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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82화 (88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82화

다음 날.

어제부로 끝난 서준 리의 팬미팅장으로 새로운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어서 오세요!”

서준이 웃으며 지인들을 반겼다.

스왈린 애넘과 에반 블록도 마찬가지로 들어오는 이들을 맞이했다. 서준과 아는 사이라면 스왈린 애넘과 에반 블록과도 알고 지내는 이들이 많았다.

“셋이서 연극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이런 걸 또 언제 보겠어.”

“맞아.”

영화 속에서 자주 보는 배우들과 웃으며 포옹하거나 악수하는 서준에 친구들은 속으로 오오, 감탄했다. 알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쪽은 제 친구들이에요.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알지. 반가워요.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서준의 소개에 잠시 바짝 굳어 있던 친구들이 내밀어진 손을 얼른 붙잡았다. 으아아! 나 지금 할리우드 배우랑 악수하고 있어!

“제 영화를, 보셨어요?”

서준의 영화처럼 전 세계 개봉을 한 영화들도 아닌데?

그에 배우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영화는 이것저것 찾아보거든요. 준이 추천해 주기도 하고요.”

친구들의 반짝반짝한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서준이 하하 웃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어?”

한국에서 만났던 라이언 윌 감독과 조나단 윌 감독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너희가 서준이 친구구나!”

“우리 이모야.”

서준을 [쉐도우맨1]에 지원하도록 도와줬다는, 킹즈마켓 사장 나라 킴과도 인사를 하고,

“만나서 반갑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과도 악수를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손님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지켜본 서준과 배우들은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 뒤로 향했다.

“/진짜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더라./”

유명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강재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단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요 몇 주간 친해진 스왈린 애넘이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물론, 아주 조금.

“/나도./”

“/완전 떨렸어./”

전성민과 그 양주희마저도 동의하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할리우드 영화를 찍고 싶을 때 말이야./”

“/응? 응./”

우리가 할리우드?!

하고 놀라기에는 배우 서준 리의 친구로 지낸 시간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서준을 보며, 다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도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을 거다.

할리우드 진출을.

“/저분들이 출연하는 작품이면 괜찮을 거야./”

양주희, 강재한, 전성민의 눈이 커졌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동양인 배우가 오스카상을 수상하고 활동 범위가 넓어져도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많이 있었다. 서준은 친구들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정확히는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라이언 감독이나 에반 블록, 리첼 힐을 만나 마음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자신처럼 말이다.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을 영화의 출연진이 그들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생존자들]을 찍을 때 자신과 함께했던 종호 삼촌이나, [ONE]을 찍을 때 종호 삼촌과 함께했던 지석이 형처럼.

밖에서 연극을 기다리고 있는 배우들이라면 차별 없이, 친절하게 친구들을 대해줄 터였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알려줄게./”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해줄 생각이었다.

“/……서준아!/”

“/이서준 너!/”

눈이 그렁그렁하던 친구들이 서준을 꽉 껴안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서준이 하하 웃었다.

* * *

관객석에 카메라들이 설치되었다.

팬미팅 때도 DVD를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새싹들이 가득 앉아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설치 위치에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객석 중앙에 앉은 스무 명을 빼고 다른 관객은 없었다.

촬영팀은 마음 편히(왠지 뒤통수가 조금 따갑긴 했지만) 제일 좋은 장소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 모습을 [쉐도우맨 시리즈]의 감독 라이언 윌과 촬영 감독 제임스 랜던, [쉐앤나]의 조나단 윌 감독, [생존자들]의 감독 제프리 로덕스와 촬영 감독 등. 오늘 여기에 온 감독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의 일이라서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손이 근질근질했다.

그때.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듯 관객석이 어두워졌다.

아는 이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들 서준 리와 친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제법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무대 쪽으로 돌렸다. 서준과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을 아는 만큼 눈동자에 기대가 가득했다.

삐---

소리와 함께 천천히 막이 올랐다.

* * *

넓은 관객석에 스무 명밖에 되지 않은 관객들이었지만, 집중도는 어마어마했다. 서준은 씨익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고 유리관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유진’과 ‘M’의 신체를 바꾸는 중이었다.

타이밍에 맞춰 유리관 안쪽 버튼을 누르자, 매직미러처럼 유리가 흐려졌다.

완전히 흐려진 것을 확인한 서준은 얼른 유리관 뒤쪽에 있는 문을 열고 ‘우주선 조종석 세트’ 뒤로 나왔다. 서준처럼 반대편에서 나오는 에반 블록이 보였다.

2개의 유리관은 ‘우주선 조종석 세트’와 이어져 있었는데, 그 뒤편은 이렇게 나오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세트 뒤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빠르게 에반 블록의 팔, 다리, 얼굴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에반 블록 또한 얼른 점퍼 속에 고정해 두었던 왼팔을 꺼냈다.

순식간에 사지가 멀쩡한 ‘유진’이 나타났다.

서준과 눈을 마주친 에반 블록이 씩 웃고는 얼른 다시 나왔던 문으로 들어갔다. 이제 유리관 아래에서 연기가 나오며 유리관의 뚜껑이 열릴 터였다.

에반 블록보다 시간의 여유가 있긴 했지만, 서준도 얼른 준비해야 했다. 연습 기간 동안 익숙해진 스태프들이 서준의 다리와 얼굴에 붕대를 감고 옷 안으로 왼팔을 집어넣고 고정시켰다.

