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18화
“아…… 죄송합니다.”
루카스 터너의 말에, 말릭 스펜서가 호탕하게 웃었고 서준도 씩 웃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요.”
그에 쓰게 웃은 루카스 터너가 말했다.
“잠시만, 괜찮을까요?”
그러고는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종이를 꺼내 읽었다. 보아하니 대본인 것 같았는데, 대본을 쥔 루카스 터너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많이 긴장했나 본데?”
“그러게요.”
그걸 발견한 서준과 말릭 스펜서는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곧 돌아온 루카스 터너는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잘하는데!”
“멋졌어요, 루카스!”
“……감사합니다.”
두 배우의 칭찬에 루카스 터너가 작게 웃었다. 매니저가 흐뭇해하는 것이 보였다.
다음으로는 팬텀이 혼자서 적을 상대하는 장면이었다. 루카스 터너는 오전에 그랬듯 처음부터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다음 훈련에서는 또 발도 떼지 못했다.
루카스 터너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다시금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가 대본을 펼쳤다. 바짝 힘이 들어간 손에 대본이 구겨졌다.
다음 날도 그랬다.
루카스 터너는 처음부터 잘하다가도, 어느 장면들에서는 한 걸음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데 거기엔 공통점이 있었다.
배우들도 스턴트맨들도 트레이너들도 알아차릴 정도로 확실한 공통점이.
‘나 때문인가?’
루카스 터너가 실수한 장면들은 전부 서준 리와 함께하는 훈련들이었다.
저절로 서준과 루카스 터너의 사이에 의문이 생겼다.
“루카스랑 만난 적 있어, 준?”
“아뇨. 어제 처음 만났어요.”
말릭 스펜서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도대체 왜?
사람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그렇다고 일부러 실수한다고 생각하기에는, 루카스 터너는 진심으로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미안한 듯 표정도 어두웠고, 매번 보는 대본들도 너덜너덜했다.
“아직 안 익숙해서 그런가 보지.”
‘혹시 동양인 배우라서……’와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전에, 랜스 레먼이 말했다.
“아니면 준의 팬이라서 긴장한 걸지도.”
테사 해리슨이 웃으며 말했다.
그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하긴 이제 겨우 이틀 지났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루카스 터너의 실수는 삼 일 차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서준과 함께 훈련을 해도 다른 훈련과 마찬가지로 잘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도 잠도 안 자고 고민했는지, 눈 아래가 검게 그늘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래서일까.
실수는 사라졌는데, 루카스 터너의 신경은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특히, 서준 리에게.
“이거 드실래요, 루카스?”
“……아니. ……괜찮습니다.”
맛있는 간식을 거절당한 서준이 랜스 레먼의 옆에 앉았다. 딱히 시무룩해지지는 않았다. 간식이 취향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거절한 게 루카스뿐인 것도 아니고.’
랜스 레먼도 이미 거절할 상태였다.
“말하는 게 나한테 하는 거랑 비슷하긴 한데…… 더 퉁명스러운 느낌인 것 같은데.”
랜스 레먼의 말에 서준도 조금 동의했다.
루카스 터너는 서준의 말에 약간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기도 했고,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이내 참고 고개를 돌리는 일도 허다했다.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인사도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정중할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다.
‘그리고 준이라고 부르지도 않지.’
‘루카스’라고 편히 부르는 서준과 달리, 루카스 터너는 ‘준’이라고 부른 적도 없었고 ‘리’라고 부르는 것도 드물었다. 그냥 부르는 일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싫어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텐데…….’
아무리 배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 서준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서준도 그냥 무시할 텐데…….
“그리고 째려보기도 하잖아. 연습할 때.”
“아, 그건 째려보는 게 아니라…….”
음.
뭐라고 할까.
자신이 훈련할 때 봤던 루카스 터너의 눈빛을 떠올린 서준이 데굴 눈을 굴리다가 이내 작게 웃고 말았다.
서준은 루카스 터너가 싫지 않고, 좋았다.
그리고 걱정이 됐다.
* * *
그런 루카스 터너의 태도는 며칠 더 이어졌다.
처음에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지만, 점점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다. 계속 함께하던 스턴트맨들도 트레이너들도 분위기를 느낄 정도였다. 마린사 담당자까지 루카스 터너의 매니저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던 중.
“루카스, 잠깐 쉬는 게 어때요?”
힘들어 보이는 루카스 터너에게 서준이 스포츠드링크를 건네주었다.
“됐어…….”
“그래도 좀 쉬는 게…….”
“됐다니까!”
타앙-
하고 스포츠드링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루카스 터너가 손을 내젓다가 쳐버린 것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실수였는지, 서준보다 루카스 터너 본인이 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이를 악문 루카스 터너는 이내 벌떡 일어나 출입구로 걸어갔다. 서준 리와 루카스 터너의 일로 매일 출석하고 있던 매니저가 그런 루카스 터너의 뒤를 헐레벌떡 쫓아갔다.
“준, 괜찮아?”
“괜찮아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스턴트맨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음.
아무래도 루카스 터너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 *
“너 진짜 왜 그래?”
루카스 터너의 친구이자 매니저인, 코너 밀스가 답답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에 루카스 터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
하지만 코너 밀스는 그런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처음에야 이런 말투에 놀랐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얘가 날이 갈수록 성격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리가 얼마나 놀랐겠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영 느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아니, 리의 작품도 되게 좋아하면서 말이야. 언제는 같이 일하고 싶다며?”
