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91화 (89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91화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에 강재한이 물었다.

“여기 대기실이 좋다고 느낀 게 인테리어 때문인 것 같아서 말이야. 아까 테이블 정리하는 거 보니까 민형이가 하지 않았을까 해서. 근데 진짜 민형이가 옮긴 거였네.”

그에 서준은 적당히 둘러대며 대답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하.”

강재한도 그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박민형이 말했던 물건들의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미술이나 디자인을 잘하면 이런 것도 잘하는 건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민형이는 잘하네.”

웃으며 칭찬하는 서준과 수긍하는 강재한의 모습에 쑥스러워진 박민형이 에헤헤헤 웃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민형아!”

“엄마! 아빠!”

문을 열어보니 박민형의 부모님이 신기한 표정으로 실내를 돌아보다 아들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박민형도 따라 웃었다.

“늦는 줄 알았는데 일찍 왔네!”

“그러니까 좀 더 일찍 나오자니까.”

“내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나.”

박민형의 말에 가볍게 투닥거리던 부부가 대기실 안에 있는 서준과 강재한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어, 서준 학생, 재한 학생! 먼저 와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강재한과 서준이 웃으며 부부에게 인사했다.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우린 이게 편해요.”

부부가 하하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스타였던 서준이었던 터라 이렇게 부르는 것이 가장 편했다.

그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박민형의 부모님과 만난 것은 여울예중에 다닐 때로, 다 같이 신나게 연극 [거울]을 만들며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도 안 된 중1 박민형을 마중(그렇게 늦게 끝내지는 않았지만) 나오시거나 맛있는 간식을 사주셨을 때 뵈었다.

“오늘 민형이 응원하러 와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자, 박민형의 어머니가 가방에서 가져온 과일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배고프지? 과일 가져왔으니까 먹어.”

“어? 여기 과자 있는데?”

“과자보단 과일이 건강에 더 좋아. 서준 학생이랑 재한 학생도 하나씩 먹어봐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그렇게 이쑤시개로 사과를 하나씩 먹는데, 박민형의 아버지가 종이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민형아, 이것 봐.”

“응?”

“엄마랑 아빠가 응원 도구 만들어왔어!”

그건 [우리 아들! 파이팅!]이라고 적힌 네모난 플래카드였다.

“패션천재 박민형도 있어.”

또 하나 꺼내 드는 플래카드에 사과를 냠냠 먹던 박민형이 입을 턱 벌렸다. 저게 방송으로 나간다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플래카드를 본 서준과 강재한이 안타까운 듯한 얼굴로(물론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입을 열었다.

“아, 우리도 만들어올걸.”

“어머님, 아버님. 저희 거도 있어요?”

“당연히 있지!”

“어떤 거 할래요? 꽃길만 걷자, 민형아!도 있고, 다음 목표는 파리다!도 있고.”

으아아아……!

신이 난 형들과 부모님의 대화에 박민형이 절규했다.

* * *

박민형이 이건 패션쇼라서 모델들만 무대에 선다고 이야기하며, 저 망할 플래카드들을 뽀각뽀각 곱게 접으려고 하고 있을 때.

건물 밖에서는 오늘 패션쇼에 당첨된 사람들이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동반인도 없이 한 티켓당 한 명만 입장이 가능해서 서로 아무 말 없이 서 있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각자 서로를 살펴보다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너 새싹?’

‘응. 나 새싹.’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새싹’이 그려진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새싹들은 마치 영원의 단짝이라도 만난 듯 활짝 웃으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준이가 올까요?”

“오지 않을까요? 방송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패션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이서준이라는 후추를 촥촥 뿌린 느낌이랄까.

아주 적은 양인데도 향은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래서 다들 서준이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오지 않아도 조금(아니, 많이) 아쉬울 뿐이지 괜찮았다.

[패션위크] 패션쇼 자체로도 기대가 되었다.

“다들 옷을 너무 잘 만들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할 것 없이 짜잔! 하고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에, 다들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문용어를 쏟아내는 무리도 있었고, 심사위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지금부터 입장하겠습니다!”

그러던 중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장소에 패션쇼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주위로 접이식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23번분은 이쪽에 앉아주세요.”

“41번분은 이쪽입니다.”

스태프들은 종이와 펜을 나눠주며 사람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는 완전히 랜덤인 것 같았다. 가장 앞줄에 앉은 사람들은 좋아했고, 무대가 잘 보이긴 하지만 구석진 곳에 앉게 된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근데 저기는 빈자리인가요?”

패션쇼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정면에 놓인 의자들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아, 심사위원들과 출연자들의 가족이 앉으실 자립니다.”

아하.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 앉자, 스태프 하나가 나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먼저 이번 TOP5 패션쇼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꾸벅 인사한 스태프가 이번 패션쇼 투표 방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방송용으로 MC가 설명하기 전 사람들을 확실히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이었다.

“먼저 이번 관객은 일반인과 패션 관련인들로 나눠 선정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패션 관련인으로는 패션잡지 직원, 사진작가, 디자이너, 그리고 패션학과 학생 등이 있습니다.”

어쩐지.

슬쩍슬쩍 들려오는 대화들 중 전문적인 지식들이 많이 들려온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서준에 대한 언급 때문에, 새싹들이 많이 신청할 것을 대비해 이렇게 나눠서 선정한 것 같았다. 물론, 패션 관련인 중에도 새싹들은 많았지만 말이다.

어디에나 있는 새싹.

