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11화
2월 둘째 주.
[배우 이서준, ‘이레귤러스’ 촬영을 위해 출국!]
서준은 미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언제나처럼 가던 LA가 아니라 더 먼 곳으로, 비행 시간도 3시간 더 늘어났다.
‘영화 하나 더 볼 수 있겠다.’
물론 대부분 본 영화긴 하지만, 그래도 보면 볼수록 좋은 영화들이 많았다.
뭘 볼까, 고민하던 서준은 스왈린 애넘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는 몇 번이나 봐도 좋았다.
그렇게 먹고 자고 영화를 보다 보니, 금세 창 밖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뉴욕이었다.
* * *
“어서 오세요! 준!”
“안녕하세요.”
최태우(와 보디가드들)와 함께 공항을 나온 서준이 웃으며 마중 온 킹즈에이전시 직원과 악수를 했다. 서준의 담당으로, 이전 뉴욕 핼러윈 퍼레이드 때도 그 이전 LA 촬영 때도 마중 나왔던 직원이었다.
“이렇게 인사하니까 꼭 LA에 온 것 같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익숙한 직원을 여기서 만나니, 주변 풍경만 뉴욕이지 평소와 다름없는 미국 촬영인 것 같았다.
“얼른 타세요. 준, 태우.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 유쾌한 말투에 다시 한번 웃은 서준과 최태우가 차에 오르고, 운전석에 앉은 킹즈에이전시 직원이 뒤에 있는 경호차를 확인하고 출발했다. 그러고는 지금 가고 있는 숙소에 대해 설명했다.
“미리 말씀드렸듯이 뉴욕에서 촬영하는 동안 머무르실 곳을 빌려놨으니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이층 주택인데 동네 치안도 좋고, 외부인도 금방 발견할 수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핼러윈 퍼레이드 때는 호텔에 머물렀었는데, 이번엔 촬영 전 트레이닝에 촬영까지 약 한 달 정도 있을 예정이다 보니, 여행객이나 손님들로 들락날락하는 호텔보다는 집을 임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스케줄도 바뀐 건 없습니다.”
LA에서 촬영이 있을 때처럼, 배우와 매니저가 궁금해할 거라는 것을 아는 킹즈에이전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알려드렸던 대로 내일까지 쉬시고 모레부터 액션 훈련에 합류하시면 됩니다. 살펴보니까 LA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좋은 훈련장이더군요. 마린에서 빌린 곳이라 보안도 철저하고, 다른 배우분들과 스턴트맨들도 그곳에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말에 서준이 눈을 빛냈다.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하긴 했지만, 역시 혼자 하는 것보다(물론 트레이너들이 도와주긴 했지만) 다른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연습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내일부터 합류하는 건 안 될까요?”
“안 이사님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킹즈에이전시 직원에, 서준은 어쩐지 미소를 짓고 있는 안다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태우까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은 입을 삐죽했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렇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뉴욕에 있을 동안 머무를 집에 도착했다. 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의 이층집이었다.
“촬영 장소와 트레이닝 센터에 가기 가장 편한 곳으로 골랐습니다.”
차에서 내린 서준과 최태우가 이층집을 둘러보며 킹즈에이전시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관리인도 자주 들를 예정이고, 보디가드들이 함께 머물 예정이니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함께해온 코코아엔터와 킹즈에이전시가 하는 일이니,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봐라.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집 안도 미리 꾸며놓았다.
“운동은 이 방에서 하시면 되고, 영화는 저기서 보시면 됩니다. 여긴 연습실이고요.”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브랜드들의 가구나 기계(카메라나 빔프로젝터 등)를 이용한 인테리어로, 한 달 정도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엄청 좋네요!”
서준은 눈을 빛내며 익숙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방들을 둘러보았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준.”
“전부 준비해 주셔서 필요한 게 없을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편하게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킹즈에이전시 직원과 최태우가 뿌듯하게 웃었다.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렇게 말해주다니 기뻤다.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그럼 조금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내려오세요. 준.”
“알겠습니다.”
최태우와 보디가드들이 각자의 방으로 향하고, 서준도 짐을 들고 이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도 마치 LA에 있는 방과 비슷하게, 하지만 조금 다른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벌써 익숙해진 느낌이네.”
아늑한 분위기에 작게 웃은 서준은 짐을 풀며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 지인들에게 뉴욕에 도착해 집에 왔다고 연락했다.
물론 뉴욕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말릭: 그럼 모레 오는 건가?
그중에는 [버서커]배우, 말릭 스펜서도 있었다.
<네. 맞아요.
>말릭: 잘됐군. 여기도 테스트실이 있더라고.
>말릭: 난 당연히 만점이야.
>말릭: 준 너도 해봐.
한결같은 말릭 스펜서에 서준은 웃고 말았다.
* * *
하루를 푹 쉬고.
서준은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서준이 왔다는 소식에 [이레귤러스]의 감독 마크 웨버와 마린사 담당자도 트레이닝 센터에 나타났다.
“컨디션은 어때, 준?”
마크 감독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좋아요. 바로 훈련 들어가도 될 정도예요.”
그에 마린사 담당자가 얼른 말했다.
“훈련도 좋지만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서준 리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의욕이 넘치다가 다치면 큰일이었다.
“네. 그럴게요.”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 최태우까지 함께, 네 사람은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담당자가 훈련장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었다.
“지금 훈련장에 누가 있는지 아세요?”
