하고는 했나요?”

“이렇게라면……?”

코너 밀스의 되물음에 서준이 연습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료를 잔뜩 가져다 놓고 캐릭터를 연구하는 거 말이에요. 여기서 종종 잤다는 이야기도 아까 하셨잖아요.”

“네. 그랬죠.”

코너 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는 캐릭터를 분석한 후에 연기를 하는 타입입니다.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코너 밀스는 더 어렸던 시절의 루카스 터너를 떠올렸다.

첫 오디션에 지원하기 전, 아니, 그것보다 더 오래전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하던 시절부터 루카스 터너는 먼저 캐릭터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게서 자료를 받아 캐릭터의 말투를 연구하고 성격을 궁리했죠. 그걸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는 했습니다.”

루카스 터너의 옆에는 언제나 책과 자료, 대본이 놓여져 있었다.

“또 루카스는 자료 조사도 하면서 캐릭터들을 생생한 존재로 만들었죠. 말하자면, 분석가라는 별명이 붙은 에반 블록 배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코너 밀스의 말에 보디가드들과 통화를 끝내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태우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언젠가.

그러니까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 때, 에반 블록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가 있었다.

‘그게 분명…….’

메소드 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에반 블록은 말했다.

한때, 자신의 연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메소드 연기에 대해 고민했다고.

적절히 사용할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분석가라는 별명이 붙은 자신이라면 분명 깊게 파고들었을 거고, 그럼 분명 큰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

반쯤 가볍게 말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던 말이었다.

최태우의 눈이 커졌다.

어쩐지 루카스 터너가 지금 어떤 상황일지 알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맞다는 듯 서준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거의 세뇌하듯 하지는 않았겠죠?”

세뇌.

서준의 말한 단어에 미간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하려고 하던 코너 밀스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언제…….’

온통 ‘팬텀’과 ‘로건 테이트’에 대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벽들이 그제서야 눈에 확실히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됐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삼 굉장히 이상하고 소름 돋게 다가와, 코너 밀스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서준이 말을 이었다.

“아마 루카스는 여기 이 자리에 앉아서,”

연습실의 유일한 가구인 앙상해 보이는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루카스 터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계속 이 자료들을 보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었겠죠.”

대본을 보고, 설정 자료를 보고, 사진을 보고, 신문을 보고. 떠올린 것을 필기하며.

“나는 팬텀, 로건 테이트다, 하고.”

어쩐지, 루카스 터너의 그늘진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루카스는 지금 자신이 로건 테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로건 테이트’는 ‘루카스 터너’의 연습실이라는 낯선 장소에 자신이 있는 것을 의아해하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겠죠.”

그에 멍하니 연습실 안을 바라보고 있던 코너 밀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로건 테이트’의 집은 할렘가에 있었다.

가장 어둡고 위험한 곳.

제정신이 아닌 루카스 터너가 그런 곳에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어, 얼른 경찰에 연락해야겠습니다.”

영화도, 언론도 중요하지만, 친구가 가장 중요했다.

“아마 전화로 신고하면 안 믿어줄 거예요.”

할리우드 배우가 사라졌다고 신고하면 대부분 장난인 줄 알 터였다.

“그럼 지금 바로 경찰서로……!”

“저한테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서준이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일단 보디가드들에게 수색을 맡긴 서준과 두 매니저는 경찰서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불안해하는 코너 밀스 대신 최태우가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엔 안 그랬습니다. 겨우 화이트보드 두 개를 앞뒤로 뒤덮을 정도였는데…….”

눈을 뜨고 있어도 벽을 가득 채운 종이들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언제부터 심해졌는지 기억하세요? 아마, 성격에도 좀 변화가 있었을 거예요.”

서준의 물음에 코너 밀스가 기억을 더듬었다.

[이레귤러스]를 준비할 때?

아니다.

그땐 이미, 루카스 터너의 집에 있는 연습실도 이런 상태였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팬텀]를 준비할 때?

아니다.

그때 분명 열심히 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팬텀]과 [이레귤러스] 사이, 루카스 터너가 변한 것이었다.

“팬텀이 시리즈 영화라서,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서도 계속 분석을 했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팬텀]과 [이레귤러스]는 7년의 텀이 있었다.

루카스 터너는 다른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팬텀 시리즈]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몰랐다.

점점 늘어가는 자료들과 천천히 변해가는 루카스의 모습을.

‘팬텀’은 긴 세월에 걸쳐 한 뼘 한 뼘 루카스 터너의 연습실과 마음을 물들여가고 있었던 거였다.

“특히…….”

친구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자책하며 마른세수를 하던 코너 밀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5년 전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루카스 터너가 유난히 연습실에 오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 저 때문일 거예요.”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던 서준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최태우와 코너 밀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과 루카스 터너가 만난 건 불과 며칠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기억하세요?”

“당연하죠. 루카스의…… 아!”

