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85화 (88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85화

이서준?

이서준 연극?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무언가 굉장한 게 나타났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펄쩍! 뛰는 슈퍼스타가 아닌가.

“이것 보세요!”

서브작가는 테이블 위의 지원서들을 옆으로 치우고 들고 있던 지원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어느새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엉거주춤 서 있던 [패션위크]의 제작진의 시선이 지원서로 향했다.

[이름: 박민형]

으로 시작된 지원서가 보였다.

“여기 학교 이름 보이시죠?”

“여울…… 예중.”

“미리내 예고!”

흥분한 서브작가의 말에 따라, 처음 글자를 읽는 듯 하나하나 읽던 제작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눈도 점점 커져갔다. 방송관계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학교들이었다.

“그리고 여기! 학교 연극에 참가라고 적혀 있죠? 밑에 연극 제목도 있어요!”

서브작가의 손가락을 따라 제작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거울] [MOEB-436] [신전 프로젝트]

연극 제목이 따로 적혀 있었다.

이걸 적을까 말까.

하고 고민한 박민형이 따로 적어놓은 흔적이었다.

아무래도 서준과 관련되면 제작진도 신경을 쓸 테고 기사도 엄청 날 테니까.

또 만약 자신이 너무 일찍 탈락하거나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서준에게도 조금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준이 형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잘했어! 고생했어! 하고 말하겠지.

그리고 지원서에 적지 않는다고 해도, 방송에 얼굴이 나가게 되면 학교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먼저 이야기할 터였다.

박민형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력서에 연극 제목을 적어넣었다.

방송에 나가기로 한 이상 숨기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기대와 부담이 쏟아지겠지만, 박민형은 온전히 짊어질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예상대로 제작진의 기대와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서준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슈퍼스타의 등장에 제작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레시스의 지원을 받아 [패션위크]를 기획하면서 스타들의 출연도 생각해 두었다. 화제성에도 좋을 거고 출연자들이 의욕을 가지기에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스타들의 이름 중에 ‘이서준’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다른 스타들에 비해서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패션에 관련된 방송인 만큼 평소에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스타를 섭외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서준은 음악이나 운동, 하물며 요리로도 언급된 적은 많았지만, 패션으로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찍히는 사진마다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이서준이었만, 그게 보통 작품 속 모습이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코디의 안목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았다.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외모도 한몫했다.

사실 서준이 직접 고른 일상복도 무난하고 깔끔한 스타일이었지만, 일코 덕분에 그런 모습이 목격된 적이 없으니 언급될 일 또한 거의 없었다.

그러니 모두 ‘이서준은 패션에 관심이 없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뭐, 작품 속 의상이나 무대 위에서의 옷 말고는 제외하고는 크게 관심 없는 서준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 배우 이서준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었다.

“근데 진짜일까요?”

기뻐하던 제작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랬다. 기뻐하기 전에 사실 여부부터 알아봐야 했다.

거짓말을 하는 지원자는 드물지 않았다. 침소봉대하듯 참가상을 은상, 대상으로 바꾸는 지원자들도 있어서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방송에 나가면 다 밝혀질 일인데도 그랬다.

피디가 눈을 번뜩였다.

“이서준 연극 검색해 봐. 거기에 출연 배우들 이름이랑 제작에 참여했던 학생들 이름 다 적혀 있지 않았어?”

“맞아요! 있었어요!”

조연출이 얼른 너튜브에 이서준의 연극을 검색했다.

매우 친절하게도 더보기란에 배우들은 물론이고, 연극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이름이 음악팀, 소품팀, 의상팀으로 나뉘어 전부 적혀 있었다.

거기엔 박민형의 이름도 있었다.

“있어요! 박민형!”

으아악!!

비명 같은 환호성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미친! 이서준!”

“이서준 연극 팀원이라니!”

“여기 영화객 리뷰를 보면 팀장을 했대요!”

그냥 팀원으로도 대단한데, 팀장이란다.

피디가 상기된 얼굴로 작가에게 말했다.

“이서준이랑도 친하겠지?”

“친하겠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같은데! 그냥 팀원이라고 해도 엄청 친할 텐데, 팀장이었으면 더더 친하겠지이!”

지원서와 함께 있는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는 작가도 피디 못지않게 흥분해있었다.

“옷도 괜찮아야 하는데…….”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라야, TV에 내보내든 말든 할 터였다.

“괜찮네?”

전문가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작가가 보기에는 정말 괜찮아 보였다.

“그럼 이걸 어떻게 엮지?”

일단 남아 있는 지원서들은 제쳐놓고.

뿅! 하고 나타난 엄청난 기회를 잡기 위해 피디와 작가, 제작진들은 모두 고민했다.

“가장 무난한 건 이서준 배우가 응원하러 오는 거겠죠?”

“우리가 아이돌 서바이벌도 아니고, 계속 그런 무대를 할 수는 없지.”

일반관객들 앞에서 패션쇼를 하긴 할 거지만, TOP 5 정도쯤에 한 번 정도 할 예정이었다.

“이서준 배우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

피디의 말에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출연해 주면 좋겠는데. 오래오래 나올 수 있게.”

“심사위원은 어때요?”

막내 스태프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이서준 측에서 절대 안 받아들일걸.”

대단한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심사위원이 되어도 자격이 있나 없나,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평소 패션에는 관심 없던 배우가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으면 어떻겠나.

아주 인터넷이 뒤집어질 거다.

“미션을 만들까?”

피디가 말했다.

“미션?”

“이서준 배우를 뮤즈로 하는 거지.”