서준의 물음에 담당자가 대답했다.
“말릭 스펜서 배우와 스턴트맨들이 있습니다. 퍼스트 요원들과 적을 맡을 스턴트맨들이죠. 다른 배우들은 나중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서커]의 말릭 스펜서나 [나이트 진]의 서준 리처럼 직접 움직여서 싸우는 경우가 아니라면 조금 늦게 합류해도 상관없었다.
“팬텀은요?”
[팬텀] 또한 액션이 중요한 배역이었다.
“루카스 터너 배우는 개인적으로 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담당자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 뭐, 다양한 성격의 배우들이 있는 곳이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합류하겠다고 했습니다.”
마크 웨버 감독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마 더 집중해서 훈련하려고 그런 걸 거야, 준.”
[이레귤러스]에 다섯 명의 히어로가 출연하는 건 맞지만,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역할이 바로 ‘팬텀’과 ‘나이트 진’이었다.
그 두 배역의 케미가 가장 중요한데, 배우들끼리 서로 못마땅한 감정이 있다면 큰일이었다.
“전에 만나보니까 되게 열심히 캐릭터를 분석하더라고. 나랑 회의도 엄청 했어. 팬텀 감독과도 이야기하고, 시나리오 팀하고도 연락하고.”
그런 마크 감독의 걱정과 달리, 서준은 별생각이 없었다.
“네. 혼자 연습할 때 잘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오히려 들뜬 모습이었다.
‘어떤 배우일까?’
함께 연습할 날이 기대되었다.
여전히 배우라면 기본적인 호감부터 깔고 가는 서준을 아는 최태우와 그동안 마린사에서 들은 정보로 서준을 파악한 담당자가 작게 웃었다.
서준의 표정을 살피던 마크 감독도 이내 볼을 긁적였다.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아, 준의 스턴트맨도 지금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을 겁니다.”
“필립 말이죠?”
“네. 맞습니다.”
필립 윤.
[쉐도우앤나이트]에서 ‘나이트 진’의 대역을 맡았던 스턴트맨으로 이번 [이레귤러스]에도 함께하기도 했다.
서준이야 어떤 액션이든 다 할 수 있었지만, 위험한 장면은 아무래도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스턴트맨이 하는 것이 코코아엔터도 마린사도 마음이 놓일 터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훈련장에 도착했다.
확실히 LA에 있는 트레이닝 센터보다는 작았지만, 시설은 좋았다.
“오! 준!”
멀리서도 눈에 띄는 흑인 남성이 서준을 보며 활짝 웃었다.
누가 봐도 단번에 군인이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의 큰 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진, 배우 말릭 스펜서였다.
그렇다고 둔해 보일 정도로 우락부락한 것은 아니었고, 어디 특수부대의 베테랑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딱 [버서커]였다.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요, 말릭.”
“그러게 말이야.”
서준이 손을 내밀자, 말릭 스펜서가 호쾌하게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말릭 스펜서.
마린의 시즌2 슈퍼히어로 영화 중 하나인 [버서커]의 주인공으로, 서준과는 어느 시상식 애프터 파티에서 처음 만났던 배우였다.
* * *
“준 너 액션 트레이닝 센터 테스트실에서 만점 받았다며?”
인사를 나누고 말을 편하게 할 때쯤, 말릭 스펜서가 물었다.
그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액션 트레이닝 센터 테스트실이라면 쉐도우맨3를 찍을 때 체력을 측정한 곳인데?’
그리고 이내 웃고 말았다.
말릭 스펜서의 눈이 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말릭 스펜서가 말을 건 이유는 이거 때문인 것 같았다.
“네. 맞아요.”
“그때 나이가?”
“14살이요.”
“미쳤군!”
말릭 스펜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액션 트레이닝 센터는 LA에서 유명한 센터 중 하나라서 말릭 스펜서도 자주 훈련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트레이너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불과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성인 기준으로 만점을 받은 배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이름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배우에, 14살에, 액션이라니.
딱 봐도 서준 리였다.
“그게 정말일 줄이야! 평소에 뭐 운동하는 거라도 있어? 아니면 가족 중에 운동선수가 있다거나? 나도 아직 만점은 못 받았는데, 특별한 요령이라도 있어?”
정장을 입어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체격의 말릭 스펜서가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갔고, 서준은 웃으며 그 질문들에 답을 해주었다.
* * *
‘그렇게 친해졌지.’
한마디로, 운동에 진심인 배우라는 거다.
끝내 액션 트레이닝 센터 테스트실에서 만점을 받아낼 정도로.
당시 말릭 스펜서가 보낸 테스트 만점 사진을 떠올린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운동 못지않게 연기에도 열정적이었다.
말릭 스펜서는 배우가 고생해야 작품이 잘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작품 준비 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하는 타입이었다.
[이레귤러스]의 액션 훈련에 가장 먼저 참여한 배우이기도 했다.
서준은 이런 열정적인 배우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릭 스펜서가 다시 찍자고 하면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도 찍어야 하니까 말이다.
딱 필요한 만큼만 찍고 말릴 수 있는 감독이라면 괜찮겠지만, 비슷한 성향의 감독이라면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리테이크를 외쳐야 할지도 몰랐다.
‘나랑 촬영하면 어떻게 되려나.’
한 번에 OK 할 정도로 만족할까, 아니면 다시 찍자고 할까.
뭐, 어느 쪽도 좋았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