흐흠, 하고 디자이너 새싹이 작게 웃었다.

“다음으로 투표방식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나눠준 종이를 봐주세요.”

스태프의 말에 모두 스태프들이 나눠준 종이를 보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는 1번부터 5번까지, 총 5장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색, 모양, 호불호, 순위 등을 적을 공간이 있었다.

“이번 패션쇼는 블라인드로 진행됩니다. 순서 또한 출연자들이 추첨으로 고른 순서입니다. 각 번호에 따라 네 벌의 의상이 나올 예정으로, 종이에 옷에 대한 감상을 적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에 사람들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위는 패션쇼가 끝난 후, 가장 좋았던 디자인부터 1등, 2등 순서로 정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각 등수마다 점수가 있어서 반영될 예정이니 5등까지 신중하게 판단해서 적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면 1등은 100점, 2등은 80점, 3등은 60점으로 나뉜다는 것이었다.

“관객 점수 30%, 심사위원 점수 40%, 그리고 특별심사위원 점수 30%로 계산될 예정입니다. 출연자들의 가족분들의 점수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이에 적어주신 감상이 방송에 나가게 될 경우, 소정의 상품을 드리오니 잘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오! 상품!

스태프의 말에 사람들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가장 자세하고 멋들어지게 적어주겠다고 결심했다.

‘협찬사랑 광고도 많으니까!’

꽤 괜찮은 상품들일 거다.

디자이너 새싹이 의욕이 넘치는 얼굴로 종이를 보며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놀라는 목소리와 끄악-! 하고 저도 모르게 나온 비명을 삼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디자이너 새싹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서준이다!’

아마도 출연자들의 가족인듯한 사람들과 함께, 서준이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 놀란 디자이너 새싹은 그냥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로 서준을 보게 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나 제대로 쉬는지도 모르겠다.

서준이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며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초대석과 제법 가까운 자리였던 디자이너 새싹과도 눈이 마주쳤다.

‘후광! 후광이 보인다!’

으아아악!!

조명은 1도 없는데 후광이 보이고, 귀로는 상투스가 들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할 지경이었다.

넋을 놓고 있던 디자이너 새싹의 정신은 서준이 자리에 앉은 후에야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서준의 옆자리에, 서준과 아주 친한 배우 강재한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 앉은 중년 부부는 박민형의 부모님인 듯했다.

그 주위에 앉은 나머지 네 출연자의 가족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서준과 강재한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이해한다.

자신이라도 바로 옆에 서준과 강재한 배우가 앉아 있었다면 그랬을 터였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심사위원들이 등장했다. 아마도 특별심사위원들일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면면에, 디자이너 새싹은 물론이고 패션 관련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 2명과 아레시스의 디자이너 2명.

그리고,

“다니엘 티베?!”

유럽 본사에 있어야 하는 아레시스의 수석디자이너까지.

물론 심사위원들도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특별심사위원들은 어떻게 여기에 왔나 싶을 정도로 특별했다.

와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패션위크] 피디가 히죽 웃었다. 이게 다 나중에 TV를 볼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생각하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이런 어수선한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법.

“촬영 시작하자.”

“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먼저 심사위원 소개가 있겠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무대 위에 선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 줄에 앉은 서준이 앞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 그러니까 중앙 맨 앞자리 앉은 심사위원들이 사회자의 호명에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을 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별심사위원들도 일어났다.

“마지막 특별심사위원입니다. 아레시스의 수석디자이너이신 다니엘 티베 씨께서 직접 와주셨습니다.”

서준의 오른쪽 대각선 자리에 앉은 다니엘 티베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리고 사회자가 말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봄여름 가을 겨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옷은 변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입니다. 이번 패션쇼의 주제는 바로 시간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TOP5 패션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무대에서 내려오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곧 무대에 설치된 모니터가 밝아졌다.

[1]

숫자가 나타나고 런웨이가 밝게 빛났다.

지이잉-!

해금 소리가 들렸다. 4벌밖에 없는 패션쇼였지만 음악까지 준비한 모양이었다.

1번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아마도 시간 중 ‘조선’을 바탕으로 만든 듯, 한복을 개량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게 민형이 옷인가?’

강재한은 생각했다.

[MOEB-436]의 의상 중 두루마기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박민형이 만든 의상인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두 번째 디자이너의 옷이 나오자 바뀌었다.

두 번째 의상들은 시간 중 ‘사계절’을 바탕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것도 ‘사계절의 신’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마치 박민형이 참여했던 [신전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이건가?’

1번도 2번도 너무 잘 만들었다.

감탄이 나오는 디자이너들의 실력에 관객들은 모두 눈을 끔벅이면서도 열심히 종이에 자신이 느낀 것들을 적어나갔다.

아마 이 둘 중에 [패션위크]에서 우승 후보로 뽑히는 박민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심사위원들과 서준, 그리고 다니엘 티베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3번.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들리고 첫 모델이 등장했다.

“……어?”

소정의 상품을 위해 1번과 2번 의상에 대해 열심히 평가하며 종이에 적었고, 3번도 그렇게 평가하겠다고 생각하며 펜을 들고 있었던 디자이너 새싹이 그대로 멈추었다.

디자이너 새싹만이 아니었다.

다른 관객들도 그랬다.

손을 멈추고 점점 커지는 눈으로, 그저 런웨이를 걷는 모델만 바라보았다.

‘……이거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알 것 같았다.

그저 느낌일 뿐이지만, 알 수 있었다.

이게 박민형이 만든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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