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81화
팬미팅 1일 차가 막을 내렸다.
새싹들은 상기된 얼굴로 코코아엔터에서 준비한 선물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왔다.
2년 차 새싹인 조이도 그랬다.
조이는 종이가방을 보물인 것처럼 꼭 끌어안고 멍한 표정으로 팬미팅장을 나와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새싹들의 물결에 따라 흐느적흐느적 걸어갔다.
“조이!”
“유나!”
그때, 따로 떨어져 앉았던 유나 주가 조이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유나 주도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듯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완전 재미있었지!”
“응응!”
“너도 목이 쉬었네! 아하하!”
그렇게 말하는 유나 주도 반쯤 목이 쉬어 있었다.
아이돌 콘서트처럼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무대보다 조용히 감상하는 무대가 더 많았음에도, 얼마나 열심히 호응했는지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이 네가 앉은 구역에서 서준 오빠가 나타났지?”
“응! 완전 바로 앞에서 봤어!”
통로와 좌석이 3개쯤 떨어져 있었지만, 그 정도면 바로 앞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릴 때는 눈도 마주친 것 같았어!”
“와, 미쳤다…….”
조이의 이야기에 유나 주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내 자리에서 봐도 어마어마하던데, 어땠어?”
“진짜 ‘세상에…….’ 그 생각밖에 안 들었어. 처음에 웅크려있다가 일어나잖아? 앉아서 보니까 더 커다랗게 보이더라. 두루마기가 펄럭여서 더 그런 것 같았어.”
조이가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뒤쪽에서 걸어오는데 되게 무섭더라. 진짜 사람처럼 안 보이는 거 있지? 압박감도 들고 소름도 돋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 준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그냥 M 같더라. 아니, 장산범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눈이 마주쳤을 때는 진짜 심장이 내려앉은 느낌이었다니까. 아, 근데 잘생겼더라.”
“아핫.”
“잘생겼는데 무섭고, 무서운데 잘생겼어.”
진지한 조이의 말에 유나 주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동의했다.
“백발도 잘 어울리고!”
“정장도!”
한바탕 서준의 멋짐에 대해 찬양한 후에야 두 아이는 진정하고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이 엄마의 차에 올라탔다.
“재미있었어?”
“완전!”
“진짜 재미있었어요!”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아이들에 엄마가 웃으며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바뀐 연극도 진짜 좋았어.”
뒷자리에 앉은 두 아이는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그 부분이 좋더라. M의 머리카락이 검은데 긴 거.”
“그게 왜?”
조이의 말에 유나 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M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양분은 잘 챙겨줬지만, 머리카락은 그렇게 길 때까지 잘라주지 않았다는 거잖아. 진짜 관심과 사랑은 없었던 거지.”
“오…… 그런 것 같아. M도 그랬지. 머리 잘라 달라고.”
“응. M도 조금 짐작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름을 준다니까 기뻐했던 건지도 몰라.”
M…….
조이와 유나 주는 기뻐하다 이내 배신당한 M을 떠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랑 형이라고 불렀을 때가 진짜 충격이었는데.”
“그러니까.”
두 아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장면과 대사만 보자면 굉장히 행복한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성녕대군마마 무대도 좋았지.”
“내가 그걸 보게 될 줄이야!”
연극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2부 공연으로 이어졌고.
두 아이는 연극, 공연, 연극, 공연을 반복하며 즐겁게 떠들어댔다.
“잘 가! 조이! 안녕히 가세요!”
유나 주를 집에 데려다주고, 조이와 엄마도 집에 도착했다.
조이는 얼른 2층 자신의 방으로 뛰어 올라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벅참과 행복함, 기쁨을 얼른 남기고 싶었다.
[오늘 준을 봤어. 내가! 준을! 봤다고!! 난 내가 지금까지 천사를 덕질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준은 신이야. 신이라고. 그래서 난 오늘부터 신자가 되기로 했어. 평생 준에게만 기도할 거야.(기도) 하여튼 오늘 LA에 강림한 준은 너무 멋지고 잘생기고 귀엽고……(중략)……공연이랑 연극, 한 장면도 안 놓치려고 열심히 보다가 안구건조증 걸릴 뻔했어. 근데 바로 눈물이 나와서 나았지. 그냥 준만 보면 눈물이 나와. 크흡. 준이 실재하다니, 준이 내 앞에 있다니. 15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 ……(하략)]
“히히.”
