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97화
10월 31일. 핼러윈.
뉴욕은 곧 시작할 축제로 들썩이고 있었다.
철제 바리케이드로 통제된 길 끝.
기업 홍보를 위해 참여한 퍼레이드 카들이 나란히 한 줄을 이루어 선두에 서 있고 그 뒤에 동아리나 단체들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각자 사거나 만든 코스튬을 입은 개인 참가자들이 서 있었다.
“와! 사람 많다!”
뉴욕에 있는 패션스쿨에 다니고 있는 유학생 새싹이 눈을 빛냈다.
작년에도 왔던 축제였지만 올해는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러게.”
친구도 동의했다.
이런 시끌벅적한 행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뉴 이클립스]가 참여한다고 해서 왔다. 친구 또한 새싹이었다.
“구경하는 사람도 다들 코스튬 입고 왔네.”
퍼레이드에 참가하지 않고, 인도에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도 흉터 그림이나 붕대, 동물 귀 모양 머리띠를 쓰는 등 소소하게 꾸민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중 늑대 귀와 마녀 모자가 가장 많은 것 같다면 착각일까.
“역시 면류관을 쓰고 와야 했어.”
유학생 새싹이 텅 빈 머리를 매만지며 아쉬운 얼굴로 말하자, 친구가 살짝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 지금 /곤룡포/ 입고 있어.”
그에 유학생 새싹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보았다.
금색의 용 무늬가 새겨진 붉은색의 곤룡포가 펄럭였다. 직접 만든 거라서 굉장히 마음에 들지만 역시 좀 아쉬웠다.
“그래도 옷은 그렇게 눈에 안 띄잖아.”
하고 말하는데, ‘저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여자아이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 그리고 동생을 어깨 위에 앉힌 아빠가 보였다. 여자아이는 뾰족 모자를 쓴 마녀로 분장하고 있었고, 아직 어려 보이는 동생은 늑대 귀 털모자에 꼬리가 달린 바지를 입고 있었다.
딱 봐도 [이클립스]였다.
굉장히 귀여웠다.
“괜찮으면 같이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눈을 반짝이고 있는 여자아이의 물음에 유학생 새싹은 깜짝 놀랐다가 얼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눈에 띄지.”
“아하하.”
유학생 새싹은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물었다.
“이 옷이 뭔지 알아?”
“왕이 입는 옷이잖아요. /조선/!”
“오!”
유학생 새싹과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희 딸이 지금 /내의원/을 보고 있는 중이라서요.”
“아하.”
부모의 말에 두 사람이 웃었다. 어린이 새싹이었나 보다.
“새싹이었네. 그럼 이거 줄게. 과자 대신 선물이야.”
친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냈다.
그건 포토카드였는데, 코스튬 대신 준비했다.
“LA에서 팬미팅 했을 때 찍은 준의 사진이야.”
“와아아!”
어린이 새싹은 팬미팅에 갔었다는 데 한 번, 포토카드가 굉장히 멋지다는 데 또 한 번 감탄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굉장히 새싹다웠다.
두 어른 새싹은 뿌듯해졌다.
어린이 새싹 가족과 헤어진 유학생 새싹과 친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곧 시작할 퍼레이드를 가장 좋은 장소에서 보기 위해서였다.
“와. 저것 봐. /허 의관/ 복장! /성녕대군/도 있어!”
“저기 바이올린 든 남자는 그레이겠지?”
“/장산범/!”
“/장산범/이 딱 핼러윈에 어울리긴 하지.”
새싹이라서 그런지, 서준의 작품과 관련된 코스튬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왜 유령이 하얀색이 아니라 검은색일까?”
가장 변장하기 쉬운, 흰색 천을 뒤집어쓴 유령 같은 코스튬이었는데,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옆에 섰다. 복장을 보니 쉐도우맨과 나이트 진인 것 같았다. 검은 유령도 또 하나 있었다.
“……설마 제이야?”
“파트너일지도.”
나이트 진의 그림자, 제이.
그리고 쉐도우맨의 그림자, 파트너.
아하하하!
