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01화 (90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01화

시간이 흘렀다.

영화는 마녀, 늑대, 고양이가 모여 마녀의 서재에서 저주를 연구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쿠키 가게가 점점 완성되어 가는 것도 보여주었다.

노트북으로 너튜브를 보며 사 온 콘센트와 마법으로 길어진 전선들을 이리저리 연결하는 테오의 모습도 나왔다. 한껏 집중한 듯 머리 위로 늑대 귀가 뿅 튀어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녀의 집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쿠키를 구울 준비가 다 되었다.

“시험 삼아 구워볼까?”

하고 말한 클레어는 잠시 생각했다.

“테오.”

“응?”

쿠키를 전시하고 판매할 홀에서 몰리의 잔소리를 들으며 테이블을 조립하고 있던 테오가 고개를 돌렸다. 몰리도 따라 돌렸다. 주방과 홀은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가 있어 잘 보였다.

“내가 자란 보육원에 같이 가 볼래?”

“……내가 가도 돼?”

“그럼. 애들도 좋아할 거야.”

으에에-

질린 표정을 짓는 몰리의 옆에서 테오가 데굴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어가 빙그레 웃었다. 애들이 먹을 쿠키까지 왕창 만들어야겠다.

“클레어, 도와줄까?”

쿠키를 만들 준비를 하는 클레어를 보며 테오가 물었다.

“그럼 고맙지.”

그에 테오가 얼른 깨끗하게 손을 씻고, 옷을 털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만들 때는 깨끗하게. ‘시어도어 레이필드’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클레어에게 배웠다.

나란히 서서 쿠키를 만드는 클레어와 테오, 그리고 크게 하품을 하는 몰리.

그 평화로운 모습에 관객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마법수업 겸 저주 연구가 끝나고, 물약 앞에서 조금 고민하던 클레어는 시력이 좋아지는 약을 꺼내 마셨다. 마법에 익숙해지면서 드디어 용기가 난 것이었다.

앞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다음 날.

1층 자신의 방에서 나온 테오는 언제나 그렇듯 집을 정리했다. 매일 정리하고 청소해서 따로 치울 건 없었지만 소파의 쿠션을 바르게 놓거나 액자를 똑바로 세우거나 했다.

클레어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테오 자신이 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테오. 잘 잤어?”

“클레어 너도…….”

계단에서 들려오는 클레어의 목소리에 테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경을 쓰지 않은 클레어가 어색한 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음. 좀 이상한가?”

“아니야. 잘 어울려. 마법이야?”

테오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은 아무래도 좀 불편해서. 으. 근데 지금은 안 쓴 게 어색하네. 진짜 안 이상하지?”

“응. 예뻐.”

진심으로 말하는 테오에 믿음이 갔다.

클레어가 안도한 듯 작게 웃었다.

* * *

쿠키를 들고 보육원으로 향하는 길.

몰리는 도망쳤고, 테오는 그런 몰리를 비웃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애들아. 테오가 놀아준대. 이 형 엄청 튼튼한 형이니까, 재미있을 거야.”

원장실 문 앞에 테오를 올려다보며 눈을 번뜩이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 반짝이 아니라 번뜩.

“어…… 잠깐만…….”

클레어.

하고 부르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에 테오는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어떤 아이니?”

원장선생님의 물음에 차를 마시던 클레어가 생각에 잠겼다.

“착한, 음. 착하지는 않지만 나쁜 애도 아니에요. 힘든 일이 많아서 방어적이지만요.”

동정심 유발 작전을 썼다는 테오의 이야기를 떠올린 클레어가 고쳐 말했다.

“그렇구나.”

“제 일도 많이 도와주고, 좋은 녀석이에요.”

그래도 좋은 녀석이라는 건 맞았다.

잘 지내는 듯한 모습에 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맴돌았다.

“아, 원장선생님. 저 어쩌면 어머니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의 얼굴이 기대와 설렘으로 활짝 피었다.

“우연히 알게 됐는데 말이죠.”

원장선생님은 그런 클레어의 이야기를 듣다 입을 열었다.

“클레어.”

“네?”

“가족은, 꼭 피로 엮이지 않아도 될 수 있단다.”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이 보육원에서 가장 피로 이어진 가족을 원하는 클레어였다.

그런 마음이 클레어에게 해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피로 이어져도 남보다 못한 가족들이 많으니까.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클레어가 쓰게 웃었다.

“알고 있어요.”

이내 빙그레 웃었다.

