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75화
--! -!
그사이에도 귀를 아프게 하는 소음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모자를 쓴 남자는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
최유성이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원래라면 ‘꼬마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야 했는데, 일부러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인지 손짓으로 남자를 불렀다.
그에 엉망진창으로 연주하던 남자가 움찔하고는 활을 멈추고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을 바라보았다. ‘네?’ 하고 되묻는 소리도 없었다.
괴로운 바이올린 연주까지 사라지자, 팬미팅장은 조용해졌다. 새싹들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눈을 빛내며 무대 위 무성연극을 바라보았다.
조금 떨어져 있던 최유성이 몇 걸음 걸어와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왜 자세가 그런지 묻는 듯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난입한 최유성에 남자는 눈만 깜빡였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최유성은 남자의 팔을 잡아 자세를 고치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툭툭 쳐서 두 발이 제대로 된 위치에 서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자세를 잡은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 남자가 아하! 하고 따라 하는 것이 보였다.
엉거주춤 따라 하는 서준의 모습에 새싹들의 입에서 작게 웃음이 나왔다.
최유성이 얼른 연주해 보라는 듯이 몸짓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활을 들어 올리는 찰나, 나탈리 바딘이 남자에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괜찮다며 거절하는 남자지만,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은 십여 년 전 그러했던 것처럼 거절을 거절했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케이스에서 나탈리 바딘의 바이올린을 꺼냈다. 나탈리 바딘은 남자의 바이올린을 들어주었다.
남자는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올리고 턱을 괬다. 그리고 활을 들어 올렸다 내리그었다.
이제 멋진 연주를 하겠구나! 하고 새싹들이 생각할 때,
---! -!
예상과 달리 다시금 처참한 연주가 흘러나왔다.
놀란 새싹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우와-! 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연주가 점점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활의 잡은 손의 힘이 빠지고, 선율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 ♪-♬-!
최유성이 가르쳐 준 자세를 어색하게 취하던 모습도 점차 몸에 익은 듯, 아주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 ♬♩♪!
완벽한 연주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어설프다가 점점 나아지는, 그리고 결국 프로처럼 자세를 잡고 연주하는, 그 일련의 행동이 마치 영상을 빠르게 재생시킨 것처럼 보여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한 소절을 한 번도 삐끗하지 않은 서준은, 하던 연주를 멈추고 새롭게 처음부터 시작했다. 그 전환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한 곡처럼 들렸다.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
버스킹에서 기꺼이 가르침과 바이올린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서준의 감사와 고마움과 즐거움을 담은 곡이 다시 처음부터 연주되어 팬미팅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와아……!
소리없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휴대폰에 넣어두고 수백 수천 번을 들은 곡이지만, 실제로 듣는 것은 전혀 달랐다. 잘 알고 있는 곡인데도 완전 새로운 곡을 듣는 것 같았다. 온몸이 다 짜릿해질 정도로 생생한 선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인데, 또 다른 선율들이 들려왔다.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이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준과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동시에 연주하기 시작했다.
최유성은 단단한 바닥을 만들어주듯 낮게 연주했고, 나탈리 바딘은 반짝반짝 장식하듯 높게 연주했다. 거기에 곡의 중심이 되는 서준의 연주까지.
세 사람의 선율이 어우러지며 더욱 풍성해졌다.
단 한 소절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새싹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진짜 좋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나 끝은 있는 법.
잘 아는 곡이라서 이제 곧 끝이 다가올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곧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던 선율이 멈추었다. 여기저기서 작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벅찬 나머지 숨 쉬는 것도 잊은 것이었다.
그런 관객들의 모습을 보고 작게 웃은 서준이 검은 모자를 벗었다. 스태프가 빠르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안녕하세요. 새싹 여러분.”
스크린으로 새싹들이 선물해 준 초록색 커스텀 마이크를 들고 있는 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배우 서준 리입니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이는 서준 리의 실제 모습과 귀로 들려오는 생생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잠시 그대로 얼어버렸던 새싹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와아아악!! 환호성을 질렀다. 반짝이는 새싹봉을 흔드는 팬들도 있었다.
그 격렬한 반응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으아아아!!
그 반짝이는 미소에 환호성이 더 커졌다.
“내가! 준을! 봤어!”
“으아아아!!”
“CG가 아니었구나!”
이서준 CG설은 미국에도 있던 모양이었다.
“모두,”
그렇게 열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면서도 서준이 입을 열려고 하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조용해졌다.
열렬한 환호에 조금 놀라고 있던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이 (우리도 준과 친분이 없었다면 그랬겠지만.) 그런 새싹들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얼마나 애정이 가득한지 알 것 같았다.
“첫 무대 잘 보셨나요?”
네에!
하고 대답이 들려왔다.
“LA에서 열리는 팬미팅이라서, 첫 무대는 LA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연해 봤어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제가 처음으로 주연으로 찍은 작품이거든요. 쉐도우맨 다음으로 출연한 할리우드 작품이기도 하죠. 또 오스카상을 받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고요.”
서준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오늘 무대를 도와주신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2년 전, 평범한 영화 홍보영상을 아주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만들어주신 유성 최 바이올리니스트와 나탈리 바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이 웃으며 인사했다.
“저희가 그때 처음 만났었죠?”
“네. 그랬죠.”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이 [오버 더 레인보우]의 마지막 연주회 장면에 관객으로 참여했다는 이야기와 유럽 연주회에서 함께 연주했던 이야기를 했다.
