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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19화 (91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19화

잠시 후.

매니저 코너 밀스의 차가 서준의 숙소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코너 밀스입니다.”

“태우 최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묘한 침묵이 잠깐 이어졌다.

둘 다 웃고는 있는데, 하나는 살벌하고 하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서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어, 리.”

“네?”

그런 서준을 코너 밀스가 불렀다. 그리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루카스가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닌데…… 음…… 아뇨, 뭐라고 변명할 것도 없군요. 루카스가 잘못한 일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소리와 표정에서 미안함이 절절 묻어나왔다.

“괜찮아요. 실수인데요, 뭘.”

고의와 실수를 구분하지 못하는 서준이 아니었다.

서준이 웃으면서 말하자 코너 밀스는 감격했다.

“감사합니다. 리.”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준!”

진짜 이런 배우를 루카스는 왜 싫어하는 건지!

‘아니, 얼마 전까지는 좋아했잖아. 매일 작품을 볼 정도로!’

그것도 일반적인 작품이 아니라, 서준 리의 대학 입시 때 영상을.

코너 밀스는 어느새 변해버린 친구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 두 사람에 최태우는 조금 불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쓰게 웃고는 기분을 풀었다. 배우가 괜찮다는데, 매니저가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실수인 것도 있었고.

‘실수가 아니었으면…….’

음.

안 이사님이 날아오셨을까?

그날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 서준과 통화했던 안다호 이사를 떠올린 최태우가 침음성을 삼켰다. 물론 영화가 엎어지는 일은 없었겠지만.

‘……없었겠지?’

여튼.

큰일은 안 일어나서 다행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서준과 최태우가 차에 오르고 코너 밀스가 시동을 걸었다.

이동하는 동안 서준과 두 매니저는 가볍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창밖의 풍경이 최태우의 눈에 들어왔다.

배우를 보살피면서 주변도 살펴보는 게 일상이었던 최태우의 눈에 금이 간 벽으로 이뤄진 낡은 건물들이 안 들어올 리가 없었다. 색색의 락카 스프레이로 낙서가 된 벽들과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는 거리도. 구멍이 뚫린 철조망들과 불에 탄 것 같은 벽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돈 많고 유명한 이가 머물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해 보이는 동네였다.

“그런데 여기에 숙소가 있나요?”

서준도 알아차린 모양인지 운전하고 있는 코너 밀스에게 물었다.

“아.”

그에 코너 밀스가 쓰게 웃었다.

“원래는 안 이러는데…… 이번만 이곳으로 잡았습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서 루카스가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겉보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제법 안전한 곳입니다.”

코너 밀스도 루카스 터너와 한바탕했었다.

하지만 배우가 연기하는 데 필요하다는데, 제발 부탁한다고 말하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그저 한숨을 쉬며 최대한 배우의 마음에 들면서도 안전한 장소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팬텀이 비슷한 곳에서 살고 있긴 하죠.”

[팬텀]에 나온 장소와는 다른 점이 많지만 분위기는 좀 비슷한 것 같았다.

그 대화에, 최태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매니저가 참 고생이 많다 싶으면서도, 서준도 이럴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좋지만, 안전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서로 공감하는 매니저들에 서준은 데굴 눈을 굴리다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럼 올라가시죠.”

차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 건물도 다른 건물 못지않게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그나마 낙서나 부서진 곳은 적어 보였다.

“저흰 2층에 머물고 있습니다. 1층과 3층에 보디가드들이 있고요. 옆집에도 있습니다.”

서준은 영화 속 배경을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며 계단을 올라갔다. 낡은 건물의 계단이 삐걱삐걱 울렸다.

할리우드 미술팀에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였지만, 아무래도 생활감이나 현장감까지 구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벽 하나 난간 하나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어, 서준은 어째서 루카스 터너가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준이 눈을 빛냈다.

“안 돼. 절대 안 돼.”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최태우에 서준은 입술을 조금 삐죽거렸다.

그래도 안 된다.

그런 배우와 매니저를 코너 밀스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준은 말을 잘 듣는구나.’

루카스도 이랬는데…….

한숨을 삼킨 코너 밀스가 입을 열었다.

“여깁니다. 거실도 작고 방도 하나밖에 없어서 루카스는 여기서 식사와 연습을 하고, 옆집에서 잠을 자죠. 연습을 하다 보면 보통 연습실에서 자지만요.”

코너 밀스가 문을 열었다.

삐걱- 하는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관리를 잘하는 모양인지 부드럽게 열렸다.

숙소 안쪽도 그랬다. 배우와 매니저가 편하게 쉴 수 있게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레귤러스] 대본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이……!”

서준과 최태우가 둘러보는 사이, 코너 밀스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오늘 저녁 식사의 주최자로서 거실에서 서준 리를 맞이해야 했던 루카스 터너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잊지 말라고 했는데!’

손님이 있어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한 코너 밀스가 훅- 하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 집의 유일한 방이자 현재는 루카스 터너의 연습실로 쓰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똑똑-

“루카스, 들어간다.”

그래도 연습에 집중하고 있을 배우를 위해 노크는 잊지 않는 매니저였다.