검은 유령의 정체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그에 멋진 코스튬을 보여준 네 사람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캐릭터에 몰입한 모양인지 파트너가 유난히 날뛰었다.
“완전 멋진데!”
그 이외에도 [생존자들] 멤버들 옷을 입은 사람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청룡님 인형탈, 정장에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화]의 도련님, 곰인형을 든 진 나트라 복장을 입은 아이 등등.
축제의 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간간이 새싹들도 만났다.) 두 새싹은 행복해졌다.
하지만, 아직 더 행복해질 일이 남아있었다.
“여기서 볼까?”
“그래. 그러자.”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은 두 새싹은 기대로 가득한 얼굴로 카메라를 준비했다.
이곳으로 [뉴 이클립스]의 퍼레이드 카가 올 터였다.
잠시 후.
퍼레이드가 시작된 듯, 퍼레이드의 시작 지점부터 환호성과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퍼레이드 시작!
SNS에도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퍼레이드 카 3번째 뉴 이클립스팀!
-(앞쪽 계단 위 헤일리&준 사진)(뒤쪽 계단 위 레이필드 늑대들 사진)
=미친! 진짜 늑대 아니야?!
=할리우드 퀄리티! 영화 복장 그대로 입은 것 같은데!
-!!귀랑 꼬리 움직여!! (댄 캔드릭의 귀와 꼬리가 움직이는 영상)
=할리우드으으!!
-/너무 진심인 거 아니냐고ㅋㅋㅋㅋ/
=/하지만 그 진심 너무 좋다. 굿잡./
미국이든 한국이든 들썩이고 있었다.
-한국은 오전 아니야?
=일요일.
=오!
-/서준이 사진 보여주십쇼ㅠ/
-/222 더 올려줘ㅠㅠ/
=/옛다./(사진1)(사진2)……
=/감사! 압도적 감사!/
한국인인지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인지 모를 이가 사진을 왕창 업로드하자, 다시금 SNS가 들썩였다.
멀리서 들리던 환호성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유학생 새싹과 친구도 사진을 잔뜩 찍어서 올릴 생각에 카메라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첫 번째 퍼레이드 카가 보인다. 핼러윈답게, 아이들이 주요구매층인 과자회사답게 귀여운 유령과 주황색 호박, 잭 오 랜턴 등등이 보였다. 신나는 음악도 들렸다.
마치 놀이공원의 퍼레이드처럼 느릿한 속도로 첫 번째 퍼레이드 카가 지나가고, 조금 간격을 두고 두 번째 퍼레이드 카가 지나갔다. 두 번째 차량 또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퍼레이드 카.
먼저 처음 듣는 음악이 들려왔다.
“뉴 이클립스 OST인가?”
“그럴지도.”
두 새싹은 짧게 대화하며 눈도 깜빡하지 않고 길 끝을 보았다. 천천히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초록색 나뭇잎과 줄기로 가득한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늑대도.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보자마자 감탄이 나오고 후광이 보이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서준이다!”
하고 유학생 새싹이 감탄하는 사이 친구는 먼저 손가락부터 움직였다.
주변도 순식간에 환호성과 함께 셔터 소리로 가득해졌다.
“준!”
“완전 귀여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은 듯 쫑긋 솟은 늑대귀가 움찔거렸다.
“헉! 진짜 움직여!”
“으아아아!!”
실물 같은 늑대 귀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서준이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비명과도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로 양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손을 흔들던 서준이 몸을 조금 낮췄다. 그리고 계단 쪽으로 손짓했다. 그러자 줄기로 만들어진 난간에서 뿅하고 검은색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뭐야? 진짜야?”
“아냐. 인형인 것 같은데.”
그리고 뾰족 모자를 쓴 마녀가 몸을 일으켰다. 헤일리 로지였다.
헤일리 로지도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슈퍼스타의 뒤를 이은 라이징 스타의 등장에 다시 한번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러던 중 서준이 손짓하자 헤일리 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헤일리 로지가 올라온 계단 반대쪽으로 몸을 살짝 숙여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 몰리도 뿅!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이들이 나타났다.
레이필드의 늑대들이었다.
