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98화
뉴욕 핼러윈 퍼레이드가 끝났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과 구경한 사람들 모두 뉴욕 경찰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여운을 즐기기 위해 일행과 가까운 가게로 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족, 친구들과 함께 따뜻하고 포근한 집으로 돌아갔다. 푹 자고 내일 열심히 떠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점심시간인 한국인들은 자유롭고 신나게 올라온 글과 사진, 영상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상으로만 봐도 재밌다ㅠㅠ
-퍼레이드에 참가한 새싹들도 엄청 많나 봄.
=그럼 서준이는 못 봤겠네ㅠ?
=ㄴㄴ 중간에 빠질 수 있음.
=오!
-애들도 코스튬 입고 왔더라. 완전 귀여워ㅠㅠ
=엄마아빠가 새싹인가ㅋㅋ
-이거 본 새싹! (영상)
영상 속, 서준과 헤일리 로지가 레이필드 늑대들에게 반짝이 종잇조각 뭉치를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공중에 퍼진 반짝이 종이. 그에 레이필드 늑대들이 과장된 모습으로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눈싸움도 아니고ㅋㅋ 마법 대신이냐고ㅋㅋㅋ
=나중에 사람들한테도 뿌려줌.
=나 서준이가 뿌린 거 받았다! (반짝이 종이 사진)
=ㅠ부럽다ㅠ
-(영상)
이번 영상엔 배우들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준과 헤일리 로지, 그리고 몰리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 커지는 것이 보였다.
-완전 내가 생각하던 몰리 목소리야ㅠ 영화에 나오는 성우분이겠지?
=ㅇㅇ그렇다더라.
-예고편 보는 기분이라서 넘 좋음.
그래도 역시 새싹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건 서준이였다.
-늑대귀 너무 잘 어울린다(입틀막)
=저대로 영화에 나온다는 거지?(N차 예약)
=나날이 잘생겨지는 서준 오빠.(여기 내 무덤)
-서준이 진짜 재밌어하네ㅋㅋ
=서준이가 어릴 때부터 몬스터, 괴물, 요정 그런 거 워낙 좋아했잖아요.
=진짜ㅋㅋㅋ 지금 몬스터사가 만들어진 것도 서준이 때문이고ㅋㅋ
=정말요?
=옛날에 김희상 대표가 직원들한테 이야기했대요ㅋㅋ
=김희상: 친구 아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홍보도 엄청 잘해서 주변에 있는 애들한테도 엄청 인기 많았죠. 그래서 괜찮겠다 싶었죠.
=친구 아들>이서준/ 주변 애들>잭 스미스
=앜ㅋㅋㅋㅋ
=둘만 봐도ㅋㅋㅋ성공할 것 같다ㅋㅋ
-지금도 서준이가 애용하는 몬스터사 액세서리.(사진)
=새싹 중에도 안 산 사람이 없을걸ㅋㅋㅋ
-진짜 좋아하는 게 보여서 나까지 행복함ㅠㅠ
=222 나도ㅠㅠ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짐ㅠ
-근데 사진 몇 개는 분위기가 좀 다르지 않아?
=응?
=나쁜 뜻은 아니고. 필터가 하나 낀 느낌? 서준이는 서준이인데 조금 낯선 느낌?
=테오 연기한 거 아니야?
=그렇다기엔 ‘이서준’이 남아있음. ‘테오’를 연기하면 완전히 테오가 되잖아.
=그건 그렇지.
=그냥 ‘늑대인간’ 연기를 한 거 아닐까? 거기에 ‘이서준’을 섞은 거지.
=그런가? 하여튼 되게 사람 안 같고(좋은 뜻) 묘하고 신기한 기분이 듦.
=난 서준이 볼 때 항상 그래. 어떻게 나랑 같은 사람이지? 하고 생각해.
=앜ㅋㅋㅋ
그게 몬스터 분장한 사람들 사이에 낀 ‘진짜’의 모습이라는 것은 모르는 새싹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 기사도 많이 떴다.
[뉴욕에서 ‘뉴 이클립스’ 홍보 중인 배우 이서준!]
[배우 이서준! 뉴욕 핼러윈 퍼레이드에 참가!]
[트릭 오어 트릿! 뉴 이클립스가 나눠주는 W쿠키!]
-홍보 맞지?? 본인이 제일 즐거워 보는데?
=ㅋㅋㅋㅋ
-고양이? 고양이도 데려간 거임?
=ㄴㄴ인형임. 영상 잘 보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옴.
-근데 왜 이서준만 꼬리가 없어?
=캐릭터 설정임. 소설이나 영화(나오면) 봐.
=실수로 빼먹은 줄ㅋㅋ
-W쿠키…… W쿠키…… W쿠키……!!
