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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99화 (89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99화

[/결과 발표 전에 알려드릴 공지가 있습니다./]

마지막 미션이 끝나고, 결과발표만 남겨둔 상태에서 심사위원인 아레시스의 디자이너가 입을 열었다.

보통 이럴 때 입을 여는 사람은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알기 쉽게 한국어로 말하는 다른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에, 박민형과 두 출연자는 긴장한 얼굴로 아레시스의 디자이너를 바라보았다.

-공지? 뭐지?

-나까지 긴장된다.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고 있던 서준도 무슨 일이지? 하고 눈을 깜빡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나 가수를 뽑는 프로와 달리, [패션위크]는 녹화방송으로 진행되는 터라 박민형은 무슨 공지인지, 누가 우승했는지 알고 있겠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서준과 [MOEB-436] 팀원들도 묻지 않았다.

그저 단톡방이 불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저희 아레시스는 이번 미션의 결과물에 따라 우승자 이외의 분들에게도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이 드릴 예정입니다./]

통역의 이야기를 들은 세 출연자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을 보며 아레시스의 디자이너가 빙그레 웃었다.

[/물론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요./]

-당연히 원하지!

-그래도 2등까지만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ㄴㄴ결과가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거 보면 등수 상관없이 옷만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 같은데?

=그럼 3명 다 갈 수 있는 거?

=세 명 다 가자!!

-역시 능력있는 사람은 알아보네.

=다른 곳도 노리고 있었을 텐데ㅋㅋ

=낚아채기!

-근데 왜 미션 전에 말 안 하고 미션 다 끝난 지금 말하지?

=성실성이나 도전성 같은 걸 본 게 아닐까? 지금 다 박민형이 우승한다고 이야기하잖아. 둘도 알고 있을 테고. 정해진 결과지만 끝까지 노력할지 아니면 포기할지 살펴본 거지.

=그런 것 같다. 아레시스에는 박민형보다 대단한 디자이너도 많을 텐데 여기서 포기하면 아레시스에서도 못 살아남을 테니까.

=그리고 아레시스 경쟁사가 하이브란 레든 등등의 세계적인 브랜드니까. ㅈㄴ 다 씹어먹겠다는 마음이어야 함.

[/그래서 여쭙습니다만./]

아레시스의 디자이너가 웃으며 말했다.

[/권도혁 씨, 박민형 씨, 유제빈 씨. 저희 아레시스에 입사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와아아악!!

=세 명 다 간다!!

=YES! YES를 외쳐!!

출연자들의 팬이 된 시청자들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람과 기쁨이 뒤섞인 출연자들의 표정을 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한 아레시스의 디자이너가 자리에 앉고, 다른 심사위원이 일어났다.

[그럼 이제 패션위크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속닥거리던 세 출연자가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우승자는…….]

심사위원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단톡방은 이미 축하의 메시지와 기쁨의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서준도 얼른 거기에 동참했다.

<우승 축하해! 민형아!

박민형이 우승했다.

* * *

[BNA 패션위크 우승자! 박민형!]

[패션위크 TOP3 모두 아레시스에 입사하기로 결정!]

[판매 시작 후 한 달째. W쿠키 여전히 오픈런 중!]

-패션위크 광고 볼 때마다 관심 1도 없었는데 마지막까지 매주 챙겨보게 될 줄이야.

=22 나도. 디자이너의 팬이 될 줄은 몰랐음ㅋㅋ

=33 세 사람 다 너무 좋음.

-아레시스가 브랜드라서, 박민형 옷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유제빈이나 권도혁 옷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 아레시스 가버림ㅠ

=ㅠ기쁜데 슬퍼ㅠ

-진짜 이서준은 W쿠키 사업만 해도 될듯.

-밤새서 한 번 구해서 부모님이랑 같이 먹었더니, 또 구해오랰ㅋㅋㅠㅠ

=엄마아빠 그거 구하기 힘들어요ㅠ

-근데 한 달이면 먹을 사람들은 다 먹은 거 아님?

=ㄴㄴ맛있어서 먹었던 사람들이 또 먹음.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만 계속 증가함.

=예전에 나온 허니칩은 5개월 넘게 품귀 현상 심했음. W쿠키는 이제 한 달 차니까 아직 쉽게 먹으려면 한참 남은 듯.

=나는 아직 조각 하나도 못 먹어봤는데ㅠ5개월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거야?