루카스 터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가?”
코너 밀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루카스 터너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겠어?”
“하지만 걔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하는 루카스 터너의 모습에 코너 밀스가 입을 쩍 벌렸다.
“걔? 걔애!? 지금 리보고 걔라고 했어?”
“나보다 어린데 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여전히 불퉁한 루카스 터너의 모습에 코너 밀스는 이마를 짚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루카스 터너는 착하고 성실한 녀석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불퉁한 태도도 이유가 있을 거다. 서준 리가 뭔가를 잘못했다거나…….
‘젠장. 그럴 리는 없겠지.’
딱 봐도 좋은 사람이지 않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루카스 터너를 반겼고, 지금까지도 호감을 가지고 루카스 터너를 대했다. 함께하는 스턴트맨들의 이야기도 전부 좋았다.
그런 서준 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점점 성격이 더러워지는 루카스 터너를 의심하는 쪽이 더 이치에 맞았다. 스턴트맨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춘긴가…….’
사춘기도 없이 순했던 친구를 코너 밀스가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너…… 약하는 건 아니지?”
“절대 안 해!”
루카스 터너가 펄쩍 뛰었다.
묘하게 과민반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코너 밀스는 일단 안심했다.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거다. ……않겠지?
“그럼 이유가 뭐야. 네가 리를 싫어…… 음…… 그렇게 행동하는 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코너 밀스는 마치 달래듯 물었다. 그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루카스 터너가 대답했다.
“리 걘…….”
말 안 하겠다고 뻗댈 줄 알았는데 순순히 대답하는 친구에 코너 밀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이른 판단이었지만.
“대학생이잖아.”
……뭐?
“대학도 되게 잘 갔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냥 일반인으로 사는 게 낫지 않아? 부모님도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가족 사이도 좋은 것 같은데.”
……뭐요?
“능력이 좀 좋다뿐이지 그렇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우리랑 다르게…….”
“시X! 그게 무슨 헛소리야?!”
맹세코.
코너 밀스는 이런 헛소리가 친구, 루카스 터너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시X! 이제 친구도 아니다!
코너 밀스가 루카스 터너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후려쳤다. 억! 진심으로 때리는 친구에 루카스 터너가 맞은 곳을 부여잡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루카스 터너.”
코너 밀스가 이를 갈듯 낮게 읊조렸다. 루카스 터너가 눈을 깜빡였다.
“내일 훈련장에 오면 바로 리를 만나. 그리고 열흘 동안의 일을 사과하고 저녁 식사에 초대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번 더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야.”
“어, 어?”
“친하게 지내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예의 있게 행동하라고.”
코너 밀스가 살벌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
그에 어쩐지 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루카스 터너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그…… 저기…….”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으로 루카스 터너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그에 쓰게 웃은 루카스 터너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리. 내가 요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실례를 했습니다.”
어쩐지 코너 밀스의 살벌한 눈빛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정신줄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내일 시간 괜찮을까요?”
그에 서준의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그러고는 곧 둥글게 휘었다.
루카스 터너의 긴장감이 깃든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좋아요. 마침 쉬는 날이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단번에 들려온 시원스러운 대답에 숨어서 바라보고 있던 코너 밀스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래도 돼?!’
배우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저렇게 순진하면 어떡해, 하고 코너 밀스는 걱정했다.
“그럼 6시쯤 오시면…….”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코너 밀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루카스 터너가 목덜미를 매만졌다. 따가운 눈빛이 느껴진다 싶더니 진짜로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에 잠시 놀랐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 * *
다음 날 저녁.
한껏 들뜬 서준의 모습에 최태우는 꼭 가야 되겠냐는 물음을 삼켰다.
그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사이 일어난 일 때문에 안 그래도 낮았던 루카스 터너의 평가는 아주 바닥을 치고 있었다.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은데…….’
‘배우’의 초대에 홀랑 넘어가 버린 서준의 모습이 조금 한숨이 나왔지만, 본인이 판단한 일에 초를 치고 싶진 않았다.
사이가 좋은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나도 같이 가도 되는 거지?”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느니 같이 가기로 했다.
“네. 괜찮대요.”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최태우가 쓰게 웃었다.
그렇게나 좋은가 싶으면서도, 걱정이 들었다.
서준의 주변을 살펴보면 다 좋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러니 서준도 순진하게 사람을 믿고 좋게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덮어놓고 믿다 보면 상처받을 일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내가 잘 막아야지.’
물론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기 비슷한 생각을 하는 매니저가 또 있었다.
“루카스 오늘 저녁에 리 오는 거 안 잊었지? 사고 치면 안 돼!”
“알았다고! 연습할 거니까 들어오지 마!”
오늘 오전 또 성질을 부렸던 루카스 터너를 떠올린 코너 밀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하아.”
착한 서준 리를 괜히 초대한 게 아닌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잘 막아야지.”
헛소리 안 하게.
어휴, 한숨을 쉬며 코너 밀스는 털레털레 숙소를 나와 차로 향했다.
그런 매니저들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W쿠키도 챙겨갈까?”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풀어지니까 말이다.
어쩐지 서준만 신난 저녁 식사 초대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