한껏 마음속에 있는 주접들을 풀어낸 조이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등록’ 버튼을 눌렀다.
그래.
누른 건 SNS의 등록 버튼일 텐데.
화면이 달랐다.
[보내기 완료.]
[펜팔 도착시각까지 23:59:59]
“어?”
이건 조이가 활동하고 있는 영화 리뷰 사이트에서 펜팔을 보낼 때 나오는 글자였다.
“어어?”
마녀 수행 사이트에서부터 이어져 온 어른스럽고 지혜로우며 인자한 컨셉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 리뷰 사이트!
“안돼!!”
경악한 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된다고!”
내 이미지……!
조이가 애꿎은 모니터와 마우스를 흔들어댔지만.
그 펜팔은 24시간 후, 무사히 양주희의 편지함에 도착했다.
* * *
양주희가 그 펜팔 편지를 읽은 건, 2일 차 팬미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던 차 안이었다.
오늘을 끝으로, 서준의 미국 팬미팅은 막을 내렸다.
큰 짐을 내려놓은 서준과 친구들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이 금방 지나가네. 이제 좀 익숙해지나 했더니.”
강재한이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습을 질릴 만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관객들이 있는 무대에서 익숙해지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그래도 내일 촬영이 있으니까.”
양주희가 웃으며 말했다.
내일 너튜브에 올릴 [MOEB-436(E)]를 촬영할 예정이니, 연극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덜 수 있을 거다.
또 내일 뒤풀이 파티도 한다.
“미국 파티라니 궁금하네.”
“크게 하는 건 아니라서 한국이랑 다를 건 없을걸.”
“스태프분들도 오시지?”
“응. 쉐도우맨 애니메이션 만들어준 분들도 초대했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팬미팅을 만들어준 분들이었다.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오. 그거 잘됐네. 쉐도우맨 시리즈 팬이라고 하셨었지?”
“애니메이션 진짜 잘 만들었더라.”
그러던 중, 양주희가 휴대폰을 꺼내 팬미팅 중 무슨 연락이 왔나, 살펴보았다.
“……?”
양주희가 눈을 깜빡였다.
분명 화면은 영화 리뷰 사이트이고 보낸 사람은 J 님인데, 편지의 내용이 이상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잠깐만.”
양주희는 제대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곧 허허, 웃었다. 조금 해탈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양주희의 모습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J 님 말이야.”
“LA 음식점 추천해 주신 분?”
“응. 15살이래.”
“……응?”
서준과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한때 스왈린 애넘이 아닐까, 생각했던 어른스럽고 상냥한 펜팔 상대가…….
“15살이래. 중학생.”
허어!
놀라는 친구들에, 양주희가 허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편지를 잘못 보내셨나 봐. 내용은…….”
양주희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새싹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말 못 하지만.”
조이가 알았다면 양주희에게도 기도를 드리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펜팔 상대가 서준 리의 친구라고는 상상도 못 하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여기에 나이가 적혀 있네. 영어라서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네.”
이제는 좀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양주희였다. 그동안 펜팔 상대와 나누었던 편지들이 떠올랐다. 이것저것 고민을 이야기했었는데.
허, 허허, 허허허!
웃으며 창문에 머리를 박는 양주희를 보며 강재한이 말했다.
“인터넷 무섭다.”
“그러게.”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성민이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어쩐지 추천하는 음식이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 중학생이라서 그랬네.”
그랬구나.
그랬어.
이제야 밝혀진 진실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숙소로 돌아온 후.
서준과 친구들은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J 님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나왔다. 허탈해 보이는 양주희의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제 펜팔 안 할 거야?”
강재한의 물음에 양주희가 고개를 저었다.
“나이를 알았다고 해도 사람이 달라진 건 아니니까. 펜팔 상대로는 정말 좋았어. 그냥 내가……1 5살한테 조언을…… 음. 그래…….”