=그건 불가능. 허니칩은 계속 파는 과자지만, W쿠키는 뉴 이클립스 홍보 때문에 파는 거라서 영화 끝나면 안 팔거든.

=……?

=+)뉴 이클립스가 12월 15일 개봉하니까, 1달 반 상영한다고 쳐도 아마 1월 말~2월 초까지만 판매할걸.

=???

=+)그 이후론 평생 못 먹음.

=?!?!?!

* * *

[‘뉴 이클립스’ 오늘(15일) 개봉!]

[판매시작 후 두 달째. W쿠키 여전히 오픈런 중!]

-똑딱똑딱. W쿠키 판매 이제 1달 반 남음.

=안돼…… 아직 W쿠키 못 먹었단 말이야ㅠ

=개봉해. 아냐, 개봉하지 마. 아니야, 개봉해ㅠㅠ

“일찍 먹길 잘했다.”

“그러게.”

시끌벅적한 영화관.

영화 시간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보고 있던 송유정과 임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첫날이 경쟁률이 제일 낮지 않았나 싶다.

맛있다는 이야기와 판매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소식에 경쟁률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마트 앞에서 꼬박 밤을 지새우는 이들도 있었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첫날 이후로 두 달 동안 겨우 한 번 더 W쿠키를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서 그런지, 쿠키를 만드는 제과점이나 베이커리에서도 서준의 레시피로 쿠키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레시피를 공개할 때부터 그런 가게들이 있긴 했는데, 인기가 많아지면서 더 늘어났다.

코코아엔터는 공개한 레시피를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서준’이나 ‘W쿠키’라는 이름을 쓰는 건 안 된다고 전했다.

그래서 새싹들은 마음 편하게 쿠키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새싹부터] 공지에 W쿠키의 맛과 가장 유사한(맛있는) 쿠키 가게 리스트도 있을 정도였다.

“유정아. 이 근처에 제과점 있던데 영화 보고 사러 갈까?”

“그래. 그러자!”

송유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것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접어둘 때였다.

“제6관! 뉴 이클립스를 관람하실 분들은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외침에 [뉴 이클립스] 포스터를 구경하던 송유정과 임예나가 눈을 반짝였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렸던 영화를 볼 시간이었다.

베스트셀러라서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지만,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소설과 바뀐 부분이 있을지 기대가 됐다.

자리에 앉은 송유정과 임예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두워지는 상영관 속 홀로 빛을 내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 *

보육원의 원장실.

원장과 한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렴.”

원장의 말에 천천히 문이 열리고,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 여자가 들어왔다.

“저 아이가 클레어예요.”

“그렇군요.”

원장의 말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명함을 건넸다.

처음 보는 남자에 클레어는 데굴 눈을 굴리며 그 명함을 받았다.

“반갑습니다. 클레어 매닝 씨. 전 마가렛 도트 씨의 변호사인, 릭 호번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클레어 매닝입니다.”

마가렛 도트? 변호사? 릭 호번?

명함을 슬쩍 본 클레어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나, 고민했다.

‘이제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면 큰일이었다.

어두워진 클레어의 표정을 본 릭 호번 변호사가 부드럽게 웃으며 설명했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마가렛 도트 씨께서 남긴 유산을 클레어 매닝 씨께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유산이요?”

변호사의 맞은편에 앉은 클레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 뛰었다. 유산보다는 자신에게 유산을 남길 만한 친척이,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이 때문이었다.

언제나 가족을 바라왔던 클레어가 뺨을 붉게 물들였다.

“마, 마가렛 도트 씨가 제 가족인가요?”

“아뇨. 안타깝게도 마가렛 도트 씨와 클레어 매닝 씨는 혈연이 아닙니다.”

“아…….”

변호사의 말에 클레어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유산이라는 말은 이미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가족이었어도 만나지 못했을 거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원장 선생님에 클레어 매닝은 얼른 제 실망을 삼키고 물었다.

“그러면 마가렛 도트 씨는 누구 신가요? 왜 저에게 유산을 물려주시는 거죠?”

“얼마 전에 공원에서 도와주신 분을 기억하십니까?”

변호사의 말에 클레어 매닝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제 곧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클레어는 지낼 곳과 일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다음 집을 알아보기 위해 이동하던 중, 공원에서 힘없이 웅크리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 옆에 검은 고양이가 목줄도 없이 걱정스러운 듯 할머니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클레어는 당장 달려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부드러운 인상의 할머니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방에……약이…….”