“원장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제 가족인걸요.”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클레어와 원장선생님은 잘 알고 있었다.

“아, 클레어. 사 올 게 있는데, 괜찮으면 나 대신 다녀와 주겠니?”

“네. 그럴게요.”

원장선생님의 말에 클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놀고 있으려나? 테오라면 괜찮겠지?”

그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

지친 듯한 테오의 목소리에 클레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사이 잘생긴 테오의 모습이 굉장해졌다.

꺄르르 웃는 막내를 안고 있는 테오는 얼굴에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고무줄들로 삐죽삐죽 묶여 있었다.

물론 여전히 잘생겼긴 했지만.

웃겼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알고 싶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에게 어떻게 시달렸는지 와다다다- 이야기하는 테오에 관객들도 작게 웃고 말았다. 그래도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낯설고 어색할 뿐.

어렸을 때부터 홀로 지냈을 ‘시어도어 레이필드’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한편으로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늑대들은 무리를 짓고 생활하니까.

‘시어도어 레이필드’와 그를 괴롭히는 레이필드 늑대들밖에 없는 세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 * *

짐을 든 클레어가 가게를 나왔다.

테오와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미친 노숙자인 줄 알았는데. 클레어가 작게 웃었다.

그때.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 세 사람이 클레어의 눈에 들어왔다.

관객들 눈에도 그 세 사람이 들어왔다.

다른 배역들보다 잘생겨서 그런지, 영상에 특별한 효과를 주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과는 다른 특유의 분위기가 흘러서인지.

묘하게 테오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분위기가, 그들이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신기했다.

전혀 다른 배우들인데도 어쩜 이렇게 분위기가 닮은 걸까.

그러면서도 테오와는 다른, 차갑고 어두운 사냥감을 찾는 살벌한 느낌이 느껴져 오싹했다.

움츠리는 마녀의 모습에, 소설을 읽어 들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관객들도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마녀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레이필드의 늑대들.

잠시 후, 그들과 마주칠 테오가 떠올라 걱정이 됐다.

* * *

“가지 마. 테오…….”

“가지 마요.”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클레어?”

짧은 시간 정이 든 아이들과의 이별은 힘들었다.

테오와 클레어는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보육원을 나섰다. 도망쳤던 몰리가 돌아왔다.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몰리는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스티커를 떼고 있던, 초췌해 보이는 테오를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고는 담 위에서 번쩍 몸을 날려 테오의 어깨에 착지했다.

“내가 그랬지? 애들 무시무시하다고.”

“하. 나니까 이 정도지 몰리 너였으면 아마 걷지도 못했을걸?”

테오 또한 지지 않고 말했다.

언제나처럼 투닥거리는 고양이와 늑대에, 클레어가 웃고 말았다.

“근데 테오 너 생각보다 애들 잘 돌봐주더라. 힘들지 않았어?”

“아…….”

“늑대들 공동육아 하잖아. 유전자에서 오는 능력이라 괜찮았을걸.”

유전자에서 오는 능력이라는 말에 관객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테오의 말에 눈물을 글썽여야 했다.

“나도 재미있었어. 레이필드 늑대들은 나랑 상종을 안 해서 이렇게 놀아본 적은 없었거든. 숨바꼭질도 그렇고, 농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애들이랑 노는 거 재미있더라. 아, 소꿉놀이는 빼고.”

테오야!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진심으로 말하는 테오의 모습에 송유정과 임예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망할 레이필드! 망할 늑대인간들!

“먹고 싶은 거 없어? 애들이랑 논다고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거 해줄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클레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테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행복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나 늑대인간들 봤어.”

“……뭐?”

언제나처럼 테오에게 오지 않았다.

* * *

그날 밤.

저녁은 든든하게 먹고 늑대인간 대처법에 대한 몰리의 강의를 들은 후, 클레어와 몰리는 2층의 방으로, 테오는 1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이라…….’

밝은 조명 아래.

테오는 난생처음 가지게 된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테오의 방은 테오가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들과 테오의 것으로 제 나름 꾸며져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 클레어가 전에 썼던 노트북과 서재에서 빌려 온 책들. 그리고 제 몸에 딱 맞는 옷들.

황량한 레이필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생활감이 가득했다.

테오는 제 물건들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리했다. 몰리가 자신을 닮았다고 가져온 강아지 장식품까지도. 제 것을 가져본 적이 없어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언제쯤 익숙해지나 했는데…….”