서준과 친구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을 본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이들이 궁금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데이비스야.”
“데이비스…… 데이비스 가렛……!?”
놀란 아이들이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았다.
서준과 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데이비스./”
-/안녕, 준. 오늘 팬미팅 끝났다며. 잘 끝났어?/
팬미팅 연극 캐스팅으로 연락했을 때 말했던 것을 기억했던 모양이었다. 기사로 봤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관심을 가져줬다는 이야기였다.
“/네. 잘 끝났어요./”
서준은 데이비스 가렛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아쉽네. 준 네가 하는 연극 보고 싶었는데. 오늘 막 일이 끝나서 내일부터 쉬거든. 하루만 더 일찍 끝났으면 좋았을걸. 스왈린에 에반에 준이라니. 이렇게 호화로운 연극은 보기 힘든데 말이야. 네 친구들도 궁금하고./
아쉬운 목소리로 말하던 데이비스 가렛이 이만 전화를 끊겠다고 말했다.
“뭐야, 뭐라고 하셨어?”
서준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서준은 통화 내용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응?”
“우리 내일 촬영하기 전에 리허설 겸으로 데이비스한테 연극을 보여주면 어떨까?”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이비스 가렛이 우리 연극을 본다고?
“……스왈린 배우를 만났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긴장되는데.”
강재한의 말에 양주희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재미있을 것 같아. 촬영 때 관객이 있는 것도 좋고.”
“그 관객이 데이비스 가렛인.”
자신의 말에 웃는 친구들을 보던 전성민이 말을 이었다.
“나도 괜찮아. 리허설 때도 촬영하면 더 좋은 장면들만 모아서 편집할 수도 있을 거고.”
“나도. 그런데 두 분한테도 여쭈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물어보려고.”
서준이 휴대폰을 들어 두 배우에게 연락했다.
스왈린 애넘과 에반 블록은 흔쾌히 승낙했다. 겸사겸사 서준의 지인들에게 연락해 보라고도 했다.
-/네 연극을 못 본 지인들도 많잖아./
“/그건 그렇죠./”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은 한국에서만 해서, 미국에 사는 지인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연락했어요, 제이슨./”
저녁 식사를 끝내고 가장 먼저 데이비스 가렛에게 연락한 서준은 그다음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에게 연락했다.
“/내일 시간 괜찮으면 벤자민 교수님이랑 같아 와서 보고 가세요./”
-/그래. 마침 LA이기도 하고./
-/나도 같이 가도 괜찮을까, 준?/
낯익은 목소리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유럽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리 바실리예프였다. 마침 LA에 있던 모양이었다.
“/네. 당연히 괜찮죠./”
그렇게 바이올리니스트 세 명이 초대되고.
“시간 괜찮아, 나라 이모?”
-완전 괜찮지!
킹즈마켓의 사장, 나라 킴이 초대되고.
“/시간 되시면 라이언 감독님도 꼭 오세요. 조나단도요./”
-/그래. 알았다./
-/난 안 가고 싶……./
또 [나이트 진]으로 갈릴까 싶었던 조나단 윌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서준이 히히 웃으며 무시했다.
“좋아. 이번엔…….”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휴대폰 목록을 살폈다.
그런 서준의 모습을 소파에 앉아 바라보고 있던 양주희와 강재한, 전성민은 마른 침을 삼켰다. 테이블에 놓인 디저트가 보이지도 않았다.
“관객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저런 사람들이 올 줄은 몰랐지…….”
“이러다 어디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연극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전성민의 말에 양주희와 강재한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에게는 다행히도, 갑작스럽게 정해진 일이라 일하는 중인 리첼 힐이나 LA가 아닌 사라 로트 감독처럼 못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몇 분이 오는 거야?”
“스무 명 정도.”
누가 오는지 적어놓은 목록을 보며 서준이 아쉬운 듯 말했다.
“다음 팬미팅 땐 미리 연락해야겠어. 모두 볼 수 있게.”
“아예 연극으로 미국 투어를 하는 건 어때?”
“그것도 좋겠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서준에, 친구들이 허허 웃었다.
서준이라면 진짜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