=제발 사게 해주세요ㅠㅠ
-근데 이제 이서준 한국에서 활동 안 함? 전역한 이후에는 한국 활동 1도 안하는 것 같은데. 왜 계속 미국 작품만 찍음? (비꼬는 거 아님. 진짜 궁금함.)
=서준이가 찍고 싶은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라서?
=+)내년에 뭐 찍는대? 한국 작품이었으면 좋겠는데……
=서준이 내년에 이레귤러스 찍는대.(기사)
=+)취소. 퉤퉤퉤.
=+)이레귤러스!! 기다렸다!!
=아ㅋㅋ태세전환ㅋㅋㅋ
=근데 이레귤러스는 그럴 만도 하지ㅋㅋㅋㅋ
-뉴 이클립스+패션위크+W쿠키+핼러윈 퍼레이드에 이레귤러스 소식까지 추가돼서, 지금 인터넷에 이서준 이름밖에 안 보임.
=원래 그렇잖아.
=ㅇㅇ평범한 일인데, 뭐.
* * *
다음 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이 서준 리라는 이름으로 들썩일 때.
서준은 [이레귤러스]의 마크 웨버 감독을 만나고 있었다.
“촬영 전에 한번 만나고 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네요, 리.”
“그러게요.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감독님.”
서준이 웃으며 마크 웨버 감독과 악수를 나누었다.
“대본은 어땠어요? 난 재미있었는데.”
“저도 재미있었어요. 마지막 부분이 좋더라고요.”
“그쵸?”
그렇게 오늘 처음 만나는 배우와 감독은 천천히 대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어떻게 연출하고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잘 맞는 덕분에 이야기가 길어졌다.
배우와 감독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회의실을 살피고 있던 모양인지 [이레귤러스]를 제작하는 마린사의 담당자가 슬쩍 들어와 간식을 놓고 갔다. 감독과 배우의 사이가 좋다니. 촬영이 순조로울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오. W쿠키.”
하필이면 간식이 W쿠키였다.
“이게 맛있더라고. 우리 가족도 엄청 좋아해.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하하. 차에 몇 개 있어요. 드릴게요.”
“그럼 고맙지!”
서준의 말에 마크 감독이 환하게 웃었다.
“다른 배우분들도 만나보셨어요?”
“그래. 루카스 터너는 스케줄 때문에 다음 달에나 볼 것 같지만.”
서준의 물음에 마크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버서커] 배우와 [화이트 블러드] 배우는 이런저런 시상식의 애프터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조금 아는 사이였지만, [매드해터] 배우와 [팬텀] 배우는 아직 만난 적이 없었다.
‘작품은 봤지만.’
특히, [팬텀] 배우, 루카스 터너.
서준이 한예대 입시 때 연기한 [신의 이름으로]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신의 이름으로]의 감독이 조나단 윌이라서 어디 파티에서 소개해 줬을 법도 한데, 어째 만나지를 못했다.
‘이번에도 이야기는 못 들었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크 감독님은 대본은 안 쓰세요?”
“대본?”
“네. 예전 작품들을 봤는데 감독님이 쓴 대본으로 만든 영화는 없더라고요.”
시나리오 팀이나 작가가 쓴 대본으로 작업하는 감독도 많았지만, 서준이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촬영했었다.
그래서 조금 궁금했다.
서준의 말에 마크 감독이 빙그레 웃었다.
자신의 작품을 찾아봤다는 배우가 싫을 리가 없었다.
“난 대본은 못 써.”
“못……써요?”
뜻밖의 말에 서준이 눈을 끔뻑였다.
심각한 이야기인가 싶었다.
“대본을 쓸 때 주인공의 서사를 떠올려서 이야기를 만들잖아? 태어날 때부터 영화에 나오는 것까지.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조연들의 서사도 생각하고.”
“네. 그렇죠.”
“근데 난 거기서 안 끝나거든.”
마크 감독이 W쿠키를 먹으며 말했다.
역시 맛있다.
이 쿠키의 레시피를 눈앞에 앉은 배우가 만들었다고 하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레귤러스]에 소품으로 W쿠키를 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발견한 관객들이 좋아하겠지.’
이런. 또 딴생각을 해버렸다.
마크 감독이 얼른 입을 열었다.
“난 엑스트라들 서사까지도 생각해 버리고 말거든.”
“엑스트라들까지도요?”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엑스트라들도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었다. 서준도 엑스트라 역을 맡으면 열심히 할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조금 많이 곤란한 일이었다.
“적당히 잘라내서 적어야 하는데 말이야. 난 열 명이 나오면 열 개, 백 명이 나오면 백 개의 인생을 구상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가끔은 제멋대로 떠오르기도 하고.”
마치 재채기처럼 숨길 수가 없는 상상력이었다.