매번 방에 들어올 때마다 들뜨고 설레서 언제 남들처럼 익숙하게 지낼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제 힘들겠네.”

이제 테오에게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늑대인간들이 근처에 있다.

방을 정리하는 테오의 검은색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그들이 레이필드의 늑대들인지 아니면 다른 무리의 늑대들인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직감은 그들이 레이필드의 늑대들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호전적이고 강한 힘에 집착하는 그들이라면, 당연히 이 마녀의 집도 노릴 터였다.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테오는 클레어와 몰리의 일상이 좋았다.

그 일상이 파괴하게 두진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서라도.

클레어와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었던 낡은 옷으로 갈아입은 테오는 거실과 부엌, 가게와 주방을 둘러보았다. 어디 하나 소중한 추억이 없는 곳이 없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테오는 걸었다.

다시 들어오지 못할까 봐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했던 대문을 나섰다.

테오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녀의 집이 보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평생 잊지 못할 나날들을 만들어준 마녀와 고양이가 있는 집이 보였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좀 더 오래 여기에 있고 싶었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잘 지내, 클레어. 몰리.”

마지막 인사를 한 꼬리 없는 늑대는 대문을 열고 마녀의 집을 떠났다.

다시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 * *

마녀의 집에서 제법 떨어진 동네까지 달려간 테오는 건물의 담이나 빌딩의 벽에 손도장을 찍었다. 자신의 냄새를 남기는 것이었다.

레이필드의 늑대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옅게, 그러나 쫓아올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물론 의심해도 쫓아올 놈들이지만.”

꼬리도 없고 협력자도 없는 테오가 멀쩡한 레이필드 늑대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건 레이필드 늑대들도, 테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기꺼이 도와줄 마녀와 고양이가 있지만.

테오는 둘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로등에 옅게 냄새를 남긴 테오는 이내 저 멀리 보이는 숲으로 달려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

어딘가의 숲속.

그곳을 달려가던 테오는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깊은 밤이긴 하나, 풀벌레 소리도 밤 짐승들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이 느껴졌다.

최근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잊을 수 없는, 살아온 내내 받았던 자신을 경멸하고 깔보는 눈빛이.

덜컹,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각오한 일이지만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되니 반사적으로 주춤거리게 됐다. 그렇지 않고 싶어도 오래도록 쌓인 기억이, 괴롭힘을 겪어야 했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쫓아왔구나,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레이필드의 늑대인간들에 웃음이 나왔지만, 테오는 그대로 삼켜 버렸다. 괜히 웃었다가는 그 안에 담긴 생각을 파악하려고 들 수도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평소처럼.

그러면서도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리지 않게 해야 했다.

테오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에 관객들도 숨소리를 죽이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영화 속 긴장감이 넘치다 못해 흘러나와 상영관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조용히 바람이 불고, 달빛이 비쳤다.

내일 보름달이 되는 달이 이미 몸통을 가득 불려,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로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랜만이구나. 시어도어.”

말끔한 얼굴의 레이필드의 차기 가주.

테오(Teo) 레이필드, 아니, 시어도어(Theodore) 레이필드의 이복형 웨이드 레이필드였다.

웨이드의 등장과 함께 다른 늑대들도 나타났다.

앞뒤 양옆.

완전히 늑대화한 거대한 덩치의 늑대들과 귀와 꼬리만 내놓고 있는 반인간화한 늑대인간들이 테오를 둘러싸고 있었다.

보름을 앞둬서 그런지 모두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에 진득하고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송유정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게 CG라고?’

그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자신이 테오의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사냥당할 먹잇감처럼 느껴졌다.

“잘도 도망쳤네, 똥개. 이렇게 잡힐 거면 그냥 얌전히 있지 그랬냐?”

웨이드의 동생, 테오의 또 다른 이복형, 제레미 레이필드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다섯 달쯤 됐나?”

“이번 달까지 하면 반년.”

“아, 언제 집에 가냐고!”

웨이드를 제외한 아홉의 늑대들이 긴장감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들 눈앞에 있는 테오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익숙한 태도다.

굳어져 있는 몸을 풀기 위해 테오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여태껏 쫓아올 줄은 몰랐네.”

“나도 네가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지.”

웨이드의 차가운 시선이 테오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사이 나쁜 이복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라기보다는 금방이라도 목을 꺾어버리고 싶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서늘한 눈빛이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웨이드.”

그런 레이필드 늑대들에게 테오가 말했다.