“빠진 연주자를 대신할 바이올리니스트를 불렀는데, 준이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맞아요. 오케스트라가 뒤집어졌었죠. 제이슨 무어 씨가 아는 사람을 부른다길래, 친한 바이올리니스트겠구나, 했는데 배우였다니!”
그 생생한 비하인드에 새싹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엄청 놀랐습니다. 준이 갑자기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등장해서 말이죠.
“그럼 첫 무대를 함께 해주신 두 분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새싹들의 박수를 받으며 꾸벅 인사한 최유성과 나탈리 바딘이 웃으며 무대 옆으로 사라졌다.
“다음 곡 들려드릴게요. 오버 더 레인보우입니다.”
바이올린에 턱을 괸 서준, 아니, ‘그레이 바이니’가 활을 길게 그었다.
처음부터 날것처럼 들리는 음률에, 새싹들은 그게 다듬어지지 않은 [오버 더 레인보우 ver.버스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색이 바랜 옷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어른이 된 그레이 바이니.
어쩐지 프로가 되지 못했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어도,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고 해도, 그레이는 변함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 * *
“다음 무대 준비하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찡긋 웃은 서준(함성이 터져 나왔다.)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오버 더 레인보우]가 인생영화라는 한 새싹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완전, 진짜, 정말 좋았어요…….”
조금 전 본 장면을 잊지 않으려는 듯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기도하듯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아주아주 행복해 보였는데, 그런 새싹이 한 명이 아니었다.
“다음은 뭘까?”
“글쎄. 근데 준이라면 뭘 해도 다 좋을 것 같아!”
그냥 웃고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새싹들이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스크린에 영상이 나타났다. 지금 처음 공개되는 미국에서 지낼 때 찍은 서준의 일상이었다.
그냥 찍어도 화보 같고, 영화 같고, 작품 같은 서준의 모습에 모두 입을 틀어막고 그 영상을 시청했다.
* * *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서준이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이스케이프] ‘고주원’의 모습으로 [포 마이 프렌드]를 연주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2]의 OST이기도 한 곡의 연주에 새싹들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연주가 끝난 다음은 서준과 새싹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무대 위 의자에 앉은 서준이 미리 새싹들이 적어놓은 질문들과 하고 싶은 말들을 랜덤으로 뽑아 대답해 주었다.
또 미국 첫 팬미팅 기념으로 [새싹부터-미국]에서 준비한 3단 케이크(서준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인형이 여기저기 꽂혀 있었다.)를 커팅하고, 미국 새싹들의 투표로 선정된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쓰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휴대폰 카메라를 줌인하며 사진을 찍는 새싹들은 아주아주 행복해졌다.
“이번엔 노래를 불러드릴 건데요.”
노래!
블루문의 노래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돌의 노래일까?
어떤 노래든 이제 준비하러 들어가겠구나, 생각하는데, 예상과 달리 서준은 앉아 있던 의자 옆에 놓인 테이블 뒤에서 뭔가를 꺼냈다.
기타의 케이스였다.
기타!
새싹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타라니!
“기타 연주도 같이 할 생각이에요. 너튜브 채널에 기타를 연주하는 영상이 있기 하지만, 직접 보여드리는 건 처음이죠?”
서준의 말처럼, 서준이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서준은 익숙하게 케이스에서 통기타를 꺼내 허벅지에 대고, 오른팔을 접어 통기타를 감싸 안았다. 왼손은 통기타의 현을 짚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기타 피크로 가볍게 현들을 쓸었다.
♩---!
하고 소리가 났다.
“그럼 시작할게요.”
소리를 체크한 서준이 연주를 시작했다.
곡은 전 세계에 잘 알려진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사랑 노래였다.
편하게 의자에 앉아 통기타를 연주하며 사랑 노래를 부르는 서준.
감미로운 연주와 함께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살랑이는 선율에 따라 흔들리는 것 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살짝 기울어진 고개에, 새싹들은 너무 행복해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 * *
다음 무대는 검은색 피아노가 올라왔다.
캐주얼한 옷에서 단정한 흰 셔츠에 검은 정장바지로 갈아입은 서준이 그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번 무대는 영상이랑 같이 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
흰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 서준이 피아노 건반 위로 손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스크린으로 영상이 나타났다.
새하얀 배경.
그 중앙에 검은 원이 보였다.
띵!
서준이 피아노 건반을 하나를 누르자 그 원에 버섯처럼 작은 원이 나타났다. 또 서준이 띵! 하고 건반을 누르자 조금 떨어진 곳에 또다른 작은 원이 생겨났다.
마치 곰인형의 머리처럼, 검은 원에 귀 두 개 생겼다.
어?
하고 놀라는 새싹들의 모습에 작게 웃은 서준이 가볍게 띠리링! 띵! 하고 선반을 누르자, 몸통과 팔다리가 생겨났다.
덩그러니.
완성된 곰인형이 스크린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서준이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은 가볍게.
마치 아기의 발걸음처럼.
♪♬♪♬♪♬-!
높고 가벼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스크린 속 오른쪽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짧은 다리, 짧은 팔, 통통한 몸통, 살랑거리는 머리카락.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검은색 캐릭터가 선율의 소리에 따라 달려 나와, 스크린 중앙에 놓여 있던 곰인형을 꼬옥 껴안았다.
새싹들은 곰인형이 나왔을 때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윌리엄이다! 쉐도우맨이야!
그 확신대로, 이번 무대는 피아노와 함께하는 [쉐도우맨]&[쉐도우앤나이트]의 그림자 연극이었다.