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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13화 (91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13화

서준과 말릭 스펜서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둘 다 몸 쓰는 걸 재미있어하고 재능도 있었던 데다가 미리 개인 훈련을 해온 덕분인지 연습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순조롭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훈련하는 시간은 똑같은데, 평소보다 힘든 것 같아요. 서준이 형.”

중간의 쉬는 시간.

서준의 옆에 앉은 필립 윤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걸 느낀 건 필립 윤만이 아니었다. 열정적인 두 배우 탓에 함께 합을 맞추는 스턴트맨들도 열심히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그렇게 많은지.

무술감독과 두 배우가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동선과 동작이 바뀌고는 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바꾼 건 아니었고.

지금까지 연습했던 것에서 조금 바꾸는 정도였지만, 완벽하게 습득하기 위해 연습은 다시 해야 했다.

“그래도 퇴근 시간은 지켜주잖아.”

말릭 스펜서의 말에 스턴트맨이 반쯤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안 그랬으면 벌써 튀었어. 말릭.”

“저도 잠시 고민했다니까요.”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스턴트맨들은 힘든 훈련에도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합이 잘 맞는 액션 훈련이 재미도 있었고, 돈을 잘 주는 마린사 덕분이기도 했다. 뭐, 연습 중에 동선이 바뀌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내일 오는 배우도 고생하겠네.”

“오지 마. 여긴 지옥이야……!”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가 고생할지는 두고 봐야 했다.

다음 날.

배우 한 명이 합류했다.

몸을 쭈우욱 늘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백인 남성을 발견한 서준이 웃으며 그를 반겼다.

“랜스! 어서 오세요!”

랜스 레먼.

[화이트 블러드]의 주인공이었다.

“안녕, 준. 말릭도요.”

손을 슥 들어 인사하는 것이 참 간결하면서도 랜스 레먼다워, 서준과 말릭 스펜서는 웃고 말았다.

“오랜만이다? 집에서 좀 나오지그래?”

“연락만 되면 됐죠.”

말릭 스펜서와 랜스 레먼은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서로 마린사의 시즌2의 히어로 역을 맡으면서 교류를 하게 되었다.

[어셈블]처럼 시즌2 히어로들이 다 함께 촬영하는 영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미리 친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연기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안면 있는 사람과 연기하는 편이 더 좋았으니까.

“W쿠키 맛있더라.”

“더 드릴까요? 차에 있어요.”

“아니. 체중 조절 중이라서.”

서준이 살이 빠진 랜스 레먼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겠네요.”

“응. 완전 좋아.”

랜스 레먼이 입꼬리를 올렸다.

랜스 레먼은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로 체격을 키워야 할 때는 보통 사람보다 많이, 자주 먹어야 해서 항상 귀찮아했었다. 그래서 안 먹어도 되는, 살 뺄 때를 가장 좋아했다.

“운동은 귀찮지만…….”

“하하.”

그렇다고 막 빼면 안 된다.

스크린에 보기 좋게 나오려면 운동을 하면서 감량해야 했다.

“그럼 나 옷 갈아입고 올게.”

그렇게 말한 랜스 레먼이 터벅터벅 탈의실로 향했다.

“쟨 여전하네.”

“그러게요.”

웃으며 말하는 말릭 스펜서에, 서준도 작게 웃으며 랜스 레먼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 * *

서준과 랜스 레먼이 만난 건 어느 영화제의 애프터 파티에서였다.

이리저리 신나게 돌아다니며 아는 배우들,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이 파티장 한쪽에 마련된 폭신한 소파에 앉아 있는 배우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온몸에 힘을 풀고 편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 막 파티를 시작한 상황인데, 벌써 앉아 있다니.

영화제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흘러.

지인의 소개로 처음 보는 배우들과 인사를 하던 서준의 시선이 다시 파티장 한쪽에 닿았다. 세 명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까도 앉아 있었던 배우였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편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준비 중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감독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의 눈이 다시금 소파로 향했다. 사람은 계속 바뀌는데, 마치 장식품마냥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있는 배우가 보였다.