“어째서 계속 쫓아오는 건가 고민을 해봤어.”

제레미를 무시한 테오가 말을 이었다.

“죽이려고 그런가 싶었는데, 죽이지도 않았어.”

찍소리도 못해야 하는 시어도어 레이필드인데, 자신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도 봐. 바로 죽이지 않고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하잖아. 마치 내가 필요한 것처럼.”

테오와 웨이드의 눈이 마주쳤다.

그 제레미마저 조용해진 가운데, 테오가 씨익 웃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에 반사적으로 늑대인간들도 자세를 잡았다.

다른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밤의 숲속.

꼬리 없는 늑대인간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너희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그러고는 딛고 있던 땅을 있는 힘껏 박차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알고 있다는 거야-!”

방어는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한 일격이었다.

레이필드의 늑대들이 쫓아오는 한, 언제든 자신의 일상을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죽어도 두 번 세 번 확인할 놈들이었다.

테오의 선택지는 평생 쫓기며 살거나 끌려가 죽는 것.

두 가지밖에 없었다.

‘어차피 끌려갈 거라면…….’

그리고 죽을 거라면.

웨이드에게 한 방이라도 먹이고 갈 생각이었다.

빠르게 달려간 테오가 웨이드의 머리를 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그 웨이드 레이필드가 이 공격에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테오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생각했다.

그대로 손목이 잡혀 내던져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퍼억!

내팽개치듯 던져진 테오의 몸은 빠르게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커다란 나무가 삐걱 흔들렸다. 조금 부서진 것 같기도 했다.

“……젠장!”

퉤, 하고 속에서 올라오는 피를 뱉어낸 테오가 고개를 들었다.

“피하지도 않냐?!”

“피할 것도 없지.”

진짜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한 웨이드의 표정과 주위에서 작게 들려오는 비웃음 소리에 테오는 이를 갈았다.

약했다.

꼬리도 없는 자신은 너무 약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탈출할 때까지, 멍청한 척하며 견뎌온 자신이 아닌가.

한 방 먹여주기 전까진 계속할 생각이었다.

테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자세를 갖추었다.

그에 제레미가 웨이드의 앞에 섰고, 다른 늑대인간들 또한 테오의 목숨줄을 조이듯 포위망을 좁혔다.

꼬리가 없다고 해도 늑대인간.

방심하다가 목이 뜯기는 수가 있었다.

--!

테오와 늑대인간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른 늑대인간 하나가 테오의 아래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급소인 명치를 노리는 매서운 공격이었다. 테오는 그 공격을 피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피했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테오의 뒤에서 늑대화한 늑대인간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테오의 몸통을 노리고 있었다.

전투는 치열했다.

테오에게만.

웨이드와 제레미를 제외하고 여덟의 늑대인간들은 테오를 가지고 놀며, 죽지 않을 정도로, 탈출하지 못할 정도로 작신작신 다져놓았다.

테오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낡았지만 깨끗했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피에 붉게 물들었고, 얼굴도 상처로 가득했다. 옷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팔다리도 타격을 많이 받은 듯 움찔거렸다.

시야가 흐릿했다. 흘러내리는 피 때문인 것 같았다. 입에서 피 맛이 났다. 퉤, 하고 뱉어내고 싶은데 그럴 힘이 없었다.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통각이 맛이 갔나 보다.

힘이 빠져 어느새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던 테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테오의 모습에, 실제와 똑같은 늑대들의 모습과 화려한 액션씬에 감탄하며 보고 있던 관객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내려앉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저벅저벅-

테오에게 웨이드가 다가갔다.

그리고 땀과 피와 흙먼지로 더러워진 테오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테오가 고개를 들었다. 웨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힘이 빠진 다리는 제대로 서지도 앉지도 못했다.

“그러니 얌전히 따라올 것이지. 시어도어, 이제 만족해?”

“……ㄱ.”

“뭐?”

그 되물음과 동시에, 얼굴 한쪽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웨이드가 시선을 돌렸다.

테오의 피 묻은 주먹이 웨이드의 오른쪽 볼에 닿아 있었다. 나름 힘을 주는 것 같았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팔은 힘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심적으로는 타격을 준 것 같았다.

“아직이라고…… 이 새끼야…….”

웃으며 말하는 테오에 웨이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머리채를 잡은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반사적으로 윽- 하고 신음을 뱉은 테오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신경은…… 충분히 돌린 것 같지?’

진득한 피비린내 속.