코너 밀스가 탄성을 내뱉었다.

[신의 이름으로]

조나단 윌 감독의 독립영화로, 루카스 터너가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그리고 서준 리가 대학교 입시 실기로 연기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게…… 5년 전이구나.”

최태우도 탄식하듯 말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팬텀이 재미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시즌2를 이끌어나가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잖아요. 제가 나왔어야 했다는 글들도 있었고요.”

[나이트 진]은커녕 [쉐도우앤나이트]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던 때지만, 서준 리가 나오길 바라는 사람들은 많았다.

“루카스는 그걸 신경 쓰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제가, 신의 이름으로를 연기한 거죠.”

자신은 그저 루카스 터너의 연기가 좋아서, 대본이 좋아서 한 것이지만.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방법으로 연기에 몰입하려고 한 거겠죠.”

그게 메소드 연기였을 거다.

배우를 아예 캐릭터로 만들어버리는, 효과적인 방법인 데다가 서준 리가 사용한다고 알려진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서준의 메소드 연기는 많이 달랐지만 한 번도 서준과 연기해 본 적이 없는 루카스 터너는 몰랐을 거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5년이나 잠잠하다가.”

최태우가 물었다.

‘잠잠한 건 아니었지만.’

코너 밀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정보가 더 많아져서 그럴 거예요.”

“정보?”

“네. 그동안은 팬텀1 대본이나 설정밖에 없었는데, 이레귤러스를 준비하면서 새 대본이 생기고 새로운 설정들이 덧붙여졌잖아요.”

휴대폰을 만지던 서준이 쓰게 웃었다.

“게다가 마크 감독님도 계시고요.”

“감독님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루카스랑 감독님이랑 자주 연락하지 않았어요?”

서준의 말에 코너 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하긴 했죠.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다고.”

“마크 감독님이 캐릭터한테 설정 붙이는 걸 좋아한다고 할까…… 잘하시거든요.”

지나가는 엑스트라에게도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불어넣는 마크 웨버 감독이었다. 그러니 주연인 ‘팬텀’에게는 얼마나 자세하고 세세한 설정을 붙였겠나.

마크 웨버 감독은 아주 친절히도 그 모든 설정들을 루카스 터너에게 알려줬을 거고, 루카스 터너는 그대로 흡수했을 터였다.

“아마 연습실에 붙어 있는 자료 중에 마크 감독님이 알려주신 정보도 많을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작게 한숨을 내뱉은 코너 밀스가 물었다.

“그랬군요.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뭔가요?”

첫 번째라고 말했으니, 두 번째 이유도 있을 터였다.

그에 서준이 답했다.

“저 때문일 거예요.”

서준은 연습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종이들에 적혀 있던 문장을 떠올렸다.

[준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루카스 터너가 고민하고 있다 싶으면, 꼭 그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훈련장에서의 루카스 터너를 떠올렸다.

랜스 레먼은 째려본다고 말했지만, 그건 째려보는 게 아니었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서준의 연기를 지켜보던 루카스 터너.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한, 간절하고도 절실한 눈빛이었다.

“제가 하는 연기를 보고 더 몰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런 배우를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어.’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루카스 터너의 원래 성격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루카스 터너가 불퉁한 태도를 취한 것도 본의가 아니었을 거다.

“그럼 그동안 서준이 너한테 한 행동은…….”

“몰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걸 거예요. 그러니까 팬텀이 나이트 진에게 하는 행동이었겠죠.”

그에 코너 밀스가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대학생이…… 윌리엄 리를 말하는 거였구나.’

일반인이라는 것도,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는 것도.

전부 윌리엄 리에게 로건 테이트가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답이 가끔 늦은 것도,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것도 루카스 터너와 로건 테이트 사이에서 혼동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서준의 말에 가끔 멍하니 있던 루카스 터너를 떠올린 코너 밀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젠장……!’

도대체 매니저라는 놈이……!

홀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있었을 친구에 속상함과 화가 끓어올랐다.

“준.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 온갖 욕설을 뱉어낸 코너 밀스가 서준을 불렀다.

“이제 루카스는 연기를 하지 못하는 겁니까?”

만약 팬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만약 다음 영화에서도 이렇게 된다면.

코너 밀스는 루카스 터너가 연기를 하지 않는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루카스 터너도 굉장히 괴로워할 터였다.

“아뇨. 그럴 순 없죠.”

서준이 씩 웃었다.

좋은 배우다. 능력도 출중했고 열정도 대단했다. 놓칠 수는 없었다.

“그전에 일단, 루카스부터 찾도록 하죠.”

차가 멈춰 섰다.

서준과 최태우가 먼저 내리고 코너 밀스도 차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근처 경찰서로 간다기엔 이동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코너 밀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폴리스 플라자Police Plaza

뉴욕시 경찰국(NYPD)이었다.

“아니, 여긴 왜……?”

그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아는 분이 여기 계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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