들어오라는 대답도 듣지 않고 연습실의 문을 열긴 했지만.

코너 밀스가 문을 열었다. 작은 거실 구경을 끝낸 서준과 최태우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인 없이 텅 비어 있는 연습실을 발견했다.

!!

방 안을 본 서준과 최태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멈칫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좁은 방.

앙상한 나무 의자만이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연습실의 네 개의 벽이 모두 종이들과 사진들로 뒤덮여 있었다.

* * *

“얘가 어딜 간 거야.”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딱히 놀란 것 같지 않은 코너 밀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준, 태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바로 루카스 데려오겠습니다. 아마 옆집에 있는 것 같은데…….”

“네에.”

눈을 깜빡이며 조금 멍한 표정으로 방 안을 보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동안 연습실 좀 구경해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코너 밀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덧붙였다.

“자료만 안 건드리시면 됩니다.”

“그럴게요.”

“진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코너 밀스는 망할 친구 놈을 찾으러 향했다.

그사이.

서준은 루카스 터너의 연습실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종이로 뒤덮인 방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있었을 공간까지도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어 밖이 보이질 않았다.

서준은 걸음을 옮겨 가까운 벽 앞에 섰다.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최태우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준을 따라 움직였다.

방문 앞에서 봐도 어질어질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조금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종이에 있는 내용은 더욱 그랬다.

“서준아. 이거 전부…….”

최태우가 질린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맞아요.”

그에 종이들을 읽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팬텀과 로건 테이트에 대한 자료들에요.”

[로건 테이트는 13살 때…….]

[팬텀 목격자의 증언!]

[팬텀으로서의 힘은…….]

[팬텀! 오늘도 무사히 빠져나가다!]

‘팬텀’과 그 본체 ‘로건 테이트’의 설정이 담긴 프린트된 종이부터 아마도 [팬텀]에서 소품으로 사용했던 신문지들, 한 장 한 장 찢긴 [팬텀]과 [이레귤러스]의 대본들, [팬텀]에서 사용했던 가십지들, 거기에 영화 [팬텀] 속, ‘팬텀’과 ‘로건 테이트’의 사진들까지.

그 모든 것이 빈틈없이 방의 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루카스 터너의 손이 닿는 맨 위쪽부터 맨 아래쪽까지 전부.

“허어.”

최태우가 크게 탄식했다.

이게 전부 ‘팬텀’과 ‘로건 테이트’에 대한 자료라니. 방 안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 그래도 같은 종이가 좀 있네.”

살펴보니 같은 사진과 같은 자료가 적혀 있는 종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반 정도는 인테리어로 붙여놓은 게 아닐까……?

“근데, 적혀 있는 내용은 달라요.”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난 최태우와 달리, 서준은 더욱 앞으로 걸어가 종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글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히.

검은 눈동자가 전에 없이 번뜩이고 있었다.

“달라?”

“네. 루카스가 자료나 대본을 분석하다가 적어놓은 것 같은데, 다 달라요.”

쭈그려 앉아 아래쪽에 붙은 종이들까지 읽고 있던 서준이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세 장의 종이를 가리켰다.

“이건 처음 팬텀의 대본을 받았을 때 적은 분석 같고, 저건 팬텀의 촬영이 끝나고 적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이레귤러스를 준비하면서 한 분석 같고요.”

그에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본 최태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디 한 곳 펜 자국이 없는 종이가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다 다른 내용이라고?

또, 그것만 읽고 언제 분석하고 적었는지 알아차리는 서준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최태우에게 설명해 준 서준은 다시 벽에 붙어 있는 종이들을 읽기 시작했다.

루카스 터너의 배역과 출연에 대한 고민과 걱정, 제대로 연기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좌절과 실망 그리고, 이해와 공감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이해와 공감.

‘캐릭터에 몰입하기에 좋은 자세이기는 하지만…….’

서준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서준아. 캐릭터 분석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루카스 터너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만! 준!”

그때.

코너 밀스가 헐레벌떡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며 외쳤다.

그제야 최태우는 깨달았다. 바로 옆집에 있는 루카스 터너를 데리러 갔던 코너 밀스가 생각보다 늦었다는 걸.

“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코너 밀스의 모습은 영 좋지 않았다. 땀도 흘리고 있었고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 있나요?”

서준의 물음에 코너 밀스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루카스가 사라졌습니다. 건물 안과 주변을 살펴봐도…… 없었습니다.”

최태우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서준은, 왠지 그럴 것 같았다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걱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죄송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준의 보디가드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라도 더 있다면 루카스 터너를 찾는 게 빨라질 터였다.

물론 루카스 터너는 혼자서도 돌아다닐 수 있는 성인이긴 하지만, 촬영을 겨우 열흘 남기고 사라질 녀석이 아니라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도와드릴게요.”

서준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에도 연락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코너.”

루카스 터너가 유명인이고 [이레귤러스]의 촬영이 곧이라 큰 소동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종이로 가려져 있는 창문 밖은 지금 어둠이 내려앉아 있을 터였다.

“어쩌면 루카스는 할렘가에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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