깨끗하게 세탁된 낡은 옷에서 흘러나오는 세탁세제와 햇빛과 쿠키의 냄새를 맡으며 희미한 미소를 짓던 테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퍼억!

미간을 찌푸린 웨이드에게 걷어차인 테오는 의식을 잃은 채 늑대로 변한 늑대인간의 등에 실려 옮겨졌다.

* * *

해가 떴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 몰리를 보고 웃은 클레어가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하고 쿠키를 만들 재료들을 주문할 생각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거니까 조금만 사야겠다.”

어떤 쿠키들을 만들어서 팔지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 사야 할 재료를 떠올리며 1층에 발을 디딘 클레어는 어둡고 차가운 1층에 몸을 움찔 떨었다.

“테오……?”

언제나 일찍 일어나서 환기를 하고 커튼을 걷어 햇살이 들어오게 하고 거실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던 테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밖에 있나?”

그러나 밖에도 테오는 없었다.

그럼 아직 방에 있으려나.

어쩌면 아파서 누워 있을지도 몰랐다. 아파도 말을 안 한 적이 있지 않나.

하지만.

마녀의 직감일까.

불안한 기분이 들어 클레어는 굳게 닫힌 방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클레어, 뭐 해?”

총총-

크게 하품을 한 몰리가 계단을 내려왔다.

“테오는?”

“아직 안 일어난 것 같아. 지금 깨우려고.”

“그래?”

몰리 덕분에 조금 불안함이 잦아든 것 같았다. 클레어는 숨을 내쉬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테오? 일어났어?”

그러나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몰리가 방문에 귀를 바짝 댔다.

“너무 조용해.”

불안이 한층 쌓였다.

클레어가 더 큰 목소리로, 간절하게 말했다.

“어디 아픈 거야? 지금 들어간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클레어는 방문을 열었다.

별일 없겠지 하고 계속 되새겼으나, 보이는 것은 텅 빈 방뿐이었다.

“어?”

몰리는 믿기지 않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살펴본다고 해도 몰리보다 몇 배는 큰 테오가 나타날 리가 없는데 말이다.

테오…….

클레어도 거의 숨을 멈춘 것 같은 표정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테오의 방은 깨끗했고, 침대 위에는 옷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테오가 직접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왜?

어째서?

“저주도 아직 풀지 못했는데…….”

이렇게 인사도 없이 떠나다니.

테오는 독립하고 난 후, 클레어가 몰리와 더불어 가장 의지했던 이였다. 첫 만남은 엉망이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함께 겪어나갈 친구이기도 했다.

“이유가 뭐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클레어와 몰리는 어제를 떠올려보았다. 자기 전에 마법 보드게임을 하고, 그전에는 맛있는 고기를 잔뜩 구워 먹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장을 보기 위해 마켓에……!

“늑대인간!”

클레어와 몰리가 동시에 외쳤다.

“그 늑대인간들을 피해 도망친 거야!”

몰리의 말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클레어. 그들이 레이필드의 늑대들이었을까?”

“그건 모르지만, 어떤 늑대들이든 테오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왔을 거야.”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와 닮은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도망치는 것처럼.

테오도 그저 늑대인간을 봤다는 클레어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리라.

그런데도 방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간 걸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그냥 여기 있지. 우리가 지켜줬을 텐데.”

몰리의 말에 클레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그럴 수 있었을까?’

그렇게 거대한 늑대인 테오도 당해내지 못했던 레이필드의 늑대들인데.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마녀인 내가 테오를 지켜줄 수 있었을까.

닥치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클레어는 미안함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하지, 클레어?”

몰리가 물기가 스며든 눈동자로 클레어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나도 모르겠어.”

클레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마녀와 고양이는 일단 일상을 보내기로 했다.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평소처럼 가게 오픈 준비를 하고, 관공서에 들러 서류를 제출하고, 쿠키를 만들 재료를 주문하고, 평소처럼 점심을 먹을 준비를 했다.

“아, 테오. 주스 좀…….”

하고 말하며 손을 뻗던 클레어가 멈칫했다. 오늘 몇 번이나 이랬는지 모른다.

몰리가 그런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마가렛이 그랬다.

클레어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고, 마녀가 되었다고. 어린아이나 다름없다고.

어린아이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몰리 네가 잘 가르쳐 주라고.

어린아이가 거대하고 사나운 늑대들을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몰리는 클레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저,

테오가 잘 도망쳤을지 걱정될 뿐이었다.