다시금 기억을 되새겨봐도 남자의 모습을 똑같았다. 1㎝도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은 마네킹인가?’

그럴 린 없겠지.

데굴 눈을 굴린 서준이 살짝 능력을 썼다.

‘아픈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보고 있어, 준?”

[생존자들]에서 함께 연기한 바네사 올슨이 활짝 웃으며 서준에게 물었다.

“아, 바네사. 저기 랜스 레먼 씨요.”

서준이 소파 쪽을 가리켰다. 영화를 본 적이 있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바네사 올슨의 시선이 서준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소파에 앉아 있는 랜스 레먼이 보였다.

“파티 시작부터 저기 앉아계신 것 같아서요. 어디 아프신 건가 해서요.”

그에 바네사 올슨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아니야. 아픈 거. 귀찮아서 안 움직이는 거야.”

“……귀찮아서요?”

“응. 촬영하는 게 아니면 집에서 나오는 것도 귀찮아하거든. 근데 용케 파티까지 참석했네.”

랜스 레먼과 친분이 있는 듯한 말투였다.

“가서 인사할래?”

“음. 그래도 될까요?”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건 좋지만 방해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서준은 바네사 올슨을 따라 랜스 레먼이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사를 나누었다. 바네사 올슨의 말대로 싫어하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반가워했다.

“파티 끝날 때쯤 널 만나러 가려고 했거든.”

랜스 레먼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를요?”

“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근데 왜 파티 끝날 때쯤이에요? 시작할 때부터 있었잖아요?”

서준의 물음에 랜스 레먼이 부드럽게 웃었다.

“파티 중에 가면 사람들이 말을 거니까.”

왠지 뒤에 ‘귀찮아.’가 붙을 것 같은 느릿한 어투였다.

그에 서준은 랜스 레먼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의문도 들었다. 이렇게 귀찮아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연기는 그렇게 잘하는 걸까?

이야기를 좀 나눠보니 알 수 있었다.

랜스 레먼은 연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리테이크를 정말 귀찮아했다.

그러니 대본 분석부터 연습까지 확실히 한 후,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귀찮으니 일찌감치 모든 할 일을 끝내놓고 편하게 쉬는 타입이었다.

“보통은 미루지 않아요?”

“그럼 마음 편하게 못 쉬잖아.”

음. 그건 그렇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을 랜스 레먼은 하고 있었다.

서준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던 것과 그것과 비슷한 이야기였다.

“들어보니까 NG를 거의 안 낸다며?”

NG 없음 → 재촬영 없음 → 완벽!

자신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NG가 나와서 재촬영을 했었는데,

“꼭 한 번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어.”

비법이 있다면 듣고 싶었다.

어쩐지 랜스 레먼의 눈동자가 오늘 중 가장 반짝인다는 생각이 든 서준이었다.

* * *

“그럼 안 되죠.”

그런 랜스 레먼과 말릭 스펜서가 만났다.

최대한 귀찮지 않게 효율적으로 연습하려는 방패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창이 만났다.

“아니, 왜?”

“했던 걸 또 할 필요는 없잖아요.”

싸우는 거 아니다.

그저 의견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것도 훈련에는 방해가 되지 않게, 쉬는 시간에만.

“훈련 시간에 이야기하면 쉴 수 있을 텐데…….”

필립 윤이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는 두 배우를 바라보았다. 그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랜스 레먼과 말릭 스펜서는 친하긴 했지만 같이 촬영한 적은 없다 보니 이렇게 부딪히는 것 같았다.

‘친구랑, 친구랑 같이 일하는 거랑은 다르니까.’

아마 둘만 있었다면 싸움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좀 더 격렬해지지 않았을까.

“그럼 이렇게 할까요?”

다행히도 여기엔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다.

그것도 열정적이고 효율적이며 연기도 아주 잘하는 배우가.