“댄 켄드릭!”
“브라이언!!”
누군가를 쫒는 듯, 짐짓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던 레이필드의 늑대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얼른 표정을 풀고 활짝 웃었다. 손을 흔들어주는 순한 늑대들의 모습에 베스트셀러인 [이클립스]를 읽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곧 천천히 이동하는 퍼레이드 카의 옆모습이 보였다.
양쪽에 두 개의 나무가 우뚝 솟은 잔디밭 같은 모습이었다.
그곳을 서준 리와 헤일리 로지가 조심스럽게 도망치고 있었고, 그 뒤를 심각한 표정의 늑대들이 쫓고 있었다.
좁은 퍼레이드 카 안.
대놓고 도망치는 ‘테오’, ‘클레어’와 눈앞에 있어도 찾지 못하는 ‘레오필드 늑대들’의 모습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뒤에 있어요!”
“반대쪽!”
“도망쳐!”
금세 몰입한 아이들은 열정적으로 소리쳤지만 말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듯, 귀를 쫑긋거린 ‘테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으로 오른쪽, 왼쪽을 가리켰다. 신난 아이들이 더 크게 소리쳤다.
“역시 청룡님!”
차자자작!
셔터 소리와 함께 유학생 새싹과 친구가 감탄했다. 물론 간간이 맨눈으로 직접 보고 뇌에 새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느린 퍼레이드 카 최고다!
좁은 퍼레이드 카 안을 마주침 없이 빙글빙글 돌던 짧은 술래잡기는, 서준 리와 헤일리 로지가 앞쪽 나무에, 늑대들이 뒤쪽 나무에 서는 것으로 끝났다.
배우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신나게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다. 늑대들의 꼬리와 귀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들이 거의 생중계하듯 SNS에도 전해졌다.
방송을 하는 너튜버도 있긴 했다.
-이것이 할리우드 퀄리티!
-근데 꼬리랑 귀는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준은 꼬리 없네ㅋㅋ
서준도 즐겁게 핼러윈 축제를 즐겼다.
높은 퍼레이드 카 위에서 보니 사람들도 잘 보였다. 특히 검은색, 흰색으로 가득한 옷들 사이로 붉은색 곤룡포는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하하!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서준이가 나를 봤어!/”
“준이 날 봤어!!”
거기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팔이 떨어져라 흔들어 답인사를 하기도 했다.
“준. 저기 쉐도우맨이랑 나이트 진이 있는데?”
“정말요?”
헤일리 로지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그림자들도 있었다.
아하하하!
열심히 손을 흔드는 그림자들을 본 서준이 빵 터졌다. 늑대귀도 그에 맞춰 움직였다.
라이언 감독님과 조나단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서준이 뭘 본 거야?/
=/22 진짜 빵 터졌는데?/
=(사진)
=/앜ㅋㅋㅋㅋ/
=/제이ㅋㅋ파트너ㅋㅋㅋ/
그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서준이 출연한 작품의 캐릭터들로 분장하고 있었다.
그레이스 웰튼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크지만 아직 어린 마녀와 아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아기 늑대인간. 곰인형 탈을 쓰고 온 사람. 새하얀 백발에 얼룩덜룩한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
그리고 영화보다도 먼저 모인 히어로들.
-여기 이레귤러스 있음. (나이트 진, 팬텀, 버서커, 블러드 화이트, 매드해터 사진)
=벌써 예고편 나왔냐고(웃는 이모티콘)
=이렇게 모인 걸 보니 너무 좋다.
서준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축제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아니, 시작하기 전부터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즐거웠다.
자신의 작품에 나온 인물들(그리고 그림자)로 꾸민 사람들도 좋았지만, 다른 것들로 분장한 사람들도 좋았다.
새하얀 유령, 뼈만 남은 해골, 망토를 두른 뱀파이어, 반짝이는 요정, 박쥐 날개를 단 악마, 하얀 날개를 단 천사, 무서운 가면을 쓴 정체 모를 이, 외계인의 탈을 뒤집어쓴 이 등등.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진짜’가 섞여들어도 모를,
그야말로 인외(人外)들의 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