뮤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술, 음악, 문학의 여신의 이름이지만, 현대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의미로 많이 쓰는 단어.

“출연자들이 이서준 배우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고, 이서준 배우는 그 옷을 입고 런웨이에 서는 거야.”

오.

작가의 머릿속에 저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MC의 소개에 등장하는 배우 이서준. 놀라는 출연자들.

이서준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감을 받고 미친 듯이 스케치를 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만들어진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배우 이서준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건 채널 고정이다.

몇 회로 늘려도 시청자가 본다.

[패션위크]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박민형 씨가 있으면 공정성 논란이 있지 않을까요?”

아!

잔뜩 흥분했던 피디와 작가, 스태프들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네. 박민형 씨가 있어서 이야기라도 꺼내보는 건데, 그게 오히려 문제가 되겠네.”

박민형이란 연결고리가 없다면 [패션위크]는 이서준에게 들어오는 수많은 예능 섭외 제안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박민형이 있어야, ‘박민형 씨가 있는데 한 번 나와주실?’이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공정성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이서준과 제작진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다.

분명 논란이 될 거고 이서준의 이름에 오점을 남길 터였다.

-이서준 출연한다고 합격시켜 준 거 아님?

-디자인 별로인 것 같은데?

-패션위크 출연자, ‘출연자 차별 주장’

기대로 가득하던 제작진의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패션위크] 이전에 있던 패션디자이너 서바이벌 방송이 논란으로 대차게 망해버렸다는 것도 떠올랐다.

“……이서준 배우 출연 안 하겠죠?”

“하겠어? 괜한 논란만 생길 텐데.”

“나 같으면 그냥 프로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선다. 제안도 엄청 들어올 것 같은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그냥 포기해야지.”

피디가 한숨을 푹 내쉬며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작가도 허허 웃었다.

“어쩐지. 운이 좋다고 했어.”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아줄 이서준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제작진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섭외가 어그러지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물론 이번엔 타격이 좀 크긴 했지만.

“그래도 박민형 씨만으로도 화제가 될 것 같긴 하지?”

“네. 이서준 배우의 연극에 참여했던 팀원이라는 타이틀도 엄청 흥미로우니까요.”

이서준이 방송에 나오지 않더라도, 기사에는 계속 이서준의 이름이 언급될 거다. 이서준의 지인이라는 사실에 이서준 팬들이 볼지도 모르고.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이서준과 박민형.

두 사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패션위크] 제작진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다시 현재.

박연지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후, 서준은 박민형에게 전화했다.

“너 패션위크 나간다며? 왜 말 안 했어?”

-빨리 떨어지면 창피하잖아요.

박민형이 민망한 듯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예선 통과하면 말하려고 했는데, 영 타이밍을 못 잡아서요.

서준도 따라 웃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로 한 거야?”

-아, 그건 아니에요.

아니야?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레시스 디자이너가 와서 조언을 해준다고 해서요.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프로의 조언을 듣는 건 어렵잖아요.

그거야 그렇다.

아레시스나 다른 유명한 패션브랜드에 입사하지 않는 이상 힘든 일이었다.

-또 방송이라면 재료도 이것저것 사용할 수 있을 테고, 주제도 제가 상상도 못한 게 나올 거예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많을 거고요.

박민형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우승한다면 아레시스에 입사할 생각도 있어요.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의상 감독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박민형의 목소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서준은 빙그레 웃었다.

“민형이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서준이 형. 아, 근데 저 때문에 서준이 형 이름이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아.”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른 애들이 나와도 내 이름이 나오는걸. 저번에 봤는데, 지호 목격담 기사에도 내 이름이 뜨더라. 난 미국에 있었는데 말이야.”

아하하!

박민형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 *

[BNA, 패션위크 오늘 첫 방송!]

[패션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패션위크’! 아레시스 아시아 시장을 노리나?]

-디자이너 서바이벌 오랜만이네. 예전 것도 재미있었는데.

=제작진이 우승자 정해놓아서 망했지만.

=어디 패션회사 사장 아들이었지?

=이번엔 아레시스가 주관하니까 그런 문제는 없을 듯. 누구 돈 받고 우승시켜줄 스케일이 아님.

-근데 진짜 왜 뜬금없이 한국에서 이런 걸 하지??

=222 기사 처음 봤을 때부터 엥? 했음.

=33 갑자기 한국이요?

-20대만 지원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의아함.

=그 나이대 미적 감각을 원하나 보지.

-여튼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더 마운틴에서 찍은 영상의 업로드보다 먼저 [패션위크]가 방송되었다.

1화는 아레시스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현 수석디자이너, 다니엘 티메는 20년 전부터 아레시스를 이끌어오며…….]

옷을 제작하는 중년인의 영상이 나오고, 시청자들도 알 만한 유명한 영상들도 많이 나왔다.

[WTV시상식에서 이서준 배우가 입으면서…….]

당연히 어린 서준이 아레시스의 정장을 입고 있는 영상도 있었다.

-저 때부터 확 유명해졌지.

=22 완전 신생이었는데.

-근데 요즘은 좀 망한 듯?

=망한 건 아닌데, 다른 브랜드에 비해서 이름값이나 디자인이 좀 부족해진 것 같긴 함.

=22 요즘 디자인은 특별한 점이 없고 평범하달까.

=이서준도 그래서 안 입나?

-수석디자이너는 예전이랑 똑같은 사람 아님?

=슬럼프라는 소문이 있더라.

인터넷이 떠들썩한 가운데.

새롭고 특별한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를 찾길 바란다는 수석디자이너 다니엘 티메의 말을 끝으로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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