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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17화 (9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17화

루카스 터너가 왔다.

스턴트맨들은 자신들에게 인사하고 마린사의 담당자와 함께 배우들을 기다리는 루카스 터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간간히 옆에 있는 매니저와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하루도 훈련에 진심인 배우들과 함께 불태우기 위해 출근했던 스턴트맨들은 뜬금없이 나타난 루카스 터너에 놀란 상태였다.

“아니, 오는 게 당연한 거지만.”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몰랐지.”

응응.

스턴트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스턴트맨들의 입을 멈출 줄을 몰랐다.

“전 솔직히…….”

누군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촬영 날까지 안 올 줄 알았어요.”

너도?

같은 생각을 했던 스턴트맨 몇몇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할리우드에 갑질하는 배우가 한두 명인 것도 아니니, 가능성이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이야기 들어보면 언제 합류할지 계약서에도 안 적은 모양이고.”

“늦게 합류하겠다는 조건도 없었다잖아요.”

마실 물, 먹을 간식까지 계약 조건으로 넣은 할리우드였다. 보통이라면 개인 훈련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마린사는 그러지 않았다.

같이 [팬텀]을 찍은 경험이 있으니, 배우를 믿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말로만 촬영 전에 합류하겠다고 하는 루카스 터너에 마린사와 담당자는 엄청 초조했을 터였다.

지금 담당자의 얼굴을 봐라.

그림자 하나 없이 아주 활짝 피어있지 않나.

담당자도 고생이겠다, 생각하며 한 스턴트맨이 입을 열었다.

“근데 왜 하필 오늘 온 걸까? 연락도 없이.”

어제 막 [매드해터]의 테사 해리슨이 합류한 상황이었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타이밍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내성적인 성격인 거 아닐까?”

“내성적?”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나오기 힘들었던 거지.”

친분이 있는 테사 해리슨이 훈련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한 루카스 터너가 합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정도로 내성적이면 촬영은 못 하지.”

“게다가 팬텀 때 같이 촬영한 스턴트맨들도 있는데.”

곧바로 기각된 추측이었다.

“그럼 그거 아닐까요?”

그거?

스턴트맨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린 스턴트맨이 잠깐 움찔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지막에 등장해서 주목받으려고요. 주인공처럼요.”

……아.

“유치한 생각이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

“주도권 싸움, 그런 건가?”

주도권 싸움.

일반적인 자리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모습인데, 이곳은 유명 배우만 다섯이 모인 자리였다. 문제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었다.

다른 작품을 촬영할 때 그런 신경전을 본 적 있는 스턴트맨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마음 잘 맞는 배우들이 드물긴 하지.”

“너무 잘 맞아서 문제지……”

서준 리와 말릭 스펜서, 랜스 레먼의 합심 아래, 몸뚱어리와 머리가 마구 굴려지고 있는 스턴트맨들이 허허 웃었다.

“루카스 터너가 그런 성격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 속닥거리고 있는 스턴트맨들 중에는 루카스 터너와 함께 작품을 촬영했던 사람은 없었다.

“팬텀이 단독 주연이라서 할 필요가 없었던 거 아니야?”

“그럴지도.”

스턴트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주인공이라서 주도권 싸움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훈련장 입구로 배우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네 배우들도 루카스 터너의 모습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됐든, 촬영에는 문제없었으면 좋겠네.”

그러게나 말이다.

* * *

“반갑습니다. 루카스 터너입니다.”

입구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훈련장으로 들어오던 서준과 배우들은 담당자와 함께 서 있는, 눈앞에 있는 백인 남성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팬텀]의 주인공, 루카스 터너였다.

온다는 연락을 받지 못해서 더욱 놀랐다.

하지만 그런 놀람은 금세 사라졌고, 배우들은 반갑게 이레귤러스의 마지막 멤버인 루카스 터너를 맞이했다.

“어서 와. 루카스.”