“예전에 적었던 대본은 주인공의 부모님과 친구들, 이웃 사람들 인생까지 떠올렸다니까.”
이번에야말로 이 망할 상상력을 참고 참아서 완성해내겠다는 생각으로 대본을 써 내려갔던 젊은 날.
‘여기서 주인공 아버지가 등장…… 음. 주인공 아버지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머니는? 둘 다 전 애인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애인들은…….’
결국 캐릭터 파일 수십 개를 만들고 나서야 마크 웨버 감독은 두 손을 들었다.
글렀다.
나는 글렀어.
과하고 쓸데없는 설정과 설명만 가득한 자신의 대본을 떠올린 마크 웨버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캐릭터가 적게 나오는 이야기는 어떠세요?”
캐릭터가 많이 나와서 문제라면 적게 나오면 되지 않을까?
서준의 의견에 마크 감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내가 재미가 없더라고.”
아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 중요하지.
“그래도 다행인 건, 남의 시나리오에서는 좀 자제할 수 있다는 거야. 아니었으면 감독도 못할 뻔했지. 이게 감독하기엔 딱 좋은 능력이거든. 헤매는 배우들한테 어떻게 이 감정을 느끼는지 설명할 때라든가, 엑스트라를 디렉팅할 때라든가.”
하긴 그렇겠다.
그냥 거리를 지나가는 엑스트라에게도 ‘출근 중’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좀 더 다양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데, 마크 감독처럼 아예 인생을 부여한다면 더 배역에 몰입하기 편할 터였다.
‘출근 중’이라는 설명에도 첫 출근을 하는 사회초년생(긴장&설렘), 월급이 안 들어온 직장인(빡침), 오늘 퇴사하는 직장인(기쁨) 등등의 또 다른 설명이 붙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촬영 시간 때문에 그렇게 길게 디렉팅은 못하겠지만.”
마크 웨버 감독이 씨익 웃었다.
“주조연급과 대사 있는 배역들은 아주 확실하게 디렉팅할 수 있지.”
물론 개인의 작품이 아닌, 많은 돈이 걸린 시리즈 영화인 만큼 시나리오 팀과 감독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들을 예정이었고.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이런 감독님의 디렉팅이라니 기대된다.
“물론 준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만.”
“네? 왜요?”
서준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마크 웨버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윌리엄 리의 인생은 이미 영화로 나왔으니까. 뭘 덧붙이고 뺄 것도 없이 깔끔한 상태지.”
아.
서준은 납득했다.
윌리엄 리.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관객들과 함께 세월을 보낸, 전무후무한 캐릭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괜한 설정이나 감정을 넣으면 관객들이 대번에 알아차릴 거다.
“윌리엄 리는 더이상 손댈 구석이 없어.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준도 어떻게 연기할지 정해놓은 것 같고.”
뭐, 그거야 그렇다.
마크 감독의 말에, 완성된 대본을 봤을 때부터 어떻게 연기할지 계속 생각해왔던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디렉팅해 주세요, 감독님.”
“그거야 당연하지.”
마크 감독이 씩 웃었다.
“그럼 다시 이야기해 볼까?”
서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시간이 흘러.
11월 중순.
[BNA, 패션위크! 오늘 마지막화!]
[어차피 우승은 박민형? 패션위크의 최종 우승자는?!]
[패션위크! 박민형이냐, 유제빈이냐, 권도혁이냐.]
-딱 봐도 1등 박민형 아니야?
=박민형이 잘하긴 하지.
-유제빈, 권도혁 아쉬움. 다른 서바이벌이었으면 둘 다 우승하고도 남았을 실력인데.
=ㄴㄴ박민형 없었으면 이렇게 유명하지도 않았음.
=22 예전 서바이벌 시청률, 화제성 보면 그때 우승자들보다 패션위크 TOP5가 더 유명한 듯.
=333 이제 쇼핑몰 하거나 옷 내면 품절예약.
=44 광고도 찍고.
-두 사람 인터뷰 보면 권민형이 있어서 더 열심히 배우고 만들 수 있었다고 함.
=라이벌 중요하지.
=둘 다 생각이 참 깊은 듯. 열등감 느낄 수도 있는데, 기회로 삼은 것 같다.
=ㅇㅇ둘 다 멋짐.
=박민형도 순하고 성격 좋음.
-이것도 다 이서준이 불러온 파급력ㅋㅋ
=생각난다ㅋㅋ학교 행사?하고 당황했는데 그게 이서준 학교ㅋㅋㅋ
-이러니까 다들 스타마케팅하는 듯.
=22 근데 패션위크는 그걸 무료로 함.
=패션위크: 돈을 왜 써! 알아서 굴러들어 오는걸!
=ㅋㅋㅋㅋ
-오.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