“잠시만요.”

클레어가 가방을 뒤지기도 전에 검은 고양이가 약을 물고 나타났다. 그에 놀란 클레어였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먼저였다.

“이거 맞나요?”

할머니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어는 할머니를 기대게 만들어 물약을 마실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떤 약인지 모르겠지만 효과는 정말 좋았다.

창백하던 할머니의 안색이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오고 축 늘어져 있던 몸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고마워요.”

클레어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클레어도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 정신을 차리고 처음으로 제대로 클레어를 살펴본 할머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 아이는…….

-미야옹!

“아, 몰리. 너도 고맙구나.”

그때 검은 고양이가 울었다. 이름이 몰리인 모양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사례를 하고 싶은데…….”

“괜찮아요.”

사양하는 클레어의 손을 할머니가 붙잡았다. 주름진 손이지만 따뜻했다.

“꼭 보답하고 싶어서 그래요.”

하고 말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분이……?”

“네. 마가렛 도트 씨입니다. 이틀 전 돌아가셨죠.”

아.

클레어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프신 것 같긴 했는데…… 그렇구나.’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와 따뜻한 손이 떠올라 마음이 쓰라려 왔다.

잠시 클레어를 기다려 준 변호사가 서류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그때의 보답으로 클레어 매닝 씨께 집을 남기셨습니다. 세금이나 다른 문제들도 다 해결하셨고요.”

클레어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했다.

글자가 가득한 서류들 사이, 이층집의 사진과 방 사진들이 보였다. 한 번 도와줬다고 받기엔 너무 좋았다.

“정말…… 제가 받아도 될까요?”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몰리라는 고양이가 있는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녀석이니 가끔 찾아오면 밥을 챙겨줬으면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아. 그렇지.

고양이가 있었다.

혼자 남을 몰리가 굉장히 걱정됐을 게 분명했다.

고민하던 클레어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원장선생님에게로 향했다. 원장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어가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상속을 위해 필요한 서류는 제가 준비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는 클레어.

화면이 점차 어두워지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다시 밝아졌다.

차들과 사람들이 이리저리 지나다니는 거리.

양옆 빌딩 사이에,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이층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짐 가방을 든 클레어가 서 있었다.

“여기가 내 집…….”

클레어는 벅찬 얼굴로 이층집을 올려다보았다. 사진으로만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예쁜 것 같았다.

짐 가방을 손에 든 클레어는 변호사에게서 받은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앞마당도 돌길도 현관도 너무 좋았다.

클레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와아!”

집 안은 더 좋았다.

넓은 거실과 부엌이 있었고 커다란 창으로 햇빛이 잘 들어왔다. 바로 옆이 빌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마가렛 도트 씨가 남기고 갔다는 가구들과 전자제품들 위에는 먼지가 앉지 않게 새하얀 천이 씌워져 있었다. 클레어는 그 천들을 걷었다.

소파부터 테이블, 식탁, 의자, 에어컨, 그리고 TV까지.

“가구는 안 사도 되겠다!”

클레어는 상기된 얼굴로 집 안을 돌아다녔다.

1층의 작은 방, 화장실, 세탁실도 살펴보고 2층 방과 서재에도 살펴보았다. 마가렛 도트 씨는 책을 좋아하신 분이었던 모양인지 서재에 책이 엄청 많았다.

“근데 마가렛 씨의 물건들하고 몰리 물건들은 없네.”

앞날을 짐작하셨던 걸까.

큰 가구와 전자제품들, 그리고 책들을 제외하고 작은 물건들과 음식재료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 용품과 사료도 없었다.

“그럼 몰리 사료랑 장난감도 사고…….”

휴대폰에 사야 할 것들을 메모한 클레어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일단 청소부터 할까!”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청소하는 것마저 즐겁고 행복한 클레어였다.

* * *

다음 날.

짐을 잔뜩 든 클레어가 대형마켓에서 나왔다.

“어제 그렇게 샀는데…… 읏차!”

어제 이것저것 많이 샀는데, 아직도 사야 할 게 많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지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

클레어는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단단해서 벽인 줄 알았던 후드를 쓴 남자는 클레어를 도와 짐들을 주워주었다. 친절한 사람인 것 같았다.

“너…… 마녀군.”

아니.

이상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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