루카스 터너와 친분이 있는 테사 해리슨이 웃으며 그와 인사했다.

어제 영 소식이 없는 루카스 터너에 대해 조금 걱정하던 말릭 스펜서는 바로 다음 날 나타난 배우의 모습에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웃으며 악수를 했고, 랜스 레먼도 루카스 터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터너. 서준 리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준이 손을 내밀었다.

그에 잠시 멈칫했던 루카스 터너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준의 손을 잡았다. 서준만 잠깐 의아해할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었다.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리.”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루카스 터너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 * *

“잠깐 테스트 좀 해보겠습니다. 터너.”

루카스 터너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무술감독과 무술팀이 훈련소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동안 개인 훈련을 해왔던 루카스 터너를 테스트했다.

몸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알아야, 스턴트맨이 들어갈 장면들과 루카스 터너가 직접 찍는 장면들을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스턴트맨이 전부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담당자의 말에 루카스 터너는 최대한 자신이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서준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었다.

서준은 배우들과 함께 앉아 테스트를 진행하는 루카스 터너를 바라보았다.

개인 훈련을 아주 열심히 한 듯, 루카스 터너의 움직임에는 막힘이 없었다. 거기에 테스트 중에도 간간이 보이는 루카스 터너의 눈빛에서 ‘팬텀’이 보여 더욱 만족스러웠다.

‘아니.’

눈빛만이 아니다.

루카스 터너는 테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임과 표정까지도 ‘팬텀’을 연기하고 있었다.

서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곧바로 같이 훈련해도 될 것 같죠, 말릭?”

“그러게. 몸 관리도 잘한 것 같은데?”

들뜬 서준의 목소리에 말릭 스펜서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릭 스펜서도 그런 루카스 터너를 알아보았다.

다른 두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NG는 없겠구나.’ 하고 안심한 랜스 레먼이 등받이에 등을 기댔고, 테사 해리슨도 ‘역시.’ 하고 웃으며 루카스 터너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좀 더 속도가 붙은 상태로 스턴트맨과 합을 주고받고 있던 루카스 터너가 몸을 움찔한 것이었다. 그에 공격을 막을 타이밍도 놓치고 말았다.

“엇!”

다행히도 스턴트맨이 바로 주먹을 멈추어 몸에 맞지는 않았다.

루카스 터너의 매니저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루카스 터너가 보여준 모습에 테스트를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무술감독이 말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서준과 배우들을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준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루카스 터너가 몸을 움찔하기 직전,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팬텀]의 스턴트맨이 서던 자리에 루카스 터너가 들어갔다.

자신 대신 훈련에 참여했던 스턴트맨에게 감사를 표한 루카스 터너가 랜스 레먼의 옆에 섰다. 두 배우가 함께 나오는 장면부터 훈련하기로 했다.

테스트 때도 그랬지만 루카스 터너는 이번 훈련에서도 ‘팬텀’을 연기했다.

“훈련하는 중에는 연기까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죠.”

“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웃으며 말하는 테사 해리슨과 동의하는 말릭에, 서준도 웃고 말았다.

하긴. 자신도 훈련 중에 신나게 몰입하고는 했다.

“랜스도 연기하네.”

몰입한 루카스 터너에, 랜스 레먼의 분위기 또한 달라진 게 느껴졌다.

알 것 같았다.

‘훈련하면서 연기 연습이라. 일석이조군!’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일 터였다.

그런 배우들의 모습에 반대쪽에 서 있던 스턴트맨들의 긴장감도 한층 올라갔다.

고요한 대치 상태.

곧 무술감독의 신호와 함께 배우들과 스턴트맨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껏 높아진 긴장감에 액션과 연기까지 더해지니,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 중심에 루카스 터너가 있었다.

스턴트맨들의 액션도, 랜스 레먼의 연기도 좋았지만, 루카스 터너의 연기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눈빛과 눈썹의 움직임, 손과 발의 움직임까지도 ‘팬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저절로 눈이 갔다.