“으아아! 안 되겠어!”

클레어가 소리쳤다. 그에 몰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레어?”

“테오 찾으러 가자.”

“클레어!”

몰리가 눈을 반짝였다. 클레어가 속이 시원하다는 듯, 상쾌한 얼굴로 말했다.

“든든히 먹어, 몰리. 이제 편하게 밥 먹을 시간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응! 그럴게!”

그 마녀에 그 패밀리어라고.

마녀와 고양이는 전투적으로 점심 식사를 끝냈다.

“사람, 아니, 늑대인간 찾는 마법 같은 거 있어, 몰리?”

“사람 찾는 건 되지만 늑대인간은 잘 모르겠어. 늑대인간들은 마법 내성이 강해서 마법도 강해야 하거든. 하지만 마가렛의 서재에는 책이 많으니까 찾아보면 있을 거야.”

마녀와 고양이는 얼른 2층 서재로 향했다.

그리고 한바탕 서재를 뒤집어엎었다. 늑대인간과 관련된 책들이 다 튀어나왔다. 일부 책은 마법에 걸려 있는지 날아다니기도 했다.

“테오를 찾아도 문제야.”

클레어는 책 중 하나를 들고 빠르게 읽어 내려가며 말했다.

“잘 도망쳤다면 모르겠지만 늑대인간들에게 잡혔다면 늑대인간들을 상대할 방법도 준비해야 해.”

“그건…….”

클레어의 말에, 날아다니는 책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읽던 몰리가 잠시 클레어를 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가렛이 만든 전투용, 방어용 물약들이 많이 있어. 늑대인간들한테도 통할 거야.”

“좋아. 내가 쓸 수 있는 호신용 마법도 가르쳐 줘, 몰리.”

마법 수업 때 가르쳐준 마법들에 호신용 마법까지 배우면 어찌저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굉장히 대충이라 불안한 것 같기도 하지만, 클레어의 마음은 편했다.

테오를 찾으러 가자!

의욕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마녀와 고양이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때.

테오는 바닥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늑대 냄새가 가득한 걸 보니 늑대의 거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먼지 냄새도 가득한 걸 보니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곳인 것 같았다.

뭐, 그런 정보를 알아봤자 자신이 살았던 오두막 이외에 다른 장소는 잘 모르지만.

“후우…….”

다른 늑대인간들이라면 제법 움직일 수도 있었을 만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테오는 여전히 빌빌댔다. 이게 다 꼬리가 없어서, 힘이 약해서 그렇다.

“이런 생각도 이제 마지막인가…….”

아마도 보름달이 뜨는 오늘.

자신의 생명은 사라질 테니까.

고풍스러워 보이는 무늬가 새겨진 천장을 바라보며 상처와 피로 가득한 테오가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보름을 기다린 것 같네.”

세 번이나 잡혔는데 가둬두기만 했던 날들.

아마도 레이필드 늑대들은 달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보름을 기다린 게 아닌가 싶었다.

“마법인가? 아니면 주술?”

비슷한 거긴 하지만.

테오가 쓰게 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하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설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창문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 상체를 제법 움직일 수 있게 된 테오가 고개를 돌려 갇힌 곳이 어딘지 살펴보았다.

“서재인 줄 알았는데…… 도서관이었나?”

누워 있을 때 시야로 책꽂이가 보이길래 서재인 줄 알았는데, 그런 책꽂이가 수십 개가 서 있었다. 그런데 책은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쓸 만한 건 다 가져가고 버릴 것만 놔두고 간 것 같았다.

책.

‘시어도어 레이필드’는 책과 관련된 일도 좀 겪었다. 당연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다 아는 늑대인간의 동화도, 마법사의 이야기도, 인간의 옛날이야기도 테오는 몰랐다. 이야기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려진 종이로 글을 배우고, 무엇이든 금방 몸에 익힐 정도로 똑똑하고 재능도 있는데.

다 옛날 일이었다.

쓰게 웃은 테오가 책등에 적힌 제목을 읽었다.

마침 또 우연인지.

아니면 당연한 일인지.

아이들이 읽을 법한, 그 나이가 지나면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버려지는 동화책들이 거기에 꽂혀 있었다.

어린 시어도어 레이필드가 읽고 싶어 하던 그 책들이.

테오는 아픈 몸을 기울여 손을 뻗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피 묻은 손이 책 하나에 닿았다.

할 일도 없는데,

책이나 읽을까 싶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