마지막으로 붕대가 단단히 묶였는지 체크를 한 서준이 나왔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불투명한 유리관이 보이자, 붕대를 감은 서준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

* * *

“완전 제 취향이었습니다! 준!”

그럴 것 같았다.

제프리 로덕스 감독의 말에 서준과 친구들, 지인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생존자들] 제작 당시, 서준과 데이비스 가렛, 그리고 제프리 로덕스 감독이 한바탕 날뛰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지금 촬영 중인 작품이 있는데……!”

“바꾸면 안 되죠, 감독님.”

이중에서 가장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생존자들-감독판]의 스타트를 끊었던 데이비스 가렛이 폭주하려는 제프리 감독을 진정시켰다.

그 아이러니한 상황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팬미팅장과 가까운 레스토랑.

연극 [MOEB-436(E)]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배우들이 배우들인지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서준은 오늘 기꺼이 와준 지인들과 함께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팬미팅 뒤풀이는 행사장의 정리가 모두 끝난 후, 스태프들과 함께 편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런. 나도 이제 가 봐야겠는걸. 오늘 재미있었어, 준.”

“와주셔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연극 보여줘서 고마워.”

아쉽게도 바쁜 사람들은 연극만 보고 가기도 해서 레스토랑에 있는 인원은 조금 줄어 있었지만, 분위기는 즐거웠다.

‘얘들도 좀 적응한 것 같고.’

배웅하고 돌아와, 지인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서준에게 에반 블록과 라이언 감독, 조나단 윌이 다가왔다.

‘조나단. 도망갈 줄 알았는데.’

자진납세인가.

서준이 작게 웃었다.

“준.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요?”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에반 블록이 웃으며 답했다.

“이레귤러스,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 시작하나 봐.”

오.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아직 대본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여러 히어로들이 등장하다 보니, 여러 번 갈아엎었다고 들었다.

서로의 케미도 잘 살려야 했고 그들의 영화와의 연결성을 위해 캐릭터 설정이나 스토리 등을 고려해야 하니까.

그래서 시나리오 팀이 조나단 윌 감독이나 다른 시리즈의 감독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고 들었다.

‘그리고 흥행도 걸려 있고.’

시즌 1부터 탄탄한 팬층을 만들어온 [나이트 진 시리즈]는 괜찮지만, 시즌 2의 다른 히어로들은 이번 [이레귤러스]를 계기로 좀 더 팬들을 늘려야 했다.

“아직 완벽하게 끝난 건 아니지만 이제 슬슬 세트장도 준비해야 하니까.”

조나단 윌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귤러스]가 어떤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인 만큼 세트장도 다양하고 규모도 클 터였다.

‘그만큼 준비도 꽤 시간이 걸리겠지.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서 촬영하기 위해 허가도 미리 받아놓아야 할 거고.’

그리고 출연하는 배우들의 스케줄도 미리미리 잡아놓아야 했다.

“그럼 저한테도 곧 연락이 오겠네요.”

* * *

그날로부터 이틀 후.

귀국하기 하루 전.

친구들과 코코아엔터 1팀 직원이 신나게 기념품을 사러 떠나고, 서준과 최태우는 마린사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준.”

[이레귤러스]를 총괄하는 담당자가 웃으며 서준과 최태우를 반겼다. 서준도 웃으며 담당자가 내민 손을 마주 잡은 후 자리에 앉았다.

[이레귤러스]의 담당자는 작년 [이레귤러스]가 본격적으로 구체화하면서부터 서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올해 2월 오스카상을 받으러 왔을 때도 만났고, [뉴 이클립스] 촬영이 끝난 후에도 통화를 했었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알려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다른 배우분들의 스케줄도 파악해야 해서 연락이 늦은 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대본도 제법 틀이 잡히고 컨셉아트들도 하나둘 완성돼가는 상황입니다. 먼저 이건 나이트 진의 컨셉아트입니다. 다른 히어로들의 것도 있습니다.”

담당자가 가지고 온 서류들을 넓게 펼쳐 서준에게 보여주었다.

서준은 먼저 빠르게 볼 수 있는 컨셉아트부터 살펴보았다.

“나이트 진이 된 후의 스토리라서 대학생으로 나올 겁니다. 이건 윌리엄이 퍼스트 안에서 입는 의상이고요.”

“어셈블에서 입고 나온 디자인과는 다르네요.”

“네. 아무래도 시즌 2이니까요. 그리고 나이트 진의 의상도…….”

조곤조곤 담당자의 이야기가 이어졌고, 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이건 시놉시스입니다. 중간 에피소드들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 주세요, 준.”

“네. 알겠습니다.”

서준은 천천히 담당자에게서 받은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했다.

담당자는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그런 서준 리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미 계약이 되어 있어서 서준 리가 출연하지 않을 리는 없었지만, 배우의 마음에 드는 쪽이 훨씬 좋았다.

‘준은 작품 보는 눈이 좋기도 하고.’

일단 서준 리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도 시나리오팀도 다른 스태프들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놉시스를 읽은 서준의 표정에 담당자의 심장이 위로 떠올랐다가 아래로 추락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곧 마지막 장 끝까지 읽은 서준의 입이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담당자의 눈에 아주 느리게 보였다.

“좋네요. 재미있어요.”

“하아……!”

응?

시놉시스에 집중하고 있던 서준이 긴장이 풀린 담당자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매니저 최태우가 작게 웃었다.

민망한 듯 작게 헛기침을 한 담당자게 바르게 앉았다.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대본은 완성되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10월 전까지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레귤러스의 촬영은 내년 3월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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