‘와!’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기대는 보통 실망으로 돌아오기 마련인데, 루카스 터너는 오히려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른 함께 연습하고 싶었다.

* * *

점심시간.

배우들은 멀리 나갈 필요도 없이, 센터 내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테사. 루카스는요?”

“식단 중이라서 따로 먹겠대.”

아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랜스 레먼도 체중 조절 중이라서 점심은 거르는 중이었다.

“잘 먹어야 훈련도 잘하는데 말이야.”

“알아서 잘할 거예요, 말릭.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매니저들도 있잖아요.”

말릭 스펜서의 말에 테사 해리슨이 웃으며 말했다.

“랜스는 매니저님 말도 안 들을 것 같던데요.”

랜스 레먼 본인은 행복해하지만, 걱정이 많아 보였던 매니저를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말릭 스펜서와 테사 해리슨도 웃고 말았다.

“루카스랑 매니저는 친해 보이던데, 옛날부터 알던 사이래?”

말릭 스펜서의 물음에 테사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어렸을 때부터 친구래요. 루카스가 배우가 되기로 하고 처음 지원했던 오디션을 다녔을 때부터 함께 했다고 하더라고요. ”

오.

서준과 말릭 스펜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쉬는 시간에 편하게 대하는 모습이 엄청 친해 보이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구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첫 오디션 때부터 함께 다녔다니.’

얼마나 친한 사이이며 의지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문득 다호 형이 떠올랐다.

첫 오디션부터 함께 다니지는 못했지만, 시간만 따지자면 루카스 터너나 그 매니저보다 더 오래된 사이였다.

‘우리가 더 친하지!’

서준이 내심 어깨를 으쓱했다.

또 ‘태우 형하고도 더 친해져야지!’ 하고 생각했다.

“친구가 매니저라…….”

말릭 스펜서가 중얼거렸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멘탈 케어를 위해 친구를 고용하는 연예인들과 스포츠선수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게 꼭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는 법은 없었다.

친한 사람에게 더욱 막 대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었다.

돈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너를 위해서라는 말을 뱉으며, 친분이라는 인질을 잡아 다른 이들과 고립시키고 보이지 않게 괴롭히는 경우도 말릭 스펜서는 종종 봤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새 이야기 주제가 다른 곳으로 흘러간 서준과 테사 해리슨을 본 말릭 스펜서가 이내 웃고 말았다.

과한 걱정인 것 같았다.

* * *

그날 오후.

서준과 말릭 스펜서, 루카스 터너가 함께하는 장면을 연습할 차례가 되었다.

“잘 부탁드릴게요, 루카스.”

“……아, 저야말로.”

들뜬 얼굴로 말하는 서준에 루카스 터너는 조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그걸 말릭 스펜서도, 무술감독도 눈치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전에 보여준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도 걱정하진 않았지만, 슬쩍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장면은 퍼스트 기지 내에서 세 사람이 함께 훈련하는 장면이었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오직 체술로만.

CG도 없이 온전히 촬영으로만 담아낼 장면이라서 배우들의 액션이 중요했다.

“그럼 갈게요.”

“그래.”

먼저 전투에 능숙한 군인인 버서커에게 나이트 진이 덤벼든다.

서준이 말릭 스펜서에게 달려들었다.

살짝 수정해서 어려워지긴 했지만, 보기에는 멋져진 액션이 이어졌다. 각자의 배역에 집중한 배우들의 모습 덕분이기도 했다.

서준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때, 팬텀이 막무가내로 버서커를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지금 들어와야 하는 배우가, 들어오질 않았다.

팽팽하게 당겨지던 분위기가 일순 끊어졌다.

서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말릭 스펜서와 무술감독도 눈을 끔벅이며 타이밍을 놓친 배우를 바라보았다.

루카스 터너가 당황한 얼굴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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