서준은 랜스 레먼의 의견과 말릭 스펜서의 의견을 적당히 조합해 이야기했다. 잠시 생각하던 두 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다.

* * *

“뭐랄까…….”

오늘치 훈련을 모두 끝낸 [팬텀]의 스턴트맨이 입을 열었다.

개인 훈련 중인 루카스 터너 대신 서준과 말릭 스펜서와 함께 하는 훈련에 투입되고 있는 그는 어쩐지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말릭만 있을 때는 몸만 힘든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머리까지 힘든 느낌이지 않아?”

“그러게요.”

그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율적으로 연습하다 보니, 원래도 그렇긴 했지만, 손과 발 같은 작은 움직임도 더더욱 신경 써야 했다.

“시간을 압축해서 쓰는 느낌이죠?”

“그래. 그런 느낌이야!”

마치 1시간 안에 해야 할 걸 40분 만에 해버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또 완성도는 놓치지 않고.”

매의 눈이라도 가진 건지 무술감독은 물론이고 서준 리, 말릭 스펜서, 랜스 레먼 세 배우 모두 실수하는 스턴트맨들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배우들끼리도 실수하는 부분을 지적하고는 했다.

“내일도 이렇겠죠?”

그 말에 스턴트맨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열심히 하고 싶은 액션 장면을 말하는 말릭 스펜서와 한마디씩 던지는 랜스 레먼, 그리고 말릴 줄 알았지만 신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는 서준 리가 있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 * *

[(이레귤러스 촬영 기념)시즌2 히어로 설명-화이트 블러드 편]

“안녕하세요. 영화객입니다. 저번 영상에 이어 시즌2 히어로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또 인사함?

“라이브는 쭉 이어서 하고 있지만, 편집본은 다 따로 올릴 계획이거든요. 새 영상이니, 인사도 새로 해야죠.”

-이렇게 조회수가 2배.

-ㄴㄴ히어로가 5명이니 5배임.

흐흐흐, 웃은 영화객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 히어로는 화이트 블러드입니다. 시즌2 히어로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히어로죠. 물론 캐릭터 나이를 말하는 겁니다. 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건 말릭 스펜서 배우입니다.”

-서준이 막내.

-ㅋㅋㅋㅋㅋ

-막내만 한 15년 한 것 같은데ㅋㅋ

“그렇다고 화이트 블러드 역을 맡은 랜스 레먼 배우가 노안인 건 아닙니다. 나이에 맞게 잘생겼죠. 나이는 캐릭터가 뱀파이어라서 그런 겁니다. 무려 몇백 살이나 되죠.”

-어르신!

-히어로가 뱀파이어ㅋㅋ

-근데 좋음ㅎㅎ잘 어울려ㅎ

영화객이 모니터에 느긋하다 못해 느릿해 보이는 랜스 레먼의 사진과 부드럽고 상냥하게 웃고 있는 [화이트 블러드]의 사진을 띄웠다. 검은색 사제복과 새하얀 머리카락이 대비되어 보였다.

-신부님ㅠㅠ잘생겼어ㅠ

-회개합니다(기도)

“랜스 레먼 배우가 연기하는 화이트 블러드는 뱀파이어이자 성당의 신부이죠. 본명 루크 메이너드입니다.”

-근데 그게 진짜 이름인지는 모름.

“네. 그렇죠. 나이도 몇백 살이라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확실하게 나온 적은 없습니다. 이름도 그사이 많이 바뀌었겠죠. 메이너드는 화이트 블러드가 지내고 있는 성당이 있는 마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완전 수상함ㅋㅋ

-22 머리카락도 하얗잖아.

-근데 다들 모름ㅋㅋㅋ

-???: 어렸을 때 보약을 잘 못 먹어서……

-그렇겠냐고ㅋㅋ

웃던 영화객이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루크 메이너드 신부님이 모든 것을 주관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젊고 특별하고 상냥한 신부님을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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